이번엔 ‘생/명’이 아니라 ‘개/벽’이다. 기존의 개벽담론을 다시 보고, ‘생/명’ 관점에서 다시 쓴다. 또 다른 개벽담론의 발명을 연습한다. ‘개/벽’은 개벽담론의 재–발명을 위한 생각 도구이다. ‘전환의 물결’을 위한 이론적 실험의 단초가 되기를 기대한다. 또 하나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하나의 유령이 지구를 배회하고 있다. 그림자처럼, 혹은 아우라처럼 주위에 어른거리는 그 무엇, 누군가는 ‘인류세’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대멸종의 […]
READ MORE지난 글에서 ‘문명전환과 사상투쟁’을 이야기했거니와 내부적인 사상투쟁도 불가피하다. 생명사상들 사이의 사상투쟁 말이다. 생명 존엄의 생명사상, 동성애 반대의 생명사상, 자연주의 생명사상, 신비주의 생명사상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때 사상투쟁의 무기는 ‘비판’이 아니다. 양자택일의 ‘대안’도 아니다. ‘다시’ 보기다. ‘다시’ 쓰기다. ‘또 다른’ 생명사상 만들기다. 생명사상 ‘다시-쓰기’다. 생명세계 ‘다시-그리기’다. ‘다시’, 나와 세상을 태동케 하는 또 하나의 기술 […]
READ MORE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끝날 줄을 모른다. 미국과 중국이 대만을 두고 으르릉거린다. 분명 국제분쟁 이상이다. 서유럽과 유라시아, 중국문명과 미국문명의 충돌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이 일찍이 예견했던 ‘문명의 충돌’의 그것처럼 보인다. 무슨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명을 말할 만큼 앎이 넓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나의 감상(感想), 문득 느끼어 일어나는 생각은 ‘문명의 충돌’과 ‘사상투쟁’이다. ‘문명의 전환’이 […]
READ MORE저자 주 : 연재가 한없이 늦어지고, 연재에 일관성이 없이 오락가락하여 독자들과 담당자에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약속된 6개월 12회의 연재가 4회 남아 급하게 ‘몸-생/명’을 키워드로 하는 제 나름의, 또 다른 생명사상을 제출합니다. 나머지 3회는 오늘 글을 바탕으로 2회에 걸쳐 또 다른 생명사상과 생명-운동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아울러 대선 이후에 쓴 ‘진리정치의 종말’, 그 이후에 관한 저의 생각을 […]
READ MORE“70년대 한국의 대표적 저항시인 김지하.” 언론들은 그의 생애를 한 줄로 요약했다. 보도지침이라도 받은 것처럼 한결같았다. 또 다른 버전이 있었지만,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적(五賊)의 시인 김지하.” 1941년생인 그의 생애 전반부 40년만이 의미 있는 삶으로 규정되었다. 1982년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협동적 생존의 확장’이라는 문서를 기초한 이후 생명사상가, 생명시인으로 살아왔던 그의 후반기 생애 40년은 삭제되었다. 그러나, 나에게 […]
READ MORE원래는 4월 초쯤 ‘대선 후 한 달’의 감상으로 쓰려 했다. 제목은 물론 ‘진리정치의 종말’이었다. 그러나 글이 멈춰진 상태에서 시간이 흐르고 흘러갔다. 왠지 모르겠다. ‘진리’라는 말의 무거움 때문이었을까. ‘종말’이라는 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시작’을 감행하기엔 준비가 부족했던 탓일까. 무엇보다 ‘종말’과 함께 도래할 새로운 ‘시작’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직은 종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튼 […]
READ MORE3월 9일 대선 투표일을 맞이하는 나의 결론은 ‘어텐션 투 라이프’다. ‘attention to life’다. 직역하면, ‘생명에 주목하기’ 정도가 될 것이다. ‘생명에 유의하기’, 혹은 ‘생명에 깨어있기’로 옮겨도 좋을 것 같다. 프랑스의 생명철학자 베르그손이 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평소에 어디선가 많이 듣던 소리다. 누구든지 생각할 법한 말이다. 요점은 ‘삶-생명에 깨어있기’. ‘현재를 살아가기’. 이념적 잣대로 판단하지 않기. 다시 말하면, […]
READ MORE‘생/명’ 이야기를 시작하려니, 두 개의 그림이 떠오른다. 한겨레21과 김지하. 우선, 지난 연말 ‘한겨레21’에서 보았던 기사 제목, “젠더? 세대? 잘 갈라쳐 봅시다”가 그것이다. 대선을 앞둔 한국사회는 “과잉 이상화되어” ‘갈라치기’를 악으로 취급한다는 것, 이것이 ‘진짜’ 문제라는 말이다. 본래 “선거란 갈등이 조직돼 합법적으로 표출되도록 하는 경합의 공간”이라는 주장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열렬히 박수를 치며 지인들에게 기사를 전했다. 그러나 아무런 […]
READ MORE※이 글은 2021년 12월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주최한 녹색정치대화모임에서 발제문을 수정·보완한 글이다. 녹색정치를 진보정치로 바꾸어도 논지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대선판을 바라보면서, 이른바 진보-녹색 활동가들과 대화를 나누며 이 글을 다시 떠올렸다. ‘생/명’ 관점에서의 정치적 제언이기도 하다. 키워드는 ‘감응(정동)’과 ‘역설’이다. 녹색당에 대한 짧은 제안이 담긴 5절의 내용은 대부분 삭제했다. 정동이론가 브라이언 마수미는 『정동정치』라는 책에서, 좌파의 위험에 대해 “강직함과 옳은 […]
READ MORE대전환기란 무엇보다 사상적 대전환기이다. 그러나 사상의 전환은 신체의 전환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과 물질문명의 자기생산을 겨우겨우 뒤쫓아가는 신체와 그 신체를 뒤따르지 못하는 정신의 괴리가 치명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포와 불안과 죽음정치로 이어진다. 자각은 고사하고, 가벼운 질문조차 내뱉기 어렵다. 그러나, 몸은 알고 있다. 불편하다. 불쾌하다. 고통스럽다. 그리고, 2022년 1월 대선판에서의 페미니즘에 대한 반동적 공격에서 그것을 절감한다. 오늘날 […]
READ MORE바야흐로 생태, 생명의 시대다. 팬데믹과 기후변화의 위기감 속에서 ‘생명’, ‘생태’는 익숙한 레퍼토리가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남과 북 ‘생명’공동체를 제안한 바 있으며, 지난 7월에는 전라북도 도의회에서 이른바 ‘생태문명 조례’가 통과되었다. 환경단체들뿐이 아니다. ‘생태’와 ‘생명’은 이제 누구나 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생태위기와 파국적 전환담론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생태문명의 전환, 생명공동체로의 전환은 정말로 […]
READ MORE체감의 강도가 다르다. 나는 오늘도 서울과 정읍을 오가며 두 개의 코로나 시대를 경험한다. 동시에 유럽의 코로나 시대와 미국의 코로나 시대를 실시간으로 접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은 역사책을 통해서 읽은 조선 말 ‘괴질’ 이야기와는 또 다르다. 내 안에는 수많은 코로나 시대가 중첩되어 있다. 1. [세계감] 더욱 나빠진 세계 ‘세계관’ 이전에 ‘세계감(世界感)’이 있다. 어떤 다른 느낌이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