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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4월 초쯤 ‘대선 후 한 달’의 감상으로 쓰려 했다. 제목은 물론 ‘진리정치의 종말’이었다. 그러나 글이 멈춰진 상태에서 시간이 흐르고 흘러갔다. 왠지 모르겠다. ‘진리’라는 말의 무거움 때문이었을까. ‘종말’이라는 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시작’을 감행하기엔 준비가 부족했던 탓일까. 무엇보다 ‘종말’과 함께 도래할 새로운 ‘시작’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직은 종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튼 차일피일 미뤄졌다. 어느덧 4월의 마지막 날도 지나가고 있다.

혹 숨겨진 불편함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깊은 무력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진리정치’의 종말과 ‘생명권력’의 충돌은 한국사회의 현실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푸틴과 시진핑, 그리고 미국의 패권주의와 북의 김정은 정권 등, 그 사이 프랑스 대선 등등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진리정치의 종말’이라는 제목을 떠올리고 ‘진리정치’를 키워드로 구글 검색을 해보니, 윤평중 교수의 조선일보 칼럼이 떴다. 두 개다. “문재인 정부, 진리정치에 함몰되다”(2017), “文 정부의 ‘진리정치’, 한반도 평화 해친다”(2018)가 그것이다. 나에겐 둘 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 글이 진척이 안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엊그제 다시 논문 검색을 해보니, 윤평중이 푸코와 들뢰즈를 인용하며 ‘진리의 정치’와 ‘삶의 정치’를 비교해 쓴 2007년 논문이 있었다.)

 

그 많던 지식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대선이 끝나고 한 달, ‘말’이 없다. 적막강산이다. 나에겐 그렇게 느껴진다. 말들이 사라지고, 날카로운 관찰들은 부재하고, 이러저러한 담론들도 기운이 없다.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의 그것들은 더욱 그러하다.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많던 지식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물론 감상은 무성하다. 좌나 우나, ‘감정’은 넘쳐난다. 하지만 이재명 지지자들은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분노를 드러내지도 못한다. 그들의 울분이 안쓰럽다. 김용옥은 그나마 감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를 통해 한 시대의 종말을 예감한다. 그 역시 나와 똑같은 하나의 ‘핏덩어리’임을 깨닫는다. 지식인 김용옥과 인간 김용옥의 분열을 관찰한다.

가치가 무가치해졌다. 탈-진리(post-truth)의 시대를 실감한다. ‘민주’도 ‘국민’도 ‘정의’도 더 이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유발 하라리 말대로, 민주주의도 국민국가도 정의사회도 역시 ‘상상의 질서’인 게 틀림없다. 민주당과 국민의 힘과 정의당 이야기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새벽도, 그 숭고함도, 희생도 옛 이야기가 되었다. ‘국민’의 의미는 질문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언제적 국민인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다. 뼈를 드러낸다. 노골적이다. 당당하다. 철면피다. 윤석렬 당선자가 지명한 국무총리 후보와 장관 후보들 누구 하나 (부끄러울 것은 많을 듯하나) 부끄러움이 없다. 다시,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다. 능력주의 ‘치부(致富)정치’의 노골적인 ‘재-진입’이다. 민주당의 ‘이념주의(idealism)’적 ‘생계정치’가 더욱 찌질하게 느껴진다.

가치정치의 종말이다. 이념정치의 종말이다. 그렇다. 진리정치의 종말이다. 혹 그렇게 말해도 좋다면, 드디어 근대정치의 종말이다. 이 지점에선 포스트모던도 그럴듯하다. 딱 떨어지는 지점이 있다. 대한민국이 모던의 정점에 섰다. 선진국이 되었다.

 

김용옥이 울분을 터뜨리는 이유

대선이 끝나고 2주일 후 도올 김용옥이 자신의 유튜브에서 “(대선 결과에) 거대한 상실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분들 정치적 신념과 관계없이 말이 안 되는 인간들이 이 세계를 다 말아먹게 생겼으니 이게 도대체 뭐냐. (대선에 패배한 이유를)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고 강변했다고 한다. 이어 김용옥은 이렇게 선언했다고 한다. “(윤석열 정권 동안) 세상을 안 보고 살 거다. 일체 신문도 안 보고. 일체 저한테 정치적인 것을 기대하지 마시라.”(이상 MBN뉴스, 2022. 3. 24)

김용옥은 무엇 때문에 울분을 토했던 걸까? 물론 표면적 이유는 이재명의 낙선 때문이다.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이재명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자신의 확신에 대한 거대한 믿음, 즉 ‘확신의 확신’ 탓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대가 컸다고 해서 모두가 김용옥처럼 세상과의 절연을 선언하지는 않는다. 그날 그의 컨디션이 유난히 안 좋았을 수도 있고, 자신의 정치적 발언에 대한 쪽팔림일 수도 있고, 뭔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일 수도 있다. 이러저러한 심리적 분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나의 논지는 그것이 아니다. 나의 관점에서, 그가 몸져누운 이유는 그가 스스로를 정치의 주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인간과 사회를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회학적 체계이론의 말을 빌리면, 심리적 체계와 사회적 체계를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헛똑똑이’라는 말이 있다.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말을 내뱉으며 자신의 똑똑함을 자랑했으니 그에게 딱 맞는 말인 것 같다. “헛똑똑이: 겉으로는 아는 것이 많아 보이나, 정작 알아야 하는 것은 모르거나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우리 집에선 내가 헛똑똑이다. 평생 헛똑똑이다. 실속없는, 이제는 폼도 안 나는, 나이가 먹어 기운도 없는…

대선의 구도는 처음부터 ‘민주 대 반민주’가 아니었다. ‘진보 대 보수’도 아니었다. 일부 관찰자들에게는 ‘이념주의’ 운동권 권력과 ‘능력주의’ 엘리트 권력의 패권 쟁투로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또 다른 일부 관찰자들에게는, 그놈들이 그놈들이었을 것이다. 이미 부와 권력을 누리고 지키는 그들과 이념적 가치를 개인적 가치로 사유화하는 그들을 구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업가나 정치인은 그러려니 했거니와, 지식인도 법조인도 언론인도, 심지어는 종교인도 덜하지 않다. 물론 민주화세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치의 주체라는 착각

어쨌든 요점은 이것이다. 김용옥의 울분의 원인은 ‘정치의 주체라는 착각’ 때문이다. 좀 더 세게 말하면, 정치의 주체라는 ’환상’ 때문이다. 뇌피셜의 작동 때문이다. 술집에서 찻집에서, ‘민주당’을 까고 ‘윤석렬’을 씹으면서 ‘나’는 초월적 정치 주체가 된다. 열변을 토하면서 뇌는, 혹은 심리적 체계는 정치의 주체라는 착각을 자기생산한다.

사실은 김용옥뿐만이 아니다. 광화문 촛불도 광화문 태극기부대도 스스로를 정치의 주체라는 착각했다. 광화문 광장에 선 순간 ‘나’는 정치적 행위자 맞다. 그러나 그것은 그 순간일 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순간에도 그는 정치체계를 자극하는 존재였을 뿐이었다. 결정적인 순간, 정치적 결정은 항상 정치적으로 이루어질 뿐이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가이사의 것’은 항상 가이사의 방식으로 처리된다(마가복음). 우리는 이미 수없이 배신감을 경험했다(보수파의 대한 배신감은 더욱 크다.). 민주주의가 촘촘하게 체계화되면서 역설적으로 국회와 행정부와 정당에 대한 외부의 개입은 더욱 어려워졌다. 민주화여론은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여론은 여론일 뿐이다. 외부자일 뿐이다. 더욱이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완성되면서 변혁적 가치는 사라진 반면, 민주주의 제도에 기식(寄食)하는 생계형 치부형 정치주체들은 더욱 전문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진보파는 이념적 열망의 실패를 또 다른 이념적 투사(投射)로 보상받고자 하지만 그것은 또 하나의 좌절로 귀결될 뿐이다. 그것은 정확히 신념으로부터 오는 좌절이다. (심리적 장애가 아니라) 인식론적 장애에 의한 착각이다. 전형적인 586인 세대인 나 역시 마찬가지다.

다시 니클라스 루만의 경구를 떠올린다. “사회는 너무 빨리 바뀌어서, 보수 세력은 기회주의자로서만 버틸 수 있는 반면, 좌파들은 실현되지 못한 이상에 집착하는 보수주의자가 된다.”​

 

인간과 체계(시스템)의 구별

경험적으로 너무나도 분명하다. 루만의 법이론을 빌릴 것도 없다. 법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다. 법이 법을 만든다. 법체계가 법을 스스로 생산한다. 인간은 법체계의 대상이다. 환경이다.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이전에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금융체계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다. 카카오뱅크와 같은 모바일 금융체계는 나의 생활형편과 마음상태와 무관하게 너무나도 잘 작동한다. 정치체계, 좁혀서 선거체계도 마찬가지다. 한창 지방선거 후보자를 선출하는 요즘, 온갖 울분과 억울함과 음모와 술수 속에서도 정치적 의사결정체계는 잘 작동한다.

사실, 한국의 정치체계는 매우 성공적이다. 분노와 공황상태에 빠진 개인들이 있긴 하지만, 폭동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정치체계의 일부인 민주당과 후보자 이재명은 승복했다. 다음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대의 기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치체계의 작동적 지속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만약, 이재명 후보가 당선이 되었으면, 폭동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 점에서 선선히 패배를 인정한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은 체계 합리적이며, 현 정치체계의 정상적 작동에 크게 기여했다.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불만이 있다고 그 불만족을 직접적으로 정치체계에 반영할 수는 없다. 정당인으로 유권자로, 대표자로 정치체계에 진입할 때에만 영향을 줄 수 있다. 물론 정치체계를 무시하고 살 수도 있다. 이를테면 정치적 ‘자기-배제’다. 그것도 하나의 선택지다. 당적도 가지지 않고, 투표장에도 안 가고, 가급적이면 행정기관에도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의 주인공이 되고자 한다면, 정치체계를 혁신하고자 한다면(진화시키고자 한다면), 혁명을 꿈꾸거나 시스템다운을 고대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정치체계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MZ세대의 입당 러시는 체계 합리적이다. 이대남의 ‘국힘의 힘’ 대규모 입당은 30대 대표를 가능케 했고, 20-30 여성들의 민주당 입당은 매우 민주당 내에서 매우 중요한 정치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은 386들 역시 20여년 전 민주당에 집단적으로 들어가 조직을 장악하고 권력을 잡았다. 입당에 머물지 않고 출마를 해본다면, 또 다른 세계를 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권력을 실감할 수도 있고, 보잘 것 없는 ‘정치적 자아’를 자각할 수도 있다.

인간 문재인과 대통령 문재인도 구별되어야 한다. 문재인의 인간적 매력은 사회적인 것을 포함하고 있지만, 매력이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그것은 이를테면 신체의 ‘정동적 힘’이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율의 비밀이 숨어있는 것 같다.) 개인 문재인은 그 속을 알 수 없는 사회적이고 신체적이며 우주적인 한 생명이다. 사회와 개인을 구별듯이 정치적 페르소나 문재인과 인간 문재인을 구별해야 한다.

인간 윤석렬과 당선인 윤석렬도 구별되어야 한다. 대통령 당선과 함께 윤석렬 당선인과 법조 엘리트들이 권력의 칼을 마음껏 휘두르고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들 역시 개인으로서는 정치체계의 기생자(寄生者)들이다. 정치체계의 주인이 아니라, 정치체계에 붙어있는 신체들이다. 그렇게 보인다.

 

진입하거나 일탈하거나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그렇다. 선택을 해야 한다. 정치체계에 ‘진입’하거나 아예 정치체계 밖으로 ‘일탈’하거나. 중간은 없다. (분화는 있다.) 사실은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하면 다른 건 포기하는 것이 된다. 물론 나의 선택은 일탈이다. 일탈적 실험이다. 탈출이다. 탈주다.

(물론 양 다리를 걸칠 수도 있다. 양쪽을 오갈 수도 있다. 그러나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는 다리가 찢어질 수도 있다. 지방선거 후보자가 되기 위해 99%의 정당인들은 최소한 4년, 10년, 30년을 정치체계의 일부가 된다. 충성한다.)

나의 관심은 ‘민주’에서 ‘공정’으로의 가치의 전환이 아니다. ‘가치’ 자체에 대한 질문이다. 가치는 어떻게 만들어는가? 가치는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고 재생산되는가에 대한 관찰과 관찰결과의 공유이다. 당연시되었던 ‘진리’에 대한 의문이다. ‘진리’와 ‘진실’과 ‘참’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진리는 어떻게 진리인가?”

‘진리정치의 종말’의 결론은, 이를테면 ‘다시개벽’이다. 그렇다. 해체 없는 구성이 없듯이, 종말 없는 시작은 없다. 이때 다시개벽은 성리학적 질서가 그렇듯이 자본주의 문명이 하나의 문명일 뿐이라는 통찰이며, 동시에 새로운 질서의 태동과 전개를 촉진하는 행동의 조직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선포대로, “천국이 가까이 왔다.” 이때 천국은 구질서로부터의 해방이며, 옛 관념으로부터의 해탈(解脫)이다. 구별의 자각이다. 공(空), ‘비-구별지대’를 체험하기다. 깨달음의 순간이다. 그렇다. 천국은 새로운 구별의 원천이다.(기존의 개벽담론과 전환담론의 문제는 종말과 파국을 회피한다는 점이다. 종말과 단절과 파국에 직면하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이다.)

유기체가 그렇듯이, 사회적 체계들 역시 강고한 것 같으나 취약하다. 불안정하다. (사실은 불안정했기에 지속할 수 있었다.) 또한 그것은 시간적 구성물이다. 성립도 지속도 우연적이다. 인생이 그렇듯이 정치체계도 경제체계도 다르게 만들어질 수 있다. 더욱이 생태계가 없다면, 경제체계도 없다. 인간이 없다면, 정치체계도 없다.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하고 분열적이고 제각각이어서, 역설적으로 무궁무궁한 인간-생명이 살아있다.

그러나, 미래는 알 수 없다. 불확실하다. 미-결정이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정답은 없으나, 해답들은 있다. 이제 더 이상 누군가에게 길을 묻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묻고 찾은 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스스로 길을 만들 수밖에 없다. 각자의 길을 이야기하고 함께 길을 만들고 싶다. 구성주의자들의 경구가 그럴 듯하다. ”길을 만들면서 길을 간다.“ ”길을 가면서 길을 만든다.“

6월 1일 지방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판/마당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진리정치 이후, 정치 자체에 대해 다시 묻고, 반-정치와 비-정치를 논하고, 혹은 오늘에 최적인 또 다른 정치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백가쟁명의 장이 열리기를 소망한다. 함께 길을 만드는 전환적 사건이 일어나기를 고대한다.

 

사족: 여기서 ‘진리정치’란, 절대적 진리나 객관적 진리가 있다고 믿고 이를 사회적으로 구현하려는 정치를 말한다. 보수기독교세력과 586운동권이 대표적인 집단으로 보인다. 그런 맥락에서 진리정치를 우려하고 비판하는 윤평중은 보수기독교세력에 더 많이 관심하기를 기대한다.

주요섭

주요섭(사발지몽). 생명과 전환을 화두로 오랫동안 정읍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해왔으며, 최근에는 (사)밝은마을_생명사상연구소를 중심으로 감응(感應)과 우형(又形)을 키워드로 하는 ‘또 다른’ 생명사상·생명운동의 태동을 탐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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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 ㅇㅇ Posted on 2022.05.07 at

    양비론과 비아냥밖에 없는 글 잘 봤습니다. 얘도 싫고 쟤도 싫고 모두 까기하면서 최선을 다해 남을 비아냥거리는 게 합리적인 줄 아는 전형적인 개똥철학자이시군요. 척척박사 진중권의 짝퉁인 줄 알았는데, 생명사상 운운하는 거 보니 도를 아십니까 종류의 퇴물 김지하 짝퉁이신 모양입니다.

    글이 처음부터 끝까지 학자의 탈을 쓴 주술사들이나 쓰는 생명력 없는 단어들로 가득합니다. 심리적 체계니 정치적 자기배제니 하는 번역어 남발한다고 똑똑이가 되는 게 아닙니다.

    ‘민주당’을 까고 ‘윤석렬’을 씹으면서 ‘나’는 초월적 정치 주체가 된다? 윤석열도 비아냥거리고 김용옥도 비아냥거리면서 초월적 비판 주체라도 되신 거 같습니다.

    김용옥이 정치의 주체라는 ’환상’에 빠진 헛똑똑이다? 그러는 본인은 고고하게 냉정을 유지하고 있는 정치의 객체라도 되시는지? 김용옥을 씹어놓고, 마지막에 다시개벽이니 마가복음이니 김용옥이 최근에 낸 책 내용 그대로 짝퉁처럼 가져다 쓰는 거 보니 평소 김용옥에 대해 열등감을 많이 느끼셨나 봅니다. 열등감을 합리성으로 합리화하는 인간처럼 추한 인간도 없습니다.

    합리적인 척, 강 건너 불 구경 하는 척, 뒷짐지고 서서 한가하게 훈수질이나 하는 너 같은 똑똑이들이야말로 아무 쓸모 없는 인간이다. 니가 쓴 글 전체가 사족인데, 뭘 마지막에 사족이라고 덧붙이고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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