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카데미생 네즈의 실험이 흥미롭다. 일년 넘게 성실히 다니던 커뮤니티의 직장을 3주째 쉬고 있다. 몸이 안 좋거나, 스트레스를 받았다거나, 지루해져서가 아니다. 쉬겠다는 이유가 진지하다. 직장을 쉬어봄으로써 자신의 바닥을 직면하고자 한단다. ‘성실하게 살아온’ 자신을, ‘성실하지 않은’ 상황으로 내몰아 그간 무엇으로 움직여 왔는지 확인하고 싶단다.
자신을 돌아보고 싶다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이유로 ‘당연히 해야할 일’을 쉬겠다고 담당자에게 이야기했을 때의 긴장감, 직장을 쉬는 동안 취미인 피아노를 치고 싶을 때 남의 이목이 신경쓰이는 자신, 이런 식으로 해도 괜찮을까 하는 의심.
네즈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꺼내 보아가고 있다. 커뮤니티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민낯을 확인해가고 있다.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자신을 사람들은 받아줄까, 아니 스스로가 그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나.
그런 네즈를 보고 처음엔 어리광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엉뚱한 핑계로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네즈를 받아주는 건 이런 커뮤니티 안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는 더 힘들어질 경험만 쌓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네즈에 대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스스로를 판단하는 잣대로 보여온다.
어른이라면 자기 몫을 스스로 해내지 않으면 안돼.
사람들 속에 인정받고 살려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돼.
사람을 중시하는 여기 사람들이라 해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돼.
내 안에서 해야할 것들,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이 줄줄이 나온다. 나는 언제부터 이런 생각들을 갖게 되었나. 저런 기준들 덕에 나는 편안한가. 질문들 역시 줄줄이 따라 나온다.
그렇게 보니 네즈의 시도가 더이상 네즈 개인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사회로부터 받은 내면에 대한 도전인 셈이다. 나라면 용기내지 못할 일을 대신해주고 있는 셈이다. 네즈를 응원하고픈 마음이 일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보니 네즈를 관심있게 봐주는 커뮤니티 사람들이 있다. 덕분에 나도 점점 안심되어 간다.
빚
여민이를 재우고 정아와 하루 근황을 나누다 정아가 던진 한마디가 가슴에 꽂혀온다.
“여기 있는 동안 사람들에게 마음껏 받으며 지내면 좋겠어.”
따뜻한 말이라고 느끼면서도 문득 구체적인 장면으로 그려보려하니 낯설게 느껴진다. 마음껏 받는다는게 어떤 것일까. 감이 오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내가 누군가의 도움을 마음껏 받았던 적이 있던가.
돌이켜보면 남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웠다. 내가 힘에 부쳐서야 도움을 청하니 상대에게 어려운 일을 맡겼다고 생각하며 다시 부담스러워졌다. 그런데 살펴보니 그것만이 아니다. 부담의 밑엔 도움을 받으면 돌려줘야한다는 생각이 있다. 빚을 진다는 생각. 상대가 그런 마음으로 도움을 줄거라고 보고 있다. 빚을 지면 갚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내가 있다.
실제 상대는 어땠을까. 갚아달라고 빚을 안기듯 도움을 줬을까. 기억 속에 그런 사람들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기꺼운 마음으로 도움을 주던 얼굴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아, 사람들의 마음을 받지 못하고 나는 그 마음을 빚으로 대하고 있었구나. 큰 실례를 하며 지냈구나.
문득 마음껏 받을 수 있는 상태가 궁금해진다. 여민이처럼 주위에서 해주는걸 고마워하지도, 미안해하지도, 그렇다고 당연하게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받으며 기뻐할 수 있는 상태로 나아가고 싶다. 상대에게 주는 것 역시 상대가 부담스러울까봐 주저하지 않고, 주고 싶은 마음을 마음껏 표현하고 싶다.
이미 매순간 무척 많이 받으며 지내고 있다. 팜에서 나는 단지 작물을 수확만 해도 누군가에 의해 그 작물이 포장되고 운반되고 판매되어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으로 돌아온다. 덕분에 먹는거, 입는거, 지내는거 걱정없이 나는 내 공부만 충실히 해도 되는구나. 주는 사람은 이미 충분하니 나는 여기서 마음껏 받는 연습을 해봐야지.
무거웠던 짐들을 하나둘 벗어가고 있다. 나아가 이왕이면 스스로를, 상대를 속박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 역시 커지고 있다. 그런 꿈을 가진 사람들과 그런 세상을 실현해가고 싶다.
사진 출처 : https://ar.pinterest.com/pin/356065914300978049/
*조정훈의 [커뮤니티 일상 관찰] 마지막 연재입니다. 그 동안 많은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20대는 돈벌 궁리로 바빴다. 직장생활하며 주식으로 일확천금을 꿈꾸었으나 실패했다. 대신 돈벌고 싶은 욕구의 바닥에는 불안감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30대는 친구들과 우동사라는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10년 동안 커뮤니티를 주제로 다양한 실험을 하였다. 주변 사람들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다. 40대에 들어서 다음 10년을 그리고 있다. 볼음도라는 섬을 오가며 농사짓고, 새로운 관계망 실험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환경으로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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