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은 아카데미생들의 공부모임이 있는 날이다. 교재는 아카데미를 만들게 된 취지와 목적을 기록한 안내문으로, 몇 페이지 분량의 글을 몇개월 동안 조금씩 읽으며 이야기하고 있다. 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사례로 찬찬히 살펴보는 것에 중점을 두는 이곳 모임들의 속도감이 대체로 그렇다. 오늘은 브라질에 간 오노상을 대신해 사토상이 진행했다.
“어디에서나 본심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장(場)을 만들 수 있는 사람으로”
오늘 읽은 소단락의 제목이다. 유학생 제도의 목적이기도 하다. 사토상은 ‘어디에서나’, ‘본심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장이란’, ‘장을 만든다’, ‘사람이 된다’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자 한다. 처음 읽을 땐 쑥하고 넘어갔지만 정작 하나하나 무엇을 뜻하는지,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 이야기 꺼내보려니 간단치가 않다. 오늘 특히 관심있게 살펴본 것은 ‘장(場)’이다.
개인과 장의 차이는 무엇일까.
개인이 모이면 장이 되는가.
본심(인간이 원래 지닌 성품)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장이란 무엇인가.
그런 장을 만든다는 건 어떻게 가능한가.
누군가가 생각해 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사례로 보고 느끼는 것을 가볍게 꺼내는 자리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잘 정리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내가 보인다. 내 안에 있는 상대의 눈이 신경 쓰인다. 그런 나 역시 있는대로 인정하고 다시 보아간다.
장이 펼쳐진다는 건 무엇보다 사람에 의해서일테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인다해서 본심으로 살 수 있는 장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본심으로 살고자 하는 방향성을 가진 이들이 우선이다. 본심(인간성)을 알고 그리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결합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요소들을 갖추어야 할테다.
목적을 공유한 사람들이 결합하면 1+1=2의 산술적 결과가 아닌 더 큰 시너지로 드러날테다. 그것이 바로 사회의 특성이 아닐까. 그런 장(사회)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건 어떤 요소에 의해 가능한 것일까.
허물을 벗는 사람
다음날, 아카데미생들을 돌봐주는 오피스팀과의 미팅이 있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나이도 지긋하신 이 분들이 생면부지인 청년들을 위해 이토록 정성을 다해 생활면이나 공부를 하나하나 세심히 살펴주는 그 동기가 궁금해 아카데미를 어찌 생각하시는지 질문을 해보았다. 돌아오는 사카이상의 답변이 인상적이다.
아카데미생을 보면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는 것 같단다. 자신을 옭아매던 고정관념을 벗어 던지고 성장해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는 기쁨이 무척 크다 했다. 세상 사람들이 겉껍질을 더욱 단단하게 하고 그 속에서 말랑한 자신을 지키려하는데 반해 아카데미생들은 반대로 껍질을 벗고 더 유연한 자신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고 한다. 재밌는 비유란 생각이 들었다.
사카이상은 아카데미생 중에 브라질에서 온 지에고가 몇 번이고 껍질을 벗고 나왔다 했다. 그런 지에고가 궁금해져 지에고에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청했다. 지에고는 매미의 허물 비유를 듣더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카데미생으로 지낸지 몇 달이 지나 아카데미생들의 상태에 따라 단계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다른 친구들이 2단계로 올라간데에 반해 자신은 여전히 1단계라는 이야기를 듣고 브라질로 돌아가고플 정도로 열등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꾹 참으며 다시 몇 달을 지내던 어느날, 문득 그런 자신을 끊임없이 지켜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사무치게 느꼈다고 한다. 자신을 평가하고 내치는 게 아니라 묵묵히 함께 가자고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늘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는 사실에 미움이 눈녹듯 사라졌다 했다.
또 하나의 허물벗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주5일이던 직장이 중간에 6일로 바뀌는 일이 있었단다. 그걸 두고 ‘직장을 나가면서도 꽤나 부려먹네’ 하는 생각이 들어 몇 달을 꽁해 있었단다. 그러던 어느날 그런 마음으로 직장을 다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단다.
나는 직장을 어찌보고 있나.
실제 직장은 어떻게 되어 있나.
직장을 위해 자신이 부려진다고 생각해 왔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각자의 성장을 위해 서로 응원하는 직장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니 꽁했던 마음이 눈녹듯 녹으며 편안해졌다고 했다.
지에고는 자신의 경험담을 담담하고 편안하게 이야기 했다. 문득 나는 지에고가 느꼈다는 편안함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나는 그가 이야기하는 편안함을 알기는 아는걸까, 경험해본 적은 있나. 나는 전혀 모르고 있구나.
직장을 늦으면 안되는 곳, 유학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다녀야 하는 곳, 기존에 해오던 사람들의 보조에 맞춰 잘해나가야하는 곳으로 보고 있구나. 거기에 맞추려 애쓰는 내가 있구나.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직장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무엇을 위한 일터를 만들어가고 있을까.
내 머리 속 직장이 아니라 이곳 사람들이 실제로 관심을 가지고 만들어가는 직장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역시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그제서야 알고 싶어진다. 내일 직장에 가면 사람들에게 물어봐야지.
20대는 돈벌 궁리로 바빴다. 직장생활하며 주식으로 일확천금을 꿈꾸었으나 실패했다. 대신 돈벌고 싶은 욕구의 바닥에는 불안감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30대는 친구들과 우동사라는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10년 동안 커뮤니티를 주제로 다양한 실험을 하였다. 주변 사람들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다. 40대에 들어서 다음 10년을 그리고 있다. 볼음도라는 섬을 오가며 농사짓고, 새로운 관계망 실험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환경으로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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