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짱, 수정과 올해 볼음도의 흐름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어제 오후 미팅 때, 진짱이 스즈카에서는 보통 장을 열기 전에 사전모임을 하는데 그 자리에선 이 장의 목적이 무엇인지 초점을 맞추는 이야기를 나눈다고 들려주었다. 초점(목적)을 맞추면 맞출수록 개인이 지닌 맛을 자유롭게 살리면서도 전체 방향이 목적에 맞게 움직여 간다는 것이다. 자발성과 조직력이 함께 작동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돌이켜보면 그간 내가 열었던 모임에서는 목적은 이미 공유되었다고 여기거나 간단히 공유하고 실무적인 것을 주로 이야기해 왔던 터라 진짱의 이야기가 신선하게 들렸다. 그래서 수정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활동의 초점을 맞춰보고자 자리를 마련하였다.
역할
볼음도를 통해 무엇을 바라고 있나.
각자가 꿈꾸는 볼음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좋은 일자리도 만들고, 사람들이 쉬면서 먹거리를 가꿀 수 있는 정원도 가꾸고, 마음껏 선물하고, 일을 통해 자기공부도 하며 마음이 성장해가는 곳이 되길 바란다 했다. 소박하지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 했다.
평소 바라던 걸 꺼냈다고 여겼는데 왠일인지 이야기하면서도 그다지 신이 나지 않는다. 각자의 바램을 꺼냈지만 초점이 모아지는 느낌이 아니다. 침묵이 흐른다. 그러다 진짱이 묻는다.
볼음도도, 우동사도 안한다고 하면 정훈은 수정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질문을 받자 바로 대답이 떠오른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걸 같이 해보고 싶어’ 라는 말이 목구멍을 지나 나오려던 찰나, 이건 옛날부터 준비된 대답이란 생각이 든다. 좀 더 살펴보고 싶어진다. 익숙한 방식의 반응을 멈추고 시선을 돌려 살펴본 이 순간이 나에겐 커다란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살펴보니 하려던 대답은 ‘무엇을’에 대한 반응이었구나 싶다. 그런데 다시 보니 ‘아무것도 안한다고 하면’이란 물음에 관심이 간다.
아무것도 안한다고 하면, 어떻게 지내고 싶나?
속을 살펴보는데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아무런 주제 없이, 활동 없이 눈앞의 수정이와 어찌 지내고 싶은지 찾아보는데 보이지가 않는다. 어, 안보이네. 예상치 못한 지점이라 당황스러움이 느껴진다.
재작년 말, 수정이에게 볼음도를 같이 하자 했었다. 긍정적이고, 의욕 있고, 자기를 살펴보는 것에 관심이 많은 수정이가 우동사에서 잘 성장해서 다음을 이어가는 20대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1년 동안 꽤 잘 해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역할을 지운 수정이와는 어떻게 지내고 싶나. 깜깜하고 낯설다.
나는 그간 누구와 함께 하고 있었나.
어디를 보며 하고 있었나.
역할로써 사람들과 만나왔구나. 역할에 맞춘 내가 아닌, 내 속살로 다른 사람들과 만난다는 것이 정말 낯설구나. 그리고 두렵구나. 그 낯설음이 외로움으로 이어진다. 그러지 않아도 문득문득 외롭다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왜 외로울까, 의문을 가졌더랬다.
사람들 속에 살면서 나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었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나누고 있었나. 내가 내 마음을 잘 모르고 있었구나. 그러니 상대에게도 마음에 관심이 가지 않고 역할로 대했구나. 좋은 세상을 꿈꾸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생각했는데 점점 외로워지는 길을 가고 있었구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하고 맺힌다.
질문을 다시 살펴본다. 역할이 아닌 수정과는 어찌 지내고 싶나. 지금 떠오른건 이렇게 자신을 살펴 있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꺼내놓는 관계로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수정뿐만이 아니라 누구와도 마음으로 이야기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출발이겠구나.
볼음도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만족스럽게 마무리 되었다.
소외감
다음날, 열흘 간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우동사 친구들을 위해 마련한 미팅 자리에서 지에고가 한국 친구들이 와서 무척 기뻤다는 이야기를 한다. 어제는 숙소로 돌아와 찾았는데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한국사람들 다 어디갔지?’ 하고 두리번거렸다며 즐겁게 웃는다. 그 모습을 보는데 울림이 있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단어가 생뚱맞게도 소외감이었다. 이건 뭐지? 싶어 살펴본다.
우동사에서 요 몇 년 동안 심심찮게 나오는 주제가 소외감이었다. 모임이 만들어지고, 어떤 흐름이 생기면 소외감이 든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왔다. 같은 그룹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친해지는 듯하면 자신은 분리될 거 같은 불안감이었다. 소외시키려고 움직이는 사람은 없는데 소외당하는 사람이 생기는 기이한 현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소외감이 생기는 과정에 대해 집중해서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해오던 터였다.
그런데 지에고의 이야기를 들으며 실은 남 눈치 보지 않고, 조심스러워하지 않고, 있는 마음을 있는대로 표현하고 싶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그 누구도 그렇게 조심스럽지 않게 살아가고 싶은게 아닐까. 각자 마음껏 바라는걸 표현하면서도 소외감 없는 그런 장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살펴보고 싶다.
관심 가는 주제가 계속해서 나온다. 신영복 선생님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공부의 길이 멀다 하셨다. 해보니 그 길은 다음 세상으로 가는 길이란 생각이 든다. 머리로 하는 공부가 실제를 개념화해서 이해하는 과정이라면, 가슴으로 하는 공부는 개념이 아니라 실제를 바라보고 알아가는 과정인듯 싶다. 그 전환이 쉽지 않다. 아니 익숙치 않다. 그래서 멀다 표현하셨나 보다. 그래도 가슴으로 가는 그 길을 가고 싶다. 가볍고, 따뜻하고, 정이 솟는 길이다. 그런 마음으로, 남은 생애를 살아가고 싶다.
사진출처 : https://ar.pinterest.com/pin/327073991699074818/
20대는 돈벌 궁리로 바빴다. 직장생활하며 주식으로 일확천금을 꿈꾸었으나 실패했다. 대신 돈벌고 싶은 욕구의 바닥에는 불안감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30대는 친구들과 우동사라는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10년 동안 커뮤니티를 주제로 다양한 실험을 하였다. 주변 사람들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다. 40대에 들어서 다음 10년을 그리고 있다. 볼음도라는 섬을 오가며 농사짓고, 새로운 관계망 실험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환경으로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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