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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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새겨진

검은 무지개처럼

반짝이며 썩어가는 꿈

우리에게 남은 건”

자우림, ‘우리들의 실패’ 중, EP HOLA 수록곡

 

선거가 끝났다. 아무래도 상갓집까지는 아니더라도 잔칫집 흉내는 내기 어렵다. 예고되었고 예측했지만 씁쓸함은 남는다. 우리에게 찾아온 고난과 늦은 인사를 나누기로 했다. 선거 결과는 실패를 보여준다. 단비뉴스의 기사 제목처럼 “지방선거에 ‘기후정치’가 실종됐다.” 이어지는 세계일보, 녹색전환연구소, 청지기(청년이 바라보는 지방선거 기후공약 등의 분석들도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런 우리들의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1] 질문은 명료하게, 왜 기후선거가 되지 못했나. 번역하면, 모두가 기후위기를 알고 심각하다고 생각한다지만 왜 한국 사회의 정치 구조에 균열 혹은 새 흐름을 만들지 못했나.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건 무엇일까. 기후위기를 막겠다는 바람이 썩어가는 꿈이 되고 만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싶었다.

나로 돌아와, 처음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방황 중이다. 우리들의 실패라고 썼지만, 2019년 기후위기가 현전(?)하고 난 후 그 폭풍 같은 기후 타임라인의 인과율에 연동되어 미친 세상을 바꾸려 미친 삶을 살아왔던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실패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예의가 아니겠다. 부족하나마 뜻깊었고, 돌이킬 때 최선이었던 점은 결코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그 중 하나로서 활동가 연구자 정치인(?) 등 각종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질주한 스스로에게 물음이 찾아오는 것이다. 기후운동이 정말 사람들에게 가닿았을까?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절실한 심정을 단순히 알리는 것을 넘어서 삶을 바꾸고 다른 세상으로 가고 싶은 바람을 불러일으켰을까. 우리는 정말로 다른 사회 혹은 문명의 원리를 보였을까. 전환을 말했지만, 필요성만 말했을 뿐 전환의 정치에 대한 상을 보이지 못한 것은 아닐까. 더해서 말씨 하나둘만 바뀌고 기존의 운동방식과 그것이 낳는 투쟁과 적대의 정치로부터 한 발짝을 못 나간 것이 아닐까?

정말로 기후위기는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그동안 우여곡절을 거치며 살아온 모든 삶이 공멸이란 가해의 원인이며, 그 피해는 양상도 다양하고 불확실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커질 것이라는 점만 분명하고, 작게는 개인의 문제이고 크게는 지구 전체의 문제라 누가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는지, 더해서 해결은 가능한지 수많은 논점을 안고 있다. ‘기후위기를 막는다.’ ‘기후위기를 체감한다’와 같은 말들이 언어적으로 성립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몇 년째 말하고 다니는 스스로도 감을 잡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이상할까. 기후위기가 어떤 사태인지 채 감을 잡지 못한 채로 참혹함과 조급함에 이끌려 어떻게 대화할 것인지, 어떻게 같이 갈 것인지 살피지 못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광주에서 오래된 스승을 만났다. 그는 이번 양 차례의 선거를 보면서 한국 사회의 믿음의 뿌리가 깊게 병들어있다고 전해주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형성 과정에 실패한 민주화 세대가 초래한 비극에 절망을 표했다. 말들이 남았다. 믿음이 병들어 있으니까 아무 말도 통하지 않습니다. 미움으로 나타납니다. 자기가 받지 못하는 사랑이 미움이 되는 정치구조에 있어요. 우리는 여러 사람이서 공동의 결정을 해가는 과정을 간과했고, 근대 국가 건설에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공적인 선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겠습니까. 늦었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손 맞잡고 가는 게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에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손 맞잡고 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에 마음이 남는다. 기후선거의 실패는 사회심리적으로는 미움의 정치에 경제적으로는 성장과 개발의 정치에 가두어진 결과다. 타국에서 오랜만에 귀향한 어떤 이는 이번 지방선거 플래카드를 보고 “한국의 선거는 지구를 끝장내려는 선거인가?”하고 말했다고 한다. 하나 더 나가서 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선거는 증오와 이권으로 얼룩진 양당이 사회를 끝장내려는 선거인가. 독살된 땅 위에 펼쳐진 참혹한 생태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가야 할까.

한국 사회의 토질을 따지기 전에 녹색이 만들어내야 하는 문화 혹은 정동은 무엇이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녹색정치를 그동안 정의함에는 현재를 뒤집는 수준의 대전환에 역점을 두었다. 불가능한 이상처럼 큰 대안으로 녹색 정치를 정의했지만, 그 크기보다 성질을 더 살펴보고 싶다. 어쩌면 거대양당의 핑퐁과는 다른 방식의 연대와 상생을 낳는 정치일 수 있겠다. 척결의 정치와는 다른 원리로 작동하는 정치여야 한다. 한국 사회에 사라진 믿음을 복원하는 정치에 녹색 정치의 이름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기후위기를 계속 다시 생각하자. 기후위기는 한 가지 사태가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사태의 연합에 가깝다. 우리가 마주한 것은 지구라는 공동의 집에 대한 하나의 문제이지만, 각자 저마다의 5천만 개의 집, 지구로는 70억 개의 집에 대한 문제들이다. 서로 다른 무수히 많은 존재들이 가진 차이점, 그 속에서의 다양성, 그 관계의 모양새가 우리에게 남는 것이 아닐까. 선거를 지나오며 우리에게 남은 건 어떤 희미한 가능성들과 수많은 과제들이다.

기후위기를 한국사회가 안게 2019년이니 이제 3년이 되었다. 보통 3년을 성찰의 시간이라 부른다. 전환을 만들어본 많은 이들이 낙담하고 있고 기후X선거 우울이 교차하여 분위기를 좌우하고 있지만 넘어가 보자. 돌아봄의 시간이다. 돌아봄은 역사다. 지난 3년동안 태동한 녹색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 필요하겠다. 한국철학과 녹색을 잇는 작업을 위해서 한국의 녹색사를 찾는 작업이 먼저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함석헌이 말하길 “헝겊 위에 빛칠을 해서만 그림이 있는 것이지만, 또 헝겊에 대해 붓을 들고 설 때 그림은 그 가슴속에 있다”고 했다. 기후정의를 외치고, 녹색전환을 그리고, 생태문명을 꿈꾸었지만 실은 아직 나도 우리도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누가 이 말을 시작했고, 언제 공간이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가고 싶었는지 물어볼 것이 참으로 많이 남아있다. 우리가 바라는 전환이 썩어버린 꿈으로 버려지지 않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말하는 위기가 전환의 동력이 되도록 역사적 족적을 찾아가는 것이 어떨까. 진행 중이고 정리되지 않은 작업이고, 평가는 늘 이르지만. 이 미증유의 시대에 필요한 뜻을 찾아가 보자.

“여럿인 가운데서 될수록 하나인 것을 찾아보자는 마음,

변하는 가운데서 될수록 변하지 않는 것을 보자는 마음,

정신이 어지러운 가운데서 될수록 무슨 차례를 찾아보자는 마음,

하나를 찾는 마음, 그것이 뜻이란 것이다.

그 뜻을 찾아 얻을 때 죽었던 돌과 나무가 미로 살아나고,

떨어졌던 과거와 현재가 진으로 살아나고,

서로 원수되었던 너와 나의 행동이 선으로 살아난다.

그것이 역사를 앎이요, 역사를 봄이다.”

 함석헌(1950),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한길사

 

 

[1]  단비뉴스의 기사에서 이어서 평하기를 “양대 정당은 이번 지방선거에 구색용 공약을 제시했을 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구체적 논의나 실천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고 대신 팽창과 성장을 강조하는 개발 공약만 앞세우고 있었다. 세계일보가 녹색전환연구소, 지역에너지전환네트워크와 함께한 구체적인 지방선거 분석 결과도 이와 같았다. 한국의 17개 광역단체장 후보 55명 중 40% 이상이 ‘기후변화 대응’을 ‘30년 이내 1순위로 풀어야 할 과제’로 인식했지만, 본인 당선 시 ‘4년 임기 중 1순위로 풀어야 할 과제’로 꼽은 후보는 9%가 채 되지 않았고, 절반 가까이는 4년 임기 중 1~3순위에도 포함하지 않았다. 후보 4명 중 1명이 국가 2030 온실가스감축목표(NDC)보다 낮은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내놓은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초자치단체의 분석 결과 또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청지기(청년이 바라보는 지방선거 기후공약) 프로젝트의 분석에서 568명의 기초자치단체장 출마자 중 기후공약을 발표한 후보는 112명으로 전체의 19.7%이며, 후보자들이 낸 2,760개의 공약 중 온실가스 감축이나 탄소중립과 관련된 기후공약은 124개로 전체 공약의 4.5%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전반적으로 지역을 불문하고 단순히 녹지 면적 확대 등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은 과거의 환경공약이 다수였다. 이는 고스란히 선거 결과에서 드러난다. 전반적으로 민주당이 큰 약세를 보였고, 정의당 또한 어려움을 겪었다. 진보당을 제외하고 기본소득당, 미래당, 노동당, 녹색당에서 이변은 없었다. 녹색 정책의 측면에서 볼 때 민선 7기에서 선도적으로 기후위기를 말하는 지자체장으로 손꼽혔던 경기 고양시 이재준 시장, 대전 대덕구 박정현 구청장, 광주광역시 이용섭 시장, 강원 춘천시 이재수 시장도 모두 연임을 이루지 못했다. 부족하나마 일궈왔던 녹지를 대부분 잃었고 대안 세력이 힘을 얻지는 못했다. (장윤석, 바람과 물 5호, 실종된 기후선거에서 녹색정치 발굴하기, 2022.7 발간예정)

사진 출처 : 장윤석

장윤석

학자 꿈나무, 였는데 기후위기를 알고 나서 연구자와 활동가 사이 어딘가에서 살았다. 실은 한국철학과 녹색을 생의 화두이자 과제로 여기고 있다. 녹색당과 녹색전환연구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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