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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는 종말에서 시작된다우리가 이야기를 짓는 것은 죽기 때문이다우리의 이야기는 인간의 몸에서 벗어나려는 욕망동물로서의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려는 욕망에 대한 것이다가장 오래된 기록문학인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친구의 죽음으로 심란해진  왕 길가메시는 자신을 기다리는 운명을 받아들일 수 없어 불사의 영약을 찾아 세상 끝으로 떠난다. (트랜스 휴머니즘은 생물학적 조건에서 완전히 벗어나자고 주장하는 해방운동이다이를 정반대로 해석해도 뜻은 같다이 표면적 해방은 사실 궁극적이고 철저하게 기술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트랜스휴머니즘마크 오코널, 13p-19p

생로병사. 이 단어만큼이나 인간의 삶을 단순하고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태어난 이후 늙고, 병들고, 죽습니다. 존재의 태초로 되돌아가라는 자연의 명령은 어느 누구도 피하지 못합니다. 영원할 것 같던 젊음과 사랑과 욕망은 필멸의 숙명 앞에서 고개를 떨굽니다. 마크 오코널이 『트랜스휴머니즘』에서 논했듯, 인류는 매우 오래전부터 소멸에 대한 공포로부터 벗어나길 간구했습니다. 물론 공허한 염원이었으며,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었습니다. 수메르의 왕이 그토록 찾아 헤맸다던 불사의 영약이 존재할 리가 만무했죠. 하지만 첨단의학과 생체공학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 인류의 무모하지만 절실했던 소망이 드디어 현실에 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빅터의 이야기는 공상과학소설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능력을 강화시킨 첨단기술은 모두 현재 개발 중이다. 인간을 대상으로 시험 중인 것도 있다. 이런 기술은 장차 근본적인 차원에서 건강을 개선하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수명을 연장시킬 것이다. 우리 중에도 컴퓨터 기술, 초소형 전자공학, 기계 공학, 유전자치료, 인지과학, 나노기술, 세포치료, 로봇공학 등이 결합된 다양한 의학기술을 이용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런 첨단 기술을 적절히 조합하는 분야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매우 빨리 발달하고 있다.” 21p

이브 헤롤드는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 시작을 인공심장을 이식받아서 심장병을 극복한 가상의 인간 ‘빅터’의 이야기로 엽니다. 빅터는 인공심장과 인공췌장으로 질병을 이겨냈을 뿐만 아니라, 인공팔, 인공망막, 인공신경을 이식하여 250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왠만한 젊은이보다 강건한 신체와 영리한 두뇌를 가진 남성입니다. 심지어 그의 신체에는 이식된 나노로봇이 돌아다니며 질병이나 노화로 손상된 세포를 수리하고, DNA 복제 오류를 복구하고, 암세포를 죽이고 있습니다.

사실 빅터는 첫 번째 아내와 ‘인공적’인 생의학기술을 거부하기로 약속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살다가 죽을 권리를 옹호하는 운동에 참여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중년의 나이에 치명적인 심장질환을 앓게 되면서, 그의 신념과 일상은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생체이식을 염원했지만, 기증자를 얻기가 굉장히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거부반응과 내구성의 문제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끔찍한 고통을 견디던 그는 드디어 인공장기 이식을 결정합니다.

빅터는 인공장기를 이식받은 이후부터 질적으로 다른 삶을 경험합니다. 비록 아내가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인공심장 이식 이후에도 인공망막과 신경이식 등 첨단의학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250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영위합니다.

이렇게 보건의료 영역에서 용인된 것들이 기능 강화 영역으로 확장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 자녀의 노화 유전자를 일부 억제하여 수명을 늘리고 건강을 개선하는 유전자치료가 개발된다면 어떤 부모가 마다하겠는가? 이런 식으로 정상정상보다 좋은 것의 경계는 이미 흐릿하다. 우리의 조직과 세포를 생명공학적으로 점점 쉽게 조작하게 된다면 자연적인 것인공적인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신체와 뇌를 점점 더 쉽게 조작하게 된다면 장차 우리는 무선 컴퓨터 기술, GPS, 기타 첨단 기수를 거의 모든 소비제품에 통합시켜 살아 숨쉬는 것들지능적인 것들로 구성된 환경과 점점 더 접촉면을 넓혀갈 것이다.” 41p

픽션이긴 하지만, 빅터의 삶은 미래에 등장할 인간 군상을 예감하고 상상하도록 만들어줍니다. 반면에, 장밋빛 미래를 점치는 트랜스휴머니스트들에 대하여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자의 표현을 따르자면 ‘생명 보수주의자’에 해당하는 그들은, 신체 강화를 통한 영생과 완벽한 건강의 추구는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본질을 거스르며 자연의 순리를 외면하는 매우 오만방자한 짓거리라는 것이죠.

하지만 수많은 이들의 삶이 이미 ‘자연스러움’과 ‘자연스럽지 않음’의 경계선에서 지속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난처한 질병을 이겨내고자 인공장기 및 신체를 이식하고, 미용의 목적으로 성형수술을 선택하고, 정신과 신체 능력의 증강을 위해 다양한 약물을 섭취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교육과 훈련과 명상과 약물, 기타 전통적인 수단을 통해 자신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육종을 통해 가축을 개량하고, 신중하게 배우자를 선택하여 유전적 형질을 개선하고, 기술생리적 진화와 현대의학을 통해 생명을 연장하고, 심부 뇌자극, 심박동조율기, 이식형 제세동기를 통해 인공장치와 신체를 통합시키고, 신체적 통증과 정신적 고통을 누그러뜨리는 기술을 받아들였다.” 314p

기술 만능주의자들의 기괴한 몽상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사실은 인류의 오래된 도전의 연장선이며, 이제는 일상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라고 이브 헤롤드는 주장합니다. 생체공학의 멈출 줄 모르는 질주는 이미 인간을 ‘인간 이후의 인간’, 즉 ‘포스트휴먼’으로 주조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본질적으로 윤리적 문제나 기술적 세부 사항 또는 뉴스 가치가 있는 과학적 발견에 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중 다수는 당신과 나처럼 인생을 시작했지만 불운이나 자신의 선택, 또는 인생의 불가피한 함정을 거치면서 우리 대다수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도전에 직면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들이 보여주는 회복력 덕분에 신기술 연구는 필연적이거나 고귀한 것은 아닐지라도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 신체 설계자, 에덤 피오리, 20p

『신체 설계자』 1장에서 소개되는 ‘휴 허’는 촉망받던 암벽 등반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그는, 목숨을 걸 만큼 사랑했던 직업을 지속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합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숨 막히는 고통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첨단 기술이 가미된 의족을 장착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의족의 도움을 받음으로써 그토록 사랑하던 일에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됩니다. 더 나아가, ‘정상적인’ 신체를 가졌을 때보다 향상된 기록을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일각의 생명보수주의자들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건강상의 위기에 처한 인간이 첨단 공학과 의학을 이용하는 것은 이해해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 강화에 쓰이는 것은 정말로 오만한 행동이다. 신체 강화를 염원하고 추동하는 기술들은 인간의 다양성과 본질성을 해칠 것이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 사이의 불평등을 걷잡을 수 없이 심화시킬 것이다.”

생체의공학이 치료 목적에 쓰이는 것과 강화 목적으로 쓰이는 것을 구분하는 기준은 굉장히 애매합니다. 휴 허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생체 강화 기술들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연구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면, 치료와 교정 목적을 위한 신기술들은 자연스럽게 신체 능력을 강화하는데도 쓰였습니다. 앞서 언급한 성형수술은, 사실 상이군인이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외관을 가진 이들을 위하여 개발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대부분이 성형수술을 미용의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휴 허가 본인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한 의수족 기술은, 평범한 사람이 수백 킬로미터를 단 몇 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이용될 것이 분명합니다. 휴 허는 치료용 기술이 신체 강화로까지 이용되는 것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안경을 쓰잖아요. 조만간 이런 장치(인간의 신체 능력을 강화 시켜주는 기술)가 안경만큼 흔해질 겁니다”(『신체 설계자』, 34p)

신체 강화가 인간의 다양성과 본질을 헤칠 것이라는 주장도 반박의 여지가 다분합니다. 생명 보수주의자들은 인종, 성별, 지능을 넘어서는 ‘인간의 본질’이 존재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그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말인즉슨, 인간성이란 정형화된 무엇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의미와 정의가 달라질 수 있는 가변적인 형태라는 것입니다. 신체의 형태와 능력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휴 허는 이전과 다름없는 본인으로서 온전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신체 강화 기술이 상용화된다고 해서 인간성을 잃을 것이라는 주장은 인지적 편향에 불과합니다.

“안데르스 산드베리는 우리의 신체를 변화시키고 강화하는 능력은 흔히 공상과학소설에서 보듯 천편일률적으로 ’완벽한‘ 휴머노이드 군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기술과 개인 차원에서 어떤 기술을 사용할 것인지 선택할 자유가 주어진다면 전례 없는 수준의 자아실현이 가능할 것이다. 어떻게든 순응하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데서 벗어난다면 인간적 다양성에 대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열린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46p) 이브 헤롤드는 신체 강화 기술이 인간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들 것이라는 걱정은 한낱 기우일 뿐이라고 호언장담합니다.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각자 원하는 기술을 이용해 필요한 만큼 신체 강화를 추구할 수 있게 됩니다. 고만고만한 생물학적 동일성을 뛰어넘어 각자 원하는 수준의 개성을 누리는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인간 강화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지닌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사이의 격차 문제는 분명 신중히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브 헤롤드는 “새로운 기술이 항상 그렇듯 생명연장술과 인간강화기술도 처음에는 부자들에게 보급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모든 사람이 이용하게 될 것이다. 보편적 이용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해서 혁신을 가로막는 것은 비합리적이다.”(314p)라고 말하며, 기술격차 문제에 대하여 낙관적인 견해를 표명합니다. 하지만 어떤 기술이 보편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해도, 또 다른 기술을 개발하여 무한히 격차를 재생성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법칙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 개발 자체를 막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신체 증강 기술에 담긴 수많은 가능성과 이점까지 모조리 부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1900년대 초반에는 누구도 60세에 생을 마감하는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누군가 60살에 죽는다면 그것을 너무 이른 죽음이라고 느끼고 애석해합니다. 막을 수 있고, 막아야 하는 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일말의 자비도 없는 자연의 법칙에 수없이 응전하며 생존을 이어온 존재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지구의 주인이자 생태계 파괴자인 호모 사피엔스가 신이 되려고 한다면서, 힘은 세지만 책임의식은 없는 신이 가장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인간이 당장 신이 된다면 틀림없이 그런 신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 신이 되리라고 보지 않는다. 인류가 유전자를 조작해 생명을 창조하고 파괴하는 능력을 확보할 때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핵전쟁이나 기후변화로 그 이전에 절멸할 확률보다 높다는 보장이 없다. 만약 절멸의 운명을 피하는 데 성공할 만큼 인류가 현명해진다면 어느 정도 책임의식을 지닌 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예상치 못한 결론에 이르렀다. 어떤 경우든 우리가 아는 역사의 시간은 끝난다. 논리적으로는!”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 386p

유시민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 개정판에서, 현재로서 인류가 기후재앙과 핵전쟁 등으로 멸종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진단합니다. 그러나, 인류가 위기를 건너갈 수 있을 만큼의 지혜를 가진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보류합니다. 만약 인류가 위기를 극복한다면, 그때의 인류는 기존과는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합니다.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가지 방식으로 증강되고 강화된 존재, 즉 트랜스휴먼만이 위기를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미래 사회에는 매우 다양한 인간과 인공물의 하이브리드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다양한 존재에 개인이라는 자격을 부여한다면 개인성이라는 개념이 인간성과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될 수도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완전히 새롭게 규정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개정될 수 있고, 그런 상태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 우리 스스로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329p

지구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멸종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입니다. 빙하기 도래, 소행성 충돌, 태양계 소멸, 기후재앙과 핵전쟁으로 인한 멸종 가능성은 여전히 인류를 끈질기게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미치오 카쿠는 『인류의 미래』에서 7만 5천 년 전 인도네시아 토바 화산 폭발의 피해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아프리카를 벗어났던 2000명의 ‘프런티어’들이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 말인즉슨, 인류는 멸종의 위기를 극복한 경험을 내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의 어리석음이 초래한 기후재앙을 극적으로 막아내더라도, 여전히 멸종이라는 먹구름은 우리의 머리 위에 드리워진 채로 검고 축축한 비를 내립니다. 인류의 조상이 멸종을 극복하고자 두려운 미지를 향해 발걸음 내딛었던 이들이라면, 그들과 닮은 용기의 씨앗을 DNA 어딘가에 품고 있을 우리가 트랜스휴먼이 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로 보입니다.

유채운

역술가에 의하면 “시베리아에서는 냉장고를, 사막에서는 난로를 팔아가며 먹고 살 팔자”를 가졌다고 한다. 재주가 많다는 칭찬인지, 남의 등쳐먹고 살 사기꾼의 자질을 가졌다는 의미인지 종종 헷갈린다. 봄과 가을에는 축구장에서, 여름에는 계곡과 강에서, 겨울에는 스키장에서 사느라 10대 때는 책상에 10분 이상 앉아있어 본 적이 없다. 어찌 된 일인지 고등학교 진학 이후 학습에 대한 의지가 불타올라 평생토록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던 책과 가까이 지내기 시작한다. 서울의 모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는 학부생 신분이지만, 제도권 교육과 체질적으로 맞지 않음을 깨달아 얼마 못 다니고 휴학했다. 3년 가까이 휴학생으로 지내며 이런저런 일에 기웃거려보는 중이며, 현재는 다른백년의 사무국장이다. 놀고 먹기만 하면서 태평하게 살고 싶은데, 시대가 수상하여 고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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