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3
  • 국제사회에서 추락하는 달러화
  • 어른이 된다는 것
  • 글로벌 금융 위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 미국의 은행위기에서 중국이 얻는 반사이익
  • 커뮤니티 변천사: 1.0부터 3.0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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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백년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인류는 오래전부터 신이 되고 싶어했다. 초인적인 힘을 갈망했다. 신에 관한 이야기를 여럿 지어냈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했지만, 사실 인간이 스스로 되고 싶은 초인의 모습을 신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생물학적인 한계를 초월하는 상상을 담아 종교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기독교는 천국에 가는 게 목표다. 육신을 버리고 영혼으로서 하늘에서 영생하고 싶다. 불교는 해탈이 목표다. 생로병사의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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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보는 관점을 ‘사관’이라 한다. 역사란 누구의 시점에서 보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1945년 8월 15일은 조선에게는 해방이었지만 일본에게는 패망이었다. 1492년 콜럼버스의 항해는 유럽인에게는 개척이었지만 아메리카인에게는 재앙이었다. 20세기  공장식 축산의 도입은 인간에게는 값싼 고기의 향연이었지만 소, 돼지, 닭 등 비인간 동물에게는 제도화된 대학살이었다. 가부장제와 함께 시작된 모든 문명의 역사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착취와 배제의 이야기일 뿐이다.  여태껏 역사란 백인 남성 중심으로 쓰여왔다. 나는 ‘민족사관’을 강조하는 고등학교를 다녔다. 민족의 관점에서 역사를 가르쳤기 때문에 한복을 입고 한옥에서 생활했다. ‘앞서간 선진문명문화를 한국화하여 받아들여 한국을 최선진국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민족사관의 목표였다. 그래서인지 미국과 영국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할 때는 서양 중심적인 사관에 반감을 품었다. 바야흐로 2022년, 민족주의냐 서양 중심주의냐의 문제는 더이상 크게 중요하지 않다. 둘다 인간 중심적이다. 우주 만물의 찬란한 역사를 고작 호모 사피엔스의 관점에 국한되어 바라보는 것은 안타깝다. 특정 민족이나 문명의 발전이 인류사 전체의 목적이라고 보는 것처럼 인류의 역사가 곧 지구의 역사라고 보는 것도 치명적 오류다. 유아론적인 환상이다. 우리는 이제 전 우주적 입장에서 생명의 역사를 쓰고, 그 위에서 인류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 인간을 초월한 역사관, ‘초인사관’이 필요하다. 우주 역사상 처음으로 생명이 진화의 원리를 깨닫고 있다. ‘트랜스휴머니즘’을 처음 주창한 진화 생물학자 쥴리언 헉슬리는 1957년 이렇게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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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는 종말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이야기를 짓는 것은 죽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인간의 몸에서 벗어나려는 욕망, 동물로서의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려는 욕망에 대한 것이다. 가장 오래된 기록문학인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친구의 죽음으로 심란해진  왕 길가메시는 자신을 기다리는 운명을 받아들일 수 없어 불사의 영약을 찾아 세상 끝으로 떠난다. (…) 트랜스 휴머니즘은 생물학적 조건에서 완전히 벗어나자고 주장하는 해방운동이다. 이를 정반대로 해석해도 뜻은 같다. 즉, 이 표면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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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우리는 모두 사이보그 동물이다. 인간이 동물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1859)> 이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 발족 이후 지난 4년 간, ‘우리는 모두 동물’이라는 과학적 사실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내는 글쓰기에 집중했다. 근간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2021)>는 비거니즘에 관한 에세이다. 비거니즘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문다. 인간이기 전에 동물로서, 인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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