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피에서 실리콘밸리의 구루로
케빈 켈리는 8년간 카메라 한 대만 들고 아시아의 오지를 떠돌던 히피였습니다. 자전거 한 대로 북미 대륙을 서에서 동으로 가르지르는 일주도 했습니다. 꼬질꼬질한 히피가 불현듯이 실리콘 밸리의 구루가 된 것은 언뜻 보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케빈 켈리의 글과 삶을 곰곰이 돌이켜보면, 자본주의와 산업 문명에 저항하는 히피와 규소와 비트를 주무르는 기술광의 거리가 그다지 멀어 보이지 않습니다.
아시아 오지 여행과 북미 대륙 일주의 경험을 담은 글을 관심 있게 본 스튜어트 브랜드[1]는, 케빈 켈리에게 <Whole Earth Catalog>[2]에서 일할 기회를 줍니다. 잡지사에서 일하며 우연히 실험적인 원격 회의 시스템에 참가하게 된 케빈 켈리는, 인터넷 세계가 촉발하는 인간의 정식적, 문화적, 도덕적 확장 가능성에 대해서 눈뜨게 됩니다.
“기술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냈다. 나는 온라인망이 사람들을, 다른 식으로는 결코 접하지 못했을 생각, 개념, 타인과 연결하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 온라인망은 열정의 고삐를 풀고, 창의성을 장려하고, 관용을 부추겼다. 박식한 사람들이 글쓰기가 죽었다고 문화적 선언을 하던 바로 그 순간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인류가 썼던 것보다 더 많은 글을 온라인에서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외톨이로 살아갈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선언한 바로 그 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더 큰 무리를 지어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온라인에서 예기치 못한 수많은 방식으로 협력하고, 협조하고, 공유하며 창조했다.” 11p
“더 많은 기회를 지닌 세계는 더 많은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더 많은 사람을 낳는다. 이는 자신을 능가하는 것을 계속 창조하도록 주도적으로 촉진하는 기이한 순환 고리다. 수중에 든 모든 도구는(살아 있는 모든 것)에 무언가에 관한 다른 사고방식, 다른 생명관, 다른 선택을 제공한다.” 423p
케빈 켈리는 테크늄(technium)[3]의 진화 덕분에, 새로운 일을 창안하고 실험해볼 기회가 세계에서 폭발적으로 증대되어온 것에 주목하길 요청합니다. 개인의 재능을 여지없이 발휘할 기회가 계속해서 늘어난 배경에는, 기술의 진보가 있었음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자명합니다. 이렇게 예를 들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바흐가 플랑드르 인들이 하프시코드 기술을 발명하기 1000년 전에 태어났다면? 모차르트가 피아노와 교향악 기술이 개발되기 이전에 태어났다면? 반 고흐가 값싼 유화 물감을 발명하기 전에 태어났다면? 히치콕과 찰리 채플린이 다양한 촬영 장치와 영화 기법이 개발되지 않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테크늄을 막지 마라
“남들의 창의성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일종의 의무”(424p)임이 분명합니다. 바꿔 말하면, 개인이 창의성과 자율성을 추구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기술의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자율적이고, 자체 의제를 지닌 듯이 보이며,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진하는 테크늄의 진화를 통제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대략 18개월에서 24개월마다 트랜지스터의 성능과 비용이 2배씩 개선된다는 무어의 법칙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지구상의 모든 기술은 멈추지 않고 진보해왔습니다. 생물의 진화를 통제하지 못하듯이, 테크늄의 진화는 불가피합니다. 모든 생명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일반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통일성에서 다양성으로, 개체주의에서 상호주의로, 에너지 낭비에서 효율로, 느린 변화에서 더 큰 진화 가능성으로 나아갑니다. 테크늄은 정확히 생명의 진화를 흉내 냅니다. 영장류의 의사소통이 언어로, 구전이 문헌으로, 필사가 인쇄로, 장인 생산이 대량 생산으로, 산업 문화가 유비쿼터스 지구 통신으로 발전한 과정을 생각해보면 그 점이 명확해집니다. 케빈 켈리는 그런 의미에서 단세포 생물과 균류, 식물, 동물에 이어서 테크늄을 아예 ‘일곱 번째 생물계’라고 부르자고 요청합니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인류가 북극권에서부터 열대 지방까지 천차만별 다양한 지역에서도 별 탈 없이 적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문화적 진화’가 있었습니다. 기술이 언제나 장밋빛 미래만을 약속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신기술의 약속이 메시아적일수록, 그것의 잠재적인 해로움이 큽니다. 하지만 기술의 해로움에만 집착하여, 모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봉쇄하는 근시안적인 전략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매우 부적절합니다. 대신에 ‘선행 원칙’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즉, 위험과 부정성에 겁먹어 기술의 진보 자체를 중단하고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더 낫고 호혜적인 방향으로 길들이고 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테크늄의 메시지는 여하튼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기술이 그토록 많은 문제를 낳고 있어도 좋은 쪽으로 약간 더 기울어지는 경향을 보이는 이유다. 한 명에게 때 이른 죽음을 안기는 희생을 치르고서 100명에게 영생을 줄 수 있는 가상의 신기술을 고안했다고 하자. ‘균형이 맞으’려면 실제 수가 얼마나 되어야 할지를 놓고 왈가왈부할 수는 있지만(사망자 한 명에 결코 죽지 않는 사람 1000명, 아니 100만 명이면 균형이 맞을지도 모른다)이 수지타산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무시한다. 즉 이제 이 수명 연장 기술이 존재함으로써, 예전에는 없던 사망자 한 명과 영생자 100명 사이에 새로운 선택의 여지가 생겼다는 것을 말이다.” 321p
유나바머라는 결말
유나바머는 기술 문명이 인류에게 드리운 그늘에 대해 냉철하게 직시한 사람입니다. 그가 언급하는 기술 문명의 해악은 정확하고 합당합니다. 하지만 그의 높고 외로웠던 투쟁의 결말은 집단학살이었습니다. 기술 문명에 대한 빛나는 통찰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잔혹한 결말에 이른 유나바머의 일생은 아이러니합니다.
“그 시스템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오히려 인간의 행동은 시스템의 필요에 맞게 수정되어야 한다. 이것은 기술 시스템을 인도하는 척하기도 하는 정치적 또는 사회적 이데올로기와 아무 관계도 없다. 그것은 기술의 잘못이다. 그 시스템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기술적 필요에 따라 인도되기 때문이다.” 유나바머 선언문 중. 『기술의 충격』에서 재인용
유나바머의 말마따나 테크늄은 그 자신의 “기술적 필요에 따라 인도”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후위기, 환경 오염, 생물 다양성 파괴, 비만, 핵 테러 위협, 가짜 뉴스, 물질 남용은 엄연히 기술과 현대문명 발전의 섬찟한 이면입니다. 인간성을 침식하고,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몰아내고, 지속 불가능한 자원을 마구잡이로 소비하며 성장하는 것도 테크늄의 어두운 본성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기술의 진화를 막거나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산업 문명을 비판하고 물질의 빈곤을 찬양하는 그 누구도 현대문명으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나서 살고 있지 않습니다. 유나바머는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참극에 임하기 전까지, 어둡고 습한 오두막에서 월마트에서 파는 레트로 식품이나 데워먹으며 비루한 삶을 연명했습니다. 아무리 높고 거창한 이념을 떠들어봤자, 본인 삶에서조차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종류의 운동이라면 폐기해야 마땅합니다. ‘어머니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인간이 자연의 위험함을 철저하고도 잔혹하게 제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유일한 해결책은 더 나은 기술의 개발뿐입니다. 낡은 기술로부터 산파된 해로움은 새로운 기술이 해결합니다.
케빈 켈리는 “우리의 기술적 창작물은 우리 유전자가 지은 몸의 거대한 외연이다.”(58p)라고 말합니다. 인류는 농기구를 사용했기에 일을 적게 하면서도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위생 시설 덕분에 건강하게 오랜 시간 생존할 수 있게 됩니다. 자질구레한 생활용품부터 첨단 기술이 가미된 기계를 적절히 이용한 덕분에 삶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대안과 기회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ANT(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이론가들은 ‘기술-사회의 앙상블’(『인간⦁사물⦁동맹』, 브뤼노 라투르 외)을 이야기합니다. 기술과 인간은 서로를 정의하고, 가능케 하고, 변환하고, 재정의합니다. 우리는 기술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술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친절하게 인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인간도 가고 싶은 곳으로 나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1] <Whole Earth Catalog>의 창간인이자 The Well, long now foundation의 창립자. 대항문화와 사이버네틱스를 결합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인디언 문화에 관심이 많은 히피였으나, LSD를 사용하며 느꼈던 의식 확장의 경험이 컴퓨터를 통해서도 가능함을 깨닫고 사이버네틱스 문화에도 가담한다. 나사에 지구 전체 사진을 대중에게 공개하라고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스티븐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언급해서 화제가 된 “stay hungry stay foolish”는 사실 그가 제일 먼저 사용한 말이다. 저서 『Whole Earth Discipline』에서는 밀도 높은 도시, 생명공학, 원자력, 야생복원 등의 첨단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생태와 자연을 지키는데 이용하자고 주장한다.
[2] 1960년대 미국에서 주류 문화에 대항하며 본인들만의 코뮌을 이루고 살았던 이들에게, 공동체의 자급자족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상품 정보를 제공함과 더불어 생태학, 대안 교육, DIY 등의 정보를 제공하던 상징적인 대항문화 잡지.
[3] “테크늄은 반질거리는 하드웨어를 넘어서 문화, 예술, 사회 제도, 모든 유형의 지적 산물들을 포함한다. 그것은 소프트웨어, 법, 철학 개념 같은 무형의 것들도 포함한다.”(21p) 테크늄이란 우리가 개발한 기술과 그것을 둘러싼 사회 제반과 제도의 총체를 가리킨다. 기술은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것이고, 테크늄은 특허 제도 자체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유채운
역술가에 의하면 “시베리아에서는 냉장고를, 사막에서는 난로를 팔아가며 먹고 살 팔자”를 가졌다고 한다. 재주가 많다는 칭찬인지, 남의 등쳐먹고 살 사기꾼의 자질을 가졌다는 의미인지 종종 헷갈린다. 봄과 가을에는 축구장에서, 여름에는 계곡과 강에서, 겨울에는 스키장에서 사느라 10대 때는 책상에 10분 이상 앉아있어 본 적이 없다. 어찌 된 일인지 고등학교 진학 이후 학습에 대한 의지가 불타올라 평생토록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던 책과 가까이 지내기 시작한다. 서울의 모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는 학부생 신분이지만, 제도권 교육과 체질적으로 맞지 않음을 깨달아 얼마 못 다니고 휴학했다. 3년 가까이 휴학생으로 지내며 이런저런 일에 기웃거려보는 중이며, 현재는 다른백년의 사무국장이다. 놀고 먹기만 하면서 태평하게 살고 싶은데, 시대가 수상하여 고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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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언제나 작은 문제를 해결하면서 크고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왔습니다. 케빈 켈리는 환경문제와 인간의 부적응 문제를 미래의 기술이 모두 해결해주리라고 믿는 모양인데, 당연히 미래의 신기술 역시 늘 그래왔듯이 더 크고 새로운 문제를 만들 것입니다. 기술 발전에 비례해 환경문제도 심각해지고, 인간 사회의 혼란도 심화되겠죠. 기술의 폐해를 기술로 해결하자는 주장은, 마치 사채로 생긴 빚을 또다른 사채로 갚자는 주장과 같습니다. 몇번은 그런 전략이 먹힐수도 있습니다마는, 궁극적 파멸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