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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전문가들 중 일부는 기본소득론을 비판할 때 핵심적으로 보편성 원칙을 거론한다그들은 기본소득론의 보편주의는 무차별적인 것으로 보편적 복지가 기반하는 보편주의와는 다르며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보편성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오는 오해이다. 오히려 그들이 이해하는 복지국가의 보편성은 보편주의를 전면화하는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여기서는 보편주의를 중심으로 복지국가론과 기본소득론을 비교하고, 복지국가론이 새롭게 정초될 수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보편주의의 핵심은 필요의 고유속성에 달려 있다

보편이란 개념의 사전적 의미는 모든 것에 두루 미치거나 통함’ 또는 전체를 구성하는 요소들 모두에게 관계됨이란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영어나 불어에서도 동일하다. 이런 일반적인 의미에서 보면, 어떤 제도가 보편적이라는 것은 해당 제도가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똑같이 적용되거나 관련된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전적 의미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거나 영향을 미친다는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지칭하는 것일 뿐,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를 의미에 포함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단순히 그렇게 하도록 부과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필연적으로 모두에게 적용될 수밖에 없어서일 수도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대상물의 고유속성(attribute)이 모두에게 제공되어야만 하는 것일 때이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이 보편적인 것은 국가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사회구성원을 대상으로 한다라고 결정하고 집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건강이라는 것 자체가 각각의 사회구성원에게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사회보험은 처음에는 소수의 사회구성원만을 대상자로 해 도입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대상자를 모든 사회구성원에게로 확대하였다. 사회보험이 보장하고자 하는 근원적 필요의 충족이 모든 사람들에게 관련된 것이어서, 이러한 보편성을 실현시키기 위해 점진적으로 확대된 것이다. 따라서 제도의 보편성은 제도가 현실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아니라 제도가 실현하고자 하는 바 또는 제도가 다루는 대상물의 속성이 보편적인지 아닌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보편적 복지나 기본소득도 이러한 논리가 동일하게 적용된다. 

또한 대상물의 고유속성에 의거해야 비로소 제도는 안정성과 정합성을 가질 수 있다. 대상물의 고유속성이 보편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보장한다면 이는 비합리적이며 제도 운영에서도 항상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예를 들어, 사치품은 모든 사회구성원이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며, 대저택이나 고급승용차를 모두가 원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이 대상물들을 제공한다면 이는 매우 우스운 꼴이 될 것이며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반대로 대상물의 속성이 보편적임에도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제도의 확장에 대한 요구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복지국가의 보편성은 잠재적 보편성이다

그렇다면, 복지국가의 사회보장은 위 논리를 어떻게 구현하고 있을까? 사회보장이 기반하는 보편성은 보통 사회적 위험이 발생했을 때, 해당 상황에 처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회적 급여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강조점은 사회적 위험이 발생했을 때에 한정하는 것으로, 보편성에 사회적 위험의 발생이라는 단서조항이 붙는다.

사회적 위험은 인간적이고 자율적이며 사회참여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충족시켜야 하는 근원적 필요들이 현실에 드러나 필수재를 투여해야 하는 시급한 상황을 의미한다. 건강위험이라는 사회적 위험은 바이러스가 체내에 침투하여 이를 제거해야 하는 필요가 발생하고 이를 위해 조치(수술 또는 약물투여)가 취해져야 하는 상황을 말한다. 그리고 근원적이지 않은 필요들은 사회적 위험에 속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귀금속의 소유하는 것은 근원적 필요가 아니며 따라서 귀금속이 없는 상황은 사회적 위험에 속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회적 위험의 보편성은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보편성과는 다소 다르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 개인을 기준으로 보면, 사회적 위험, 즉 근원적 필요의 발생하여 필수재를 투여해야 하는 상황은 아무 때나 발생하지 않는다. 질병에 걸리는 것은 아무 때나 일어나지는 않는다. 자녀의 보육은 아이가 있어야만 발생하며, 노인에 대한 돌봄도 노인이 되어야 하고 신체적 또는 정신적인 자율성이 훼손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사회적 위험은 보편적이지 않다.

그러나 사회적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점에서는 보편적이다. 대상자가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상관 없이 그리고 성별이나 국적에 상관 없이 아플 수 있으며 돌봄이 필요할 수 있다. 그리고 생애주기 전체를 놓고 보면, 모든 사람은 각각의 사회적 위험을 자연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경험한다. 인간은 생애에 최소한 한 번 이상은 아프며 아이를 갖게 되고 나이가 들면 정신적신체적 자율성의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위험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은 상태로 존재하지만 언제나 현실에 드러날 수 있는 상태로 존재한다. 즉 잠재적(latent)인 상태로 존재한다. 잠재적 양태를 갖는다는 점에 비추어필자는 사회적 위험의 보편성을 잠재적 보편성이라 부른다. 모든 사람들을 대상자로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잠재적으로만 그러하다. ‘잠재적 보편성은 언제 어디서나 모든 대상물에 대해 오감을 통해 관측될 수 있다는 현상적 보편성과는 구별된다. 지금 주위를 활보하고 있는 건강한 사람들은 현상적 보편성에 따르면 건강이라는 사회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 않지만 잠재적 보편성에 따르면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기본소득론도 잠재적 보편성에 의거하여 급여를 제공한다

사회보장은 사회적 위험이 본래적으로 갖는 잠재적 보편성에 더해 현상적 보편성을 적용한다. 다만 이런 적용은 사회적 위험이 잠재태에서 현실태로 모습을 드러낸 경우에 한해서만 이뤄진다. 즉 사회적 위험이 발생하기만 하면 그것이 위험당사자가 누구인지 와는 상관 없이 누구에게라도 해당 사회적 위험에 대응한 연대적 방식의 개입(달리 말하면, 사회적 급여)를 제공한다.

복지국가론 지지자들 중 일부가 기본소득론에 가하는 비판은 바로 이 지점이다. 기본소득제는 사회적 위험이 발생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기본소득을 제공하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잠재적 보편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현상적 보편성에 기반하여 기본소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소득이 높거나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소득결핍이라는 사회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또는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제공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이러한 해석이 타당한 것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잘못된 해석이다. 

기본소득론이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위험은 최소생존필요의 발생이다. 인간은 누구나 최소생존의 필요를 본래적으로 가지고 태어난다. 의식주, 광열(에너지), 건강, 교통, 통신, 여가 등이 본래적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 최소생존필요는 다른 필요들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속성, 즉 필요의 발생이 모든 사람들에게 매일 발생한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모든 인간은 매일 먹고 마시며 옷을 입고 체온을 유지해야 한다. 잠과 휴식을 위한 안식처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사회적 위험이 모든 사람에게 매일 발생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매일 최소생존필요의 충족을 위해 필수재를 확보해야 하는 시급한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최소생존이라는 사회적 위험은 매일 발생하는 것일지라도 다른 사회적 위험과 마찬가지로 잠재적 보편성의 속성은 갖는다. 영양분 섭취의 필요는 24시간 내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5~8시간의 간격을 두고 나타난다. 즉 배고픔이 없는 시간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주거가 관련된 휴식 및 안식의 필요도 주로 저녁 시간대에 발생하며, 교통과 통신의 필요도 이동하거나 연락을 할 때에 한정해 발생한다. 단지 건강, 돌봄 등의 필요와 다른 것은 발생의 주기가 매우 짧다는 것과 발생 빈도가 매우 높은 것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최소생존이라는 사회적 위험이 매일 발생한다는 것은 결국은 이와 관련된 사회보장도 모든 사람에게 매일 구현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 또는 노동소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생애주기별 연령대 등의 구별 없이 모두에게 제공해야 한다. 이는 건강필요와 건강이라는 사회적 위험에 대응한 사회적 급여(건강보험 급여 또는 공적 의료서비스)가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에 따르는 것이다.

 

기본소득론의 보편성을 비판하는 것은 사회보장의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다

복지국가론이 일부 지지자들은 사회적 위험의 발생이라는 기준을 들어 기본소득의 보편성을 비판하는 것은 또 하나의 매우 잘못된 이해가 깔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잘못된 이해는 오히려 사회보장의 보편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일단 비판자들의 논리를 액면 그대로 서술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사회구성원들은 매일매일 최소생존필요에 노출된다. 이 필요에 당면한 사회구성원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스스로 노력(자구노력)을 한다. 자기의 돈(소득)으로 필요 충족을 위한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한다. 식료품을 사고 옷을 사며 주거비용을 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회구성원들은 이를 구매할 돈이 없어 해당 필요의 미충족 상황이 발생하게 되며, 이 상황을 사회적 위험이 발생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한정해 사회적 급여를 제공하며, 부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처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급여를 제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위 과정은 사회보장의 원칙이 일반적으로 작동하는 과정과 다르다. 첫째, 위 비판자들은 최소생존필요가 발생한 다음에 일차적으로 자구노력에 의해 필수재를 마련하는 과정을 상정하고 있다. 먼저 개인의 자구노력을 하고 이 노력으로도 해당 재화와 서비스를 마련하지 못했을 때 이차적으로 연대적 방식의 사회적 급여가 제공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필요의 충족은 필요가 발생하자마자 즉각적으로 이뤄져 한다는 원칙을 위배하는 주장이다. 사회보장의 원칙에 따르면, 질병에 걸리면 자신의 돈으로 의사나 병원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를 구매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건강보험이 해당 의료서비스를 구매한다. 사실, 사회보장은 원칙적으로 자구노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구의 방식을 연대의 방식으로 대체하는 것이 핵심 중 핵심이다. 사회보장의 발전은 바로 자구의 방식을 연대의 방식으로 대체하는 과정이었고, 바로 이 특징이 사회보장을 사회보장일 수 있도록 하는 요소이다. 

둘째, 사회적 위험에 대한 규정도 다르다. 앞서 말했듯이 사회적 위험은 필요가 발생한 순간 그리고 필요에 대응해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필수재의 확보가 시급한 상황을 지칭한다. 그런데 기본소득 비판자들은 최소생존필요가 발생한 순간이 아니라 자구의 노력이 실패한 상황을 사회적 위험으로 간주한다. 이런 논리라면 아픈 사람의 경우에도 먼저 자신의 돈(소득)으로 질병을 치료하려고 시도하고 치료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 위험의 상태가 아닌 것이 된다. 사실 이 논리를 따르게 되면, 부자들은 거의 사회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없다. 왜냐하면 자구의 노력으로 해결하지 못할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위험은 자구의 노력이 개입과는 무관하게 필요가 발생하는 순간 바로 생겨나는 것이다. 최소생존필요도 그것이 발생하는 순간이 사회적 위험이 발생하는 순간이다. 

위와 같이 기본소득 비판론이 사회보장의 원칙에 위배하는 것은 결국에는 기존의 사회보장체계가 일관적이지 않고 체계적이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왜 다른 사회적 위험은 즉각적으로 연대적 방식으로 개입을 하면서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최소생존필요만 독특하게 자구의 방식을 먼저 사용하라고 하는가? 이는 분명히 사회보장체계의 일관성을 해치는 주장이다. 그리고 다른 사회적 위험은 필요의 발생과 동시에 사회적 위험으로 간주하면서, 왜 최소생존필요만 유독 예외적으로 다루는가? 왜 개인이 최소생존필요를 스스로 해소하려 노력해야 하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결핍의 상황을 사회적 위험이라고 여기는가? 이러한 인식은 사회보장체계의 체계성과 통일성을 해치는 주장이다. 오히려 기존의 사회보장체계가 보다 더 보편적이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을 비판하는 관점과 논리가 극복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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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구성원들 간 삶의 질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고 사회경제적 변화들이 한국사회의 전면적인 탈바꿈을 요구하는 지금, 정치공동체의 조직, 구성, 운영에 대한 대안이 모색되어야 함. 상대적 자율성과 적응의 원리를 내재하여 내외적 환경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온 복지국가는 여전히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음. 이에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안착되지 않은 복지국가를 최신의 버전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심층적이고 실천적인 차원을 동시에 고려해, 제안하고자 함. 특히 다양한 분야의 현장에서 활동중인 분들의 살아 있는 방안들을 제안하려 함.

이권능

정책연구소 이음 선임연구위원. 파리제1대학과 그로노블정치대학에서 수학 후 밑으로부터의 복지국가운동 전개 중. 소득보장, 건강, 노후 등의 영역에서 근원적 욕구의 사회화, 정책의 정치화, 정치의 정책화 등을 연구.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관점에서 복지국가의 재설계를 탐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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