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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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사는 2013년경부터 일본의 스즈카 커뮤니티와 교류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스즈카 커뮤니티는 ‘다툼없는 풍요로운 사회’를 꿈꾸며 200여 명의 구성원들이 20년에 걸쳐 작은 사회 실험을 해오고 있는 곳으로, 여느 커뮤니티와 차별화되는 가장 큰 특징은 ‘자각(自覺)’을 베이스로 한다는 점입니다. 자각은 ‘인식상의 오류를 알아차린다, 깨닫는다, 실제쪽으로 눈이 향한다’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스즈카 커뮤니티는 바로 자각이라는 내면의 전환을 통해 화, 미움, 우열감과 같은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해가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개인을 강조하며 피아(彼我)와 우열을 나누는 존재론적 사고방식에서 연결성과 차이에 주목하는 관계론적 사고방식으로 나아가는데 있어 자각은 필수적인 감각이자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쓰레기통에 있는 물건을 우리는 흔히 ‘쓰레기’라고 인식하지만, ‘쓰레기’는 그 물건 자체의 고유한 성질이 아니라 관계 맺은 방식을 의미합니다. 사용자의 쓰임이 다했기에 둘의 관계에서 ‘쓰레기’가 되는 것일 뿐 같은 물건이라도 다른 사람은 자신의 쓰임에 따라 다르게 인식할 수도 있지요. ‘맛있다’, ‘편리하다’, ‘좋다’, ‘나쁘다’ 등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많은 표현들은 대상의 특성을 표현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관찰해보면 대상의 절대적인 속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대상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지낼 때 상대에 대한 나의 판단을 상대의 속성이라고 생각하며(굳게 믿으며) 그 전제 위에서 대화하고 행동하는 일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각이 있는 상태는 이분법으로 분리된 ‘나’와 ‘상대’에서 벗어나 관계성 속에서 ‘나’와 ‘상대’를 인식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흔히 좋은 사람-나쁜 사람, 맛있는 음식-맛없는 음식, 재밌는 영화-재미없는 영화, 좋은 정치인-나쁜 정치인 등 상대와 생각이 다르면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주장하고, 다투며, 과도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주관적 판단은 옳고 그름의 영역이 아니라 각자의 생각이 다른 것일 뿐입니다. 자신의 판단이 자신만의 감각이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많은 다툼을 근본에서부터 해소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는 좀 더 평화롭게 협력하며 필요한 것들을 해나갈 수 있게 됩니다.

이번 글부터는 스즈카 커뮤니티에서 지낸 3개월의 기록을 전할까 합니다. 스즈카 커뮤니티를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스즈카의 외형이나 활동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개인의 시선에서 관찰하며 발견한 것들을 중심으로 전하려 합니다. 배경설명 없이 사람이나 상황이 묘사되기도 하고, 펜데믹 이전의 기록이라 현재 상황과는 다소 다른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관찰일기’라는 틀로 읽어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백년의 중요한 과제중 하나가 인간 내면의 성장이고, 그 바탕에 자각이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고 믿기에 스즈카에서의 경험은 여전히 나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즈카 커뮤니티

일본 스즈카(鈴鹿)에 왔다. 애즈원(as one) 네트워크의 스즈카 커뮤니티다. 준(準)아카데미생 자격으로 3개월간 집중해서 공부할 작정이다. 몇 년간 우동사와 인연을 맺어온 곳으로, 다음 장을 준비하는데 큰 도움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2년 만에 왔음에도 아카데미생을 맞이하는 테르코상, 사카이상, 미에상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2년이란 시간은 사람도, 역할도 바꿀만 한데 이곳에선 시간이 멈춘 듯 아는 얼굴들이 그대로다. 그 자체만으로도 무척 안심이 된다.

2년 사이 유학생 제도는 좀 더 다듬어져 아카데미로 바뀌었고, 이들을 위한 건물도 지어졌다. 애즈원 하우스라 불리는 이 곳에서 세 달 동안 지낼 둥지를 틀었다. 공부에 집중하고 싶다는 요청에 정아와 막 돌을 지난 여민이와는 다른 방을 배정해 주었다. 그럼에도 정아와 여민이가 지내는 곳에 내가 잘 수 있는 이불을 한 세트 더 마련해 주었다. 세심하고 따뜻하다. 나는 브라질에서 온 일본인 레오의 룸메이트가 되었다.

아카데미생은 브라질에서 온 지에고와 레오, 일본인 요시와 사토미, 타키, 나츠미, 그리고 한국인 흥미다. 흥미는 오랜 인연이 있는 친구다. 10년 동안 다니던 대안학교 교사직을 내려두고 이곳에 온지 2년이 넘었다. 공부는 더욱 깊어지고 마음은 편안해진 듯 하다. 여기에 우동사 멤버이자 아카데미를 지나 스즈카와 한국의 교류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진순이 있다. 덕분에 이곳에 올 수 있었다. 이 둘은 3개월간 의지할 친구이자 앞으로 함께 해나갈 친구들이다.

나는 이번 기간동안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중점적으로 살펴볼 작정이다. 경계심이라고 표현했지만 좀 더 살펴보면 비난받기 싫어하는 마음이다. 긴장감이자 두려움이기도 하다. 아마 어린시절부터 학창시절과 군생활을 지나 회사까지, 화와 비난이 일상인 환경에서 평생을 지냈으니 어쩌면 당연하게 형성된 반응일지도 모른다.

잘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회, 서로가 서로를 탓하고 벌하는 사회이니 긴장감이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고 불안한 일이라고도 생각해 왔다. 그러나 최근들어 이런 긴장감이 사람들과 깊어지는데 큰 장애가 된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었다. 사람들을 잠재적으로 나를 감시하고 탓할 이들로 보고 있으니! 불안이자 불만족이다. 마음으로는 더욱 가까워지고 싶은데 그 두려움 탓에 관계에 장벽을 두르고 비무장지대를 만드는 쪽으로 움직여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 몇 년, 관계에서 부딪힘이 줄어드니 나는 줄곧 비무장지대가 평화의 상징인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무장지대는 평화가 아닌 단절을 뜻하고 깊은 외로움의 원인이었다. 분단된 조국에서 살아가서일까, 내 안에도 견고한 38선이 있다.

이곳에서 하는 공부는 누군가가 정해둔 답을 찾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보고, 자신의 바람을 알아차려갈 뿐이다.

‘나는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나’

‘세상은 실제 어떻게 이루어져 있나’

‘나는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나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검토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 몇 년간의 공부를 통해 여러 변화들이 일어났다. 보는 법이 바뀌자 느낌도 바뀌었다. 내 시선이 머리속 관념이 아닌 실제를 향하게 되니 타인과 세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조금 더 잘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여민이도 태어났다.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살펴볼 것들은 끊임없이 드러난다. 아마 매일 청소하듯 평생 해갈 공부일테다.

마침 이튿날, ‘주체적으로 산다’란 주제로 아카데미생들의 공부모임이 열렸다. 아직 일본어가 서툴러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전부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질문은 남아 곱씹어보게 된다.

주체적으로 산다는 것은 뭘까. 자연스레 ‘나는 그간 무엇으로 움직여 왔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린다.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비난받지 않으려고, 내 안의 옳은 것을 지키려고 반응하고 움직이는 내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것으로는 도무지 쾌적하지가 않다.

그럼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나. 남은 시간 동안 하나하나, 차근차근,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조정훈

20대는 돈벌 궁리로 바빴다. 직장생활하며 주식으로 일확천금을 꿈꾸었으나 실패했다. 대신 돈벌고 싶은 욕구의 바닥에는 불안감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30대는 친구들과 우동사라는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10년 동안 커뮤니티를 주제로 다양한 실험을 하였다. 주변 사람들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다. 40대에 들어서 다음 10년을 그리고 있다. 볼음도라는 섬을 오가며 농사짓고, 새로운 관계망 실험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환경으로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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