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는 근대와 함께 탄생했다. 정확히는, 유라시아의 한 지역이던 유럽이 근대 세계를 열어젖히고 스스로를 아시아와 분리하면서 탄생했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을 아시아와의 관계를 통해서 정의했다. 유럽을 부르는 다른 말인 ‘서구’가 사실상 유럽을 대체하면서 널리 쓰이게 되었는데, 이제는 유럽인들이 유라시아 동쪽의 이웃인 아시아와는 아예 다른 지리적 범주에 속한다는 의미였다. 서구는 유럽인들이 정착하여 일군 유라시아 바깥의 파생 사회들인 북미, 오세아니아 사회까지 포괄하는 더 큰 개념이었다. 서구는 단순히 유럽인과 유럽 문화를 수용한 사회를 넘어서, 유럽인들이 ‘근대적’이라고 부르는 생활 양식과 인식 체계를 갖춘 지역을 뜻하게 되었다. 바로 이 때문에 ‘서구화’를 충분히 거쳤다고 여겨지는 사회인 한국, 대만, 일본 같은 동아시아의 고소득 민주주의 국가 또한 ‘극동’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서구’에 포함되기도 하는 것이다. 서구는 더는 백인이나 기독교 같은 인종, 전통으로 한정 지을 수 있는 개념이 아니고, 유라시아의 서쪽인 유럽을 지칭하던 당초의 지리적 의미로 규정할 수 있는 개념도 아니다. 서구는 17세기 이래로 폭발한 근대성을 체화한 공간이자 진정한 문명이 있는 공간, 인류 발전 단계의 최전선을 마주하는 공간이었다.
단순한 지리적 개념이었던 유럽이 문명적 함의를 띤 서구로 변해가면서, 서구와 비서구의 사람들은 유사한 질문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서구는, 정확히는 서구가 도달하고 성취했다는 ‘근대’는 어쩌다 탄생하게 된 것일까? 비서구 사회 또한 서구와 마찬가지로 근대 사회가 될 수 있을까? 두 사회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펼쳤으며, 심지어 같은 화자가 동시에 상반되고 모순된 대답을 내놓을 때도 있었다. 한쪽에서는 근대성은 모든 인류가 닿아야 할 이상이라는 대답이 있었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근대성은 인류 사회의 발전 단계이며, 서구는 자신의 우월성을 통해서 그 단계에 가장 먼저 도달한 사회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비서구 사회를 어떻게 근대로 향하게 할지에 대해서는 역시나 무수히 많은 답이 나타났다. 많은 서구인은 무력을 통한 정복과 식민화, 세계 자본주의 교역 시스템으로의 통합, 선교와 교육 사업 등을 통해서 비서구 사회를 성공적으로 근대화시킬 수 있다고 장담했다. 무력, 교역, 교육을 어느 비율로 얼마나 써야만 하는지는 이 같은 대명제에 대한 각론을 구성했다. 수많은 비서구인도 이런 견해에 동조했다. 그들은 대체로 서구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자신들의 사회가 서구와 마찬가지로 근대화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식민화된 상태가 나은지, 아니면 그래도 독립을 유지한 것이 더 나은지는 역시나 마찬가지 대명제에 대한 비서구인의 각론이었다. 어쨌든 서구는 선생이었고 비서구는 학생이었다는 점은 같았다.
반대편에서는 근대는 서구의 특수성을 통해서만 도달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비서구는 결코 근대화를 이룰 수 없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이런 대답을 선호했던 서구인들은 다른 사회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서구(유럽)의 내생적 특징, 혹은 우월성이야말로 서구가 근대를 만들 수 있던 원인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그런 특징을 공유하지 못하는 비서구는 결코 서구와 동등한 근대성을 성취할 수 없었다. 물론 이에 대한 각론 격의 대답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었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이어지는 민주주의 전통, 기독교 신앙, 백인의 인종적 우월성, 원양항해를 나섰던 진취성, 전통적 지식을 버릴 수 있는 지적 유연성과 창의성, 연중 서늘한 안정적인 기후 등 수많은 요인이 제시되었다. 심지어 비서구에서도 이러한 ‘비서구 근대화 회의론’이 매우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사회를 근대화하고자 했던 비전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비서구 근대화 회의론은 역설적으로 더욱 더 급진적인 서구적 근대화 프로젝트를 정당화하는 논거가 되기도 하였다. 비서구가 서구와 같은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히 옷을 갈아입는 것을 넘어서 사고와 언어 자체를 서구식으로 뜯어고쳐야만 했다.
유사한 논쟁 구도는 근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타날 때도 재차 등장했다. 서구 근대성을 대면한 많은 비서구 사회의 지식인들이 서구화와 근대화가 전통적 삶을 파괴하고 비서구를 서구에 종속시킨다고 비판했다. 이런 관점 역시 비서구가 서구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비서구의 근대화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관점에 따라서 다양하게 섞여 있곤 하였다. 먼저 근대의 강력한 힘은 비서구 전통 사회를 파괴하고 비서구인을 충분히 서구화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비서구와 서구는 달랐기에, 비서구인은 서구인과 절대 동일한 주체로 거듭날 수 없었고, 굴종과 예속의 상태를 이어가는 것만이 가능했다. 동시에 비서구의 전통에는 어떠한 서구화 물결도 파괴할 수 없는 고유의 가치가 있다고 여긴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서구 근대성의 해독제로서 비서구 사회의 다양한 전통들을 활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주로 68혁명 이후 등장한 서구의 근대화 비판론자들도 비서구에서 일찍이 발전시킨 이런 논리를 적극적으로 차용했다. 그들은 서구 자본주의가 모든 사회를 서구화, 근대화시키는 것을 막아야만 한다고 믿었고, 비서구의 전통을 서구 근대 문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원천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논쟁은 더 큰 질문에는 적절한 대답을 제시할 수는 없었다. 바로 “근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사실 이 질문에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해답이 없다. 근대, 근대성, 근대화 등의 단어에 너무나 많은 의미, 특히 모순적 의미들이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근대는 ‘과거와 구분되는 새로운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현재 시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근대는 인권, 민주주의, 시민 사회 같은 일련의 ‘좋은’ 특징들과 연결되기도 한다. 반면 제국주의, 전체주의, 국가 폭력과 같은 일련의 ‘나쁜’ 특징들을 뜻하기도 한다. 근대를 지난 200년, 300년, 혹은 400년의 역사 전체를 포괄하는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가장 일반적인 정의 중 하나이다. 자본주의, 계몽주의, 합리주의 같은 요소들이 근대의 상징이라고 이야기되기도 한다. 문제는 근대에 들어 있는 의미가 너무 많기 때문에, 정말 아무 곳에나 ‘근대적’ 혹은 ‘전근대적’이라는 말을 붙여도 어떻게든 다 말이 된다는 데 있다. 서구 민주주의 사회는 ‘근대적’이다. 보통선거권,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는 서구 근대성의 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나치 독일과 같은 사회도 역시 ‘근대적’이다. 근대에 등장하는 대중 동원과 정교한 국가 폭력, 미디어 프로파간다를 결합했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은 세계사로 보면 명백한 ‘근대’지만 그 속의 아시아는 ‘전근대’기도 하고 ‘근대’기도 하다. 심지어 유럽 안에서도 그 두 개념은 공존하고 있었다. 근대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달성하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렇다면 그 모두를 달성한 이후의 사회는 여전히 근대인가? 누군가는 능력주의 관료제를 근대의 상징으로 얘기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1천년이 넘은 근대 사회다. 서구가 근대적이다, 아시아가 근대화가 되어야 한다, 전통에서 근대의 해독제를 찾아야한다 등 수많은 지식인과 정치인을 사로잡았던 이 주제는 사실 엄밀히 정의된 바가 없이 막연한 느낌으로만 이야기되어온 것이다.
‘근대가 무엇인가’의 문제는 아시아를 정의하는 문제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이전 글에서 나는 아시아를 ‘서구 근대의 압도적 지배력에 충격을 받은 비서구 유라시아 사회’라고 정의한 바가 있다. 아시아는 19세기에 탄생했다. 아시아 사회와 그 속의 사람들이 서구 근대라는 충격을 맞이하고 자신들의 진로를 모색하는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직면했던 서구 근대가 무엇인지부터 논해야 한다. 서구 근대는 언제, 어떻게 탄생했고, 그것이 지칭하는 바는 진정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가? 그 서구 근대를 마주한 아시아인들은 자신들을 압도한 새로운 시대의 힘을 무엇이라고 상상했으며, 그에 어떻게 대응을 했는가? 그리고 고민과 대응이 어떻게 작동하면서 오늘날의 세계를 만들어냈고, 또 만들어나가고 있는가?
다음에는 아시아라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필연적으로 제기할 수밖에 없는 ‘근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더 탐구해보도록 하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대학원생. 서아시아 지역을 전공하고 있다. 서아시아 '본토'보다는 러시아 문명과 서아시아 문명의 접경 지대에 더 관심이 많다. 유라시아의 근대화와 냉전 정치가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과학기술, 문명사, 대중문화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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