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를 이성(理性)의 시대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이전은 비이성의 시대라는 것인가? 중세 유럽에서는 신성(神性)이 지배했다고 한다. 그러면 성리학(性理學)국가인 조선은 이성의 시대인가? 아닌가? 유럽의 이성은 ‘성리학’할 때의 “성리”를 빌려간 것이라고들 한다. 시대를 더 올라가 불교국가라는 고려의 불성은 이성이 아닌 것인가? 논자에 따라서는 ‘성리'(性理)와 ‘불성'(佛性)을 유럽의 이성보다는 몇 곱절 위에다 놓는다. 그걸 승인한다면 ‘조선’은, ‘고려’는 또는 ‘티베트’는 이성의 근대(지금) 유럽보다도 몇 곱절 훌륭한 나라라는 진술이 된다.
대개의 경우 유럽의 ‘이성’ 그러면 단 한 쪽을 안 읽었어도 칸트의 ‘실천이성’, ‘순수이성’, 헤겔의 ‘절대이성’을 떠올린다. 마르크스의 ‘공산이성’을 떠올리기도 한다. 논리적으로, 학문적으로 ‘이성’을 말하는 것은 별로 필요하지 않다. 철학자, 연구자가 아니어도 사람들은 모두 다 자기만의 이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성인지, 영성인지, 감성인지 필자가 구분해서 말하는 것은 ‘신의 주사위’를 맞추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다.
겨우 한글만 깨우친 노모가 말했다. “고추가 지 혼자 빨갛게 익간디? 햇볕도 있어야 허고, 바람도 불어야 허고, 땅심도 좋아야 허고, 내가 돌보기도 히야 태양초가 되는 것이지. 니는 대학까지 댕겼는디 그것도 모르냐?” 어머니는 우주자연의 이치와 사물의 융복합을 직관적으로 꿰고 있었다. 어머니 말씀을 이성과 감성으로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고, 필요한 일도 아니다. 기계석유화학 농사 이전의 자연농사는 천지이성과 천지감성에 맞았다.
딸이 5살 때쯤 어떤 일로 혼을 냈더니 항변했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빠 마음만 있어? 내 마음도 있지!” 딸의 마음보다도 나의 마음이 더 진보한 것이서 딸을 혼냈을 수 있었을까?
필자는 여기서 이성이 뭣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나름의 이성이 있다. 영국인 대처나 처칠의 이성이 한국인 영희와 철수보다 우월한 것도 아니다. 대처는 신자유주의의 깃발을 들고 “대안은 없다. 오로지 남자이고 여자인 개인만 있다”고 했다. 2차대전의 영웅 처칠은 전쟁 승리를 위해 벵골만 사람들 칠백만을 굶어 죽게 만들면서 식량을 수탈했다. 벵골로 진격하는 일본군을 막기 위해서였다. 당시 영국은 미얀마를 식민지로 두고 있었다.
이성 그러면 어렵다. 영성이나 감성과 구분하는 것도 어렵다. 평범한 한국인들이 일상 생활에서 쓰는 말들을 보면 한국인 모두가 리(理)와 이성(理性)을 잘 알고 있다.
“그럴 리(理) 없다.”
“이성(理性)을 잃고 왜 그래?”
“그건 이치(理致)가 아니야!”
“도리(道理)가 아니지.”
“그런 법(法)이 어디 있어?”
“올바른 길(道)을 가야지.”
“그 사람 천성(天性)이 참 좋아.”
이 말들을 구구절 설명하지 않아도 한국인들은 다 알아 듣는다. 리(理)가 아닌 기(氣)를 쓸 때도 있다.
“그이는 기(氣)가 쎄.”다는 말은 자기 이성만 강조하는 “고집이 쎄다.”는 말과는 다른 뜻이다. “무르익던 남북 화해의 기운(氣運)”이라고는 써도 “무르익던 남북 화해의 이성”이라고 쓰지는 않는다. “분위기(雰圍氣) 좋네.”
“천벌(天罰)받을 놈!”
위 글들에서 보듯이 ‘천’, ‘도’, ‘기’, ‘이’, ‘법’은 우리말에서 흔하게 쓰고 듣는다. 위 사용례를 유럽말 “합리적 이성”으로 바꿔 쓸 수 있을까?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위 용례에서 한국인들은 리, 이성, 법, 이치, 도를 어떤 판단의 준거로 삼는다. ‘기’는 주로 사물의 전개, 변화, 역동성, 전파에 사용한다. ‘리’가 정태적이라면 ‘기’는 동태적이고 생동적이다. ‘리’가 ‘기’를 통제할 수 있을까? 역으로 ‘기’가 ‘리’를 통제할 수 있을까? 성리학에서는 ‘이기불상잡'(理氣不相雜), ‘이기불상리'(理氣不相離)라고 한다. 그런데 근대국가는 보편이성의 국가라고는 해도 기의 국가라고는 않는다. 연구 주제다.
엄청 두꺼운 근대경제학 책을 몇 마디로 줄이면 “싸게 만들어서 비싸게 파는 것을 합리적이다.”고 한다. 실제로 경제학에서는 이를 합리적 행동이라고 한다. 이런 것을 큰 학문이라고 대학에서 가르친다. 경제학이 아니고 수탈학이다. 공리주의에서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는 희생되어도 좋은 것을 공리라고 한다. 이때의 ‘리'(理)를 모두의 ‘이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성은 근대의 산물이 아니다. 공자 시대 이전에도 이성은 있었다.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이성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근대이성은 중세 유럽의 신성시대와 대칭된 말이지 ‘이성’만으로 근대니 근대 이전이니 할 수 없다. 바르게 말하면 ‘근대는 이성의 시대’라는 말은 ‘근대는 부르주아지 이성의 시대’라고 해야 맞다. “모든 신성은 모두를 신의 노예로 만들었다.”는 진술은 가능한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근대의 부르주아지 이성은 만인만물의 이성인가? 더 나가서 근대의 프롤레타리아 이성은 만인만물의 이성인가? 필자는 ‘아니다’고 말한다. 필자는 비자본주의자인데 비자본제는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 고로 굳이 마르크스나 기존 국가사회주의를 떠올리게 하고 비자본제의 다양성을 좁은 길로 몰아넣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개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근대 부르주아지 이성은 참혹한 살생(사람만이 아니고 뭇 생명의 생이다.)의 시대를 만들었다. 콜럼버스가 1차 항해에 나선 해는 1492년이다. 조선 성종 임금 타계 3년 전이다. 그보다도 백 년 뒤인 1599년 9월 24일 동인도 회사(East India Company)라고 불리는 새로운 기업의 소유권은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는 작은 종이조각으로 발행되면서 주식회사가 시작되었다.
630년이나 된 부르주아지시대는 잉카문명 같은 선주민 문명 말살, 식민지, 노예사냥, 세계대전, 셀 수도 없는 지역전쟁, 지구수탈, 기후위기 시대였다. 기술의 발전이 생명이 생명답다는 뜻에서의 ‘문명시대’를 만든 것은 결코 아니었다. 도리어 그 반대로 부르주아지시대는 ‘반문명의 시대’였다. 근대는 반문명 살생의 시대다. 생명이 생명답다는 뜻에서의 문명은 더 퇴보했다.
부르주아지 이성은 이전 시대의 이성보다도 진보했다는 것은 근대의 거짓말이다. 위에서 리와 기를 잠시 말한 것은 이 말을 하기 위해서다. “생명기운시대!”
사진 출처 : https://ar.pinterest.com/pin/41869409661126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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