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일본에서의 10일. 올해 마지막 해외 일정이였다.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 개인적 욕망과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도움이 되는 영감을 꼭 얻어오리라는 사명감을 안고 떠난 그 곳에선 매일 15km 이상 걷고 듣고 보았다.
펜데믹 기간, ‘하늘 길이 열리면…’ 하며 가야할 곳을 주기적으로 리스트업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그 리스트에 빠짐없이 올라왔던 곳은 코펜하겐과 포틀랜드 그리고 코스타리카였다. 하지만 올해 내가 간 곳은 엉뚱하게도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태국과 일본이었다. 이미 내가 여러차례 다녀왔던 곳들이었다. 이제와 왜 또 그곳을 갈 수 밖에 없었느냐라고 묻는다면, 아주 새로운 곳보다는 애착이 있고 어느정도 익숙한 곳에서 깊은 무언가를 찾아내고 싶었던 마음 때문에, 라고 답하고 싶다.
그렇게 7월엔 태국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고도, 외부문명과 단절되어 그저 그들의 문화를 경험케 하는 일로도 풍요롭게 살아가는 몬족을 만났고, 8-9월엔 천혜의 자연 발리에서 매 순간 신성함을 안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이들을 만났다. 11월 일본에선 소중한 것들을 오래토록 지켜나가는 그들의 질서와 겸손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오늘은 일본에서 내가 큰 영감을 주었던 그 순간들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1. Tokyo, 자전거의 생활화
일본의 교통비가 비싸서인지 일본 어디를 가든 자전거를 타는 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래서 자전거 덕후인 나는 일본에 가면 모두가 각기 다른 자전거를 보는 일이 매우 흥미롭다. 특히 자전거에 – 다양한 짐받침, 베이비 시트, 펫 시트, 수레, 우산 스탠드 등- 온갖 것들을 달고 다니다보니 자전거만 봐도 주인의 성향과 라이프 스타일이 느껴진다.
자전거를 타는 일은 단순히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물론 훌륭하지만, 많은 것들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 어떠한 기술보다도 필요한 ‘매개체’ 가 아닐까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실내에서 기계와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현대 미국인은 전체 시간 중 95%를 실내에서 머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자연스레 많은 감각들이 차단된다. 몸은 느려지고 약해지는 반면에, 마음은 조급하고 우울해진다.
자전거가 일상이 되는 삶은 자연스럽게 많은 것들과 ‘연결’ 되고 ‘회복’되게 한다.
내 몸과의 연결, 이웃과의 연결, 지역과의 연결, 자연과의 연결.
번잡하고 복잡한 대도시 도쿄에서, 자동차와 자전거가 경적 소리없이 질서정연하게 돌아가는 생태계를 보며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자전거 인프라와 제도가 잘 구축되어져 있는 것도 큰 몫을 하겠지만, 연결된 시민들의 문화 의식과 질서가 동반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감히 추측해본다. 연결되면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면 사랑할 수 있다.
2. Kyoto, 깨진 유리를 살리는 킨츠키
교토의 한 수공예 마켓에 갔다가 특이한 공예품을 보았다. 깨진 찻잔으로 만든 스탠드, 깨진 도자기 조각으로 만든 악세서리. 일본 전통 공예 ‘킨츠키’ 기법을 통한 업사이클 제품들이었다.
지금껏 ‘가치를 위한 소비 = 업사이클’ 이라는 선입견이 와장창 깨질만큼 특이하고 예뻤다. 나는 그것을 제작한 사람과 오랜 대화 끝에 다음날 그의 공방으로 찾아가서 이 기술을 배워보기로 했다. 집에 이가 나간, 너무 아껴서 버리지는 못하는 찻잔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음 날 몇 번의 버스를 갈아타며 찾아간 그 곳의 1층은 유행이 지나고 낡은 옷감들을 새롭게 리폼하는 소잉 공방이었고, 2층은 킨츠키 공방이었다.
킨츠키는 ‘금으로 수리한다’는 뜻으로, 깨어지거나 갈라진 도자기의 틈을 옻으로 채운 후, 금이나 은으로 장식하는 일본 전통 도자기 공예법이다. 물건을 소중하게 대하는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더 놀라웠던 건, 집집마다 킨츠키에 사용하는 금가루와 은가루의 배합 노하우가 있다라는 것.
이제는 더이상의 물건을 생산하고 버리지 않는 것 이전에 소유하고 있는 물건을 유지보수하며 오래토록 잘 사용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 때라는 생각을 했다. 제로웨이스트를 넘어 리페어문화가 확산되어야 할 때라는 것도.
3. Kamikochi,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간다는 것
일본에 머문 기간동안 가장 좋았던 순간은 일본 나가노현에 위치한 가미코치 국립공원 트레킹이다. 놀랍도록 있는 그대로 정말 잘 보존되어 있었다. 무척 아름답고 깨끗하고 또 맑았다. 문득 우리나라 지리산 산악열차 개발이슈가 떠올라서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이 곳이 운영되는 방식이 무척 인상깊어 정리해본다.
1) 4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1년 중 7개월만 개방한다. 남은 5개월은 자연 회복기간으로 완전히 통제하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호텔들과 상점들이 수익을 포기한다.
2) 관광객의 차량 출입은 통제된다. (관광버스와 택시, 그 외 허가받은 차량만 가능하다.)
3) 공원 내 화장실 사용료는 100엔으로, 자연보존 기금으로 사용된다.
4) 쓰레기통은 없으며, 개인이 만든 쓰레기는 모두 가지고 돌아간다. (캠핑 심지어 흡연도 가능했지만, 모두가 규칙을 잘 준수했는지 쓰레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자연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강력한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여행’이다. 자연을 여행할 때면 스스로 그러한 자연 안에서 느낀 감동이 계기가 되어서 생각 혹은 생활에 작게나마 변화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비로소 연결된 것이다.
엉킨 실타래를 들고 태국, 인도네시아, 일본을 떠돌며 나는 나라는 한 개인이 그리고 나투라 프로젝트라는 커뮤니티가 생명 살림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했다.
마지막 일정을 끝맺음 하고 돌아온 자리에서 확신할 수 있는 키워드 세 개가 명료하게 떠올랐다. 바로 ‘연결’과 ‘치유’ 그리고 ‘성장’ 이었다. 모든 생명에게 이 세가지 키워드가 모두 충족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것이야말로 진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무해한 돈벌이가 될 것이라는 비전과 함께.
요가를 수련하고 나누는 일과 더불어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건강한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모토로 친환경 라이프를 제안하는 웰니스 커뮤니티 를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자연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잔디에 누워 땅의 온기를 수용하며 구름을 관찰하는 일, 신선한 채소와 과일의 촉감을 느끼고 맛보는 일을 좋아합니다. 사람과 자연의 연결성을 탐구하고, 사이좋게 공존하기 위한 지속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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