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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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감에서 조금씩 벗어나 삶에 정상궤도를 찾아가는 시기였던 2015년, 나는 요가매트 하나와 작은 캐리어 하나를 들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인도네시아 발리로 훌쩍 떠났다. 실제로 당시 줄리아 로버츠 (리즈 길버트 역) 가 주연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를 보고 떠난 여행이라면 좀 웃길까?

영화 초반에서 리즈 길버트 (이하 리즈)의 삶은 그야말로 완벽하다. 안정적인 직장과 대도시의 아파트, 멋진 남편까지. 하지만 그녀는 이 삶이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그 의문은 곧 회의감으로 번졌다. 결국 리즈는 진정한 자신을 찾고자 모든 것들과 이별하고 무작정 비행기에 오른다. 진짜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는 결심을 하며 그녀는 말한다.

‘Ruin is a gift. Ruin is the road to transformation.’ 결국 나는 그 영화가 끝날 무렵, 발리행 항공권을 끊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떠난 발리여행. 아쉽게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인생 멘토를 만난다거나 평생의 인연을 만나는 로맨스는 없었지만, 나는 내 삶에 전환을 주는 여러 장면들을 만났다.

첫 번째는 그 곳에서 경험했던 자연과의 교감, 그 안에서의 온전한 요가 수련이었다. 아름다운 정글 속에서 몸과 마음이 하나로 몰입되는 수련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빌딩 안 스튜디오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자연과의 일체감. 내가 마치 우주의 먼지처럼 느껴졌다. 대단할 것도 대단해 질 필요도 없는, 그저 자연의 일부. 나무자세(Vrksasana)를 하면 내가 정말 한 그루의 울창한 나무가 된 것 같았고, 뱀자세(Bhujangasana) 를 할 때면 땅을 뚫고 올라오는 뱀의 강인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요가의 마지막 자세인 송장자세(savasana)를 고요한 마음으로 취하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언젠가 나에게 찾아올 죽음을 상상하게 됐다. 그리고 소망했다. 이렇게 편안하고 소박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두 번째는 요가매트 하나를 어깨에 들쳐메고 맨발로 길을 걷는 행복한 요기의 얼굴이다. 물론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이름이 무엇인지, 나이는 몇 살인지,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의 선한 얼굴에서 내 얼굴을 보았다. 우리는 신성한 존재였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연결되었고, 그 곳은 무척이나 안전하게 느껴졌다.

세 번째는 요가스튜디오에 진열된 길쭉하게 생긴 나무와 유리재질의 물건을 구입한 일이다. 바로 그것은 대나무와 유리로 만든 다회용 빨대였다. 지금이야 흔하디 흔한 친환경 물건이지만, 2015년 당시에는 용도와 필요를 알 수 없는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사실 당시에는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한 물건이라는 것보다 한국에는 없는 ‘레어템’이라는 생각에 덜컥 구입했다.

이후 나는 그 자연에서 하는 자유로운 요가 수련에 매료되어 한 달이 멀다하고, 요가를 하러 야자수가 가득한 더운 나라로 툭하면 떠나곤 했다. (당시엔 비행기를 타는 일이 얼마나 큰 탄소를 배출하는지 몰랐다.) 2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약 10개 도시의 50곳의 요가 스팟에서 수련을 했는데, 가만보니 어느 곳에 가도 플라스틱 사용을 지양하는 움직임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플라스틱 문제는 비단 그 나라, 관광객이 많은 특정 도시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한국에 돌아오면 여기저기 가열차게 쓰이고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눈에 자꾸만 들어왔다. ‘아, 이건 다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이건 전 세계의 문제이고, 나의 문제이구나.’ 변화해야 함을 알 수 있었다.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이제부터는 내가 가치있다고 믿는 것들을 실현해보겠다며 2018년 여름, ‘나투라 프로젝트’ 라는 커뮤니티를 덜컥 만들었다. (‘나투라 (Natura)’ 는 라틴어로 자연이라는 뜻이다.)

나투라 프로젝트의 시작은 동네 공원 내 잔디광장에서 진행되는 야외요가 클래스였다. 당시만 해도 야외에서 요가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이벤트인데다가 향후 계획도 없었으면서, 어쩌자고 퇴사를 하고 사업자 등록까지 해버렸다. 걱정되는 마음을 안고 SNS에 공지를 올렸는데 놀랍게도 사람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기 전, 약 2년동안 약 150회 가량의 야외행사를 진행하며, 전국 각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나투라 프로젝트를 찾아주었다. 나는 공원에서, 숲에서, 바다에서, 발리에서 만났던 행복한 요기의 얼굴들을 많이 만났다.

내가 중점적으로 노력한 것 중 하나는 외국에서 경험한 자연주의적 요가 문화들을 나투라 프로젝트에 녹여내는 것이었다. 야외요가, 오감명상, 사운드 힐링, 아로마 테라피, 로푸드, 비건 포트럭 파티, 친환경 마켓, 자급자족 클래스 등. 그리고 모든 행사의 기본수칙은 언제나 제로웨이스트였다. 행사에 참여하는 순간만큼이라도 의식적으로 일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것, 그게 자연의 혜택을 누리는 우리가 지킬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나는 매일을 여기저기 멋진 야외 공간을 찾아, 결이 맞는 호스트를 찾아, 함께 제안할 건강한 무언가를 찾아 여기저기서 돌아다니고 배웠다. 겨울과 우천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주말엔 오로지 나투라 프로젝트 행사만을 진행했다. 왜냐하면 어떠한 행위가 문화를 자리잡기 위해서는 가능한 규칙적으로 꾸준히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 의도가 잘 전달이 되었는지, 언젠가부터는 참여자들이 먼저 환경을 위한 행사를 진행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며 적극적으로 손길을 내밀거나 호스트를 자원하기도 했다. 함께 산을 오르고 숲을 걸으며 쓰레기를 주으며 사람들에게 썩지않는 쓰레기 문제를 알렸다. 자연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이어졌으리라, 나의 건강과 지구의 건강이 다르지 않음을,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었다.

나투라 프로젝트로 인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우리는 분명 서로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이 커뮤니티를 통해서 자연과 나의 관계를 재정립하면서 본인의 삶의 방식이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요가를 꾸준히 하게 되었고, 누군가는 채식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했으며, 또 누군가는 플라스틱 없는 삶을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부 프로젝트로 인해 유기견의 실태를 알게되어 매 달 유기견 센터에 정기후원과 봉사를 하고 있으며, 매일 오가는 길에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지나치지 못해 늘 쓰레기 봉투를 소지하고 쓰레기를 줍는 이도 있다.

전문가들이 말하길 개인이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탄소 배출을 줄이는 생활방식이라고 말한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채식을 지향하는 등의 친환경적인 생활방식을 권장한다. 그 근거로써 과학적 데이터를 분석하며 ‘빙하가 녹고 있다’,‘북극곰과 오랑우탄의 보금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기후난민들이 생겨날 것이다’, ‘인류가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라는 등 기후위기에 경각심을 일깨우기도 한다. 그리고 당연히 객관적으로 우리가 어떤 위기에 처해져 있는지 아는 것도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들을 생각조차 없는, 마음이 닫힌 이들에게 아무리 사실을 이야기 한다한들 들리겠느냐는 입장이다. 설령 그 사실을 머리로 이해한다 한들 가슴으로 와닿지 않는다면, 그 삶엔 변화와 지속이 있겠는가?

주변만 둘러봐도 아직 많은 이들은 기후위기로 인할 암담한 미래를 믿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이다. 자연보다 기계와 살아가는 것이 익숙한 도시의 현대인들에게 환경적 감수성을 기대하는 일은 어쩌면 욕심인걸까? 여전히 기업들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그린 워싱을 하기 바쁘고, 정치인들은 중장기적 대안이 될 수 없는 정책을 일단 내밀고 본다. 결국 기업은 소비자의 요구가 변화해야 바뀌고, 정치인들도 시민들의 목소리가 한 데 모아져야 변화하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감히 말해본다. 이를 테면 생태환경에 관심을 갖게되는 계기, 지구를 사랑하게 만드는 기회 – 즉 생태적 감수성을 기르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누구나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일상에 적용 가능한 환경교육, 나아가서 다른 생명들과 연결되고 연대할 수 있는 장(場)을 활성화 시키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진짜 지속가능한 삶을 시작하고 유지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이지 않을까?

나투라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5년. 이제는 요즘처럼 날씨 좋은 날이면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요가를 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앞으로 사람들의 삶의 방식도 머지않아 크게 변화하리라 믿는다. 육식을 하는 것을 당당하게 말할 수 없고, 비행기를 타는 일을 부끄러워하고, 일회용품 사용을 꺼리게 되는 날이 말이다. 그리고 그 행동이 시작되는 가장 기저의 마음은 분명 ‘사랑’과 ‘연결’일 것이다.

어쩌면 이 기후위기는 인류 최대의 Ruin일 것이다. 그리고 이 Ruin을 모두가 사랑과 연결성으로 잘 대처하면 산업화 이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선물같은 삶, 무릉도원에서 신선과 같은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발리에 가지 않더라도 이 곳에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 https://ar.pinterest.com/pin/259660734751718388/

신지혜

요가를 수련하고 나누는 일과 더불어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건강한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모토로 친환경 라이프를 제안하는 웰니스 커뮤니티 를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자연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잔디에 누워 땅의 온기를 수용하며 구름을 관찰하는 일, 신선한 채소와 과일의 촉감을 느끼고 맛보는 일을 좋아합니다. 사람과 자연의 연결성을 탐구하고, 사이좋게 공존하기 위한 지속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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