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은 백패킹 준비로 새벽부터 매우 분주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밥을 안치고 부지런히 배낭에 짐을 꾸렸다. 무게를 가볍게 하기위해 짐을 풀었다 꾸렸다를 여러차례 반복하며 최소화했다. 그 후, 끓는 물에 케일을 데치고 고슬고슬 지어진 밥에 소금과 참기름으로 양념을 해서 쌈밥을 만들고 다회용기에 담았다. 여러 개의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스테인레스 커피필터도 잊지 않았다.
‘클린 백패킹’은 나투라 프로젝트에서 작년부터 야심차게 진행한 탄소제로 여행 프로젝트이다. 작년에는 제로웨이스트 숙소에 묵으며 프로그램을 소화했다면, 올해부터는 조금 더 자연과 가까워질 요량으로 기획했다. 일정 인원을 모집해서 4월부터 한 달에 한번씩 3번을 만나 함께 산으로 바다로 백패킹을 떠나는 프로그램으로, 기본수칙은 제로웨이스트와 비건식, 그리고 건강한 액티비티 활동들을 진행한다.
이 프로젝트야말로 그동안 나투라 프로젝트에서 진행했던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통합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수칙은 ‘제로웨이스트’, ‘자연과의 교감’, 비건식사’
집을 나서기 전부터 이 수칙들을 염두에 두고 짐을 꾸리고, 1박 2일동안 먹고 자고 생활하다보면 내 삶과 습관을 한번쯤 살펴볼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여행방법 뿐 아닌 일상 생활에서의 탄소 배출을 점검하고 삶의 변화를 위한 선택권을 갖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3번의 클린백패킹을 되짚어보면 4월 첫 클린 백패킹에는 뜻이 맞는 9명의 인원과 들뜬 마음으로 만나 인천에 있는 한 해송 숲으로 떠났다.
자기 몸집보다 큰 배낭을 등에 지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한참을 걸어 바다가 보이는 작은 해송 숲에 캠프를 구축했다. 그러나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호스트인 나는 예상치 못한 문제에 직면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9명은 각자가 중요하다고 믿는 요소들에 의해 모였지만, 모두 지향점이 달랐다.
완전 채식주의자인 A는 엄격한 채식식사가 아님에 실망했고, 삶에서 극단적으로 쓰레기를 줄여나가는 B는 생각보다 많이 발생하는 쓰레기에 당황했으며, 고요함과 자연의 소리를 즐기고 싶었던 C는 타인과의 네트워킹과 중요시하는 D의 밤늦도록 꺼지지 않는 음악과 대화소리가 힘들었다.
뿐만 아니라 한 의견을 두고 대립되는 상황도 있었다. 멋진 자연환경에 머물며 화장실도 가깝고 물도 언제든 수급할 수 있는 위치에 E은 몹시나 만족했고, 완전한 자연 속 모험을 그렸던 F는 아쉬웠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여행을 목적으로 한 G는 여행의 준비과정부터 탄소를 계산하며 포장재를 줄이면 자연스레 LNT(Leave No Trace)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고, 백패킹 경력이 20년이 넘은 H는 비록 일회용품을 쓰더라도 우리가 머문 곳에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아야 함을 강조했다. 그렇기에 심지어 양치물을 다 쓴 생수병에 모아 내려와야 하며, 떠날 때엔 우리가 머문 곳은 물론 누군가 남기고 간 흔적까지 정리를 하고서야 내려왔다.
두 번째 5월 클린 백패킹의 목적지는 무의도. 이 곳에서 우리는 무언가 계속 잘못되어감을 모두가 느꼈다. 첫 번째 모임에서 가까워진 크루들은 식사량을 본인 몫에 더해 1~2인분씩 더 챙겨왔고, 날이 더워지자 맥주도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매우 풍족한 음식을 앞에 두고 우리는 아주 많은 시간을 먹고 마셨다. 너무 늦은 밤까지 대화를 나누었던 탓에 다음날 일출을 볼 수 없어 무척 아쉬웠다. 우리는 이 부분을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서로를 비난하며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 프로젝트의 목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음을 상기했다. 우리가 시도한 이 여행법이 21세기 지향할 지속가능한 여행법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먼저 모든 활동에 앞서 탄소배출을 적게해야 함을 인지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기 전 만반의 준비를 해야한다. 다회용기에 채식도시락을 준비하고, 술과 같은 기호품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했다. 자연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치약 대신 소금으로 양치를 하고, 야외 활동의 필수품처럼 여겨지던 물티슈와 티슈 대신 소창손수건을 챙겨야 한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호스트는 플라스틱 페트병을 줄이기 위해 브리타 정수기를 챙기기로 한다. 우리 모두가 지향하는 바가 조금씩 달랐음을 알아차리고, 느슨했던 마음들을 꽉 끌어안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그리하여 마지막 클린 백패킹 3회차 모임은 가평의 아무개 산. 먼저 정확한 목적지를 알릴 수 없었다. 이유는 그 곳이 알려지면 사람들이 몰려들고, 사람들이 모이면 어김없이 쓰레기 문제가 생기며 자연이 훼손된다는 이유였다. 예상했듯 1회 차에 비해 인원은 반으로 줄어들었다. 개인사도 물론 있었으나 보다 엄격해진 수칙에 마음이 흔쾌히 동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전의 백패킹보다 자연을 경험하는 시간을 조금 더 확보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을 산을 올랐다. 하지만 여느 때보다 짐이 가벼웠기에 마음도 가뿐했다. 캠프를 구축하고 각자의 도시락을 꺼낸 순간 모두가 깜짝 놀랐다. 포장재를 재활용해서 그곳에 음식을 담아온 이는 있어도 누구하나 일회용품을 쓴 사람이 없었다. 각자 요리한 비건 음식을 하나씩 소개했고, 모두 본인 몫만큼의 음식을 준비했던 터라 양도 적당했다. 술을 먹고 싶은 사람은 플라스크 병에 소량의 위스키를 담아와서 재활용 쓰레기도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화장실이 없다는 것은 음식은 물론 물을 마시는 것까지 고민하게 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반증하는 경험이기도 했다.
산을 20년 넘게 오른 K는 우리가 자연에서 지켜야 하는 에티켓부터 등산 시 취해야 하는 숨쉬기 용이한 자세도 알려주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왜 이곳에서만 자라는지도 설명해주었다. 걷다가 우리를 조용하게 한 후, 가만히 계곡 소리를 듣게 했고, 물길이 흐르는 방향을 유추하게 하고 낙차에 대해 설명하며 그 물길을 주변으로 무엇이 발달하는지도 알려주었다. 이끼를 보고 동서남북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 나무와 인사하는 방법까지도 세세히 설명해주었다. 알고나니 모든 것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이해해야 사랑할 수 있다는 제인 구달의 말이 떠올랐다.
여름이라 그런지 느즈막히 해가 졌다. 해가 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각자의 텐트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랜턴 불을 켤 새 조차 없었다. 태양이 뜨고 달이 지는 시간에 맞춰 생활했다. 다음 날 일어나 계곡물로 세수를 하고, 소금으로 양치를 했다. 침묵하고 맨발로 땅을 걷는 시간을 가졌다. 발바닥에 무언가 찔리진 않을까 불안하고 의심했던 마음들은 이내 편안해졌고, 안전하다는 믿음으로 지면과 맞닿은 발바닥의 감촉에 집중할 수 있었다. 명상과 요가를 한 후에, 함께 아침식사를 준비하며 3회차 백패킹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했다.
L : 어제 이 곳에 오면서 험한 길에서 손을 내밀어주고, 짐을 잠시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받았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 역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기뻤어요. 사실 뭐, 그런 도움이 아니더라도 서로의 존재만으로 큰 의지가 되었습니다. 혼자라면 못했을 거에요.
M : 그동안의 제 여행은 A to Z 완벽하게 계획을 짜고 내 몸만 홀연히 떠나면 되는 편리한 여행이었어요. 물론 그 계획마저 항공권과 호텔을 예약하고, 체험을 예약하는 등 누군가에게 온전히 맡기는 방식이었죠. 하지만 클린 백패킹을 준비하며 짐을 쌀 때부터 내가 짊어질 무게라고 생각하니 고심 끝에 꼭 필요한 것들만 챙기게 되고, 그간 즐기지 않았던 채식 요리도 배워보게 되었어요. 여행의 전 과정을 음미하고 누리는 시간이 오히려 번거롭기보다는 즐겁더라고요. 그리고 또 하나, 이런 공동체 안에서는 ‘배려’ 라는 것이 상대에게 무언가를 더 해주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각자의 위치에서 스스로 잘 건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나조차도 제대로 못 챙기면서 배려하다보면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N : 맞아요. 나 하나 건사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하하) 저는 이번 백패킹을 통해 다소 당황스러웠어요. 평소에 자연을 되게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처럼 직면하는 상황에 맞닥뜨리니 사실 두렵고 힘든 마음이 훨씬 앞서더라고요. 하지만 이 계기로 야생의 자연과 친숙해졌다고 믿고, 나아가 자연의 일부로써 겸손하게 생활할 수 있겠다라는 용기도 생겼어요. 일상에서 누려온 편리함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고, 클린백패킹에서 느낀 기분좋은 불편함을 일상으로 돌아가 잘 풀어내고 싶어요.
O : 생활의 불편함은 있었지만 마음이 편안한 시간이었어요.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자연은 우리에게 이해시키려 들지 않잖아요. 그러니 그 자체로 편안함이 있더라고요.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불편함을 느끼거나 실망을 할 때가 언제인지 생각해보면, 나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상황이나 상대를 만날 때 인 것 같아요. 자연 안에서 머물며 느꼈던 온전한 편안함을 기억하면서, 생활로 돌아가면 사람이든 상황이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하는 연습을 좀 하고싶어요.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싶어졌어요.
P : 산행, 백패킹. 익숙하지 않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자연활동을 하면서 참 겸손해지는 것 같아요. 어제의 고된 산행을 떠올리면 혼자는 할 수 없었던 일이었을 텐데 함께해서 가능한 것 같구요. 자신감도 차올라요!
Q : 오늘 새벽녘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눈이 떠졌는데요 어제 씻지 못해서인지 괜시리 몸도 찝찝하고 되게 불편한 마음이 올라오더라고요. 하지만 이 상황은 당연히 불편한 것이고, 내가 선택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텐트에서 나와 물소리, 새소리를 듣고 맑은 공기를 마시니 불편한 것은 금세 잊어지고 기분 좋아졌어요.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 후, 캠프를 철수한 후 쓰레기를 주으며 산을 내려왔다. 인적이 드문 산이라 그런지 쓰레기가 거의 없었다. K는 살면서 같은 산에 또 오는건 쉽지 않으니 눈과 마음에 잘 담아두라며 시간을 주었다. 나무를 손바닥으로 가만히 느껴보고, 뺨을 맞대로 두 팔로 나무를 꼭 끌어안으며 인사하는 시간도 가졌다. 거의 다 내려왔을 쯤, 처음보는 소주병을 발견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1960년대 유행하던 목포 소주였다. 약 60년을 이 산에서 머물렀을 소주병을 보며 우리는 이야기했다. 이 소주병을 산에 들고온 사람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내가 그동안 어딘가에 남겼을 나의 흔적들은 지금 어디쯤 지나고 있을까? 앞으로 부끄러운 흔적들은 남기고 싶지 않다며.
인간에게는 다른 종과는 차별되는 두가지 자원이 있다고 한다. 바로 지능과 협동정신.
그 지능과 협동이 문명과 기술을 만들어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그것의 과잉으로 지구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져있다. 하지만 분명 그 지능과 협동을 통해서 우리는 이 시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이번 클린백패킹 프로젝트를 통해서 확신했다. 우리는 기꺼이 불편함을 선택했고, 그 안에서 삶을 본질적으로 아름답게 하는 것들을 마음의 눈으로 발견했다.
그렇다. 이것이 나투라 프로젝트가 하는 일이다. 사람과 자연을 연결하는 일, 그 안에서 건강한 가치를 발견하고 생명살림의 길로 자연스레 들어서는 일. 놀랍게도 이 클린백패킹은 참여자들의 지원으로 참여비용을 받고 진행하는 일이다. ‘아니, 이 고생을 사서 한다고?’ 하겠지만, 이런 취지의 프로젝트는 매번 대기인원까지 받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이것이 나의 무해한 돈벌이이다.
나는 위와 같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한다. 자연에서의 요가와 명상을 하고, 산을 오르고 바닷가를 거닐며 쓰레기를 주으며, 개인의 건강한 삶을 위한 온라인 요가/명상 수업과 독서모임 등을 제공한다. 건강한 자아가 건강한 환경을 일궈나간다는 데에는 의심이 없다.
그리고 예상치 못했지만 그런 일을 하는 나를 지켜보던 누군가의 제안으로 하여금 2020년엔 ‘무해한 하루를 시작하는 너에게’, 2021년엔 ‘판을 짜는 사람들의 단단한 기획노트(공저)’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 후 나의 활동과 생각을 글로 풀어내고 강연을 하며 추가적인 돈벌이도 한다.
나의 모든 돈벌이의 기본수칙은 One-Health 이다. 사람과 동물 그리고 생태계의 건강은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그렇기에 그 누구도 다치지 않는 것. 많은 이에게 인간 중심의 삶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며, 그 해결책으로써 가치있는 경험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제안하는 것. 그리하여 개인의 삶이 변화하고 이내 주변으로 퍼져나가기를 고대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것이 정말로 ‘돈’이 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내 경험상 그렇다고 대답하는 수밖에. 이 일로 하여금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이 들어온 것은 내게 무엇보다 큰 자부심이자 행복이다. 내게는 그 가치 전달의 매개체가 요가와 명상, 여행이지만 나는 우리 모두 안에 그런 매개체가 있음을 안다. 누구든 탄소배출을 하지 않고도 무해한 방법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요가를 수련하고 나누는 일과 더불어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건강한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모토로 친환경 라이프를 제안하는 웰니스 커뮤니티 를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자연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잔디에 누워 땅의 온기를 수용하며 구름을 관찰하는 일, 신선한 채소와 과일의 촉감을 느끼고 맛보는 일을 좋아합니다. 사람과 자연의 연결성을 탐구하고, 사이좋게 공존하기 위한 지속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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