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은 흔히 대단히 다른 사회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대도시의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빠르게 수렴한다. 나는 2007년에 베이징을 떠났을 때와 2015년 상하이로 돌아왔을 때, 외형적으로 경천동지할 변화를 느꼈다. 불과 10년도 안되는 사이에 이렇게 많이 바뀐 것이 믿기지 않았다. 2007년의 베이징은 한국과 20년정도는 차이가 나는 것 같았는데 2015년의 상하이는 그 차이가 10년도 나지 않는 것 같았다. 외형적이라고 말했지만 이는 사람들의 생활방식도 포함한다. 예를 들어서 2007년에 내가 베이징에서 만났던 80허우 청년들과 2015년에 돌아와서 만나게 된 85허우, 90허우 청년들의 결혼관과 물질관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80허우 청년들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일찌감치 결혼을 하고 빚을 내서 베이징에 아파트를 샀는데, 85허우 이하의 청년들 중에는 서른 살이 넘은 후에도 자기 커리어를 추구하며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이들 중 상당수는 굳이 빚을 내 집을 사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1선도시의 집값이 너무 올라서 기차가 이미 떠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85년생인 내 파트너도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후 계속 혼자 지내다가 2년전에 나와 결혼했는데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였고, 특이한 경력을 가진 외국인인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직도 독신이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주위에 그와 친한, 또래의 적지않은 여성 동료 연구자들이 아직 미혼이고, 그들 모두 사회 활동이 매우 활발한 반면, 딱히 사귀는 이성이 없는 것을 봐도 그렇다.
이제 다시 7년이 지나고 나서 나는 더 많은 동시대성을 발견한다. 특히, 95허우이하 그러니까 20대 후반 이하의 청년들이 겪는 삶의 곤혹스러움이 그러하다. 물론 이런 현실의 상당 부분은 더 이상 그들에게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의 파이가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한국의 청년들이 윗세대를 원망하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이것은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글로벌한 자본이 움직이는 방식때문에 맞닥뜨리게 된 자연스러운 결과일까? 절반정도는 그러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한국과 중국이 갖는 오래되고 유사한 문화적 배경(이전 글에서 비교적 자세히 설명했다.)에 더해 현대의 역사적 경험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 국가와 지역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해야 했던 것들이다.
연초 한국이 UNCTAD에서 발표한 선진국으로 분류됐을 때, 한국 언론은 우리가 2차대전 이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유일한 국가이니 이제 그에 걸맞는 자의식이 필요하다고 설레발을 쳤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신흥선진국 담론에 달뜰 때마다, 한국을 째려보고 있을 한 불만스런 이웃을 나는 의식하게 된다. 바로 타이완이다. 타이완은 중국대륙과의 관계 때문에 국가로 인정을 못받고 있지만, 독립적인 민주주의 정치체를 갖고 있고, 남한의 절반 정도되는 인구와 면적에, 역시 비슷한 경제, 사회, 문화 수준을 갖추고 있다.
몇달 전 홍콩출신으로 타이완에 이주한 한 청년 작가의 소설을 읽고, 타이완과 홍콩의 청년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상황과 심리적 처지가 한국의 그것과 너무나 유사하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한 서평도 이미 본 지면에 기고했다(http://thetomorrow.jinbo.net/archives/15971). 특히 타이완이 한국과 공유하는 문화적, 역사적 경험과 발전 경로는 쌍둥이를 방불한다.
명청교체기부터 중화제국의 일부였지만 소위 본성인(本省人)들이 유래한 푸졘(福建)성을 포함해 중화 유교문화권 변방으로서의 위상, 일본 식민지 시절의 근대화 경험, 우파 독재정권인 국민당의 장기집권 치하에서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민주화 운동, 그리고 끝으로 리버럴한 성향의 민주파 정부(민진당)의 집권 속에 ‘선진국’대열에 합류했다는 것까지, 조목조목 따져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이에 더해서 과거 30년간 중국대륙과의 경제협력 관계 속에서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했으며, 지금은 미국의 대중포위 전략속에서 중국과의 관계가 매우 경색돼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래서, 타이완 청년들은 마치 한국 청년들이 ‘헬조선’을 절망하듯, 자기 섬을 ‘귀도(鬼島)’라고 자조한다. 이런 현실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온갖 자학적이고 위악적인 밈(meme)을 지옥밈地獄梗이라고 부른다. 홍콩도 경로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청년 세대가 겪는 경제적 어려움에 정부의 정치적 탄압이 더해져서 청년들은 현실에 대한 비관주의에 푹 빠져있다. 한국과 이 두 지역에서는 서구적 개념의 이념적 정의로는 좀체로 설명하기 힘든, 강한 지역적, 문화적 특색을 갖고 있는 진영들이 극렬한 정치적 대립을 벌이는 상황도 유사하다. 자칭 타칭 ‘보수’이지만 이념보다는 힘을 숭상하는 현실주의 지향이 강한 세력,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한 개혁과 리버럴”한 이념을 앞세우지만 민족주의 지향도 강한 세력(여기서 말하는 민족주의는 과거와 달리 상당히 복잡하고 분파적이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서구적 개념에 근접해 있을 정체성 정치 성향이 강한 좌파와 진보 등이 있다 (하지만 나는 다음 글에서 한국만큼은 특히 이들의 도덕주의 성향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사실을 설명할 것이다. 아마 이 도덕지상주의는 한국을 중화권과 다시 구분해서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다). 이들은 상대방에게 극단적 언사를 서슴지 않으며 치열하게 ‘사이버 내전’을 펼친다.
그렇다면, 대륙과 이들 세 지역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대륙의 공산당 정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의 글에서 설명했듯이 대륙의 정치지형을 만든 것은 좌우이념이 아니라, 전통사회에 기반한 거대국가가 근대화 속에서 취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경로이다. 통일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승자는 늘 하나뿐이어야 했는데, 청왕조를 뒤엎은 보수적 국민당을 보수적 공산당이 이어받았을 뿐이다. 중국 대륙의 이런 경로는 중국이 다른 세 지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선택된 것이다. 마치 거대한 물체나 생물이 큰 관성을 갖고 움직이는 것과 같다. 방향전환에 그만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나는 중화민족을 5천살 나이를 먹은 거대한 바다거북에 즐겨 비유한다. 지금도 이 거대한 바다거북은 긴 궤적의 유영을 지속하며 서서히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토끼라 불리든 호랑이라 부르든 성마른 한민족은 이걸 옆에서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구른다.
하지만, 역시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중국대륙은 단일한 프로파일을 갖는 사람들의 균질한 집합이 아니라 상이한 데모그라픽스의 집단들이 공존하는 거대한 국가이다. 그래서 전체 중국 대신 대도시 거주민들, 그 중에서도 청년들을 눈여겨보면 동시대의 한국, 타이완, 홍콩 젊은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관찰할 수 있다.
이제 그 이유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자. 나는 샹뱌오가 묘사한 80년대, 그리고 90년대와 밀레니엄 이후의 중국 사회의 변화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러한 변화는 모두 서구사회가 가져온 외부적 요소들이 동아시아 사회에 영향을 끼치면서 벌어진 일들이다. 이를테면 결국 천안문 사태의 비극으로 종결된 80년대의 문화열이 있다.
개혁개방정책이 시작된 후 대도시와 연안지역을 중심으로 갑자기 서구의 문화와 지식이 봇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모든 지적, 예술적 활동이 금기시 됐고, 통상적인 의미의 지식인과 대학생들은 대학과 도시에서 사라졌었다. 그렇게 하향(下鄉)됐던 도시의 청년(지식청년)들이 돌아와 모처럼의 자유를 만끽하기 시작했다. 금지됐던 문화, 특히 서구와 서구화된 일본사회의 문화와 지식을 “폭풍흡입”하던 과열된 분위기를 ‘문화열’이라고 일컫는다.
문화열은 당연히 부작용도 낳았는데, 단식을 마쳤을 때 미음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한참을 쉰 내장기관이 음식물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지나치게 급진적인 사고와 요구가 횡행하는 가운데 상황을 통제할 수 없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 중국 정부가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후 중국의 개혁개방기조가 경제분야로 편중되면서 중국 지식인 사회와 문화의 기형적 발전을 가져온 것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샹뱌오는 심지어 이 부정적 유산이 일국양제를 시작한 홍콩과 대륙의 관계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내가 주목한 것은 바로 80년대의 문화열을 이끈 청년 엘리트들이다. 샹뱌오는 이들을 지식청년세대로 호명하면서 별도의 글을 썼는데 나는 이 글도 번역해 놓았다(http://thetomorrow.jinbo.net/archives/13714). 묘하게도 이들은 한국의 86세대 엘리트들 혹은 범386으로도 불리는 민주화 세대와 많은 점에서 통하는 것 같다. 이들은 연령으로는 한국의 86세대보다 연상이다. 청소년시기에 문혁이 시작되고 하향한 탓에 대학진학이 10년 가까이 늦춰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격동의 80년대를 대학가와 지식인 사회 내부에서 보냈다는 동시대성이 있다.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이들이 외래의 지식을 흡수하고, 소화시키는 방식이 그러하다. 샹뱌오는 왕후이의 표현을 빌어, 이 당시의 지식인들이 “폼만 잡았다(자태화姿態化)”고 이야기하는데, 자신들이 받아들인 지식을 내재화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전반적으로는 서구와 일본문화를 무분별하게 모방하면서 잘난 체하는 문화강(文化腔) 현상이 나타나기도했다. 어떨 때는 이론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도 있고, 완전히 곡해한 경우도 있다. 맥락에 상관없이 교조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떠벌리기 위해 단장취의한 것이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서구사회의 이론을 동아시아 사회에 이식하여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어쨌든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90년대부터 한국에서는 이러한 풍조에 대한 반성이 없지 않았으나 아직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고 있지는 않다. 비서구사회 지식인들의 숙명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한국사회에서 86세대 이후 청년지식인들의 서구 이론에 대한 이해가 훨씬 깊어지고 정확해진 것은 사실이다. 학술연구는 지속적으로 규범화됐고, 글로벌라이제이션 덕에 유학을 통해서 현지에서 이를 익히든, 아니면 인터넷을 통해 외국어로 된 정보를 직접 수용하든, 소스에 접근할 기회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둘째, 정치적 풍운아이자 혁명의 자식이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다. 한국의 86세대는 대학 재학중에 학생운동에 가담하거나 노동운동에 참여하면서 치열한 현실참여 의지를 불태웠다. 투옥된 경험을 포함해서 현장과 캠퍼스 사이를 오가다가 늦게 대학을 졸업한 이들이 많다. 중국의 지식청년세대는 시대적 상황과 타의에 의한 것이었지만 청소년기를 농촌과 산업현장에서 보내야 했다. 그래서 서로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는 엘리트의식과 민중주의적 관점을 자연스럽게 한 몸에 지니게 됐다. 다른 한편 이들은 꼼꼼한 학술적 논증보다는 단시간에 핵심을 짚어 상대를 설득하는 화법에 매우 능하다. 또 그들의 이러한 언어는 역사와 사회를 통으로 이해하면서 커다른 문제에 대한 답을 주고 싶어할 뿐, 일상생활의 권력관계가 만드는 모순을 세심하게 따지는 것에는 관심이 적다. 한국의 경우 정체성 정치 지향이 강한 2030세대와 페미니스트, 진보좌파 운동 세력들이 이들과 쉽게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세번째, 이들 대부분은 90년대와 2천년대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중산층으로 편입됐고 그중 일부는 양국의 정치영역과 지식인 사회내에서 최고위층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좋든 싫든 권력자가 된 것이다.
나는 86세대를 포함한 한국의 민주화세력에 속하는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중국에 대해 느끼던 친밀함의 원인중 하나가 각자의 사회에서 격랑의 시기를 보낸 것과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 ‘혁명의 자식’이라는 표현이 막연한 동지애를 불어 일으킬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상상이 가고 남음이 있다. 예전에 중국 지청시대 학자 원톄쥔이 방한했을 때, 경향신문이 기획한 유시민작가와의 대담 지면이 있었다(https://v.daum.net/v/20131020234705077). 유시민 작가는 한동안 이 대담을 근거로 자신의 중국정치에 대한 이해를 피력했는데, 유시민 작가의 화법은 샹뱌오가 묘사하는 중국의 지청 지식인을 떠올리게 하는 점이 많다. 이 대담지면과 유시민 작가의 후속반응에서 풍겨 나오는 강한 공감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86세대 특히 한국 민주당 계열의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은 후배인 X세대를 비롯해 조카나 자식 세대인 MZ세대에게 애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중에서도 이들을 적대시하는 이들은 86세대가 가진 지식의 부정확함을 비웃거나 이들의 선동적인 정치적 언사를 조롱하는 일이 많은데, 바로 위에 열거한 세가지 배경 때문일 것이다. 물론 중국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자유주의 성향의 지식인들은 사회적 발언권이 매우 약해졌고, 그 반대로 정부 관료가 되거나 관방지식인이 된 사람들은 공개적으로는 비판받지 않는 절대적 권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동아시아 담론 등을 통해 한국 사회에 잘 알려진 중국의 대표적인 공공지식인들은 그 중간에 모호한 입장을 취하며 서있는데, 매우 곤혹스러운 처지가 절절하게 느껴진다. 물론 이미 70대를 전후한 연령이기 때문에 학계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칠 시기가 지난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특히 ‘정확한 지식’을 어떻게 주체적으로 다룰 것인가에 대해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우리와 역사적, 사회적 맥락이 달랐던 서구의 지식을 수용해서 이를 내재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전혀 아니다. 물론 맥락과 함께 해당 지식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그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우리는 어쨌든 과거에 비하자면 니체의 전통을 좇은 푸코처럼 지식의 계보를 따지는 것에도 익숙하고, 탈근대 혹은 탈식민지적 사고를 통해 유럽중심주의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이렇게 끝도 없이 포개지며 쌓여진 담론의 무게와 대가의 권위로부터 우리 자신은 얼마나 자유로울까? 샹뱌오는 역설적으로 똑똑한 지청세대 엘리트들이 ‘체리피킹(Cherry picking)’하듯이 자신의 요구에 맞는 서구의 지식들을 골라서 도구로 잘 활용했다고 이야기한다. 어떨 때는 설사 본래 의미와 다르게 오용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 통찰들은 마치 손가락으로 혈을 짚어서 상대를 순식간에 꼼짝못하게 하는 무림고수를 연상하게 한다. 어차피 그 맥락을 다 살펴서 우리의 현실에 맞게 제대로 이론화할만한 여유가 없었다면 이런 방법이야말로 주체적인 것이 아닐까? 한국의 지식인들은 세대를 막론하고 대가의 이론들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인 채 우리의 현실을 그들의 텍스트에 우겨 넣기 위해 헛된 노력을 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을까? 물론 샹뱌오는 지청세대 지식인들의 이러한 능력을 칭찬하면서도, 그걸 다시 이론화 해내지 못한 한계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다음 세대의 지식인들에게 이것이 과제로 주어졌다는 점을 인정한다.
90년대 후반과 2천년대의 기시감은 국내외적 경제상황과 관계가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IMF금융위기 당시 중국 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은 이유는 중국 국유기업 특유의 고용관행에 기인한다. 실제로는 정리해고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도, 일종의 대기발령 상태로 파악돼 실업률 통계에는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수천만명이 이런 상태에 놓였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자본주의 체제의 국가라면 폭동이 일어났을 법한 상황이다. 어쨌든 당시 많은 국유기업이 도산하고, 공장이 문을 닫는 가운데,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특히 대형 국유 중공업 기업이 많았던 둥베이 지역은 치명적인 내상을 입고, 아직도 그 상처가 아물지 못하고 있다. 이 지역을 포함해서 많은 내륙지역의 노동자들이 연안지역의 대도시로 몰려들었다. 주로 농민공으로만 인식되는 기층 노동자들 중에는 그래서 농민출신뿐 아니라 이런 국영기업출신의 해고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주인공의 심리묘사와 더불어 대단히 세밀하게 혹은 몽환적인 우화의 형식을 빌어 묘사한 문학작품들이 존재한다. 소위 둥베이 문학으로 불리는 서사와 스타일을 대표하는 일군의 작가들이 있다. 이를테면 솽쉐타오(雙雪濤)라는 소설가는 최근 가장 각광받는 작가중 한명이다. 그의 작품에 대한 서평을 이 지면에 기고한 바 있다 (http://thetomorrow.jinbo.net/archives/14257). 조금 더 세밀한 민족지적 기록을 보고 싶다면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조문영의 ‘빈곤의 과정’(http://geulhangari.com/archives/11729)을 권유한다. 이 책에 소개된 둥베이지역의 이야기는 그의 박사과정연구 기록인데, 이 논문은 영문 서적으로도 출판되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조문영도 이 책으로 샹뱌오가 박사학위 논문을 출판하여 수상한 앤서니 리즈상을 받았다.
당시 중국은 한국보다 국가가 제도로 보장하는 사회적 안전망은 더욱 취약했으나 한편으로는 향촌의 최소생계 기반과 친족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사회적 안전망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과 같은 수준의 사회구조와 의식의 격렬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당시에 청소년기를 보낸 중국의 80허우들도 시장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경쟁력자본을 갖춰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또, 빚을 내서 도시에 집을 사두는 것이 가장 안전한 자산증식과 노후보장수단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중국의 민간사회와 시장이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게 글로벌 경제에 편입되고 자본주의에 적응할 수 있었던 배경중의 하나는 이러한 트라우마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또다른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문화열과 천안문 사태의 후유증이다. 그 시대와 사건들이 제대로 분석되고 숙고되지 못한 탓에, 혹은 이를 서둘러 봉합하기 위해 경제제일주의가 장려되고 만연했다. 이런 풍조는 홍콩반환 이후에 중국 정부가 홍콩의 좌파 대신 경제엘리트들을 통치 파트너로 삼은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샹뱌오는 분석한다(http://platformc.kr/2019/09/movement-and-political-parties/). 그 결과, 홍콩의 시민 사회가 홍콩 정부와 극렬히 대립하게 되는 과정을 거쳐 지금과 같은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
한국과 중국은 92년 수교 이후 한국기업의 중국투자가 시작되면서 2016년의 한한령이나 최근 미중갈등속의 디커플링이 진행되기 직전까지 글로벌 경제체제라는 거대한 태반위에서 마치 서로 몸통이 연결된 샴쌍둥이처럼 윈윈관계를 이루며 성장해왔다. 하지만 두나라 모두 전체 사회의 부가 커지는 것과 동시에 경제적 양극화를 겪고 있었다. 경제 발전과 산업화 단계는 차이를 보이고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성장통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80년대의 문화열 경험이 양국 엘리트들이 겪은 변화의 공통점을 이야기한 것이라면 2천년대를 전후한 경제사회구조의 격변은 경쟁에서 탈락하거나 간신히 살아 남은 보통사람들의 삶과 관계가 깊다. 한국과 중국처럼 크기나 정치제도의 차이 때문에 겉으로는 매우 달라보이는 두 사회가 거의 동일한 시기에 상당히 유사하면서도 거대한 시대적 변곡점을 지나왔다는 사실은 그 결과도 비슷한 양상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유추하게 한다. 그리고 이 변화들은 양국이 서구의 지식체계, 민주주의 이념과 문화를 수용하거나 서구사회가 주도하는 경제산업구조와 결합되는 과정에서 겪은 것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앞서 언급한 타이완과 홍콩의 사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나는 동아시아라는 지역을 이야기할 때조차도, 일본보다는 중화권의 국가와 지역들이 한국과 매우 비슷한 사회경제 문제들을 노정하는 것이 당연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대륙에서도 특히 경제가 발전한 1선도시들과 연안지역은 싱크로율이 더 높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이를테면 게임과 같이 동시대의 대중문화와 기술환경 속에 푹 잠긴 채 성장해온 2030세대가, 이 문제들을 대하는 감수성과 반응은 더욱 그러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번역한 <방법으로서의 자기> 2부에는 특히 청년 세대의 다양한 문제, 그리고 기술사회와의 관계를 논하는 글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책을 번역하면서 중국어판의 내용인 1부에 더해서 2부를 기획한 것은 이러한 한중 양국사회의 동시대적 문제를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和&同 青春草堂대표. 부지런히 쏘다니며 주로 다른 언어, 문화,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을 짝지어주는 중매쟁이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 아저씨. 중국 광저우의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오래된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함께 공부, 노동, 놀이를 통해서 어울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한다. 여생의 모토는 “시시한일을 즐겁게 오래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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