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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중국인들도 ‘팬데믹 집콕 무료함’ 바이러스를 견디기 위한 백신으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선택했다. 가장 높은 평점을 받고 화제가 됐던 두 작품은 미스터리 드라마 <은밀한 구석(隱秘的角落)>과 <침묵의 진상(沈默的相)>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원작은 모두 중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로 불리는 쯔친천의 작품이었다. 그의 ‘추리의 왕’ 시리즈 삼부작 <증거없는 (物證之罪), 2013>, <배드키즈(壞孩子Bad kids, 2014>, <롱나이트(長夜難明The long night, 2017>중 후자의 두 장편소설이고, 첫 작품도 이미 2017년에 드라마로 개작돼 성공했다. 중국의 넷플릭스로 불리는 ‘아이치이(愛奇藝)’는 이때 그의 나머지 소설판권도 사들여 드라마를 준비해왔다. 이들은 감수성이 남다른 MZ세대의 젊은 제작진을 대거 기용하고 과감하게 투자해 30회 이상으로만 수익이 보장되는 기존의 중국작품들과 달리 매회 45분 10여회차로 만드는 영미드라마 제작모델을 따랐다. 덕분에 군더더기 없는 빠른 전개와 높은 작품성을 확보해 경쟁사인 알리바바 계열사 여우쿠(優酷)와 위챗으로 유명한 텅쉰계열사 텅쉰비디오(騰訊視頻)를 따돌릴 수 있었다. 중국에서도 이들 OTT가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후난방송(湖南衛視)같은 기존의 인기위성TV 등을 제압하게 된 배경중 하나이기도 하다(과거의 인기프로그램을 다수 확보하고 있는 후난방송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芒果TV를 설립해서 OTT 4강 대열에 합류했다). 이제 웰메이드 드라마 제작이 가능하니 한류가 돌아와도 무섭지 않다고 큰소리치기도 한다.

쯔친전은 사회파 추리소설가로 분류되는데, 민감한 소재를 과감히 다루고 있을뿐 아니라, 묘사하는 범죄의 양태는 사실적이고, 겉으로는 보수적인 중국사회의 윤리적 통념을 월등히 뛰어넘는다. 결손가정과 청소년범죄가 주제인 <배드키즈>의 전교1등 주인공 중학생은 후반으로 갈수록 냉혹한 살인마로 변신하고, <롱나이트>에서 빈곤농촌지역 아동성애 성상납을 매개로 부패한 고위관리와 결탁한 지역재벌은 공권력을 수족처럼 부리며 진상을 파헤치려는 주인공들을 모해하거나 협박한다. 두 작품의 드라마판은 소설에 비해 많이 수위가 낮아진 공통점이 있지만 각기 다른 이유로 호평을 받았다. 거의 다시 쓰여진 <은밀한 구석>은 선악구분이 명확한 원작과 달리 다양한 방식의 심리묘사를 통해 인물들이 보다 입체적으로 연기되고, 음악, 촬영, 미술 등 종합적 예술성이 높아졌다. 비극적이고 냉혹한 결말 등이 검열을 통과할 수 없다고 판단돼, 교육과 가정 및 청소년의 성장으로 초점이 옮겨졌고, 심지어 엔딩은 권선징악이 포함된 이중의 환상으로 암시될 뿐이다. 유교문화의 금기어인 시부()가 악인에게 살해된 아버지에 대한 복수의 서사로 뒤바뀌는 것도 익숙한 트릭이다. 중국에선 검열을 통과하기 위한 불합리한 결말전개를 이유로 후반부는 내 작품이 아니다라는 식의 변명이 일반적인데, 이런 상상력 넘치는 열린 결론은 책임감있는 천재적 개작으로 평가한다. 실제로 많은 시청자들이 인터넷상에서 결론을 다양하게 해석하는데 참여하는 집단적 토론이나 게임과 같은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뜻하지 않은 부수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외부인에게는 중국 검열제도가 만들어낸 구조적 한계로 인식되기에 나는 차라리 한국판 넷플릭스 리메이크버젼으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을 상상하게 된다. <침묵의 진상>은 형식은 고전적이지만 정부와 공산당고위층에 존재하는 부패세력에 관한 소재를 드라마화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책이 출간된 2017년엔 <인민의 이름人民的名義>이라는 프로파간다성 반부패 소설과 드라마도 나왔고, 촬영배경이 원작과 달리 충칭으로 정해진 것이 암시하듯 아마도 시진핑의 정적이었던 보시라이나 저우융캉의 사례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사진1) 드라마 <은밀한 구석> 원작에 묘사된 인간의 악마성은 순화된 형태로 표현됐지만, 종합적인 예술성이 돋보여, 중국 드라마 제작 수준을 한단계 올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인민의 이름>이 중앙권력의 최고위층 부패조차 해결하는 낙관적 자정능력을 선보이며 중국 대중의 시진핑 정권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것과 달리, <롱나이트>는 ‘고구마결론’으로 독자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진상은 (다수의) 침묵”으로 귀결된다거나 “밤이 너무 길어 아침이 밝아 오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라는 드라마와 소설의 제목이 현실을 더 잘 반영한다. 쯔진천은 본인이 돈을 밝히고 문학성에는 관심이 없는 상업적 장르 소설가에 불과하다고 자평한다. 실제로 그는 대학재학시절부터 증권투자에 손을 대기 시작했지만 좀처럼 손해는 보지 않는 스마트 개미여서 그의 이런 재능이 무명작가 시절을 견디는 데 힘이 되기도 했다. 시장경제의 발전, 중산층의 등장과 함께 추리소설 시장의 성장에 기대를 건 예상이 적중해 유명 작가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마이너 장르이기에 사회적 금기가 되는 소재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었다. 농촌과 도시의 이원화 구조가 초래한 갈등, 급속한 경제발전에 수반된 가정에서 국가에 이르는 사회전체의 도덕과 윤리의 붕괴, 교육과 부동산 문제 등 중국 사회가 90년대 이후 직면하고 있는 각종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적나라한 그의 묘사는 냉정한 시선 덕분에 르포르따쥬 이상의 진실성을 갖는다. 하지만, 드라마의 큰 성공으로 유명세를 탄 것이 앞으로 그의 작품세계에는 오히려 독이 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빈부격차와 사회계급 고착화”라는 중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를 다룬 그의 차기작은 올초에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여전히 출간이 지연되고 있다.    

쯔진천은 그의 대다수 작품에서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물증이나 증언 없이, 정황만으로 혐의자를 추정하고 불법적이고 비인권적인 방법을 동원해 강제자백을 받아내는 중국의 관행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문제를 지적한다. 중국은 과거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나온 후 나중에 진범이 밝혀졌다거나 자신의 결백을 ‘남방주말’과 같은 심층취재 언론을 통해서 호소하는 사례들이 지금도 적지 않은데, 2013년, 2014년을 전후해 관련한 검찰법, 형사소송법에 대한 사법개혁이 이뤄진 것도, 그의 이런 주제의식의 배경이 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소설속에서 자주 다뤄지는 CCTV, 지문, DNA와 같이 과학수사의 결정적인 단서가 되거나 오히려 극을 반전시키는 실마리로 작용하는 다양한 신원 확인 수단들에 대한 주목이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염려도 있다. 그의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주로 90년대 후반부터 2015년 이전까지인데, 나라가 크고 사람이 많은 중국은 당연히 이런 개인 신상 관련 자원들의 인프라나 데이터베이스 등이 부족했고, 과거의 이런 열악한 상황이 그의 소설전개의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특히 <증거없는 죄>에서는 플롯 구성의 가장 결정적인 요소이다. 역설적으로 지난 5~6년간 빅데이터, 안면인식기술, AI 등의 첨단IT과학기술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지금은 반전의 상황을 맞고 있고, 그래서 범인 검거에 수월성을 보이고 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된다. 즉, 그의 소설을 접한 독자들은 사법절차의 정당성에 대한 인권 감수성을 키우는 동시에, 기술감시사회를 구축하는 공권력에 자신의 신상정보를 쉽게 내주는 인권 감수성의 후퇴를 동시에 경험하게 될 수도 있는 딜레머를 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세계는 중국 사회발전의 특수성을 잘 드러내는 매우 재미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사진2) 드라마 <침묵의 진상> 당국가 권력의 비리를 묘사하면서 권선징악적 결말로 끝맺지 않은 것은 예외적이라고 평가받는다.  

<롱나이트>에서 기소권과 수사권 분리모델이 생생히 묘사된 중국의 검경관계나, 거악에 맞서기 위한 정의 실현의 수단으로 시민여론과 언론대신, 고도로 위계화된 체제 안의 절차만이 유일한 채널이라는 중국적 상황이 만들어 내는 플롯이 흥미롭다. 주인공인 열혈청년검사는 이를 위해 전도유망한 커리어, 애인, 가족, 청춘 끝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바보’인데, 쯔진천은 이를 자신의 가치관인 맹자의 ‘적자지심(赤子之心)’이라 고백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시민 작가가 故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단심(丹心)을 가진 사람이었다”라고 평한 것과 같은 뜻이다.

사족: 드라마 <은밀한 구석>은 락커출신의 신예 감독이 찍은 첫 장편극답게 적절한 배경음악의 사용도 시청자와 음악애호가들의 주의를 끌었다. 이중에서도 중국에는 샤오바이촨(小白船)으로 알려진 한국 동요 ‘반달’이 중요하게 쓰이는데, 매번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이 음악이 연주되어 죽음을 예고하며 소름을 돋게 한다. 실제로 윤극영은 제부의 뜻하지 않은 죽음에 가슴 아파하는 누이를 위해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하니, 원래 진혼의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을 중국인 연출가들이 어떤 연유로든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곡은 한국의 국민동요이지만 5~60년대에 중국에 전해져, 중국 국민 누구나 알고 있는 ‘인민동요’이기도 하다.  

경향신문에 서평이 나가기 전까지 몰랐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본문에 소개한 삼부작을 포함해 그의 대표작 대부분이 이미 한국어로 번역돼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SF소설 <삼체>도 일찌감치 한역판이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중국의 장르물들중 수작은 중국산 콘텐츠에 대한 선호가 적은 한국에서도 오히려 많이 소개가 되고 있는듯하다.

https://www.aladin.co.kr/author/wauthor_overview.aspx?AuthorSearch=@6446266

드라마의 경우에도 <은밀한 구석>은 채널A에서 올해 방영이 됐고, <침묵의 진상>도 역시 올해 중화TV에서 방영이 됐다. <롱나이트> 즉 <침묵의 진상>은 JTBC에서 현재 리메이크중이고 하반기에 방영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중국사회의 특수성이 반전을 포함한 플롯의 큰 축인 ‘침묵의 진상’보다는, ‘은밀한 구석’이 한국에서 리메이크될 때 훨씬 빛을 발할 것 같은데, 아쉬운 점이 있다.  

 

*본 서평의 축약본이 경향신문에 게재됐습니다. 경향신문의 동의를 얻어 full text를 다른백년에 전재합니다. 

https://m.khan.co.kr/culture/book/article/202108201431001

 

김유익

김유익

和&同 青春草堂대표. 부지런히 쏘다니며 주로 다른 언어, 문화,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을 짝지어주는 중매쟁이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 아저씨. 중국 광저우의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오래된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함께 공부, 노동, 놀이를 통해서 어울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한다. 여생의 모토는 “시시한일을 즐겁게 오래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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