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3.0 시대가 도래한다고 난리다. 웹 2.0은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한국에서는 네이버) 등 소수 빅테크 기업이 데이터를 독점하는 체제였다. 네트워크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중앙화되었다. 1991년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WWW)이 공개된 후 인간 사회의 조직 방식은 숲을 닮아갔다. 나무를 비롯한 숲의 식물은 지하 균근망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이라고도 부른다. 식물은 균사체를 통해 서로 양분을 주고받는다. 생존의 문제를 경쟁이 아닌 호혜로 푼다. 인터넷 혁명은 인간이 동물의 개별성을 초월하여 식물, 균과 같은 네트워크로 진화하는 과정이다. 무수한 개인을 하나로 묶어 거대한 생태계를 구축한다. 진정한 네트워크는 중심이 없다. 머리가 없고 심장이 없다. ‘중앙’ 정부도, 데이터 ‘센터’도 필요 없다. 웹 2.0은 그래서 미완의 그물망이다. 탈중앙화된 월드 와이드 웹을 구축해야 인터넷 혁명은 완성된다. 웹 3.0의 성패는 인간 사회가 얼마나 균사체 네트워크를 닮느냐에 달렸다.
정치체(body politic)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토마스 홉스는 <리바이어던(1651)>에서 사회를 사람의 몸에 비유했다. 국가도 개인처럼 머리(우두머리)가 있고, 심장(중심)이 있고, 몸통과 팔다리가 있어야 했다. 홉스는 머리로서 왕의 역할을 강조했고, 전제군주정을 신봉했다. 20세기 초, 칼 슈미트는 홉스를 계승하여 전체주의를 정당화했다. 사회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했다. 문제는 어떤 생명체를 본딸 것인가? 홉스부터 슈미트까지, 근대 정치 철학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동물적인 상상력에 갇혀 있었다. 인간 사회는 당연히 인간을 닮아야 했다. 기껏해야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서 벌이나 개미를 참조했다. 여왕벌과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한 초개체처럼 인간 사회도 하나의 초개체를 이루는 것이 전체주의다. 개체가 전체를 위해 작동한다.
탈근대, 탈인간 시대 우리는 새로운 몸을 갈구한다. 균사체 네트워크를 닮은 정치체는 전체주의가 아니다. 돌봄과 공유의 호혜망이다. 균류는 두뇌가 없지만 탁월한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균사체를 관찰해보자. 양분을 찾기 위해 주변을 탐색한다. 동물은 정해진 몸을 가지고 움직여야 하지만, 균은 사방 팔방 십방으로 동시에 확장할 수 있다. 그러다가 양분을 찾으면, 그쪽 방향의 연결을 강화한다. 비교적 수확이 적은 쪽의 연결은 철수한다. 자연 선택의 법칙과 같다. 이런 식으로 균사체는 몸을 움직일 수도 있다. 눈도 없고 다리도 없지만 땅속을 헤쳐 나간다. 균은 탈중앙화된 생명체다. 중앙 통제 없이도 전체가 협동한다. 두뇌와 심장을 마음의 자리로 여기는 인간에게는 지극히 신비한 현상이다. 균류, 그러니까 버섯, 효모, 곰팡이에게도 일종의 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균사체는 일부만 떼어내도 전체를 재생할 수 있다. 개별성이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균사체는 영생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실제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체와 가장 큰 생명체 모두 균이다. 동식물에 비해 훨씬 생명력이 강하다.
기후생태위기의 시대, 인류는 균류의 지혜가 필요하다. 대멸종이 인류에게는 처음이지만 균류에게는 여섯번째다. 매번 잘 살아남았다. 균은 동식물의 조상이자 오랜 협력자다. 그들의 생존 방식을 본받아야 한다. 경쟁이 아닌 공생이다. 예를 들어 균사체가 자원을 분배하는 법을 살펴보자. 숲의 지하에서 균근망은 식물의 뿌리와 활발하게 양분을 거래한다. 인산을 주고 탄소를 받는다. 인산이 풍부한 곳에서는 같은 양에 대해 적은 탄소를 받고, 희귀한 곳에서는 많이 받는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된다. 균사체 네트워크는 미소관을 통해 인산을 풍부한 곳에서 희귀한 곳으로 운송한다. 숲 전체의 자원을 평등하게 분배한다. 식물과 균 모두 이러한 거래망에 접속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우리는 우드 와이드 웹에서 시장의 성화를 점칠 수 있다. 월드 와이드 웹이 균사체와 같은 호혜망으로 작동할 때, 지구촌은 하나의 살림 공동체가 된다. 자원의 효율적인 분배가 이뤄진다.
불평등의 원인은 시장이 아니다. 자본의 사유화와 중앙 독점이 문제다. 식물과 균 사이에서도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책정된다. 일종의 ‘시장’이 형성된다. 하지만 균사체 네트워크는 일부가 양분을 축적하거나 독점하지 않는다. 버섯 하나가 다른 버섯보다 수백 수천 배 많은 양분을 쌓아놓을 수 없다. 상위 1%가 전체 양분의 50% 가까이 갖고 있지도 않다. 네트워크를 통해 양분이 과잉된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옮겨간다. 철저히 탈중앙화된 생명체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운영되지만 개체 간, 부분 간의 불평등이 없다. 21세기의 정치체는 균사체를 닮아야 한다. 탈중앙화된 거래망을 통해 돌봄과 공유의 경제를 이뤄야 한다. 그래야 기후생태위기를 살아낼 수 있다.
웹 3.0은 탈중앙화된 인터넷을 약속한다. 오늘날의 자본은 데이터다. 우드 와이드 웹이 양분을 주고 받는다면, 월드 와이드 웹은 데이터를 주고 받는다. 블록체인 생태계는 데이터 ‘센터’에 의존하지 않는다. 수많은 컴퓨터가 노드, 즉 마디가 되어 데이터의 분기점 역할을 한다. 물론 웹 3.0이 얼마나 탈중앙적일지 의문이다. 현재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같은 암호 화폐는 작업 증명 방식(Proof-of-Work)을 채택한다. 채굴 작업에 기여한 정도를 증명해 공동체에서 신뢰를 보장받는다. 채굴량이 클수록 점유율도 커진다. 이는 중앙화된 권력을 낳을 뿐 아니라 에너지 소비도 막대하다. 암호 화폐 채굴에만 노르웨이 전체보다 많은 전력이 쓰인다. 그래서 이더리움은 지분 증명 방식(Proof-of-Stake)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훨씬 친환경적일 뿐 아니라, 중앙화될 위험도 적다. 아직 월드 와이드 웹이 우드 와이드 웹처럼 완전히 탈중앙화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인류 사회의 조직 방식이 네트워크를 닮아가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의 영혼은 이미 스마트폰을 통해 하나의 그물을 이루고 있다. 곧 뉴럴링크와 같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로 직접 연결될 것이다. 빅 데이터와 집단 지성은 인류 의식의 통합을 뜻한다. 구글 트렌드만 봐도 80억 인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략 알 수 있다. 월드 와이드 웹은 개별 인간 지능과 인공 지능의 총합을 초월하는 지구적 지능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데이터를 소수 기업과 국가가 통제하는 것이다. 빅 데이터를 중앙이 독점하면 빅 브라더가 된다. 인터넷의 데이터가 균사체 네트워크의 양분처럼 흐를 때, 인류는 숲의 생명력을 갖는다. 약육강식과 무한경쟁으로 점철된 동물의 왕국을 벗어나, 식물과 균과 같은 공생, 공존, 공경의 공동체를 이룬다. 그러면 인간은 에고를 넘어 에코로 존재한다. 하나의 님, 한 우리로 통일된다. 어쩌면 개체인 동시에 전체로서 영생을 누릴지도 모른다. 마인드 업로딩이 가능해지면 ‘식물 인간’이라는 말이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웹 3.0 시대, ‘버섯 인간’으로서의 트랜스휴먼이 온다.
사진 출처 : https://ar.pinterest.com/pin/525091637816464900/
전범선 / 글 쓰고 노래하는 사람. 1991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밴드 ‘양반들’ 보컬이다.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포르체, 2021)와 '해방촌의 채식주의자'(한겨레출판, 2020)를 썼다. '왜 비건인가?'(피터 싱어 지음, 두루미, 2021), '비건 세상 만들기'(토바이어스 리나르트 지음, 두루미, 2020) 등을 번역했다.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의 자문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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