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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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각 잡고 명상을 시도했던 건 약 8년 전. 친구가 다니던 요가원은 회원이 지인을 동반하면 1회 무료 체험이 가능했다. 당시 가난했던 나는 공짜에 솔깃해 요가원으로 향했다. 요가원에 처음 발을 들였다. 수업은 약 한 시간가량 진행되었는데, 태양 예배 자세(수르야 나마스카, Sun Salutation)로 시작해, 다양한 아사나들을 흐르며 움직였다. 당최 모든 동작이 처음이었으며, 어디에 힘을 싣고 팔과 다리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몰라서 옆 사람을 보고 따라 하기 급급했다. 어영부영 움직이니 몸이 따뜻하게 데워지고 근육이 이완되어 몸이 부드러워졌다. 매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고요함이 작은 공간을 에워쌌다. 가만히 앉아있는 게 왜 이렇게 힘든지, 적막이 어색하다 못해 정신이 산만해졌다. 눈을 감았다, 실눈을 떴다, 뒤척거리는 나의 ‘처음’을 눈치챈 선생님께서 “자세가 불편하면 엉덩이를 들썩들썩 움직여 편한 자세를 찾고, 숨을 들이쉬며 몸 안에 공기가 찼다가 내쉬며 빠짐을 반복해서 느껴보라”고 하셨다. 그러다 생각이 다른 곳으로 새면 억지로 돌아오려 하지 않고, 그저 지금이 아닌 생각이 떠오르는 모습을 바라보기. 

주문을 읊듯 이끄는 선생님의 지도와 동떨어진 나는 ‘어떻게’ 명상을 해야 할 지 몰랐다. 우선 매트 위에 뻣뻣하게 겹쳐진 두 다리를 지지대처럼 깔고 앉았다. 두 눈을 살며시 감고, 호흡을 시작했다.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작동하는 호흡이 아닌, 내가 주체적으로 이끄는 호흡. 한참 동안 마시고, 내쉬었다. 낙지초 의식적으로 몸을 관찰했다. 불편함이 어느새 적응되었다. 숨에 형상이 생겨, 살아있는 덩어리가 나의 신체 곳곳을 훑고 나가기 시작했다. 크게 한숨 들이시며 코를 통해 양손과 발끝까지 숨이 가닿고는, 호흡을 전부 빼내면 피와 살만 존재하는 마른 신체가 남았다. 호흡은 곧 나의 깨어있는 정신이자 몸의 주체가 되었다. 그 궤도를 좇으니 구석구석 감각이 깨어났다. 평생 숨을 쉬며 살아온 나는, 숨을 쉬며 처음으로 태어났다.

얼마간 호흡을 바라보다 보니, 몸이 허공에 떠있는 듯 가벼워졌다. 동시에 오만가지 잡생각이 계속 찾아왔다. 명상을 20분 했다면 17분은 잡생각을 맴돌다, 겨우 나머지 3분만이 호흡에 쓰였다. 숨을 쉬는 일조차 미숙하다. 명상을 할 때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일까? 목석처럼 가만히 앉아있는 것? 호흡을 의식하는 것? 새어나고 빗나가는 생각을 붙잡는 것? 나는 눈을 감고 있는 일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지, 다른 사람은 무얼 하고 있는지, 오만가지 불안이 앞서 주변을 둘러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하지만 눈을 뜨는 순간, 호흡을 통해 쌓은 일련의 긴장감이 무너진다. 참지 못하고 눈을 떠서 보이는 풍경은 예상 안이다. 사람들은 나처럼 겨우 앉아서 저마다 고군분투 중이다. 눈을 뜬 보람이 별로 없다. 이제 다시 호흡으로 돌아가자.

수업을 마무리하며, 에너지 볼 만들기를 시도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꽤 대담한 경험이었다. 명상의 신성한 기운을 유지하며, 몸에 전류처럼 흐르는 기운에 집중했다. 바닥 위로 견고하게 얹어진 엉덩뼈, 따뜻한 복부와 심장부, 관절과 마디 사이, 서늘한 선풍기 바람이 스치는 시원한 이마. 사방으로 분산된 에너지를 느끼다가, 천천히 어깨로, 손으로 이동시켰다. 나의 신체 중 아마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부위. 손에 응집된 기운을 상상했다. 무려 네온 빛 파란색으로. 그리고 조심스럽게 두 손바닥을 가까이 모으며 작은 볼을 만들었다. 어렸을 때 콘센트를 가지고 놀다 약하게 감전된 적이 있는데, 마치 그때의 느낌이 흘렀다. 전기가 타닥, 타닥, 타듯이, 손바닥 안에서 에너지 볼이 지글, 지글, 거렸다.

믿기 힘들었다. 내가 에너지 볼을 만들다니. 만화 영화나 드래곤볼도 아니고, 내가 에너지로 만들어진 공을? 정말 무지한 마음에 ‘나 지금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건가?’ 싶은 마음도 들었다. 자석처럼 손바닥을 멀리 떨어트리면 에너지가 약해지고, 가까이 모으면 강해졌다. (과학적으로 인간의 신체에는 미세한 전류가 흐른다. 전기적 신호와 전달을 통해 생명 활동을 유지한다. 모든 자연계는 전기의 영향을 받는다. 생체 전기는 몸에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미약하지만, 인체가 기능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

에너지 볼을 재밌게 가지고 놀다 수업이 끝났다. 눈을 뜨니 세상이 부드럽게 보이고 따뜻하고 충만한 기운이 흘렀다. 커피를 마신 것보다도,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이 깨어있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모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것만 같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기(氣)로구나. 내 몸에는 정말 기(氣)가 흐르는구나. 사람들의 뭉실한 기운이 요가원을 가득 채웠다. 아빠가 언제나 강조하던 ‘기운의 영향’이란 것이 드디어 납득이 갔다. 언어로 형언하기 힘든, 다소 특이한 영적 체험. 형이상학, 요가, 명상에 대한 강한 호기심이 이글거렸다. 모두 느끼고 경험하고 알고 싶어졌다. 

아사나가 무언지, 하타가 무언지, 빈야사가 무언지, 아쉬탕가가 무언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 무작정 집 근처 요가원을 등록해 주 3회를 수련했다. 운 좋게도 ‘다이어트 요가’나 ‘필라테스 요가’처럼 현대적으로 해석된 요가가 아닌, 정통 요가원이었다. 물론 그땐 몰랐다. 인생은 운발이다. 3개월 정도 수련하다 보니 여러 가지 양식의 요가 수련법이 몸에 익고, 산스크리트어 아사나 이름이 귀에 익었다. 몸에 근육이 붙고, 체력이 좋아졌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불편한 감정이 일어날 때면 습관적으로 명상을 찾았다. 부지런히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훈련을 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단련되어 튼튼해졌다. 타인의 무심한 언행에 연연하지 않고, 나의 미숙함과 부주의함에 자책하는 행위가 줄어들었다.

명상은 특별할 것도 없다. 숨을 가득 들이쉬어 몸 안을 꽉 채웠다가, 숨 하나 남지 않게 전부 내뱉는 과정을 반복한다. 날 괴롭히던 잡생각들이 마법처럼 사라진다. 나는 지금 여기에 현존하며, 그저 호흡하고 있다. 이토록 쉽고 어려울 수가. 불시에 생각이 침투해 방해한다. 그래도 저항하지 않는다. 생각이 들어오면 들어와서 놀게 내버려 두고, 알아차리면 다시 호흡으로 돌아간다. 짧든 길든, 어떤 방법으로든 호흡이나 행위 자체에 집중하면 그것이 곧 명상이다. 내 마음에게 호흡에만 집중할 시간을 주고, 내버려 두는 것.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면 근육이 붙고 육체가 튼튼해지듯이, 마음도 계속 바라보고 단련하다 보면 건강해진다. 호흡을 통해 주체적으로 변화한다. 몸이 아플 땐 마음도 쉽게 약해지고, 마음이 아플 땐 몸도 약해지는 상황만 봐도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영혼과 육체는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완벽한 호흡법이나 수련 방법도 없다. 내가 편한 대로, 내키는 대로 하면 된다. 호흡은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생존 수단이자 습관이다. 태어나면 숨을 쉬어야 산다. 숨을 멈추면 우리는 죽는다. 긴장이 되거나 아프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닥쳤을 땐 무의식적으로 아아, 후-하-후-하 숨을 쉰다. 자동적으로 고통을 다스리고 마음을 진정시킨다. 인간의 호흡 단련은 모르는 새에 생활화되어 있다. 우리의 삶은 호흡으로 꽉 차있고, 호흡으로 연결되어 있다.

편지지

카메라를 들고 지구를 유랑하는 낭만적 유목민. 네트워크 안팎에서 이미지와 신체로 연결되는 작업하는 사람. 기술을 경유해 생명의 공통 언어를 모색하는 미학적 수행자. 종의 경계가 허물어진 생태적 관계망을 상상하며, 더럽고 아름다운 것들을 채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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