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공 모기(以蚊治蚊)
모기가 모든 것을 바꾸었다. 인류의 역사는 모기로 인해 바뀌었다. 모기는 우리의 밤잠을 괴롭히는 한낱 성가신 미물에 그치지 않는다.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매개자로 문명의 행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주역이자 주체였다. 로마제국과 몽골제국 등 한 시대를 호령했던 제국들의 흥망성쇠에도 모기는 자리했다. 대항해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던 ‘콜레라 시대’의 개창에도 모기는 혁혁한 역할을 수행했다. 최신의 사회과학 담론인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모기는 세계사의 전환과 문명사의 변화에 중차대한 ‘행위자’(agent)로서 막중한 역할을 수행해온 것이다.
실제로 인류의 전 역사를 망라하면 모기 때문에 죽은 사람이 전체 사망자의 절반으로 추산될 정도이다. 여지껏 지구에 존재한 1080억의 사람들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520억 명이 직간접적으로 모기로 인해 죽었다고 한다. 모기가 치명적인 이유는 말라리아, 지카 바이러스, 뎅기열, 황열병을 포함한 전염병을 옮기기 때문이다. 근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이런 질병의 사망률이 낮아지긴 했지만, 오늘날에도 지구 곳곳에서 모기는 여전히 치명적인 질병을 옮기는 주요 매개체이다. 빌 게이츠는 2016년 10월 본인의 블로그에다 ‘자료를 종합해보니 2015년에 모기 때문에 죽은 사람이 83만 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많은 것이 인간이 인간을 죽인 경우로 58만 명이었다. 호랑이·늑대·상어 같은 사나운 동물 때문에 죽은 사람은 각각 50명, 10명, 6명에 그쳤다. 게이츠는 ‘지금도 1분마다 어린이 한 명이 말라리아에 걸려 죽는다.’며, 매년 세계에서 3억 5천만명이 모기를 매개로 병에 걸리고, 770명에 한 명꼴로 목숨을 잃는다고 분석했다. 즉 전쟁보다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모기인 것이다.
물론 모든 모기가 ‘흡혈귀’인 것은 아니다. 모기는 곤충강 쌍시목 모깃과에 속한다. 자연계에는 총 3500여 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대부분은 비건 즉 ‘채식주의자’이다. 혈액을 먹고 사는 모기는 극히 드물다. 그 중에서도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종은 200여 종에 그친다. 즉 전염병을 옮기는 모기는 희귀종이다. 얼룩날개모기, 집모기, 숲모기 등 극소수인 것이다. 동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는 흰줄숲모기의 수컷은 벌꿀, 이슬, 식물 즙을 먹고 산다. 오로지 암컷만이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다. 암컷은 보통 한 달 미만의 짧은 일생을 산다. 수컷 모기는 암컷과 단 한 번 교배할 수 있다. 교배 이후에는 생을 마감하게 된다. 반면 암컷은 산란할 때마다 피를 먹어 영양분을 얻고 난소에 영양을 공급해야 한다. 암컷 한 마리가 수백 마리의 후손을 남기어 종을 번성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번식력이 강한 모기를 없애기 위하여 인류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왔다. 한때는 화학 살충제가 주로 쓰였다. 하지만 화학 제품 자체가 환경에 해를 끼치는 데다가, 모기 또한 적응을 하여 내성이 생겼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2010~2017년 68개국에서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가 살충제 5종에 내성을 가졌다고 한다. 갖가지 수단을 동원했으나 ‘모기와의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여기서 게임체인저가 등장한다. 인간과 모기의 관계를 전환시키는 획기적인 방법이 고안된 것이다. 이이제이(以夷伐夷)의 전통을 계승한 중국 과학자들이 그 첨단에 자리하고 있다. ‘모기로 모기를 다스리는’(以蚊治蚊) 것이다. 특정한 균에 감염된 수컷 모기를 ‘대량 생산’하여 사람 피를 빠는 암컷의 번식을 차단하는 것이다. 생명과학 기술을 이용해 “인공모기”를 창조하고 인위적인 진화를 유도하여 건강하고 안전한 인류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 상징적인 인물이 시즈융(奚志勇) 교수이다. 중산대학의 시즈융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이 국제과학잡지 <네이처>에 ‘모기로 모기를 다스리는’ 연구를 소개한 것이 2019년 7월이었다. 2015년부터 중국 광저우의 작은 섬 두 곳에 흰줄숲모기 수억 마리를 연속 방사했다고 한다. ‘생식조종목마’라고 하는 볼바키아(Wolbachia)균을 가진 수컷 모기들을 대량으로 풀어 둔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볼바키아는 모계로 유전되는 숙주의 생식 행위를 조종하는 세포 내 공생균이다. 이 균에 감염된 수컷 모기가 야생의 암컷 모기와 교배하게 되면 암컷 모기는 더 이상 새끼를 낳을 수 없게 된다. 이 현상을 생리학적으로는 ‘세포질 불일치’라고 표현한다.
근 반세기에 달하는 지난한 연구의 결실이었다. 무려 1960년대 미얀마까지 거슬러 오른다. 당시 ‘버마’의 한 마을이 열대집모기로 몸살을 앓았다. 열대집모기는 사상충증을 옮기는 매개체이다. 1967년 독일 마인츠대학 유전학연구소의 라벤 박사가 유럽에서 다른 집모기를 찾았다. 이 집모기가 가진 볼바키아균은 미얀마 현지 집모기에 있는 균과는 달랐다. 이 둘을 교배하자 자손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라벤은 이 집모기를 미얀마로 가져와 12주 만에 열대집모기를 없애는 효과를 거둔다.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세포질 불일치’ 기술을 이용하여 특정 모기 종을 억제한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 라벤은 자연의 신비를 이용했지만 중국의 과학자들은 모래에서 바늘 찾기, 자연에서 우연히 찾게 되는 행운에 만족하지 않았다. 발견이 아니라 발명을, 창조를 하고자 한 것이다. 시즈융 교수가 실험실에서 인공적인 모기를 만들어 내기로 한 저간의 사정이다.
물론 그 인공적인 모기의 창조와 인위적인 진화의 창출은 고되고 고단한 연구의 과정이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박사과정을 시작하고도 2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켄터키대학의 박사 지도교수 위원회에서는 이 연구가 논문 주제로 적합하지 않아 졸업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결국 학위는 다른 주제로 받게 되었지만, 모기로 모기를 퇴치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관건은 선대와 후대 사이의 유전에 개입하는 것이었다. 볼바키아균을 주사하면 1세대 모기는 균을 갖고 있지만, 2세대로는 전달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유전이 불가능하다면 볼바키아균과의 공생관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감염에 불과한 것이다.
돌파구는 모기 알에서 열렸다. 볼바키아균을 모기의 성충이나 유충에 주사해서는 유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모기 알에 주사했더니 수직적 전파, 즉 유전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볼바키아균을 알에 주사하는 일 자체가 녹록치 않은 숙제였다. 모기 알은 사실상 세포 덩어리이다. 소화계와 신경계, 생식계, 면역계로 분화되기 이전의 상태이다. 생식계에 정확하게 주사를 해야만 유전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기존의 연구 문헌들을 섭렵하던 차, 1970년대에 일부 과학자가 초파리 알의 머리 부분 세포질을 다른 초파리 알의 꼬리 부분에 주사한 뒤 머리가 두 개 자라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초파리 배아 발육을 연구해 199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에릭 위샤우스 교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위샤우스는 초파리 알의 각 부분이 자라서 무엇이 되는지 명확하게 밝혀내었다. 모기 알 또한 마찬가지였다. 각 위치마다 발육되는 기관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꼬리 부분이 생식기관으로 자란다. 모기 알에서 생식기관으로 자라날 위치에 볼바키아균을 정확하게 주입하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공간과 더불어 시간도 중요했다. 정확한 위치 다음으로는 주사를 놓을 시기도 적확하게 맞아떨어져야 했다. 시즈융은 모기 알이 발육하기 전 60~90분 안에 주사해야 한다는 점을 알아냈다. 이때는 모기 알이 회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하는 과도기이다. 알이 세포질 덩어리일 때 균을 주사하면 세포가 끊임없이 분열한다. 그보다 어린 흰색일 때 주사하면 알이 살아남지 못한다. 발육 후기까지 기다리면 생식세포와 면역세포가 형성된 다음이어서 주사하기가 어렵다. 딱 그 사이의 1시간 정도만이 주사를 할 수 있는 예외적인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또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위치와 시간을 정확히 파악한 다음에도 주사 방법을 정밀하게 설계해야 했다. 바늘로 풍선을 찌른 뒤에도 풍선이 터지지 않는 상황에 빗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즈융이 석영으로 고안한 직경 1mm의 주사바늘은 머리카락보다도 가늘다. 그 주사기로 주사를 하기 전에도 알을 조금 말려 수분을 줄여야 한다. 세포 내압을 약간 낮춰야 주사할 때 세포 내부 물질이 터져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숙련된 연구원이 주사해도 생존율이 10~15%에 그친다. 모기 알 100개 가운데 10~15개만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즉 배아에 균을 주입하는 주사 자체가 거의 예술에 가까운 경지를 요구한다고 하겠다. 시즈융은 이 세상에서 가장 실력이 출중한 사람이 되었다. 현미배아주사 기술로 모기에 볼바키아균을 이식하는 최고의 권위자가 된 것이다.
균에 감염된 수컷 모기를 연속적으로 방사하자 야생의 암컷 모기보다 개체 수가 훨씬 많아졌고, 대다수의 야생 암컷 모기가 감염된 수컷 모기와 교배하기 시작했다. 즉 이 모기들의 자손이 생기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지속적으로 억제함으로써 모기 수는 극적으로 줄어들었고, 특정 지역에서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되었다. 수학 모형에 따르면, 감염된 수컷 모기와 야생의 암컷 모기 수가 5 대 1이 되도록 유지해야 한다. 이 방법으로 시험한 결과 2016~2017년 흰줄숲모기 유충 수가 연평균 94% 넘게 줄었고, 13주 뒤에는 부화한 알이 전혀 없었다. 또 야생의 암컷 모기 성충 수도 연평균 83~94% 줄어들었다. 6주가 넘도록 암컷 모기가 발견되지 않기도 했다. 인류와 모기와의 지난한 투쟁의 역사 속에서 비로서 인류가 승리하기 시작한 바이오-테크의 쾌거를 이룬 것이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이 생명공학 기술을 세계 전체로 전파할 것을 약속했다. 현재도 댕기열 바이러스 유행 지역에는 약 40억에 가까운 인류가 살아가고 있다. 이들 지역에 ‘인공모기’를 방사함으로써 지금까지는 없었던 획기적인 방법으로 질병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다시 말해 광저우에서 태어난 ‘메이드 인 차이나’ 모기가 세계 곳곳에서 윙윙거리며 날아다니게 된다는 뜻이다. 이미 일대일로를 따라서 브라질, 페루, 태국, 스리랑카, 자메이카 등등 여러 나라와 지역에 중국산 인공모기가 살아가며 전염병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
2. 인조 인간(CRISPR babies))
인공모기는 인공인간, 인조인간으로 가는 중간 단계일 뿐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로 밀레니엄의 문을 연 것이 미국이었다면, 중국은 2018년 세계에서 가장 큰 게놈 프로젝트로 ‘맞춤 의학’의 새로운 문을 열어젖혔다. 중국인들이 앓는 질병의 유전적 근거를 규명하기 위해 4년 동안 중국인 10만 명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하고 중국인 게놈 지도를 완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2022년 바로 올해에 중국인들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한 게놈 지도가 세상에 공개될 예정이다.
대표적인 유전체 기업이 BGI(Beijing Genomics Institute)이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가파르게 성장해왔다. BGI는 매년 2500건이 넘는 보고서를 자체 발간하고, 이 중 300건 정도가 네이처와 사이언스 지에 실릴 정도로 뛰어난 연구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창립 초기에는 그 이름이 상징하는 듯 본사가 베이징에 있었는데, 2007년 전격적으로 선전으로 이전한다. 베이징이 정치의 중심지로 국영기업이 많다면, 글로벌 시티 상하이에는 외국계 기업이 많다. 반면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선전에는 민간 기업이 대다수이다. 인구의 7할이 MZ세대로 세계에서 가장 젊으며 가장 학력 수준이 높은 도시이기도 하다. 그 중국판 혁신의 본거지에다 바이오테크를 접목시킨 것이다. 이미 BGI는 직원수가 6,000명을 넘어서며 세계 최대의 유전학 연구소로 부상하게 되었다. BGI에서 근무하고 있는 연구원 모두의 게놈 분석을 끝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BGI는 2010년 미국의 거대 바이오 기업 일루미나(illumine)의 고속 시퀀서(염기서열 해독장치)를 128대 구입한 뒤로, 2014년까지 전 세계 게놈 데이터의 4분의 1을 생산해내는 세계 최대의 게놈 해독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3년에는 일루미나의 경쟁사인 시퀀서 개발 기업 컴플리트 제노믹스(Complete Genomics)를 사들여서 시퀀서 자체 개발에도 나섰다. 즉 일루미나의 단골손님에서 일약 라이벌 기업으로 부상한 것이다. 현재 일루미나에서 인간게놈을 해독하려면 약 1000달러의 비용이 드는데 반하여, BGI는 600달러로 같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BGI는 이 비용을 3년 내에 300달러까지 낮출 예정이고, 향후에는 100달러까지 낮추는 게 목표이다. 2001년에는 단 한 사람의 게놈을 해독하는데 1억 달러가 들었으니, 20여년만에 100만 분의 1 수준으로 가격이 내려가는 것이다.
그 중국 특색의 초가속적 유전공학 발전을 상징하는 인물이 바로 허젠쿠이다. 2020년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Doudna)와 엠마뉘엘 샤르팡티에(Emmanuelle Charpentier)가 크리스퍼 발견으로 노벨상을 수상했을 때에도 거의 모든 뉴스에서 허젠쿠이가 함께 언급되었다. 유전자 편집기술을 발견한 것은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였지만, 정작 그 테크놀로지를 통하여 최초의 인간을 빚어낸 인물은 허젠쿠이였던 것이다. 중국 정부가 세게 최대 규모의 게놈 프로젝트를 발표한 바로 그 2018년, 허젠쿠이(賀建奎)는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있도록 유전자를 편집한 배아를 여성의 자궁에 이식해 ‘루루’와 ‘나나’로 이름 지은 쌍둥이 여자아이를 탄생시켰다. 같은 기술로 유전자를 편집한 세 번째 아이도 이듬해 태어났다. 그의 발표는 국제 생명윤리 기준을 위반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뜨거운 논란이 되었다.
허젠쿠이의 연구팀 역시도 선전에 자리했다. 선전시에 있는 남방과학기술대에서 다용도 유전체 편집 도구 ‘크리스퍼(CRISPR)’ 또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사용해 HIV에 면역력을 갖도록 쌍둥이의 DNA를 수정한 것이다. 세계 최초로 유전자를 편집한 아기를 탄생시켰다는 사실은 윤리적 비난에 그치지 않았다. 대학 캠퍼스의 게스트하우스에서 현장 체포되어 3년의 징역형에 처해졌다. 법원은 그가 “고의로 의료 규정을 위반”했으며 “보조생식술에 무모하게 유전자 편집 기술을 적용”했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허젠쿠이는 이미 석방된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그가 재차 중국이나 다른 국가에서 연구자로 돌아올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고 불투명하다.
허젠쿠이의 실험에 대한 윤리적 비난과 사법적 단죄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퍼 베이비를 둘러싼 진상의 규명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정작 허젠쿠이는 본인이 노벨상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자신에 차 있었다고 한다. 2020년 노벨상을 수상한 다우드나와 허젠쿠이가 실제로 만난 적도 있다. 2017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제니퍼 다우드나가 주최했던 작은 비공개회의에 허젠쿠이도 초빙되었던 것이다. 생명과학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세계적 과학자들의 회합에서 미국의 한 중견 과학자는 이런 말을 했다. ‘여러 중대한 혁신이 과학자 한두 명의 ‘카우보이 과학(cowboy science)’에 의해 이루어졌다.’ ‘카우보이 과학’이라는 언명은 허젠쿠이에 무한한 영감을 주면서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반드시 누군가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며, 그것이 인류의 미래를 약속하는 도전이라면 본인이 감당해 보겠다는 야심을 품게 된 것이다. 마치 ‘인공모기’를 통하여 감염병을 사전에 봉쇄한 것처럼, ‘인공아기’를 통하여 HIV 감염을 완전히 통제하려고 한 것이다.
2017년의 그 비공개회의 이후 허젠쿠이는 세계 최초로 백신을 발명한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에서부터 체외수정(IVF)의 선구자 로버트 에드워즈(Robert Edwards)까지, 오늘날 영웅으로 칭송받는 과학의 선구자들에 관한 전기와 평전을 몰아쳐 읽었다고 한다. 2019년 1월 그는 중국 정부의 수사관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서 보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인류 문명을 진보시킬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역사는 결국 내 편에 설 것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했던 갈레레이의 결기에 빗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즉 허젠쿠이는 ‘인조인간’(Man-Made-Hunman)들이 대거 도래할 미래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고자 했다. 과학계 원로들과 동료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고, 크리스퍼 혹은 인류의 미래와 관련된 과학 공동체 내부의 의견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에 수난을 겪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이러한 주장들이다. 크리스퍼를 통해 우리는 질병과 노화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의 수많은 사례처럼, 창의적이고 용기 있는 개척자들이 경계를 허물고 돌파해갈 때 과학적 진보가 일어난다. 미래 세대에 변화를 물려줄 배아, 난자, 정자 등 생식선의 유전자 편집은 불가피하다. 단지 누가, 언제, 어디서 최초로 행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그는 유전자를 편집하는 기술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장미 빛 희망찬 미래에 대한 메시아적 언약을 듣고, 믿고, 따랐던 것이다. 우리 인간 유전자에서 염기 하나를 고치는 것은 구원의 성배가 아닐 수 없었다. 달리 말하면 허젠쿠이에 대한 일방적 비판과 비난은 역사에 길이길이 기록될 ‘최초’의 타이틀을 뺏긴 동료 과학자들의 질투와 몽니일지도 모른다.
그런 차원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이 허젠쿠이의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유전자 질병 환자들의 인터뷰이다. ‘루루’와 ‘나나’의 탄생 실험에 동의했던 부모는 양쪽 모두 HIV 보균자였다. 중국의 현행 법에 따라서 난임 시술을 받을 수조차 없는 사람들이었다. 허젠쿠이로 말미암아 자식을 만나는 축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허젠쿠이의 연구진에는 HIV 양성 사실이 공개된 이후 직장에서 해고된 의료 전문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 또한 에이즈라는 ‘천벌’을 받은 것도 모자라 직장에서도 해고되면서 허젠쿠이의 프로젝트에 합류했던 것이다. 중국 사회에서는 HIV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들에게 대한 사회적 낙인이 유독 강하다. 이들을 도와서 유전적으로 HIV에 저항성을 가지도록 아기들의 유전자를 편집한 것이 과연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편집인 것인지 확언하기가 매우 어려운 사정인 것이다. 허젠쿠이와 함께 했던 이들의 비전과 미션에 유전적/신체적 결함을 원천적으로 수정하여 만인에게 인간적 존엄을 선사하겠다는 선의가 전혀 없었다고 잘라 말하기 힘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이미 개발된 기술이 시장에서 사장될 리가 없다는 것이다. 크리스퍼 가위 기술은 머지않은 장래에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적용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즉 자연진화의 소산으로 돌연변이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진화의 개입으로 돌연변이를 차단하게 되는 것이다. 핵심은 역시 그 도전적이고 개척적인 실험이 중국에서 가장 먼저 단행되었다는 점이다. 객관적인 지표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2020년에 발표된 벨퍼 연구 보고서는 중국이 국제 유력 학술지에 발표한 생명공학 논문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독일과 영국을 제치고 네이처 인덱스(Nature Index) 평가 2위에 등극했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작물(CRISPR-modified crops)과 형질 전환 식물(transgenic plants) 분야에서는 중국이 미국을 넘어섰다.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작물의 경우 중국과 미국의 연구 성과 점유율은 42%와 19%, 형질 전환 식물의 경우 30%와 12%를 기록했다. 중국은 또한 전 세계적으로 생명공학 기술 특허를 가장 많이 내는 나라로도 꼽혔다. 2000년 1%에 불과했던 중국의 글로벌 생명공학 기술 특허 점유율이 2019년에는 28%까지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의 점유율은 45%에서 27%까지 감소했다. 벨퍼 보고서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규제를 발판 삼아 바이오 기술 응용 면에서 중국이 미국을 뛰어넘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전 세계 유전자 편집 기술 임상시험의 절반 가량이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의 인구 대국 중국이 세계 최대의 인조인간 대국으로 변모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3. 인공진화(LIFE 3.0)
인공지능과 인공자궁이 만나면 인공생명의 창출도 가능해진다. 중국은 이미 돌파구를 열었다. 인공 자궁에서 인공지능을 이용해 배아의 성장을 관리할 수 있는 ‘AI 유모’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AI 유모 기술은 생명의 기원과 인간의 배아 발달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선천적 결함 및 생식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여성이 아기를 배 속에 품고 다닐 필요가 없어져 태아가 몸 밖에서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도 한다. 중국과학원 산하 쑤저우 생명공학기술원의 연구진들이 중국 학술지 <생의학 공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의 내용들이다. 아직은 쥐 배아를 실험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인류에게 적용될 날이 아주 멀다고 만도 하기 힘들 것이다.
이 연구팀이 개발한 AI 유모는 영양 체액으로 채워진 정육면체 모양의 인공 자궁인 ‘배아 배양 장치’를 한꺼번에 대량으로 관리한다. 이전에는 각 배아의 발달 과정을 수동으로 관찰하고 문서화해서 조정했기에 연구 규모가 커질수록 지속하기 어려운 노동 집약적인 작업이었다. 지금은 AI를 탑재하여 배아가 24시간 내내 위아래로 움직일 때 정밀하게 배아를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되었다. 인공지능은 인공자궁 안 배아의 미세한 변화의 징후까지도 감지하고 이산화탄소, 영양 및 환경 입력을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건강과 발달 잠재력에 따라 배아의 순위를 매길 수도 있고, 배아에 중대한 결함이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기계가 배아를 자궁 모양의 용기에서 제거하도록 경고를 할 수도 있다. 이 기술이 인류에까지 적용이 되면 엄마의 배 밖에서 아기는 더욱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인공자궁의 융합은 난임으로 아이를 갖지 못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수도 있다. 또 임신과 출산으로 사회 경력에서 큰 손해를 경험하는 경력 단절 여성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여성과 모성에 대한 인류의 오랜 관성적 통념에 대한 일대 혁명적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자연스레 ‘자연’이란 무엇인가 근본적 물음에 당도하게 될 것이다. 바야흐로 무위자연과 인위자연이 공존하는 ‘신자연’ 상태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도래하는 ‘신자연’을 상징하는 학문이 바로 합성생물학일 것이다. 자연은 이제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의 대상이다. 다시금 BGI는 합성생물학의 최첨단에 자리한다. 지금까지 BGI는 인간뿐 아니라 크고 작은 동식물의 DNA를 해독해왔다. 이 ‘게놈 게스트북’에는 기장, 벼, 자이언트 판다, 누에, 사스 바이러스, 심지어 이누쿠(Inuk)라고 명명된 4000년 전의 고대인까지 포함되어 있다. 생물의 언어는 DNA이다. 인간, 동물, 식물 모두 DNA에서 기원한다. 이 DNA를 모두 해독해 낼 수 있다면, 원리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코딩(coding)과 디코딩(decoing)과 리코딩(recoing)으로 피조물 인간이 창조의 주체로 진화해가는 것이다. 이미 BGI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 중 70퍼센트에 달하는 생명체의 DNA 해독을 끝냈다고 한다. 앞으로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의 DNA를 해독해서 생명을 디지털로 디자인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렇게 적용된 디지털 디자인(=인위자연) 기술로 유전성 질환을 완전히 종식시키겠다는 것이다. 돌연변이가 완전히 사라진 인공진화의 신세계로 생명의 진화사가 전개될 수도 있는 것이다.
BGI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들이 다양한 생물을 신경 쓰도록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 바이오는 사람에게는 의료 행위를 하지만, 사람이 아닌 것에는 환경보호의 측면에서 접근한다. 이제 사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과 생태계 전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권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것처럼, 오로지 식량으로 공급되기 위하여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는 동물이 있다는 건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일이다. 모든 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미래를 향하기 위해서라도 ‘인공진화’의 가속 페달기를 더욱 가열차게 밟아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을 포함해 모든 생물의 조직은 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AI의 주요 조직은 실리콘, 즉 규소로 구성되어 있다. 탄소와 규소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탄소와 규소가 융복합되고, 생물과 사물이 통폐합되는 인공생명의 인위자연이 미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자연과 자동과 자율이 무한대의 피드백을 영구히 거듭하는 새로운 인공진화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즉 저 하늘 위의 인공위성이 인공우주시대를 열어젖히고 있다면, 이 땅 위의 생명 가장 깊숙한 곳에서는 인공진화의 시대가 개막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도 땅도 전대미문의 신세계가 펼쳐지는 후천개벽의 신시대라고 하겠다. 그 신세계과 신세기의 선두에 가장 오래된 문명국가 중국이 자리하고 있음이 유별난 점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이 선도하고 있는 바이오테크는 크게 세 가지 색깔로 나뉘어진다. 레드와 그린, 그리고 화이트이다. 레드 바이오는 생명공학을 보건과 의료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린 바이오는 농수산, 축산, 식품에 응용하는 것이다. 화이트 바이오는 환경, 해양, 에너지, 소재 등을 일컫는다. 레드와 그린이 만나 유전자편집과 합성생물학에 기초한 인공생명으로 질주하고 있는 풍경을 살펴보았다. 그에 반해 화이트 바이오는 기왕의 지구를 되살리는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 자연스레 기후와 기술의 융합으로 ‘지속가능한 인공지구’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국판 어스테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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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개벽학은 동학 창도 이래, 이 땅의 자각적 사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겠다는 뜻이다. 동녘의 오래된 유학과 서편의 새로운 서학이 합류한 문명의 융합을 거대한 뿌리로 삼는다. 그러함에도 한국학, 한 나라에 한정되지 않는다. 북구부터 남미까지, 인도양부터 시베리아까지, 지구적 규모로 정보를 수집하고, 지구적 단위로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특히 인간이 창조한 인공의 세계, 인공지구와 인공생명과 인공지능의 도래를 주시한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진화는 물론이요, 인간 이후의 자율적 진화에, 인간만의 자각적 진화를 두루 아울러야, 지구의 진화에 일조할 수 있는 미래학자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간의 공진화, 생명과 기술과 의식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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