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크, 실버, 실리콘
길을 만드는 자, 세상을 길들인다. 사람과 사물과 정보가 오고 가는 새 길을 여는 것이 곧 새로운 세상을 얻는 길이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할 때, 로마제국은 서방을 호령했다. 모든 길이 장안으로 이어질 때, 대당제국은 동방을 지배했다. 동방이 여전히 서방을 앞서가던 시절이다. 비단과 도자기 등 최첨단 테크놀로지에서 동/서의 비교를 허락하지 않았다. 비단이 동에서 서로 옮겨가면, 서에서 동으로는 은화가 지급되었다. 실크와 실버의 비대칭적 교환은 아편전쟁 직전까지도 오래 지속되었다. 중국의 고급 상품이 전 세계로 공급되면, 태평양 건너 남아메리카의 은화가 유럽과 인도를 지나 중국까지 흘러들었다. 실크로드와 실버로드 모두 세계의 중심, 중국과 통했던 것이다.
20세기도 예외는 아니다. 새 길을 여는 자가 새 세상을 길들였다. 미국이 지난 세기를 장악한 것도 새로운 길을 개척해냈기 때문이다. 그 상징이 바로 AT&T이다. 아메리칸 텔레콤 & 텔레그래프(American Telecom & Telegraph)의 약자이다. 1923년 세계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하는 라디오 통신망을 열었다. 1927년에는 또 다시 세계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하는 전화도 시작되었다. 1930년에는 또 한 번 세계 최초로 쌍방향 비디오 폰을 선보였다. 통신제국, 정보제국으로서 미국이 부상하는 근간이 되었던 것이다. 소련과 경합하던 냉전기에도 AT&T의 활약은 도드라졌다. “커뮤니케이션은 곧 민주주의의 토대이다.“(Communication is the foundation of democracy)는 AT&T의 사명이자 미제국이 온누리에 설파하는 복음이기도 했다.
강철과 석유와 핵무기로 중무장하여 세계를 경영했던 소련이 미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진 것도 연결망이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소련의 컴퓨터는 미국에 견주어 20년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 다가오는 정보화 시대에 한참이나 밀린 것이다. 사뿐하고 가뿐한 정보제국으로 진화해가는 미국에 비하여 소련은 느리고 무겁고 더디었다. 냉전의 승부가 갈렸던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WWW가 발진했음은 그래서 퍽이나 상징적이다. 21세기 디지털/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의 시발이 되었던 월드와이드웹 또한 미국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컴퓨터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가 깔리며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 되어주었고, 전 지구의 모든 지식과 정보가 구글에 결집되었다. 즉 20세기 전체를 망라하여 미국이 슈퍼파워로 군림할 수 있었던 근간 또한 커뮤니케이션 제국의 허브로서 우뚝했기 때문이다. 미래의 길을 앞장서서 개발하고 개척했던 것이다.
그 일백 년 통신과 정보 패권에 균열이 가고 있다. 22세기를 준비하는 인공위성을 통한 대륙간 양자 통신을 세계 최초로 성공시킨 나라가 중국이다. 2017년 중국이 세계 최초로 (원리적으로) 해킹이 불가능한 전례 없는 네트워크의 신세계를 구축해냈다. 2018년 미래의 통신을 주도할 5G를 세계 최초로 선보인 기업 또한 중국의 화웨이이다. 같은 해 중국의 흥통(亨通)그룹은 해저 깊은 곳에 10,000 킬로미터에 달하는 광섬유 케이블을 깔았다. 세계의 데이터가 오고 가는, 서로의 정보를 주고받는 새 길을 중국이 앞장서서 열어낸 것이다. 중국이 인터넷에 처음 접속한 해가 1994년이었음을 상기한다면 불과 20년 남짓 만에 입지가 전혀 달라진 것이다. 고객에서 공급자로 입장이 바뀌었다. 모방하는 추격자에서 창조하는 선도자로 위상이 변모했다. 시진핑 주석의 비전이 커뮤니케이션 제국으로서 중국의 미래를 상징한다. ‘2025년까지 제조강국, 2035년까지 기술 표준화, 2049년 테크노 슈퍼파워’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의사소통은 의사결정의 근간이다. 소통을 장악하면 결정을 좌우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과 헤게모니가 직결되는 까닭이다. AT&T와 USA도 협력이 긴밀했다. 핵무기 개발부터 미사일 조기 경보 체계 마련, 미군의 비밀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구축 등 국가 안보 프로젝트와 세계 경영 전략 수립에도 AT&T는 깊숙이 참여했다. 21세기의 정보제국을 도모하는 중화인민공화국도 디지털 기업들과의 찰떡 공조 속에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즉 중국 내부의 디지털 인프라 건설에 그치지 않는 것이다. 일대일로를 통하여 해외로 확산시키려는 의지가 확고하다. 국내적으로는 기술 독립을 지향하고, 국제적으로는 미래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이른바 DSR, 디지털 실크로드(Digital Silk Road)를 만들어가고 있다. 미국이 실리콘벨리를 만들었다면, 중국은 실리콘월드를 형성해 가겠다는 뜻이다. 이미 오대양 육대주를 망라하여 중국산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가 촘촘하게 지구를 엮어가고 있다.
5G를 선도하고 있는 화웨이는 전 세계 170개 이상의 국가에 디지털 디바이스를 공급한다. 전 세계의 모든 도시와 모든 거리와 모든 건물에 장착되고 있는 CCTV의 40% 이상도 중국의 하이크비전(Hikvision)과 다후아(Dahua)가 제공하고 있다. 대륙간 해저 광섬유 케이블을 까는 흥통 그룹은 세계 의 정보 연결망의 15%를 책임진다. 남아시아의 파키스탄과 동아프리카의 지부티 사이의 해저 케이블도 중국이 만들어서 아시아-아프리카를 디지털로 연결하고 있다. 그리스의 항구 도시 피레아스(Piraeus)에도 화웨이의 통신 장비가 설치되어 크루즈 여행부터 항만 운영까지 주도하고 있는 바, 인도양 연결망을 유럽까지 확산시키는 허브 역할도 하고 있다. 중국의 빅3 국유 통신기업인 차이나 텔레콤, 차이나 유니콤, 차이나 모바일 또한 아시아-아프리카-남아메리카, AALA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이 개발한 위성항공 시스템 베이도우도 세계의 수도 165개를 연결하며 미국의 GPS를 능가한지 오래이다. 심우주부터 심해까지 펼쳐지고 있는 이 디지털 신경망이 모두 중국이 추구하고 있는 디지털 실크로드의 일부인 것이다.
즉 일대일로는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등 전통적인 인프라 건설에 그치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오프라인에 온라인을 결합시켜 디지털 인프라까지 패키지로 공급하는 것이다. 길을 내면 길들일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물, 도시와 도시, 나라와 나라, 모든 정보와 지식과 데이터의 오고 감의 중심에 다시 중국을 자리매김 하겠다는 것이다. 1990년대 실리콘벨리의 부상 이후 빅테크 기업들이 창출한 가치의 70% 이상이 네트워크 효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전 지구적 네트워크의 새로운 공급자로 중국이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의 모든 데이터가 중국으로 흘러가는 디지털 차이나의 굴기이다. 따라서 작금의 미중간의 경쟁은 무역전쟁도 신냉전도 아니다. 내일의 정보를 선점하기 위한 뜨겁고 치열한 네트워크 전쟁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그 정보전의 승부처는 미래의 도시 건설이 될 공산이 높다. 애플이 상징하는 바, 스마트폰은 미국이 주도했다. 테슬라가 웅변하는 바, 스마트카도 미국이 선도했다. 그러나 스마트폰도 스마트카도 스마트문명으로 가는 시발이었을 뿐이다. 폰과 카 다음은 홈과 시티이다. 누가 스마트홈과 스마트시티를 선도하면서 스마트스테이트와 스마트월드를 건설해 내느냐가 관건이다. 디지털 실크로드의 승부수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실리콘 시티로드를 통하여 스마트월드로 가는 새 길을 열어가겠다는 것이다.
2. 스마트시티 네트워크
국가가 사회 문제를 설정하면 규제를 완화하여 민간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창출하며 해결해 간다는 중국 특유의 민/관 합작 방식이다. 이는 스마트시티 건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출발은 항저우였다. 2015년 통계로 항저우는 중국에서 5번째, 세계에서는 30번째로 교통 체증이 심한 도시였다. 시정부는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항저우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알리바바와 협력하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시작된 프로젝트가 ‘시티-브레인’(城市大脑)이다. 처음에는 시내 한 구역의 정류장과 신호등에 설치한 수천 대의 카메라 정보를 수합하는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하여 최적의 솔루션을 도출하는 실험을 전개했다. 보행자부터 교통수단까지 다양한 소스에서 다양한 시각의 이미지 정보를 융합하여 최적의 솔루션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로드 네트워크의 대규모 데이터를 분석하고 예측하고 지능적으로 개입한다.
첫해부터 평균 교통 속도가 15% 향상되는 성과를 거두자 2017년도에는 시 전체에 시티-브레인을 도입한다. 시티브레인은 92%의 인지 정확도를 자랑하며 구급차와 소방차 등에도 최적화된 루트를 제공함으로써 50% 속도 향상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평균 도착 시간을 7분 이상 단축시키며 수많은 인명을 구하는 실질적인 효과를 거둔 것이다. 지하철 입구와 출구를 드나드는 사람들의 숫자도 예측하여 쾌적한 이동 환경도 제공한다. 도로의 주행 속도 개선은 물론이요 교통사고에도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었으며, 불법 주차까지도 실시간으로 추적이 가능해진 것이다.
지상의 교통망이 원활해지는 효과를 거두면서 하늘길에도 시티브레인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항저우의 샤오산(萧山)국제공항에도 탑재되어 공항의 모든 업무를 지능화한 것이다. 비행기의 출발과 도착을 지능적으로 관리함은 물론이요, 연료 주입과 기체 유지 및 수리에도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짐 운반부터 기내식까지 관리 대상을 점차 넓혀 가면서 항저우의 국제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안전한 공항으로 평가받기에 이른다. 공항부터 고속철도와 시내교통까지 통합하여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후 시티브레인은 메디컬을 포함한 도시 거버넌스 전역으로 적용 범위를 넓혀갔다. 도시를 구성하는 모든 인프라에 지능적인 스프트웨어가 장작되면서 모든 것과 모든 곳이 실시간으로 연결되게 된 것이다. 모든 순간에 모든 데이터가 시티브레인으로 집결되면서 모든 일에 대한 최상의 방안도 최단 시간에 도출될 수 있었다. 치안과 건설, 에너지와 물 공급, 법률 집행, 복지와 교육, 도시계획과 도시경영에 이르기까지 빅데이터와 AI에 의한 지능적 의사결정이 항저우의 시행정 전반에 긴밀하게 결합한 것이다. 기업과 정부가 합작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공공 AI 프로젝트로 진화한 것이다. CVIE(City Visual Intelligence Engine)는 알리바바 클라우드를 통한 분산 컴퓨팅과 저장 플랫폼을 의미한다. 광범위한 비디오 이미지와 컴퓨터 그래픽 처리, 딥러닝 알고리즘을 통하여 도시 규모의 AI 모델을 창조해 내었다. 결국 시티브레인은 미래 도시를 위한 새로운 인프라 건설과 새로운 거버넌스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인민이 제공하는 대규모 데이터에 기초하여 슈퍼컴퓨터가 알고리즘을 통하여 도시 시스템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시키는 피드백 이 계속된다.
항저우에서 시작한 시티브레인은 수저우, 상하이, 마카오 등 중국 곳곳으로 확산되어 갔다. 일대일로를 따라 처음으로 나라 밖에 적용된 곳이 알리바바의 데이터센터가 들어선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이다. AI와 빅데이터를 통한 도시 경영과 디지털 정부의 효율성 증대와 혁신을 위하여 시티브레인 도입을 결정한 것이다. 실시간 데이터 분석으로 향상된 예측 능력과 효율적인 의사결정에 공헌할 것을 기대한다. 현재 쿠알라룸푸르에서 시티브레인은 교통은 물론이요 기업과 스타트업, 대학, 연구소 등이 협력하는 말레이시아의 혁신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 시티브레인의 OS가 적용되면 일대일로에 자리한 다양한 도시들이 스마트시티로 진화해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스마트시티와 스마트시티 사이의 연결망이 촘촘해지면 그 진화의 속도 또한 더더욱 빨라질 것이다. 초가속적 기술생태계가 전 지구적으로 형성될 수도 있다.
알리바바가 기존의 도시 거버넌스를 향상시키는 소프트웨어를 구축했다면, 라이벌 텐센트는 아예 하드웨어까지 통으로 장착시킨 미래도시 자체를 만들어 내기로 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긴밀하게 통합된 유기적 도시생태계를 직접 설계해 보겠다는 것이다. 알리바바가 항저우를 상징한다면, 텐센트는 션젼의 대표주자이다. 텐센트는 자사의 본사를 아예 미래도시로 건설함으로써 션젼의 지능화에 일조하기로 결정했다. 텐센트가 만드는 8만 규모의 미래도시가 바로 ‘넷-시티’(Net-City)이다. 뉴욕 맨해튼의 미드타운 정도로 모나코와 비슷한 사이즈이다. 하지만 작지만 아름답다. 작지만 스마트하다. 그래서 작음에도 스트롱하다. 그래야 작아도 지속이 가능하다. 1000만 대도시 션전의 경쟁력에 못지않은 미래형 강소 도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핵심 개념은 자동차 없는 도시이다. 자율교통과 자전거, 보행자 중심으로 설계한다. 사람과 환경이 중심이 되는 기술로 만든 생태도시이다. 테크놀로지를 통하여 에콜로지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응당 주거지역과 상업지역, 업무지역 등이 구역화되지 않는다. 상점도 학교도 병원도 공연장도 이 넷시티에 만들어질 모든 건물과 사물과 사람은 위챗으로 연결될 것인바, 만인과 만물과 만사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미래의 도시이다. 사회적 생산력이 생태적 생명력으로 승화하는 공간으로 디자인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가 자랑하는 ‘15분 도시’로도 족하지 못한다. 넷시티는 단 2분으로 모든 것을 연결시키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넷시티 어느 곳에서도 2분만 걸으면 모든 교통망과 연결될 수 있게 설계한다. 그리고 단 2분만 걸으면 자연과도 연결되게 만들어진다. 그리고 2분만 걸으면 낯선 동료와의 우연한 만남이 가능해지면서 창의성이 창발하도록 공간을 디자인하고 있다. 출근과 퇴근, 일과 놀이의 경계가 흐려지며 삶의 다양한 부분들이 창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고안하고 있는 것이다.
생산력과 생명력이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진화 하도록 설계된 넷시티의 모든 건물 루프탑에는 태양광 패널과 빗물 저장소와 재활용 시설이 장착된다. 건물 하나 하나부터 지속가능한 설계와 순환경제를 달성함으로써 도시 전체의 생명력을 제고하는 것이다. 20세기의 건물들에 지진에 대비한 내진 설계가 들어간 것처럼, 넷시티에 들어설 건물들은 해수면 상승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설계도 장착된다. 넷시티 전체가 기후 변화에 적응하며 진화해갈 수 있는 유사 유기체적 도시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넷시티’의 ‘넷’의 의미는 실로 다층적이다. 일과 놀이를,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자연을, 사람과 사물을 생생하고 활활하게 연결해낸다. 가장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통하여 가장 오래된 에콜로지를 구현해낸다. 넷시티의 설계에 영감을 주고 있는 생태계가 바로 맹그로브 숲이기 때문이다.
맹그로브 숲은 열대에서 아열대 지역의 습지에 형성되는 삼림의 일종이다. 동남아시아, 남태평양, 호주, 인도 근해,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대륙과 대양이, 바다와 육지가, 물과 뭍이 만나는 간석지에 형성된다. 간석지는 하천 상류나 바다에서 흘러 들어온 유기물이 모여 분해되는 곳으로, 생산력=생명력이 매우 큰 환경으로 다양한 생물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준다. 맹그로브에서 밀생하는 수목들은 매우 인상적인 호흡 뿌리를 발달시킴으로써 표면 구조가 복잡하게 되어 여러가지 동물들에게 숨을 곳을 제공하고, 그 줄기에는 이끼나 지의류가 번식하게 된다. 그래서 저서생물(갑각류, 조개류 등)이나 어류는 물론이요 포유류나 조류, 곤충류도 서식할 수 있는 독자적인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텐센트의 넷시티가 지향하는 바가 테크놀로지로 구축된 맹그로브-시티이다. 디지털 맹그로브 숲에서 만인과 만물이 공생하면서 생산력과 생활력과 생명력이 공진화하는 미래형 강소도시를 실험하는 것이다. ‘숲은 생각한다’ 고 한다. 앞으로는 디지털 포레스트, 도시도 생각한다.
알리바바의 시티브레인과 텐센트의 넷시티가 합류하는 곳도 있다. 양사는 물론이요 중국의 3대 통신사인 차이나 모바일, 차이나 유니콤, 차이나 텔레콤도 동참하는 곳이기도 하다. 세계 최초로 오로지 5G로만 작동하는 도시이자, 세계 최초로 블록체인으로 운영되는 도시이며, 세계 최초로 재생에너지로만 가동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세계 최고의 스마트그린시티를 표방하며 만들어지고 있는 미래도시가 바로 슝안신구(雄安新区)이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상징하는 도시가 션젼이었다면, 슝안은 시진핑 시대를 대표하는 미래도시가 될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주창하고 있는 양대 미래문명이 바로 이 도시에서 합류하기 때문이다. 첫째가 생태문명이요, 둘째가 디지털문명이다. 디지털문명과 생태문명이 조화를 이루어 만개하는 미래문명의 정수를 슝안신구에서 구현해 내는 것이다. 도시의 70%가 녹지로 구성된다. 30%의 주거지는 디지털 문명의 총아로 운영된다.
2017년 4월 1일, 시진핑 주석이 직접 발표한 슝안신구의 비전은 네 마디로 요약된다. ‘글로벌한 비전, 국제적인 표준, 중국적인 특성, 미래지향적인 목표’이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21세기를 상징할 수 있는 미래도시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장차 200만 규모의 스마트-그린 시티를 지향한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함께 살아가는 글로벌 시티를 추구한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합일하고, 생태와 기술이 합류하며, 중국과 세계와 합심하는 ‘21세기의 장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장안은 북방의 유목문명과 중원의 농경문명을 결합시키고, 유라시아의 동과 서를 잇는 연결망의 허브였다. 그래서 동서남북의 모든 길이 장안으로 통하는 대당제국의 영광을 오래 구가했던 것이다. 슝안은 명명백백 장안을 역사의 거울이자 미래의 영감으로 삼는다. 새천년을 다짐하는 세기의 프로젝트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상징하는 미래도시가 될 것이다. 또한 슝안은 임박한 기후재난 시대 인류가 직면한 문명적 위기에 대한 중국식 응전이자, 세계에 제출하는 토탈 솔루션의 응집이라고 할 수 있다. 슝안의 성패를 통하여 우리는 중국의 미래를, 세계를 미래를, 인류의 미래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3. 디지털 시티로드
20세기 정보제국의 허브 AT&T 본사는 뉴욕에 자리했다. 뉴욕의 본래 이름은 뉴암스테르담, 신대륙의 새로운 암스테르담을 꿈꾸는 곳이었다. 구대륙의 암스테르담은 자본주의 제도를 발명한 곳이었다. 은행과 보험과 주식 등 근대 자본주의의 초석이 되는 금융제도를 설계한 곳이며 근대 자본주의의 핵심 주체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의 원조로 동인도회사가 발족한 곳이기도 하다. 신대륙의 뉴암스테르담은 구대륙의 온갖 구세력의 압박 없이 오로지 기업과 금융을 위한 신세계를 만들고자 했다. 기업을 위한 미래도시, 금융을 위한 미래도시, 대중을 위한 미래도시로 오늘날의 뉴욕이 설계된 것이다. 한마디로 산업문명에 최적화된 도시가 창조된 것이다. 산업문명의 최첨단을 달리는 미래도시를 확보함으로써 미국은 20세기를 석권할 수 있었다. 20세기에 만들어진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도시가 뉴욕을 선망하고 모방했다.
뉴욕이 상징하는 대도시가 21세기에도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늘날 40억 인구가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 100억 인구의 2/3가 도시에서 살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즉 앞으로 30억 이상이 살아갈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20세기 산업문명에 최적화된 도시 모델을 더는 적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교통, 에너지, 쓰레기 등등 인류가 경험하고 있는 온갖 사회적 문제의 근원에 도시화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재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왔고, 앞으로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산업문명 이후의 새로운 미래도시를 창안해야 한다. 그 미래의 신문명도시를 가장 먼저 창조하는 나라가 21세기를 손에 쥐게 될 것이다.
세계 최대의 인구 대국으로 도시화의 압박이 가장 큰 나라가 중국이다. 그만큼 사활적으로 미래형 스마트시티 건설에 국가의 명운을 걸고 있다. 데이터 공유 기술, 사물 인터넷, AI 거너번스 등등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디지털 인프라와 스마트 그리드를 총동원하여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고 에너지 효율성은 극대화하고 인민들의 삶의 질은 높여야 한다. 즉 우리는 농업문명도시와 산업문명도시를 지나 새롭게 도래하고 있는 미래문명도시의 여명기를 살아가고 있다. 디지털문명의 결정판도 결국 도시에서 판가름날 것이다. 스마트폰과 스마트카는 전반전이었을 뿐이다. 스마트홈과 스마트시티로 만들어지는 스마트스테이트가 등장할 것이며, 그 스마트한 국가가 주도하여 스마트한 뉴월드, 스마트월드를 이끌고 갈 것이다.
중국이 표방하고 있는 2035년 미래도시의 핵심 개념은 셋이다. 첫째가 그린(Green)이요, 둘째가 인텔리전트(Intelligent)이요, 셋째가 라이어블(Liable)이다. 지능적이고 생태적이어야 만인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미래도시가 된다. 디지털문명과 생태문명이 결합되어야 살아갈 만한 도시가 된다는 것이다. 이 미래도시를 구성하는 모든 이와 모든 것은 지능이 장착되어 실시간으로 연결될 것이다. 즉 미래도시는 더 이상 도로와 수로 등 뼈대와 혈관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브레인과 척수와 신경망으로 연결된 신체에 가까워질 것이다. 즉 지구 위 인류의 문명이 비로소 생명체에 유사해지는 것이다. 자연을 거스르며 출발한 인류의 문명이 끝내 자연에 근접하는 단계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때의 ‘신자연’이란 기왕의 무위자연이 아닐 것이다. 지질권과 생물권과 인간권과 기술권이 통합된 지구사의 새로운 생태계로 진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인공생태계는 디지털 트윈을 통하여 실물세계와는 별개의 가상세계마저 거울상으로 확보하게 된다. 1+1, 두 개의 새로운 세상이 0과 1의 조합으로 창조되는 것이다. 우리는 말 그대로 ‘세계 2.0’, 빅뱅 이후의 딥뱅(DEEP BANG), 디지털 창세기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 디지털 창세기의 터전이 될 미래도시 또한 살기 좋은 도시보다는 ‘살아 있는 도시’에 가까울 것이다. 도시 자체가 대지와 대기와 대양의 흐름에 실시간으로 반응하고 대응하고 적응해가는 또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 살아있는 도시라는 새로운 유기적 생명체는 중국 안에서만 번영하지 않을 것이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강하다는 것이 진화론의 골자이다. 디지털 진화 또한 동일한 원리일 것인 바, 이 살아 숨쉬고 살아 움직이는 생명도시는 중국이 구축하고 있는 일대일로를 따라 전 지구로 확산되어 갈 것이다. 마침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스마트 인프라는 신흥 시장에 집중되어 있다. 앞으로 30년, 2050년까지 인구 성장의 절반 이상이 아프리카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 아프리카에 깔려 있는 4G 네트워크의 70% 이상이 화웨이이다. 5G는 100% 화웨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디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지어진 아프리카 연합(AU) 본부 건물도 중국이 투자하고 건설한 것이다. 정보와 통신 인프라까지 전부 중국이 제공하여 온라인-오프라인 테크놀로지가 결합된 완성체를 공급한 것이다. 아프리카의 스마트한 통합을 중국이 후견하고 있는 셈이다. 즉 아프리카의 동서남북으로 흘러 다니는 정보와 지식과 데이터가 중국이 깔아준 길에서 오고 가게 된다는 뜻이다. 말과 말이 오고 가는 커뮤니케이션부터 돈과 돈을 주고 받는 파이낸스까지 중국의 길 위에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동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와 동유럽의 벨라루스는 중국의 인공위성을 통하여 연결되고, 중국이 만든 파키스탄과 지부티의 해저 케이블을 통하여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디지털 세계에서 접속한다.
즉 중국의 디지털 일대일로는 새로운 제국의 탄생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19세기 영국처럼 세계의 절반을 식민지로 만들지 않는다. 20세기 미국처럼 세계의 도처에 군사기지를 건설해 경영하지도 않는다. 스마트 인프라를 보급하고 스마트시티를 공급하면서 무력의 행사와 군사력의 투입 없이도 지능적으로, 지혜롭게, 노회하게 미래의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전 지구에 눈과 귀를 장착한 네트워크를 장악하면서 탈영토화된 미래형 제국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스마트 시티로드의 금융과 에너지 등 모든 정보는 빅어스데이터(Big Earth Date)로 수합되고 융합될 것이다. 남아메리카 아마존에서 작동하고 있는 트랙터의 에너지 소비까지 실시간으로 파악될 것이다. 이처럼 모든 곳과 모든 것의 데이터가 추적되고 축적이 되면 미래를 예측(Deep Earth Decision)할 수 있게 된다. 다가오는 재난에 대한 조기 경보를 알리고, 초기 대응 체계도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즉 미리 보고, 앞서 행동하는 선견지명(先見之明)이 테크놀로지를 통해 획득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래를 가장 앞서 파악하고 미래를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미래 세계에서 갑작스러움과 놀라움은 과거의 일이 될 것이다. 예측 밖의 사태 또한 사라져갈 것이다.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자연스러운 세상이 될 것이다. 20세기의 자동화와 21세기의 자율화의 궁극적 도달점이 새로운 자연세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비로소 자유로워질 것이다. 이 새로운 테크노-네이처로 작동하는 새로운 행성에서는 새로운 계획경제도 가동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뉴 플래닛(New Planet)의 뉴 플래닝(New Planning)이 가능해질 법 하는 것이다. 20세기의 계획경제가 실패한 것은 일국 단위로 쪼개진데다가 그 한 나라 안의 정보와 데이터 또한 온전히 파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손’과의 경쟁에서 무참하게 패배했던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전 지구적으로 모든 이와 모든 것과 모든 곳의 모든 때를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홀어스(Whole Eaerth) 홀이코노미(Whole Economy), 전 지구적 한살림의 가능성이 무궁하게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 살아 움직이는 ‘디지털 플래닛’, 빅데이터로 맥동이 뛰는 ‘가이아 2.0’, “테크노-가이아”의 미들 킹덤으로, 허브(hub)이자 심장(heart)으로 테크노-차이나가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중국의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오래된 새 길을 따라와보니 전혀 새로운 모습의 옛 세계가 울울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2049년의 멋진 신세계, 스마트월드에 당도하신 걸 환영한다.
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개벽학은 동학 창도 이래, 이 땅의 자각적 사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겠다는 뜻이다. 동녘의 오래된 유학과 서편의 새로운 서학이 합류한 문명의 융합을 거대한 뿌리로 삼는다. 그러함에도 한국학, 한 나라에 한정되지 않는다. 북구부터 남미까지, 인도양부터 시베리아까지, 지구적 규모로 정보를 수집하고, 지구적 단위로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특히 인간이 창조한 인공의 세계, 인공지구와 인공생명과 인공지능의 도래를 주시한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진화는 물론이요, 인간 이후의 자율적 진화에, 인간만의 자각적 진화를 두루 아울러야, 지구의 진화에 일조할 수 있는 미래학자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간의 공진화, 생명과 기술과 의식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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