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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자인의 두 가지 기원

디자인은 사람과 사물의 상호작용이야. 그래서 디자인은 사물을 지칭하는 명사이면서 사람의 행위를 말하는 동사이기도 하지. 명사로서의 디자인은 주로 멋진 상품 혹은 서비스를 가르키고 동사로서의 디자인은 계획하는 과정이자 태도를 의미해. 앞서 나는 언어와 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디자인의 개념을 말해왔어. 오늘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려고 해. 동사로서의 디자인, 즉 태도로서의 디자인이야.

디자인은 사람이 생존하고 살아가기 위한 근본적인 행위야. 디자인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사용한다는 점에서 디자인과 관련된 이야기는 모두 사람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 디자인 그 자체가 사람의 문화이자 문명이지. 이 칼럼의 제목이 ‘문명디자인’인 것도 이 때문이야. 그래서 디자인을 말하려면 디자인에 바탕이 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지. 생존 기술 차원에서 디자인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끝도 없을거야. 호모 사피엔스의 돌도끼도 디자인이고, 호모 에렉투스의 불 다루는 기술도 디자인이니까. 아마 태초의 인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거야. 하지만 이런식으로 디자인을 확장하는 건 곤란해. 그럼 인간 활동의 모든 것이 디자인이 되어 버려서 우리 시대의 현대 디자인 개념에서 멀어지거든.

현대 디자인 개념은 산업혁명과 관련이 높아. 디자인 과정 자체가 공장식 대량생산에서 비롯되었거든. 본래 전통 산업활동에서 디자인 개념은 없었어. 예술과 공예만 있었지. 산업혁명 이전 예술과 공예는 나름의 역할과 분야가 나누어져 있었어. 예술은 정치와 종교, 공예는 산업와 상업의 영역 구분이 있었지. 하지만 공장식 기계 생산이 시작되면서 예술과 공예의 경계가 무너졌어. 일자리가 간절한 일부 예술가들이 공예 영역인 산업 분야에 참여하기 시작했거든. 가령 영국 도자기 회사인 웨지우드(Wedgwood)는 제품 이미지와 장식을 담당할 예술가들을 고용했어. 예술가들의 활약으로 상품경쟁력이 높아졌고 각종 산업박람회에서 장식적인 상품들이 선호되었지. 급기야 국가 차원에서 산업 예술의 역할을 장려하기 시작했어.

물론 다른 한편으로 전통 예술을 고수하는 사람도 있었어. 정치혁명으로 신분제도가 붕괴된 이후 아카데미 출신 예술가들은 모든 구속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예술을 추구했지. 이들은 산업활동에 참여하기 보다는 귀족처럼 고귀한 예술가로 남기를 원했지. 산업혁명은 전통 공예에도 큰 타격을 주었어. 전통 수공업은 기계공업과 경쟁이 되질 않았지. 생산력과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 각종 공예 길드는 해체되기 시작했고 공예가들은 살길이 막막해졌어. 이렇듯 산업혁명으로 전통 예술과 공예 생태계는 붕괴되었고 예술가와 공예가들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쳤지.

예술과 공예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현대 디자인 개념과 분야가 형성되었어. 영국의 미술사가인 페브스너(Nikolaus Pevsner, 1902~1983)는 『현대 디자인의 선구자들』에서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를 최초의 디자이너로 꼽아. 모리스는 미술작품을 만들고 건축활동도 했지만 전문 미술가나 공예가는 아니었어. 오히려 노동운동가나 문학가에 더 가까웠지. 자본가로서 공장과 출판사도 운영했어. 사상가이자 정치인으로 유명했고 최근엔 환경운동가로 여겨지기도 해. 요즘으로 치면 N잡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당시 유럽은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어. 일찍이 마르크스 사상에 심취했던 모리스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예술가였지. 때문에 마르크스 이념을 따르던 예술가들 상당수가 모리스에게도 영향을 받았어. 20세기 디자인 개념을 확립한 바우하우스(Bauhaus, 1919~1933)의 설립 이념에도 모리스의 사상이 깊이 배여 있거든. 이 학교 설립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독일 사회주의 혁명에 참여했던 마르크스주의 예술가들이었으니까.

모리스는 예술적 노동의 가치와 시대를 대표하는 양식성을 주장했어. 때문에 모리스는 디자인의 시대적 이념과 규격화를 정립한 최초의 현대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모리스 이후 100년 동안 세상은 급격히 변했고 이에 따라 디자인 개념도 변화했어. 대량생산을 위한 프로토타입을 넘어 프로세스의 혁신으로 확장되고 있지. 더불어 디자인의 주요 키워드도 ‘대량생산’보다는 ‘혁신’이 강조되고 있지. 달라진 디자인 개념을 반영한다면 최초의 디자이너는 모리스보다 더 적당한 인물이 있어. 바로 근대 사상의 아버지이자 최초의 근대인이라 불리는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야.

대량생산을 위한 프로토타입 즉 디자인 표현에 있어 모리스가 선구자라면,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정 즉 디자인 태도에 있어 선구자는 데카르트라 할 수 있어. 태도와 표현을 유전자 반반으로 친다면 데카르트와 모리스가 디자인의 부모인 셈이지. 페브스너 이후 모리스는 이미 많은 디자인 역사 책에서 언급되고 있어. 하지만 데카르트를 언급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지. 적어도 나는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 그럼에도 내가 왜 데카르트를 현대 디자인의 기원 중 하나로 꼽는지 좀 더 이야기해 볼게.

 

2. 생각 ‘하는’ 사람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이 진리는 아주 확고하고 확실한 것이고, 회의론자들이 제기하는 가당치 않은 억측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임을 주목하고서, 이것을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일원리로 거리낌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 『방법서설(Discours de la méthode)』 데카르트

데카르트는 생각으로 가장 유명한 철학자야.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말은 자신은 이제 신 중심의 세상에서 벗어나 이성 중심의 세상을 살겠다는 선언이야. 이성(理性)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인간의 능력’이야. 한국말로 풀면 ‘생각하기’라고 볼 수 있지. 데카르트는 객관적인 신에 의해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 이성에 의해 ‘생각하는’ 삶을 살겠다고 선언한 셈이지.

당시는 종교전쟁이 한창인 동시에 과학혁명이 시작되고 있었지. 종교적 신념과 과학적 이념이 부딪치는 시기였지. 이탈리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슈퍼스타였어. 망원경을 발명하는 등 기존의 통념과 학설을 뒤집는 과학적 결과물을 많이 내놓았지. 갈릴레이의 종교재판은 아주 유명했어. 그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의 학설을 계산으로 증명했는데 교황청에서 이를 용납하지 않았지. 결국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을 받고 여생을 가택에 구금되어 살았어.

데카르트는 갈릴레이의 소식을 듣고 분노했어. 이미 세상은 전통 카톨릭의 구교와 새로운 프로테스탄트인 신교 사이의 30년 종교전쟁(1618~1648)으로 피폐해졌고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도 많이 무너졌지. 그나마 자연 과학이 유일한 위안이었어. 도덕과 윤리가 무너진 세상에서 과학의 원리만이 신의 권능을 증명할 수 있었지. 영국의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 1578~1657),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 등 당대의 혁신적 지식인들은 대부분 과학적 지식과 태도로 무장되어 있었어. 데카르트도 산술학과 기하학을 융합해 해석기하학을 정립하고 과학에 근거한 철학을 주장하는 등 혁신적인 활동가 중 한 명이었지.

나는 내 스승들로부터 해방되는 나이가 되자 학교 공부를 집어치워 버렸다. 그리고 내 자신 속에서 혹은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학문 외에는 어떤 학문도 찾지 말자고 다짐했다.” – 『방법서설』 데카르트

위 인용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데카르트는 전통적 가르침과 스스로를 단절시켰어. 고전과 경전을 버리고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을 선택했지. 스승들의 가르침이 아닌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만을 믿기고 결심한거야. ‘신의 생각’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내 존재의 근거로 삼겠다는 의미지. 이제 남은 것은 나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이야. 근거가 바뀌면 방법도 바뀌기 마련이니까. 그 방법을 정리해서 쓴 책이 바로 그 유명한 『방법서설』이지.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을 쓰기 전에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Regulae ad directionem ingenii)』을 정리했어. 이 글에 데카르트의 생각 방법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간단하게 말하면 어떤 대상에 대해 알고 싶으면 먼저 그 대상을 분해하는 거야. 사람은 대상을 판단할때 겉과 속을 동시에 생각해. 감각적 겉모습은 맥락에 따라 색이나 형태 등이 변하기 때문에 본질로서 믿을 수 없지. 대상의 본질을 알려면 속을 봐야만 해. 겉은 감각적으로 보이지만 속은 알 수가 없어. 속에 있는 것들을 보려면 대상을 쪼개고 분해해 봐야지. 그리고 분해된 요소들을 다시 본래대로 조립할 수 있어야 해. 그래야 요소들의 작동 원리가 이해되니까. 가령 라디오의 작동원리를 알고 싶다면 라디오 부품을 전부 분해해서 나열하고, 다시 조립해서 라디오가 작동되면 라디오의 작동원리를 알게 되는 셈이지. 데카르트는 이런 방법으로 세상에 대해 알 수 있다고 생각했어.

데카르트는 철학자로서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 했어. 그는 먼저 사람을 육체와 정신으로 분해했어. 당시 신학에선 사람을 전체적 존재로 여겼기에 상당히 획기적인 시도였지. 사람을 육체와 정신으로 구분한 데카르트는 정신은 신이 불어 넣어주셨고 몸은 기계처럼 작동한다고 주장했어. 마치 라디오처럼 분해 조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지. 실제로 사람 몸을 로보트처럼 묘사하기도 했어. 그러니까 데카르트에게 사람이란 존재는 로보트와 같은 물질 안에 신이 주신 정신이 깃들어있는 셈이야. 그래서 데카르트는 사람의 존재 근거는 육체가 아니라 정신, 즉 생각에 있다고 주장하게 되었지.

데카르트는 기존의 학설과 사상을 의심했기에 이런 주장를 할 수 있었어. 스스로 생각 ‘하는’ 존재라 믿었기에 자신만의 방법론도 정립할 수 있었지. 나는 이런 점이 우리 시대에 요구되는 태도라고 생각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선 앞선 선배들의 말에만 기대서는 안되. “선생님 이야기는 이십년 전 이야기지요”라는 김수영(金洙暎, 1921~1968) 시인의 말처럼 선생님과 선배들의 말만 믿고 따르면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힘들지. 이런 점에서 데카르트는 현대인이 가져야 할 소양, 스스로 생각 ‘하는’ 태도의 모범이었다고 볼 수 있지.

 

3. 요소결합체와 속성통합체

전문가란 무엇일까? 한국말에서 ‘무엇’은 ‘무리 짓다’와 관련이 있어. 한국말 언어학자 최봉영은 한국말 “무엇”은 “무리”, “묻다”, “물음” 등과 바탕이 같다고 말해. 한국사람이 어떤 것을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어떤 것이 “어떤 무리”에 속하는지 분류하는 일이지. 즉 “무엇이냐”는 “어떤 것”이 “어떤 무리”에 들어가는지 묻는 말이라고 말할 수 있어.

한국말 ‘무엇’은 분류를 의미해. 분류를 하려면 데카르트의 방법론인 분해와 조립이 선행되어야 해. 사람은 언어 개념을 갖고 있어. 어린아이는 성장하면서 많은 언어적 개념들을 깨닫고 배우게 되. 이 언어 개념을 중심으로 경험을 분해해 이해하게 되지. 개념과 짝을 이루는 말은 ‘범주’야. 개념(concept)이 내 안에 있는 생각이라면 범주(category)는 내 밖에서 감각되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어. 사람은 개념을 바탕으로 범주들을 분해해서 이해하고, 새로운 범주들을 기반으로 개념을 재조립하지. 이 과정은 모두 언어에 축적되. 가령 오늘 아침 우리 아이는 ‘허리케인’이 무엇이냐고 물어봤어. 나는 “태풍과 비슷한 한 아주 센 바람”이라고 대답했지. 아이는 ‘허리케인’이라는 생소한 범주를 기존에 알고 있던 ‘태풍’과 ‘세다’ ‘바람’이라는 개념으로 분해해서 이해했을 거야. 허리케인이라는 범주가 추가되면서 태풍과 바람 개념도 재조립되었겠지. 이렇듯 사람은 개념과 범주의 분해+조립을 통해 자신의 경험이 어떤 맥락에 있는지 이해할 수 있어.

다시 질문으로 돌아오면 ‘전문가’란 특정 분야에 있어 ‘무엇=분해+조립=분류’를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분해와 조립을 통해 전문적 분류를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전문적 분류는 대체로 언어로 구성되어 있어. 전문적 역량이 있다는 것은 곧 그 분야에 대한 언어개념과 범주 경험이 풍부하다는 의미지. 전문적인 언어가 있어야 전문적 설명을 할 수 있으니까. 전문가도 몰랐던 새로운 범주가 발견되면 어떻게 될까. 걱정할 필요없어. 이 범주 또한 어느 전문가에 의해 새로운 언어 개념으로 조합될테니까.

세상의 모든 대상이 분해 가능한 것은 아니야. 때론 분해가 불가능한 것도 있지. 라디오와 같은 기계는 분해 재조립이 가능하지만 살아있는 생명체는 분해할 수 없지. 분해하면 죽은 존재가 되니까. 그렇지만 언어적 개념은 가능해. 사람은 몸과 마음, 머리, 심장, 콩팥 등 개념으로 분류하는 언어를 갖고 있기에 관념적인 개념 분류는 가능하지. 그렇다고 사람을 분해 조립할 수는 없어. 최근 줄기세포와 유전자 조합 등 다양한 기술들이 발달하고 있지만 아직은 살아있는 존재를 분해한 뒤 조합해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

생명체를 분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전체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야. 사실 자연에 있는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어. 공기와 물 없이 사람이 살아갈 수 없듯이 살아있는 생명체는 지구와 우주 전체에 하나로 연결된 존재라고 할 수 있어. 중세 신학만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생각을 했어. 서양사상이든 동양사상이든 세상이 모두 연결되었다고 보는 전체론 관점을 갖고 있었지. 그럼에도 데카르트는 육체와 자연은 기계처럼 분해와 재조립이 가능하다는 도발적인 생각을 했던 것이지. 이후 세상의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유기체론과 분해조립이 가능하다는 기계론이 서로 대립하게 되었어

나는 유기체적 전체론과 데카르트의 기계론 둘 모두 맞다는 생각이야. 문제는 맥락이지. 최봉영은 『주체와 욕망』에서 대상과 인식에 따라 ‘요소결합체’와 ‘속성통합체’를 구분해. 요소결합체는 레고나 기계처럼 요소로 분해 조립이 가능한 대상을 말해. 데카르트의 기계론과 유사하지. 반면 속성통합체는 생명체처럼 분해가 불가능해. 속성통합체는 다양한 속성이 있고 이 속성들은 맥락에 따라 다양한 양태로 드러난다는 관점이야. 사람의 감정은 속성통합체야. 사람 안에는 희노애락 등 다양한 감정이 속성으로 내재되어 있기에 맥락에 따라 특정 감정이 양태로 드러나지. 그래서 속성통합체는 전체론 입장이라고 볼 수 있어.

기계론과 전체론, 즉 요소결합체와 속성통합체는 모두 중요해. 단지 맥락에 따라 적절성이 달라진 뿐이지. 나는 사람을 말할 때 두 가지 용어를 사용해. ‘사람’은 살아있는 대상을 의미할 때 사용하고, 기계적인 대상을 의미할 때는 ‘인간’이란 말을 쓰지. ‘사람’은 속성통합체적인 태도, ‘인간’은 요소결합체적인 태도로 언어 개념을 구분하는 것이지. 가령 수술을 앞둔 의사는 어떤 개념적 태도가 적절할까? 나는 ‘인간’을 대하는 요소결합적 태도여야 한다는 생각이야. 그래야 정교한 수술을 할 수 있으니까. 반면 몸의 상태를 진단하는 의사는 ‘사람’을 대하는 속성통합적 태도를 가져야해. 사람의 몸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지. 이처럼 의료활동에 있어서도 개념적 태도를 구분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어.

 

4. 디자인 ‘하는’ 사람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두 가지가 있어. 문제 제기와 문제 해결. 언제나 둘은 동시에 있지 않아. 보통 불만족에서 문제가 비롯되기 때문에 문제 제기자는 불평불만자에 가깝지. 문제를 제기하는 불만자는 기존 디자인 프레임에 빠져있기에 문제의 전체 맥락을 보기 어려워. 반면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은 기존 디자인 프레임에서 벗어난 사람이야. 문제의 맥락을 볼 수 있기에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해결할 수 있는 태도를 갖고 있지. 이런 태도가 바로 디자인의 태도야. 앞선 칼럼에서 말했듯이 디자이너는 문제를 스스로 제기하지 않기에 늘 해결자적 태도를 유지할 수 있지.

불평불만자가 디자인 ‘되는’ 수동적 상태라면, 해결자는 디자인 ‘하는’ 능동적 태도라고 볼 수 있어. 우리가 소위 전문가라고 부르는 사람은 대부분 해결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어. 디자인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라는 점에서 모든 전문가는 해당 분야의 디자이너라 할 수 있지. 그래서 현대사회의 난제들, 즉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는 언제나 전문가들이 있지.

전문가는 문제를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야. 비슷한 문제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고 나름의 해결책을 갖고 있지. 이런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조금이나마 예측할 수 있어. 문제에 처한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지침과 위안을 줄 수 있지. 산업 디자이너도 이런 전문가 그룹 중 하나야.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디자인’이란 말은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전문적인 느낌을 주지.

과학과 달리 디자인은 실험 실습이 불가능해. 그래서 디자인 문제는 언제나 예측하기 어려워. 디자이너가 디자인 문제를 잘 해결하기 위해선 해결하려는 대상이 ‘요소결합체’인지 ‘속성통합체’인지를 결정해야 해. 요소결합적 문제라면 먼저 문제를 새롭게 분해+조립할 필요가 있지. 새로운 분해를 통해 새로운 조합을 발견할 수 있어. 이 새로운 조합이 문제의 맥락을 변화시켜 문제를 해결하곤 하지. 반면 문제가 속성통합체라면 먼저 문제를 둘러싼 맥락을 찾아야해. 맥락 변화에 따라 어떤 속성들이 드러나는지 살펴야지. 이를 통해 부족한 속성은 채우고, 필요한 속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겠지. 요소결합적 디자인은 전경으로서의 섬세한 프레임(언어개념)이 요구되고, 속성통합적 디자인은 배경으로서의 맥락적 확장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지.

데카르트와 같은 역사적 인물을 살필때는 사람 자체를 분석하기 앞서 그가 살아갔던 시대적 맥락을 고려해야해. 데카르트가 어떤 시대에 살았고 어떤 태도를 가졌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생각해봐야지. 데카르트가 살았던 시대는 전쟁과 더불어 모든 것이 변화하는 시대였어. 마치 지난 20세기처럼. 이런 상황에선 디자인 ‘되는’ 사람보다는 디자인 ‘하는’ 사람이 역사를 이끌어 가게 되지. ‘최초의 근대인’이라 평가받는 데카르트는 시대를 앞서 살았던 사람이야. 데카르트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서 자신의 삶과 역사를 스스로 만들어갔어.

디자인도 마찬가지야. 윗 세대의 말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태도가 디자인 ‘되는’ 삶이라면, 세상을 의심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극복하는 태도는 디자인 ‘하는’ 삶이 되는 거야. 데카르트는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디자인하는 사람의 태도를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지. 이는 문제 해결을 위한 디자이너의 태도와 아주 유사해.

데카르트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중세 기독교의 속성통합체적 태도를 버리고 요소결합체의 과학적 방법론을 선택했지. 하지만 우리 시대는 거꾸로야. 우리는 최근의 과학을 통해 육체와 정신은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 정신의 근거로 여겨지는 ‘뇌’의 신경세포는 몸 전체에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으니까. 육체와 정신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의 존재라는 고전적인 중세 신학의 입장인 셈이지. 즉 우리 시대는 요소결합체적 태도에서 속성통합체적 태도로 변화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지.

우리 시대는 모든 것이 연결된 네트워크 상태로 존재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이념은 우리 시대와 맞지 않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데카르트의 ‘생각하기’ 철학은 여전히 유효해. 특히 분해와 조립이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새로운 관점을 이끌어 냈다는 점은 아주 중요하지. 이 방법론 덕분에 근대 과학과 예술, 디자인 크게 도약할 수 있었거든. 다음 칼럼들에서 조금씩 그 이유를 알게 될거야.

윤여경

그래픽디자이너이자 디자인 교육자이다. 그린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디자인이 사람과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현재 경향신문과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디자인 공부 공동체인 ‘디학(designerschool.net)’에 참여한다. 쓴 책으로는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X축》(스테파노 반델리, 2012) 《런던에서 온 윌리엄모리스-그는 왜 디자인의 아버지인가》(지콜론북, 2014) 《역사는 디자인된다》(민음사, 2017) 《아빠 디자인이 뭐예요》(이숲, 2020)이 있으며, 공저로 《디자인 확성기》《디자이너의 서체 이야기》(지콜론북)가 있다. 이 외 〈다른 백년〉, 〈디자인 평론〉, 〈경향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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