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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언어의 단면과 구성 요소들

수소와 산소 같은 물질을 분석하기 위해 먼저 물질을 쪼개야 해. 쪼개진 단면을 통해 물질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특징과의 관계를 살펴야 하지. 그래서 물리학은 물질을 얼마큼 쪼개서 분해하느냐가 아주 중요해. 현대 양자물리학은 물질의 기본 구성단위인 원자까지 쪼겠어. 원자가 양성자와 전자 등 다양한 소립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까지 파악했지.

내가 생각하는 언어의 구조는 양자물리의 구조와 닮아 있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4차원 세계라고 할 수 있어. 4차원이란 시간까지 고려한 인식이야. 공간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지. 언어 현상을 이해하려면 먼저 시간을 제거해서 3차원 공간으로 바꿔야 해. 변화가 없어야 현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으니까. 과거 서양 철학도 변화하는 시간을 제거한 절대 공간을 바탕으로 현상을 파악해 왔어. 아무튼 언어의 구조를 알기 위해선 시간에 따른 언어의 의미 변화를 제거해야 하지. 어원을 찾던 역사언어학이 소쉬르에 의해 구조언어학으로 변화된 것이 바로 이런 경우야. 소쉬르는 언어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 언어의 시간적 의미 변화를 무시하고 언어의 공간적 구조 맥락을 파악했어. 즉 언어 기호(sign)의 구조를 기표(겉, 형태)과 기의(속, 의미)로 구분했지.

3차원 구조도 복잡해. 우리가 3차원으로 건축도면을 본다고 생각해 봐. 하나의 관점으로 건물 구조를 파악하기는 불가능해. 앞과 뒤, 옆, 위 등 여러 관점을 동시에 살펴야 하지. 특히 내부 구조는 거의 파악하기 어려워. 건물의 내부 구조를 알기 위해서는 직접 들어가 봐야 하는데… 들어가 본다고 복잡한 내부 구조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사실 내부 구조를 알려면 방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어. 바로 건물의 2차원 단면을 살피는 것이지. 위 그림에 나온 단면도처럼 말이야. 이 도면은 감옥 구조를 상상했던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의 파놉티콘(Panopticon)이야. 벤담은 가장 효율적으로 사람들을 감시할 수 있는 감옥의 구조를 상상했어. 그래서 위와 같은 도면을 그렸지. 3차원을 2차원으로 바꾸면 그 안의 구성요소들과 관계들이 보여. 아파트 단면도를 보면 방의 개수와 위치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사실 우리가 흔히 보는 지도나 내비게이션도 대부분 2차원 평면도 형식이야. 그래야 공간의 요소들과 도로의 연결을 금방 이해할 수 있거든. 물질과 지도가 그렇듯이 언어도 2차원 단면으로 접근해야 언어 개념과 범주의 구성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야.

위 그림은 만화 이론가 스콧 맥클라우드(Scott McCloud, 1960~)의 『만화의 이해(Understanding Comics)』에 나오는 얼굴 개념 도식(schema)이야. 이 도식에는 ‘얼굴’이라는 언어 개념의 다양한 이미지 범주들이 그려져 있지. 이 범주들이 바로 얼굴 개념을 구성하는 이미지 요소들이야. 이 삼각형 도식의 3개 꼭짓점에는 얼굴 개념의 극단적인 이미지 범주가 있어. 왼쪽 꼭짓점은 사실적인 얼굴 사진이고, 오른쪽 꼭짓점은 얼굴을 가장 단순하게 그린 이미지야. 눈과 입 등 얼굴 개념의 본질만을 남긴 그림이지. 그리고 위쪽 꼭짓점은 양쪽 꼭짓점의 얼굴 범주를 가장 단순한 점과 선, 면 등의 추상적 이미지로 쪼갠 상태라고 할 수 있어. 이 도식에서 보듯 얼굴이라는 언어의 ‘개념=범주’는 세 꼭짓점 사이에 다양한 이미지 스펙트럼을 갖고 있어서 우리가 ‘얼굴’이라는 말을 할 때 이 다양한 이미지들을 지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지. 덕분에 ‘얼굴’ 개념을 다양한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야.

앞선 칼럼에서도 말했듯이 처음 태어난 사람은 경험맹 상태야. 경험이 없으니 개념은커녕 범주도 없지. 갓 태어난 아이는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비슷한 경험들을 묶어 ‘원형적인 개념(prototype)’을 형성하기 시작해. 그러면 이 원형 개념을 중심으로 범주(Category)들을 구분하기 시작하지. 개념과 범주가 구성되는 방식은 양자와 전자가 구성되는 방식과 유사해. 개념이라는 양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범주들이 전자처럼 구름을 형성하지. 범주들이 쌓일수록 중심이 되는 원형 개념도 변화하기 시작해. 범주 경험에 의해 개념이 재구성되는 것이지. 이렇듯 언어의 2차원 단면 구조는 양자의 구조와 유사해. 원자를 쪼개면 중심에 양자가 있고 주변에 전자구름이 있듯이, 언어를 쪼개면 중심에 개념이 있고 주변에 범주 구름이 있어. 이 개념+범주의 구름이 사회적 실재인 언어로 환원되어 언어전달물질이 되는 셈이야.

개념+범주 구름의 2차원 단면은 맥클라우드의 얼굴 도식처럼 얼굴 개념을 구성하는 하나의 단면이야. 이 단면을 통해 다양한 범주 요소들을 살펴볼 수 있어. 얼굴 개념+범주의 도식처럼 다른 언어들도 이런 도식이 있지. 이 도식들이 사회적 실재인 단어(word)로 환원되고, 다양한 단어들이 결합되어 문장이 되는 거야. 문장은 단어의 맥락을 형성하기 때문에, 개념적 의미를 아주 정교하게 만들 수 있어. 단어가 개념=범주의 구름이라면, 문장은 개념과 범주를 품은 단어들의 구름이라고 볼 수 있지.

물리학의 평행우주론에서 다양한 시공간의 우주가 공존하듯이 언어도 다양한 개념들이 각각의 단어로 존재해. 그리고 2차원의 단어들이 자유롭게 결합되어 3차원의 새로운 개념 우주를 형성하는 것이야. 새로운 개념 우주는 또다시 새로운 개념이나 범주들을 만나면서 4차원적인 의미 변화를 하지. 어떤 범주의 경험과 어떤 개념의 단어가 결합(은유)되냐에 따라 매번 새로운 우주가 탄생한다고 할 수 있어. 가령 ‘날아가는 코끼리’나 ‘외계인 ET’ 등 현실에 없는 현상도 언어 우주에서는 언제든 자유롭게 구성될 수 있지. 그래서 사람의 말은 엄청난 창발성(emergence)을 갖고 있어. 창발성은 요소들이 결합되면서 각각의 요소들에 없었던 특징이 새롭게 등장한 상태를 말해. 융합에 의해 일어나는 새로운 현상이랄까. 우주의 모든 생명과 현상은 이런 결합과 융합에 의해 형성되고 진화되고 있어. 마찬가지로 사람의 언어도 이런 진화과정을 통해 현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겠지.

지금까지 설명해 왔듯이 사람의 소통은 단순하지 않아. 개인의 정서적 신경망과 개념망 그리고 집단의 사회적 언어망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지. 소통을 이해하려면 ‘그릇’ 은유를 떠올리면 돼. 사람은 ‘감각+지각’이라는 신경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생각+욕망’이라는 개념을 생성해. 이 개념을 언어라는 그릇에 담아야 해. 나는 개념을 담을 언어 그릇을 선택할 수 있어. 머그컵에 다양한 음료를 담을 수 있는 것과 유사하지. 다만 그릇이 용도에 따라 구분되듯, 언어 그릇도 개념의 유형에 따라 나름 구분되어 있어. 그래서 내 마음대로 개념을 아무 언어에 담을 수 없지. 그러면 의미 전달 즉 소통이 안 되니까.

나의 개념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려면 언어처럼 사회적으로 약속된 그릇이 필요해. 가령 어떤 경험이 너무 좋았으면 그 마음=개념을 담을 ‘기쁨’이나 ‘즐거움’이라는 언어 그릇이 필요하지. 기쁨이라는 언어 그릇에 나의 개념을 담아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다른 사람은 그 그릇에 담겨 있는 개념을 유추해 받아들여. 상대방에게 언어 안에 들어있는 나의 개념이 보이진 않지만 ‘기쁨’이라는 말을 통해 어떤 느낌인지는 추론할 수 있지. 사회적 언어 덕분에 정서적 개념 소통이 가능해졌다고 할까. 게다가 사람은 아주 정교한 언어체계와 다양한 단어 그릇이 있어서 다른 동물에 비해 아주 정교하고 섬세하게 나의 개념을 전달할 수 있어. 그만큼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도 높지. 사람은 이런 소통 시스템 덕분에 서로 힘을 합칠 수 있었고 동물의 왕으로 군림하게 되었다는 생각이야.

 

02. 모방과 재현, 편집과 구성

이제 소통의 흐름을 이해했으니 신경망 순환되는 각 단계별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감각 모방 : 자극과 반응

신경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정보 수집과 판단이야. 감각(sense)이 바로 이 역할의 선봉에 있지. 군대로 치면 전위부대라고 할 수 있어. 감각은 외부의 자극에 대한 반응이야. 세포가 하나인 바이러스는 감각만 있는 동물이라 자극이 오면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하지. 감각 동물이 자극에 반응하는 방식은 모방에 가까워. 사람의 신경 감각도 비슷해. 사람의 뇌에도 거울뉴런이 있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모방하는 경향이 있어. 사람이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는 것도 거울뉴런 덕분이지. 이렇듯 신경활동의 기본 바탕은 모방이야. 시신경은 정상인데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후배엽을 다친 사람에게 웃는 표정을 보여주면 웃는 표정을 짓거든. 뇌가 보지 못하더라도 눈 감각만으로도 상대방의 행동을 모방할 수 있는 것이지.

이렇듯 입력되는 감각은 그 자체로 외부를 ‘모방’한 객관적 상태라고 할 수 있어. 마치 사진처럼. 사진기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사람의 손으로 감각을 모방했어. 최대한 객관적으로 모방하려면, 즉 보이는 대로 똑같이 그리려면 타고난 재능과 더불어 많은 연습이 필요했지. 예술의 영어인 art의 라틴어 어원은 ars인데 이 말은 팔을 의미하는 arm과 발음과 형태가 유사해. 즉 art=ars는 팔의 탁월함과 연관되어 있다고 상상할 수 있지.

『두뇌 실험실(Phantoms in the Brain)』의 저자 뇌과학자 라마찬드란(Vilayanur S. Ramachandran, 1922~2001)은 자아(ego)의 원인을 생각이 아닌 감각에서 찾아. 감각을 느끼지 못하면 자아도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라마찬드란은 감각의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해. 첫 번째는 입력의 비가역성이야. 입력되면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이지. 입력은 밖의 정보가 안으로 들어오는 감각으로 경험되는 감각은 거부할 수 없어. 한번 느끼고 나면 그건 객관적 사실이 되어 버리지. 두 번째 특징은 단기기억적이라는 점이야. 동물은 단기기억을 통해 다음 행동을 어떻게 할지 결정해. 그리고 행동이 끝나면 단기기억은 잊히지.

사람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점은 기억이 길게 유지된다는 점이야. 사람의 기억은 크게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으로 구분돼. 중요한 정보는 장기기억이 되고, 중요하지 않은 정보는 단기기억에 그치지. 장기기억은 신경 연결망 구조를 변화시키는 반면, 단기기억은 연결망 구조를 변화시키지 않아. 감각은 종류가 다양하고 많아서 모든 정보를 기억할 수는 없어. 이 중 중요한 것들을 요약해서 저장해야 하지. 세 번째 특징은 출력의 유연성이야. 입력되는 감각은 그 자체로 모방하려는 경향이 있어. 그런데 사람마다 감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제각각이야. 그 이유는 기억 때문이야. 기억이 감각을 재구성하거든. 그래서 같은 현상을 경험하더라고 사람마다 감각 기억이 다를 수도 있지.

 

지각 재현 : 인지와 대응

기억으로 감각을 요약한 상태가 지각(perception)이야. 나는 근대의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가 지각 개념이 아닐까 싶어. ‘지각’에 대한 논의는 18세기 중반 즈음 시작되었지. 미학과 경험론이 등장했고, 근대철학의 초석을 놓은 칸트는 이성(생각하기)의 바탕에 지각이 있다고 말했어. 19세기부터 지각심리(게슈탈트심리)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지. 인간의 공통인식이 지각에 있다고 여겨졌으니까. 미술사가 곰브리치는 지각심리를 기반으로 서양 미술사를 썼어. 20세기 이후에도 지각에 대한 연구는 더욱 확대되었지.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 Merleau-Ponty, 1908~1961)도 지각을 바탕으로 현상학적 철학을 주장했어. 20세기 후반 뇌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감각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지각과 지각심리에 대한 연구는 더욱 깊어지고 있지.

감각이 몸의 정보 수집 활동이라면 지각은 뇌의 활동이야. 말초신경계의 감각 정보가 중추신경계로 들어오면 장기기억과 합쳐지게 되면서 감각 정보의 선택이 일어나지. 다양하고 복잡한 정보가 단순하게 정리된다고 할까. 이미지로 치면 사진이 단순한 픽토그램 같은 그림으로 전환된다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아무나 그릴 수 있는 그린 졸라맨이나 어린아이들이 그리는 그림일기는 대부분 지각화된 정보를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어. 즉 지각은 감각을 요약해 재현(representation)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

감각이 자극에 대한 모방적 반응이라면 지각은 인지에 대한 재현적 대응이라고 할 수 있어. 생명체로 치면 바이러스와 지렁이의 차이라고 할 수 있지. 지렁이는 바이러스와 달리 덩치가 크고 복잡한 환경에서 살아가.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자극 환경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지렁이는 감각 자극을 한번 정리하는 지각적 인지체계를 갖추고 있어. 감각만을 갖고 있는 바이러스는 자극을 그대로 모방해서 반응하기 때문에 특정 자극에 일관되게 반응하지만 지렁이는 지각을 갖추고 있기에 자극을 인지해서 판단을 하고 선택적 대응을 하지.

사람의 지각 영역은 중추신경계인 뇌에 있어. 뇌의 옆과 뒤쪽에는 감각 정보들이 지각으로 전환되는 영역들이 정교하게 구분되어 있지. 특히 시각정보 영역이 가장 커. 입력된 각각의 감각 정보들이 지각으로 전환되고 종합되면서 어떤 느낌을 동반하게 돼. 이 과정에 기억이 개입되지. 감각 범주들이 생각에 있는 기억을 중심으로 재배치된다고 할까. 이를 ‘지각적 채워 넣기’라고 말해. 이 과정이 범주화야. 그래서 지각은 범주가 기억 중심으로 분해되고 재조립되는 범주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

 

생각 편집 : 선택과 집중

범주화가 완성된 지각 정보는 다시 뇌의 앞쪽으로 보내져서 생각을 유발하게 돼.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정보의 바탕은 감각이 아니라 지각이야. 생각은 아주 복잡한 과정이야. 생각은 개념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데 개념은 고정되지 않고 범주화된 지각 정보에 영향을 받아 계속 변화해. 그래서 감각+지각하는 동물은 생각을 멈출 수가 없지. 특히 사람은 언어적 개념을 갖고 있어서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한 생각을 할 수 있어.

생각은 지각의 맥락을 편집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 편집을 하려면 먼저 여러 지각 정보들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해야 해. 지각 정보의 선택과 포기가 일어나지. 중요한 것은 또렷하고 크게 강조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생략하거나 흐릿하게 혹은 작게 처리하면 돼. 개념 구성 과정이 바로 이런 상태야. 사람은 경험을 분류해 개념을 만들어 낼 수 있어. 이때 개념들의 경계가 분명한 것은 아니야. 개념은 원형이 되는 중심이 있지만 이 중심은 고정되지 않고 언제든 변화할 수 있어. 개념의 원형을 깨는 강력한 범주가 나타나면 개념 원형도 재구성되지.

사람만이 아니라 포유류와 같은 큰 동물들도 생각을 할 수 있어. 개도 나름대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험을 분류하고 지각을 편집해 개념을 만들어내지. 예능프로 <개는 훌륭하다>을 보면 사람과 개 사이의 규칙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어. 조련사 강형욱은 먼저 개의 상태를 점검하고 반려견의 주인을 인터뷰하면서 둘의 개념 인식이 어디에서 틀어졌는지 살피고, 둘 사이의 새로운 규칙(개념)이 필요함을 설득하지. 그런데 개는 사람처럼 모든 영역에서 자유로운 개념 편집이 가능하지 않아. 먹을 것이나 움직임 등 생존에 관련된 특정 영역에 국한되어 있지. 그래서 먼저 사람이 생각을 통해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을 개에게 훈련시켜야 하지. 이건 반려견의 주인으로서 혹은 사람과 반려견 공동체의 리더로서 책임이라고 할 수 있어.

사람의 생각 편집은 크게 세 가지 요소가 개입된다고 할 수 있어. 개념과 범주 그리고 언어지. 세 가지 요소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계속 변화해. 감각은 각종 범주들을 공급하고 지각은 기억된 개념을 기반으로 범주들을 분해 조립해 범주화시키지. 개념을 중심으로 범주화된 정보들은 다시 개념을 변화시켜. 그리고 이 개념은 언어로 변환되지. 사람의 언어는 다양해서 각종 개념들을 담을 수 있어. 변화하는 개념에도 정교하게 대응할 수 있고. 가령 개는 코끼리를 경험하고 코끼리에 대한 몇 가지 개념을 형성할 수 있어. 반면 사람은 실제 코끼리 경험을 너머 날아가는 코끼리와 같은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낼 수 있지. 개의 개념 만들기가 실재 경험에 한정된다면 사람의 개념 만들기는 실제 경험을 넘어설 수 있지. 거의 무한대로 말이야.

 

욕망 구성 : 언어와 계획

사람은 언어적 개념을 갖고 있기에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어. 이게 바로 욕망이야. 개념 만들기가 예측활동이라면 욕망은 예측이 실현된 상태라고 할 수 있어. 우리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을 보듯이 먼저 개념을 형성해 놓고 다음 움직임을 계획하는 것이지. 물론 동물도 욕망이 있어. 다만 동물들의 욕망은 생존에 관련된 단기적 욕망만을 갖고 있지. 그래서 동물들은 감각에 크게 흔들리는 경향이 있어. 재밌는 놀이를 하던 애완견에게 먹이를 주면 놀이를 잊고 먹을 것을 따라가지. 반면 사람의 욕망은 그 범위가 무제한이야. 배가 고파도 건강을 우려해 굶을 수 있어. 사람의 욕망은 시공간을 초월하고 죽음 이후의 미래까지 생각해. 게다가 욕망 구성과 소통이 자유롭기 때문에 매력적인 감각을 부정할 수 있고, 원하는 감각을 선택할 수도 있지. 즉 욕망으로 감각을 통제할 수 있다고 할까.

욕망은 사람만의 특징이 아닐까 싶어. 사람은 고도로 발달된 언어적 개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먼 과거와 먼 미래를 상상할 수 있어. 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그림과 문자 매체를 갖고 있기에 과거 및 미래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지.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이 발달해 각종 SNS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소통하고 있어. 심지어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가상세계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도 하지. 메타버스는 현재의 디지털 기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야. 인류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자신들의 무한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현실을 초월한 새로운 시공간을 만들곤 했지. 이집트의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에는 이집트 사람들이 상상하는 사후 세계가 있고 고대 페르시아와 그리스 사람들은 신들의 세계를 상상했어. 또한 종교의 천국과 지옥 개념도 나름 메타버스라고 할 수 있지. 이런 메타 세계들은 대부분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언어 그 자체가 사람의 근본적 메타버스가 아닐까 싶어.

Huile sur toile (1925) de Vassily Kandinsky.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Paris, France. Donation Nina Kandinsky 1976. AM 1976-856

결론적으로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감각 범주에서 벗어난 개념의 구성력이야. 미술과 디자인에서 구성을 영어로 composition이라고 말해. 포지션(position) 개념을 계획해 범주를 모으는(com) 것이지. 구성을 하려면 먼저 대상을 분해해야 해. 분해된 것을 분류하고 다시 조립하는 방식이지. 마치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과 글자처럼. 흥미롭게도 현대 미술과 디자인은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이를 조금 어려운 말로 해체와 콜라주(혹은 몽타주)라고 말해. 과거 미술은 보이는 것을 그대로 묘사하는 방식으로 그려졌다면 현대 미술(디자인)은 추상 요소들을 활용해 욕망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지. 그림도 글과 같은 언어처럼 여겨진다고 할까. 지금 현대인은 이런 구성 능력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소통하면서 서로와 세계를 연결하고 있어.

최상단 사진 출처 : https://ar.pinterest.com/pin/4714774600882660/

윤여경

그래픽디자이너이자 디자인 교육자이다. 그린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디자인이 사람과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현재 경향신문과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디자인 공부 공동체인 ‘디학(designerschool.net)’에 참여한다. 쓴 책으로는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X축》(스테파노 반델리, 2012) 《런던에서 온 윌리엄모리스-그는 왜 디자인의 아버지인가》(지콜론북, 2014) 《역사는 디자인된다》(민음사, 2017) 《아빠 디자인이 뭐예요》(이숲, 2020)이 있으며, 공저로 《디자인 확성기》《디자이너의 서체 이야기》(지콜론북)가 있다. 이 외 〈다른 백년〉, 〈디자인 평론〉, 〈경향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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