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의 변) 우크라 전쟁의 최대 패배자는 아마도 푸틴 대통령 자신이 될 것이 거의 분명하다. 러시아의 경제를 최소한 20-30년 후퇴시킬 것으로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가운데, 전쟁을 일으킨 배경에는 물론 푸틴이라는 개인의 성격과 판단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도 1991년 소련연방 붕괴 이후 러시아 사회를 휘감고 있는 슬라브 민족주의의 재건에 대한 욕구와 국민들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린 러시아 역사종교적 배경이 더욱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일부에서 이번 전쟁을 350년에 걸친 서유럽과 러시아(유라시아)의 대결 또는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간의 천년전쟁으로 평가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러시아 역사를 전공한 뉴욕대학의 퇴임명예교수가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내용을 소개한다.
한 달이 넘도록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유혈공격은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주제입니다. 현재 시점에도 아파트 건물과 피난중인 시민들에게 쏟아지는 로켓과 미사일은 세계를 향한 러시아의 성난 얼굴입니다. 무엇이 러시아로 하여금 이렇듯 운명적인 조치를 취하게 하였으며 참으로 횡포한 국가가 되도록 선택하게 만들었을까요?
러시아의 침략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크게 두 가지 학설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푸틴 대통령 자신, 즉 그의 심리상태와 역사에 대한 이해 또는 KGB의 과거경력에 초점을 맞춥니다. 두 번째는 러시아를 둘러싼 외부의 환경, 주로 1991년 소련붕괴 이후 NATO의 무리한 동진정책을 갈등의 근본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해하려면 서방 지도자들의 정치적 꼼수와 푸틴의 개인적 조건을 넘어 조망해야 합니다. 푸틴 대통령의 입장과 열정 그리고 결단은 특별히 새롭거나 독특한 것이 아닙니다. 1990년대 이후로, 우크라이나와 구소련 연방국가들(CIS)을 대륙횡단 초강대국으로 재통합하려는 계획은 러시아에서 줄곧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활성화된 유라시아–제국 이론은 현재의 푸틴을 보다 확실하게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소비에트 연방의 종말은 거대한 공산주의 제국에 속하였던 러시아 엘리트들의 특별한 지위를 박탈하고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무엇을 해야 했는가– What was to be done? 일부 특권층의 사람들에게 해답은 자본주의 방식으로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 1991년 이후의 혼란한 시기에 이들은 방종한 정권과 함께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비에트 연방시절의 국가목표에 익숙했던 많은 사람들에게는 부와 활기찬 소비경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제국 이후의 자존심에 대한 상처와 함께 러시아의 위상과 중요성의 상실을 뼈아프게 느꼈습니다.
공산주의가 이념의 활력을 잃으면서 지식인들은 러시아 국가가 조직될 수 있는 다른 원칙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의 모색은 극단적인 민족주의, 반유대주의 운동을 포함하는 정당의 형성과 집단생활의 토대로서의 종교의 부흥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구체화되었습니다. 1990년대에 서구식 민주주의의 정치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러시아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자리를 잡았고 이를 통하여 세계에서 러시아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위안과 희망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가장 매혹적인 개념 중 하나는 유라시아–주의였습니다. 1917년 러시아 제국의 붕괴에서 나온 이런 생각은 러시아를 투르크계, 슬라브계, 몽골계 및 기타 아시아계 사람들 간의 문화교류의 깊은 역사에 의해 형성된 유라시아 정치체를 가정했습니다. 1920년에 개발된 이 개념에 대하여 한때 망명생활을 하였던 러시아 주요 지식인 중 한명인 언어학자인 Nikolai Trubetzkoy가 서구 식민주의와 유럽 중심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 “유럽과 인류”라는 저술을 출판했습니다. 그는 러시아 지식인들에게 유럽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칭기즈칸의 유산”을 바탕으로 러시아-유라시아 대륙에 걸친 거대한 국가를 건설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Trubetzkoy의 유라시아–주의는 공산주의가 없는 제국의 회복을 위한 대안이었습니다. 공산주의 대신 Trubetzkoy는 거대한 지역에서 수행되는 여러 종교를 믿는 신자들을 세심하게 보살피면서 유라시아 전역에 결속을 제공할 수 있는 활력을 러시아 정교회의 능력에서 찾을 것을 강조했습니다.
소련에서 수십 년 동안 억압되었던 유라시아–주의는 지하에서도 살아남았고 1980년대 후반 페레스트로이카 기간 동안 일반대중에게 널리 퍼졌습니다. 마침 소련의 감옥과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13년을 보낸 괴짜 지리역사학자 레프 구밀요프(Lev Gumilyov)는 1980년대에 유라시아 부흥의 유명한 구루로 부상하였습니다. 구밀요프는 세계사의 동인으로서 인종적 다양성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민족생성” 개념은 러시아 민족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의 영향 하에 “수퍼 민족”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확장을 통하여 거대한 영역에 퍼져 있는 다른 민족들을 통치하는 위대한 민족 권력이 생성된다는 것입니다.
Gumilyov의 이론은 혼란스러운 1990년대를 살아가는 많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어필했습니다. 이후 유라시아–주의는 자칭 철학자 Aleksandr Dugin이 개발한 변형에서 러시아 권력의 혈류에 직접 주입되었습니다. 소비에트 붕괴이래 서구식 정당정치에 실패한 후 Dugin은 군부와 정치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습니다. 1997년에 그가 작성한 “지정학의 기초: 러시아의 지정학적 미래”라는 제목의 600페이지 분량의 저술이 출판되면서 유라시아–주의는 러시아 전략가들의 정치적 상상력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Dugin이 유라시아–주의를 현재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과정에서 러시아는 더 이상 유럽의 일원이 아니라 미국이 이끄는 “대서양”전체에 저항하는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유라시아–주의는 반反제국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그의 반대였습니다. 러시아는 항상 제국이었고, 러시아 국민은 “제국의 국민”이었으며 “세계의 제국”이 되어야 합니다. 문명적 측면에서 Dugin씨는 동방정교와 러시아 제국 간의 장기적인 관계를 강조했습니다. 서구 기독교와 서구의 타락에 대한 러시아 정통의 종교는 다가올 지정학적 전쟁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유라시아 지정학, 러시아 정교회 및 전통적 가치 – 이러한 목표는 푸틴 대통령의 지도 하에서 비로소 러시아의 자아상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제국의 영광과 서구의 희생이라는 주제가 전국에 퍼져나갔습니다. 2017년, 그들은 기념비적인 전시회마다 “러시아, 나의 역사”라는 드럼을 쳤습니다. 엑스포의 화려한 전시물에는 구밀요프의 유라시아 철학, 로마노프 가문의 순교적 희생, 서방이 러시아에 가한 해악이 반복적으로 등장했습니다.
러시아 제국의 부흥에서 우크라이나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요? 처음부터 장애물로 간주되었습니다. Trubetzkoy는 1927년에 작성한 기사 “On the Ukrainian Problem”에서 우크라이나 문화는 “전全러시아 문화의 변방화”이며 우크라이나인과 벨로루시인은 공유된 정교회 신앙의 조직 원리를 중심으로 러시아인과 결속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Dugin은 1997년 자신의 텍스트에서 상황을 보다 직접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독자적 주권을 “유라시아 전체의 큰 위협“으로 제시했습니다. 흑해 북부해안 전체에 대한 군사적, 정치적 통제는 러시아 지정학의 “절대적인 명령”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중앙집중식 국가의 순수한 행정구역”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푸틴은 Dugin의 메시지를 마음에 새겼습니다. 2013년에 그는 유라시아를 러시아의 “유전자 코드”와 슬라브 민족들을 “극단적인 서구식 자유주의”에서 방어해야 할 주요 지정학적 영역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지난해 7월 푸틴은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은 하나의 민족”이라고 선언했고, 젤렌스키의 대응에 격노한 그는 우크라이나를 서구의 러시아에 대한 공격을 위해 존재하는 “꼭두각시 정권이 있는 식민지”라고 묘사했습니다.
서구의 침략에 대한 불만, 썩어빠진 개인의 권리를 대신하는 전통적 가치의 고양, 유라시아를 통합하고 우크라이나를 종속시켜야 하는 러시아의 의무에 대한 주장과 같은 다양한 태도는 소련의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 분노의 가마솥처럼 발전했습니다. 현재의 러시아인들은 푸틴의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그의 잔인한 전쟁을 고무적으로 지지합니다. 러시아인들의 목표는 확실하게 유라시아 제국의 건설입니다. 그리고 이는 우크라이나에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출처 : 뉴욕-타임즈 NYT on 2022-03-22
Dr. Jane Burbank. 뉴욕대학의 퇴임한 명예교수로 러시아와 슬라브 민족사를 연구하였으며 Frederick Cooper와 함께 “Empires in World History: Power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를 저술하였다.
다른백년 명예 이사장, 국민주권연구원 상임이사. 철든 이후 시대와 사건 속에서 정신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으며, ‘너와 내가 우주이고 역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서로 만나야 연대가 있고, 진보의 방향으로 다른백년이 시작된다는 믿음으로 활동 중이다. [제3섹타 경제론], [격동세계] 등의 기고를 통하여 인간의 자유와 해방의 논리를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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