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4일, 동물 해방을 향한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보신각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서울 시내를 걸으며 동물의 권리를 촉구하는 ‘동물권 행진’이 열렸다.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에서 주최한 행사였다. 당시에 나는 발리에 살다 잠시 한국에 들어온 초보 비건이었다. 한국 동물권 운동에 기여하고자 설레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너무 설레었던 나머지 택시를 타고 장소에 급하게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서성이는 행인뿐이었다. 행사 관계자와 아무런 연고도 없어 당황스러웠다. 알고 보니 행진 하루 전 날이었다. 허탈한 마음을 달래며 청계천을 걷고, 가보고 싶었던 근처 비건 식당에 들렀다.
대망의 행진 당일. 보신각 공원이 비인간 동물을 위해 나온 많은 사람들로 채워졌다. 어제의 황량함과 대조되어 더욱 감동적이었다. 어느 날 홀연히 비건을 선언한 나를 따라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대학 동기와 함께 보신각 일대를 걸으며 외쳤다. “우리는 모두 동물이다! 지금 당장 동물해방! 느끼는 모두에게 자유를!”
수백 명의 목소리가 외치는 뜨거운 열기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앞으로 비거니즘을 열심히 실천할 원동력이 채워지고 있었다. 행렬 옆으로 경찰들이 함께 걸으며 도로와 행진을 구분하고 보호했다. 그 사이에 한복을 입고 북을 치는, 유난히 목소리가 큰 남자가 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퍼포머티브하다. 주최자인가? 행위예술가인가? 컨셉질 쩌네.’
감동적인 걸음이 이어지다, 애도의 퍼포먼스가 전개되었다. 매 초마다 죽어가는 존재들을 대변하는 인간 동물들이 비인간 동물의 탈을 쓰고 바닥에 무기력하게 쓰러졌다. 도살장의 소리, 고통의 신음이 재생됐다. 참가자들은 숙연히 침묵했다. 성황리에 행진이 끝나고, 내가 속한 단체 ‘비건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동료들과 함께 비건 식당에 가서 맛있고 윤리적인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눴다. 목소리가 우렁찬 그 남자(로 보이는 젠더 퀴어일 수도 있지만 남성이라 패싱했다.)는 그렇게 잊혔다.
그렇게 앵그리 비건 시기를 거쳐 내공을 켜켜이 쌓으며 살아가던 중, 인스타그램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몇 년 전 동물권 행진에서 북을 치던 사람 같았다. 이름은 전범선. 자음 모음이 꽉 찬 이름에서 왠지 다가가기 어려운 기운이 들었다. 방송에 출연하고 무대에 올라선 사진이 보였다. 해방촌에서 중고급 비건 사찰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더 보아하니 행진을 주최했던 단체 소속 철학 자문 위원이었다. 비건이니 반가운 마음에 인사치레하듯 팔로우를 눌렀다. 사진 작업물을 종종 올리는 부계정으로 팔로우해 소식은 뜸하게 접했다. 그는 얼마 뒤엔가 인사에 응하듯 나를 맞팔로우 했다.
또 시간이 흘렀다. 비건과 제로웨이스트의 천국과도 같던 발리 생활을 정리하고, 쉬었던 학업을 재개하리라 다짐해 한국에 돌아왔다. 오랜만에 한국에 왔으니 그립던 한식을 섭렵하고 싶었다. 한국을 떠난 동안 새로 생긴 비건 식당도 제법 많았다. 먹고 싶은 한식 목록에는 떡볶이, 김치찌개, 순두부찌개, 쌈밥, 강된장, 명이나물, 제철 나물 무침 등, 해외에서 구하기 힘든 식재료 또는 요리하기 쉽지 않은 음식이었다.
그중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바로 물냉면! 물냉면은 한국에서도 비건으로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해 그리운 음식이었다. 비빔냉면은 웬만하면 계란과 육수를 빼서 ‘비건화’해 먹기 쉬운데, 물냉면은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찾지 못했다. 비건이 되기 이전에 냉면은 고기 먹을 때나 곁들여 먹었지, 따로 찾아 먹은 적은 없었는데. 냉면을 먹어야만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무 먹고 싶은 나머지 SNS에 도움을 청했다. “바야흐로 여름, 냉면의 계절이 왔습니다. 비건 물냉면이 너무 먹고 싶어요. 채식한 뒤로 한 번도 먹지 못했어요. 어디서 먹을 수 있나요?” 비건 지인들이 좋아요를 눌러줬다. 아무도 답은 주지 않았다. 그리고 북 치는 사람이 메시지로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경리단길 00교자 냉면이 비건입니다. 계란 빼달라고 하시면 되어요.” 비건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추천하는 음식이라니.
며칠 뒤 기대를 가득 안고 경리단길로 향했다. 작은 프랜차이즈 만두집 안으로 들어가 성분표를 꼼꼼히 확인한 후, 닭알을 빼달라 요청하고 자리에 앉았다. 가격은 6천 원으로 저렴했다. 우습게도 자본주의에 찌들어버린 나는 낮은 가격에 괜히 기대치를 낮추었다. 역시나 물냉면은 다시 찾지 않을 법한 인스턴트 냉면 맛이었다. 너무 달고 면발도 질겨, 내가 기억하는 물냉면의 맛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우스갯소리로 ‘남기면 논비건’이라 국물까지 다 먹었다. 깨끗하게 비운 그릇을 뒤로 한 채 식당을 나섰다.
동치미 물냉면
저 땐 몰랐지. 비건도 물냉면 먹을 수 있다고요. 그것도 너무 쉽게!
재료 : 동치미 국물, 생냉면 혹은 메밀면, 오이, 배
* 팁 : 일반 마트에서 파는 동치미 국물은 내가 먹고 실망한 냉면 맛과 비슷하다. 동치미를 직접 만들지 못하고 구매해야 한다면, 한살림 제품을 추천한다. 비건 여부를 확인하고 구매하길.
1. 동치미 국물을 냉동실에 넣어 30분에서 1시간 정도 살얼음이 생길 때까지 얼린다.
2. 면을 삶고 찬물에 헹궈 그릇에 담는다.
3. 잘게 채 썬 오이와 배를 얹는다. 동치미에 무가 있다면 무도 포함.
4. 살얼음 낀 동치미 국물을 얹어 먹는다.
5. 기호에 따라 빨간 양념이나 김가루를 얹어 먹는다.
결국 만족스러운 냉면을 먹지 못하고 여름이 지나갔다. 학교에 복학하고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발리에서 만나던 애인과 관계를 정리하며 약간 슬프고 외로웠다. 틴더 앱으로 몇 명을 만났지만 ‘비건’이라는 최소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다. 논비건과 데이트하며 비건이 되게끔 설득하는 패턴이 지겨웠다. 하지만 함께 편하게 식사조차 할 수 없는 사람과 만나긴 싫었다. 그러다 어느 날, 북 치는 사람이 새벽 4시에 메시지를 보내왔다.
“지지님 안녕하세요? 예전부터 생각만 하다가 연락드려요. 한번 만나 뵙고 싶어요. 어떤 분인지 궁금합니다. 예술과 운동의 접점을 고민하시는 모습이 반가웠어요. 차 한잔 하면 좋겠습니다.”
‘뭐야 이 비건 아저씨는?’ 나보다 최소 10살은 족히 넘어 보이는 수염이 아주 긴 아저씨가 이 시간에 메시지를 보내오다니. 낌새가 께름칙했다. 이내 생각했다. ‘한 번쯤은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비거니즘을 전파하며 나보다 활발하게 운동하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좋은 비건 동지가 될 수 있으리라.
“안녕하세요 범선 님!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차 좋지요.”
“어느 동네 사세요?”
“잠실에 삽니다. 범선 씨는요?”
“해방촌 살아요.”
“아하 이태원에 작업실이 있어서 종종 가요. 근방에서 만나면 좋겠네요.”
“저는 낮에는 책방에 있다가 밤에 이태원으로 넘어가요. 내일도 오시나요?”
뭐야, 당장 내일? ‘양반들’이라는 밴드 활동을 하며, 선비처럼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급하게 만나자고 하니 갑자기 부담스러워졌다. 어떻게 둘러대야 약속을 미루다 끝내 만나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끝내 답변했다.
“다음 주 금요일 저녁 즈음 어떠세요?”
“좋아요. 010-****-**28. 그날 뵙지요.”
며칠 뒤 한남동에 위치한 한 비건 식당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2년 전 당시 만나던 애인과 가보았던 데이트 명소였다. 북 치는 사람과는 그저 ‘비건 식사’를 한다고만 생각했다. 약속 당일, 오랜 시간 고된 노동에 지쳐있었다. 일을 마치고 어색한 사이인 수염이 긴 남자를 만나러 금요일 밤의 한남동으로 가려니 벌써부터 피로가 몰려왔다. 확진자랑 접촉했다 거짓말을 쳐버릴까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결국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수염 숱이 훨씬 짙은 남자가 시큰둥한 얼굴을 하고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지지예요. 편지지. 늦어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팬시한 저녁 식사 후 우리는 해방촌으로 향했다. 술집으로 들어가 칵테일을 한 잔씩 주문했다. 잔을 비운 후, 다른 술집으로 자리를 또 옮겼다. 네 번째로 향한 곳은 북을 치고 수염이 긴 사람의 해방촌 작업실이었다. 둘 다 주량이 맥주 반 병도 안 되는 주제에 술을 꽤나 마셨다. 술의 힘을 빌려야 대화가 풀렸다. 어지간히 긴장을 했거나 어색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새벽을 지세우며 한참을 대화했다. 술에 많이 취해서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한 가지 떠오르는 건, 그가 갑자기 고해성사하듯 수염에 대해 설명하던 순간이다.
‘학창 시절 내내 지속된 기숙 생활에 군대까지 가느라 ‘털’을 마음대로 길러본 적이 없다, 그래서 군대 제대 후 지금까지 줄곧 수염을 길러왔다, 본인에게 수염은 자유의 상징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수염이 전혀 다른 맥락으로 읽힐 여지가 있어 고민이다, 이만큼 길렀으면 수염이 제 역할을 할 만큼 한 것 같다.’ 어쩐지 페미니스트인 내가 통쾌하게 밀어버리라고 말하기를 바라는 뉘앙스였다. 나는 답했다. “수염에 남근이 꽁꽁 뭉쳐있으시네요.”
이틀 뒤, 지인의 전시회에 초대받았다. 전시장 내부에서 몸에 난 모든 털을 왁싱하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수염남도 동행했다. 그는 털이 뜯기는 장면을 한참 동안 면밀히 바라보았다. 가부장제에서 남성의 털이 상징하는 바를 다시금 고민한 걸까? 전시를 관람하고 우리는 해방촌 작업실로 향했다. 그는 떨어져 나가는 털들을 보며 속이 시원했다며, 내게 수염을 잘라달라 부탁했다. 나는 흔쾌히 응했다. 뭉텅이로 자른 수염의 길이는 거의 내 손가락 길이만 했다. 서비스로 6070 록스타처럼 예쁘게 앞머리도 내주었다. 말끔히 면도를 하고 귀여운 앞머리를 내리니, 수염에 가려졌던 제 나이를 찾고 회춘했다. 수염 뭉치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 불을 붙였다. 2020년 10월의 어느 날, 밤하늘 아래 남근 화형식이 거행됐다. 그것은 ‘나의 남근을 거세해서라도 당신에게 한 몸 바칠 준비가 되었어요. 나를 마구 가다듬어 주세요.’라는 뜻이었다. 그날부터 우리는 한 달 동안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만났다.
카메라를 들고 지구를 유랑하는 낭만적 유목민. 네트워크 안팎에서 이미지와 신체로 연결되는 작업하는 사람. 기술을 경유해 생명의 공통 언어를 모색하는 미학적 수행자. 종의 경계가 허물어진 생태적 관계망을 상상하며, 더럽고 아름다운 것들을 채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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