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꿍과 내가 공저한 책 <비혼이고요 비건입니다>가 출간됐다. 본래 비거니즘 에세이인데, 출판사의 권유로 ‘비혼’이라는 키워드가 제목으로 뽑혔다. ‘비거니즘’ 못지않게 ‘비혼’도 열풍인가 보다. 책을 낸 이후로 MZ세대의 새로운 사랑 관계를 다루는 방송 출연 섭외가 들어오고, 비슷한 주제로 패션 매거진 화보 촬영도 했다. 사실 책의 내용은 제목에 실릴 만큼 비혼주의를 다루지 않는다. 분명 나는 비혼주의자이고, 우리는 비출산주의자이며 결혼할 생각 없이 동거 중이다. 그렇다고 딱히 ‘비혼’을 전제로 만난 것도 아니다. 결혼이니 비혼이니를 논하기도 민망할 만큼 이제 겨우 만난 지 1년 반이 되었고, 그저 평범한 연애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과거 여성이 경제적 자주권을 갖지 못하던 시절에는 생존하기 위해 시집을 갔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에게 이제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었다. 여전히 ‘결혼’은 두 집안의 경제적 융합을 위한 제도적 장치에 불과하다. 결혼으로 두 남녀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는 신화는 더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한국은 아직 ‘여성’과 ‘남성’간의 결혼만 인정되고, 사실혼이나 동거 관계는 법적으로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 오히려 동성애자이거나 퀴어인 커플이 법적으로 인정되는 관계, 즉 결혼이라는 제도적 권리를 얻고 싶어 하는 태세다.
비혼주의자라고 평생 혼자 사는 모습을 상상한다면 큰 오해다. ‘비혼주의’와 ‘비연애주의’는 다르다. 비혼주의는 결혼이 여성의 최종 정착지가 아닌 삶,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의 삶을 영위할 권리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을 거부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와 결혼하고 함께 살아야만 ‘진짜 관계’, 혹은 ‘참 어른’으로 인정받는 구시대적 관습을 결척하려는 능동적인 선택이다. 같은 미혼 삼십 대 중반 여성과 남성이 받는 사회적 시선의 편차가 오늘날 비혼주의를 선택하게 한다.
사실 나는 결혼을 완강히 거부하는 비혼주의자는 아니다. 전세 대출 같은 경제적 이득을 취하거나 타국 시민권을 따는 등, 법적인 혜택이 있다면 결혼할 의향이 있다. 하지만 굳이, 웬만하면, 한 사람과 평생 같이 살아야 하는 가부장적 종신 계약을 하고 싶지는 않다. 3년 혹은 5년 주기로 결혼 재계약이 가능하다면 모를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맞선으로 만나서 함께 자보지도 못하고 결혼식을 치르는 시대는 지났단 말이다. 더군다나 슬하에 자식이 있다면 관계에 문제가 있어도 끝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지구는 넘치는 인구로 인해 이미 포화 상태다. 나의 건강과 환경을 위해서라도 아이는 가질 생각이 없다. 짝꿍은 본인이 재생산권이 없는 남성이기에 비출산주의를 언급할 자격이 없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보통이 아닌 사람들이 이룬 ‘보통의 연인 관계’이지만, 보통이 아닌 비슷한 미래를 상상한다. 나름 지속 가능한 관계를 수행 중이다.
요즘은 비교적 늦게 결혼하는 추세라 그런지, 20대 중반인데 아직 한 번도 청첩장을 받지 않았다. 혹은 초대받지 못한 것일 수도. 꽃이 만개하는 봄을 맞이하고 코로나 규제가 풀리며 각종 예식장이 분주해진다. 주말이면 하루에 결혼식 두 탕을 뛰는 친구도 있다. 만약 지인의 결혼식에 초대된다면, 정상 가족으로 자라서 정상 가족을 꿈꾸는 사람을 내가 순수하게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줄 수 있을까? 난 비혼주의자라 축의금을 돌려받을 일도 없을 터, 엄청난 손해다. 비건인 내가 먹을 것도 없어 밥 값도 못 할 텐데, 날 초대하지 말아줬으면! 애초에 이런 계산을 하는 관계라면 참석하지 않는 게 속 편하지. 결혼식에 참석하는 사람들 대부분 비슷한 마음 아닐까? 귀찮고 영 내키지 않지만, 서로의 결혼식에 예의상 오고 가며 득을 보는 형식 아닌가.
생각해 보면 나의 모부님이 30년 넘게 뿌리고 다닌 부조금 액수가 꽤 되겠다. 짝꿍의 모부님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수금은 해야 효도이지 않을까. 나는 학교 친구가 별로 없지만, 짝꿍의 동창들은 고소득 직장에 다니는 엘리트라 부조금도 빵빵할까 싶다. 부부 아닌 식구, 새로운 세대를 위한 ‘비혼식’, 즉 수금 파티가 필요하다. 형식적인 식을 치르는 행세도 가능하니 모부님 체면 또한 살릴 수 있다. 날 잡고 뿌린 돈을 거둘 겸 친구들과 모여 재미나게 노는 페스티벌. 아주 좋은 사업 아이템 아닌가? 결혼식 하객 알바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결혼 생활을 10년 이상 지속한 여성들이 말한다. 결혼 괜히 했다. 후회되는 결혼 생활을 청산하기엔 자식이 발목을 붙잡는다. 조금만 늦게 태어났다면 절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90년대 초 삼십 대에 들어서, 당시 꽤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육아도 살림도 돈벌이도 못하는 최악의 남편을 만났지만, 사회적 시선 때문에, 나와 언니 그리고 남동생 우리 삼 남매를 생각해서 20년 넘도록 이혼하지 못했다. 내가 엄마에게 제발 이혼하라는 부탁를 하고 나서야 갈라섰다. 이혼 후 자유롭게 여행도 다니고 새 삶을 누리는 모습이 감격스럽다.
짝꿍의 어머니를 처음 뵌 날, 만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내게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라는 거침없는 질문을 던지셨다. 나는 잠시 주춤하다,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의 비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고 생각해요.”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그러자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라며 쿨하게 공감해 주셨다. 나는 생각했다. 애인의 어머니와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다니. 이런 멋진 신여성이 키우신 자식이 나의 애인이라니. 그 짧은 대화가 짝꿍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서른이 넘은 남성과 연애하며 가질 법한 부담도 없다.
나의 짝꿍은 대한민국 상위 0.01%에 드는 인물이다. 생긴 것도 반반하고, 음악하고 글 쓰는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며, 세계에서 가장 좋은 학교를 나왔을 정도로 똑똑하며, 쾌활하고, 유머 넘치고, 긍정적이고, 지적이고, 건강하다. 가장 중요한 점은 비건이고, 페미니스트이며, 생태주의자이자, 인격 신은 없지만 모두가 신이라고 믿는 무신론자이자 범신론자이며, 금수저에, 내가 온갖 행패를 부려도 도인처럼 인내하고 잘 보듬어준다. 이보다 가치관이 잘 맞는 사람을 생에 찾을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사람들은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 혹은 ‘이 사람이다’ 싶을 때 결혼을 결심한다. 나도 결혼을 해야 한다면 이런 인간과 해야지 싶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해야 오래오래 결혼하지 않고 행복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처음 만난 날부터 한 달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만나다가 덜컥 동거를 시작해버린 일 년하고 반 년 전. 지금은 각자 여행을 다니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아무래도 함께 살면 매일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니, 개인의 영역이 절실하다. 우리는 두 그루의 나무다. 같은 땅에 심어져 뿌리를 공유하지만, 서로를 인식하며 거리를 두고 자라 잎이 완전히 겹치지 않는다. 같은 비와 바람을 맞는다. 앞뒤 구분이 없지만 각자 그늘이 있어 썩지 않고 함께 성장한다.
카메라를 들고 지구를 유랑하는 낭만적 유목민. 네트워크 안팎에서 이미지와 신체로 연결되는 작업하는 사람. 기술을 경유해 생명의 공통 언어를 모색하는 미학적 수행자. 종의 경계가 허물어진 생태적 관계망을 상상하며, 더럽고 아름다운 것들을 채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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