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사회보장체계는 사회보험제도, 사회서비스제도, 사회부조제도(또는 공공부조제도)등 3개의 축으로 구성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사회보장기본법」도 “사회보장이란 출산, 양육, 실업, 노령, 장애, 질병, 빈곤 및 사망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소득∙서비스를 보장하는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다른 복지선진국에서도 유사하다. 하지만 사회부조(또는 공공부조)가 사회보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특히 사회부조제도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원칙이 사회보장이 일반적으로 보여주는 그것과는 매우 대립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이러한 대립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은 다음의 일련의 주장들을 위한 사전작업이기도 하다: 양자간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회부조를 사회보장의 핵심 구성요소로 간주하는 것은 오늘날 사회보장의 한계를 낳은 원인들 중 하나이다. 따라서 사회보장을 보다 올곧게 구축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사회부조제도를 폐기해야 한다. 오히려 기본소득의 구성 및 운영의 원칙들은 사회보장의 그것들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이러한 폐기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결국 앞으로 달성해야 하는 복지국가 5.0의 구축은 기본소득제를 소득보장체계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로 삼는다.
사회부조(공공부조)의 제도적 모습들
일반적으로 사회부조 또는 공공부조는 제도의 차원에서 보면 다음의 4가지 특징을 갖는다.
゚급여를 받는 사람들은 소득이 가장 낮은 사람들에 한정되며, 이들은 자산조사(mean test)를 통해 선정한다.
゚급여의 재원은 일반조세를 통해 마련되며, 따라서 제도의 운영 주체는 국가기관이다.
゚급여의 수준은 최저생활수준을 충족할 정도로만 제한된다.
゚급여는 현금의 형태만이 아니라 의료서비스와 같은 현물의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회부조제도로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다. 이 제도의 급여를 신청하면, 일단 신정자의 소득과 재산의 규모를 광범위하게 조사한다. 그리고 이 자산조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산출된 자산의 규모가 특정 기준 이하인 경우에만 대상자로 선정된다. 이 제도의 대표적인 급여인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는 각각 기준중위소득의 30%, 40%, 45%, 50% 이하가 기준이다. 2020년의 기준중위소득은 1인 기준으로 1,757,194원이었다. 따라서 신청자의 자산조사 결과가 각각 527,158원, 702,878원, 790,737원, 878,597원 이하여야 급여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다. 2020년 기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급여를 받는 사람의 비중은 전체 국민 중에서 4.1%에 지나지 않았고, 특히 가장 생활상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생계급여의 경우에는 겨우 2.5%였다.[1].
이러한 제도적 특징들은 다른 복지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생계급여와 유사한 제도들을 비교하자면, 스웨덴의 경우에는 경제적 원조제도(Ekonomiskt bistånd)가 있고 프랑스에는 활동연대소득제도(revenu de solidarité active. RSA)가 있다. 스웨덴의 경제적 원조의 경우, 대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치는 핵심적인 요소들을 포괄하는 국가지원표준(Risknormen)과 지방정부가 신청자의 개별적인 요구사항들을 조사하여 부가적으로 정하는 액수로 구성된다. 2022년 1인 독신을 기준으로 했을 때 국가지원표준 상의 기준치는 4,250크로나(한화 545,700원)이며, 지방정부가 선정하는 기준치는 지방정부의 상황에 따라 상이하게 정해지므로 통일되어 있지 않다.[2] 2017년 기준으로 수급자는 407,559명으로 전체 인구수의 4.2%에 지나지 않으며, 이 수치는 최근 10여년 동안 큰 변동이 없다.[3] 프랑스의 활동연대소득(revenu de solidarité active. RSA)을 보면, 2020년 기준 1인 독신의 경우 대상자 선정 기준치는 565.34유로(한화 768,880원)였으며, 약 400만명, 15세이상 69세 이하의 총인구의 약 8.5%(전체인구 대비 약 5.9%)가 수급대상자로 선정되었다.[4]
사회부조의 원칙들은 사회보장의 원칙들과 대립된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사회부조제도는 구체적으로 어떤 원칙들에 의해 구성되고 운영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원칙들은 일반적으로 규정되는 사회보장의 원칙들과 호응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든 면에서 상이하고 대립적이다. 예를 들어, 사회보장은 당면한 필요의 크기에 따라 급여를 제공한다는 원칙에 기반하는 반면, 사회부조는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의 부족분에 따라 급여를 제공하는 원칙에 기반한다. 사회보장은 필요에 직면한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급여를 제공하는 반면, 사회부조는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 한정하여 급여를 제공한다. 이러한 대립적인 원칙들을 간단하게 표로 아래와 같이 정리될 수 있다(<표1. 근원적 필요의 충족을 위한 두 제도의 비교> 참고)
표1. 근원적 필요의 충족을 위한 두 제도(사회보장과 사회부조)의 비교 | ||
사회보장 | ↔ | 사회부조 |
゚ 필요에 따른 급여의 원칙 ゚ (잠재적) 보편성의 원칙 ゚ 즉각 대응의 원칙 ゚ 능력에 따른 공동부담의 원칙 ゚ 적정보장의 원칙 |
゚ 보충성의 원칙 ゚ 선별의 원칙 ゚ 사후 대응의 원칙(소득보장의 경우) ゚ 구호(구제)의 원칙 ゚ 최소보장의 원칙 |
사회부조의 보충성의 원칙은 사회보장의 필요에 따른 급여 원칙에 대립된다
사회부조제도는 근대 이후 조직화의 원칙으로 정립된 보충성의 원칙에 의거한다. 어원적으로 보면, 보충성(subsidiarity)란 예비군이나 보충병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장의 최전선에서 병력이 부족했을 때 이를 메워주는 기능을 의미했다. 그리고 근대 이후로는 사회조직들 간의 체계를 조직할 때 소규모 단위들이 대규모 단위에 대해 자율성을 가진다는 의미가 더해지면서, 오늘날의 보충성 원칙이란 개인과 같은 소규모 단위가 자신의 생존과 유지에 필요한 기능과 활동을 스스로 하는 자구(self-help) 노력을 먼저 하고, 이것으로도 부족한 경우에는 지역공동체나 중간조직, 국가 등의 대규모 단위가 순차적으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준다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사회부조제도는 사회구성원이 빈곤이라는 사회적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해서 곧바로 급여를 제공하지 않는다.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먼저 자구노력을 해야 하며 그 노력의 결과로 나타나는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만 급여를 제공한다. 사회부조제도가 자산조사를 하는 이유는 신청자가 갖고 있는 소득이나 재산을 빈곤 해소에 먼저 사용해야 한다는 기준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회부조제도가 신청자에게 일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노동력을 통한 자구노력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빈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가족구성원의 도움을 활용하도록 한다. 그리고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사회보장급여를 부가적으로 활용한다. 이러한 조치들을 통해서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이 경우에 한해 사회부조제도가 최후의 보루로서 실시된다.
우리나라의 생계급여나 스웨덴과 프랑스의 기준치들은 사회부조의 이름으로 보장해주는 소득수준의 최대치 역할을 한다. 자산조사를 통해 나온 결과가 0이라면 위 기준치를 급여로 수령하며, 만약 일정 정도의 소득이 있는 것으로 결과가 나온다면, 위 기준치에서 해당 소득을 뺀 액수를 급여로 수령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생계급여의 경우, 1인 성인 독신자가 자산조사를 통해 30만원의 소득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면, 생계급여 기준치인 527,158원에서 30만원을 뺀 227,158원을 생계급여로 수령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30만원을 빼는 것은 앞서 설명했듯이 그 자산을 생계를 유지하는데 먼저 사용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반면에, 사회보장은 ‘필요에 따른 급여 원칙’에 기반한다. 사회구성원이 당장에 이러저러한 필요에 직면한다면, 바로 그 사실로부터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발생한다. 그리고 급여제공 이전에 스스로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자구노력을 할 필요가 없고 그것이 전제되지도 않는다. 질병에 걸려 건강필요가 발생하면 곧바로 의사나 병원에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비용은 공적 의료보험제도로 해소된다. 자구노력은 고려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부조처럼 부족분이 계산될 수가 없고 따라서 자산조사라는 도구도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비용이 많고 적음과는 상관 없이 직면한 필요에 상응해서 비용이 그대로 처리된다.
사회부조의 선별성 원칙은 사회보장의 보편성 원칙에 대립된다
사회부조제도는 자산조사(mean-test)를 통해 가장 빈곤한 사회구성원을 대상자로 선정한다는 원칙에 기반한다. 모든 사회부조제도는 이 자산조사를 활용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앞서 살펴 보았듯이, 우리나라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스웨덴의 경제적 부조제도, 프랑스의 활동연대소득제도도 모두 자산조사를 하여 특정 기준치 이하의 소득과 재산을 갖는 사람들만을 대상자로 선정한다. 만약 이러한 자산조사를 하지 않고서 대상자를 선정한다면 그것은 사회부조제도의 범주에 속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의료취약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보통 방문진료나 원격의료서비스 등이 주어지거나 별도의 응급수송서비스가 제공된다. 의료취약지역에 거주하는 소득이 높은 거주민도 동일한 별도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서비스는 사회부조제도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장애인정책에서 운영하고 있는 장애인연금이나 활동보조서비스 등도 사회부조제도가 아니다. 이 제도들은 정신적, 신체적 특성에 의거해 급여를 제공하는 것이지 자산조사를 근거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 사회보장은 필요에 직면한 모든 사회구성원을 급여의 대상자로 선정한다. 이러한 보편성은 1920년대 스웨덴에서 처음으로 노후연금 분야에서 제도화되었다. 당시 스웨덴은 모든 노인들에게 연금을 제공하는 보편적 연금제도를 도입했다. 1930년대에는 가족정책 분야에서 보편적 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전체 제도의 구성에서 보편적 제도는 극히 드물었다. 그러다가 영국이 베버리지 보고서에 영향을 받아 사회보장의 각종 제도들을 모든 국민을 대상자로 하는 것으로 전격적으로 바꿨다. 보편적인 보건의료서비스 제도와 공적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되고 공적 노후연금도 보편성을 갖게 되었다. 복지선진국 대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사회보장체계를 새롭게 구축하면서 영국의 사례에 영향을 받아 보편주의를 궁극적인 목표로 설정했다. 그리고 복지국가의 황금기라고 말할 수 있는 1950-70년대에는 이러한 보편화가 광범위하게 추진되었다.
이러한 보편성을 갖게 된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사회보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그리고 충족해야만 하는 필요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즉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모두가 필요의 충족시켜야 하는 상황에 노출되기에 필연적으로 모두를 급여의 대상자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부조제도는 모두가 필요 충족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빈곤한 구성원들만을 대상자로 삼는다.
사회부조는 필요의 발생에 사후적으로 대응하지만 사회보장은 즉각적으로 대응한다
사회보장제도는 필요에 대응하고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로서 필요에 즉각적으로 대응한다. 필요가 발생하면 그것에 상응하는 비용을 연대적 방식으로 제공하거나 비용부담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사회서비스를 제공한다. 필요에 당면한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간에 별도의 자격을 확인하고 부족분을 계산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즉각적인 대응으로 귀결된다.
반면, 사회부조제도는 필요가 발생하면 우선적으로 자구노력을 전제하기 때문에 얼마나 자구노력을 기울였는지 아니면 자구노력을 할 능력은 어느 정도나 갖춰 있는지를 가늠하는 과정이 부가적으로 더 필요해진다. 그리고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기 때문에 부족분을 명확하게 측정해야 급여제공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사회부조는 사후적으로 대응이 이뤄진다. 물론 사전조사라는 도구와 사회서비스의 즉각적인 제공의 조합도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의료급여의 경우, 급여 수급의 자격은 기본중위소득의 40% 이하여야 하는데, 건강필요가 발생하면 의사와 병원에서 곧바로 보건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는 사회부조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보충성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부조제도라고 볼 수 없다.
사회부조의 구호의 원칙은 능력에 따른 부담의 원칙에 대립된다
사회부조제도는 재원을 일반조세를 통해 마련하며, 이로 인해 제도의 운영주체도 국가가 된다는 원칙에 기반한다. 일반조세에 기반한다 함은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납부하는 소득세나 소비세 등에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재원 마련에 대한 독특한 이해가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사회부조 수급자들은 재원 마련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았고 수급자 외의 사회구성원이 또는 국가기관이 재원을 마련해 제공하는 것이라는 암묵적 이해가 바탕에 깔려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는 사회보장이 재원을 마련하는 원칙과 매우 다르다. 사회보장은 사회구성원이 능력에 따라 부담한다는 원칙에 기반한다. 재원 마련의 방식이 사회보험이라는 명확한 기여의 방식일 수도 있고, 일반조세와 같이 기여가 불명확한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능력에 따라 기여의 수준이 다르다는 점이다. 소득이 높은 사람은 그만큼 많이 기여하고 소득이 적은 사람은 그만큼 적게 낸다. 소득이나 재산에 동률로 사회보험료나 일반세금이 부과된다 하더라도 액수 면에서 보면 분명하게 소득이나 재산이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액수를 기여하게 된다. 즉 사회보장은 정액으로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의 크기에 따라 각각 다른 수준으로 기여를 한다.
사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앞서 제시한 사회부조의 암묵적인 원칙과는 달리 사회부조 수급자들도 자신이 받는 급여의 재원에 최소한의 기여는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사회부조의 수급자들도 소득세, 소비세 등의 세금을 내고 있다. 단지 이러한 조세는 목적세가 아니기 때문에 어디에 사용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서 문제가 될 뿐이다. 즉 사회부조 수급자가 낸 일반조세 중 일부가 해당 수급자가 받는 사회부조제도의 급여들을 위한 재원으로 사용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보험료나 세금을 통해 어떤 구성원은 많은 기여를 하고 어떤 구성원은 적은 기여를 하는 것인데, 사회부조 수급자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기여를 하는 것일 뿐이다.
문제는 기여의 크기가 다르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사회부조 수급자가 전체 사회구성원 중에 소수라는 점에 있다. 즉 ‘모두가 부담하고 모두가 받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부담하고 일부만 받는’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만약 사회부조가 보장한다고 하는 필요를 소수가 아니라 모두에게 제공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사회부조제도의 재원을 비기여 방식을 통해 마련하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구제의 원칙과 이어진다. 사회부조 급여를 받는 사람들은 사회부조의 재원 마련에 기여한 바가 없으며 재원 마련에 기여한 사람들이 급여수급자에게 급여를 제공함으로써 구제한다는 해석을 낳는다. 구제의 방식은 자원의 이동이 일방적이며 위계적이다. ‘있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자원을 나눠주는 것이며 이 나눔의 반대급부로 우월의식을 갖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리고 사회부조의 수급자들은 급여에 대해 감사해야 하며,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손가락질도 받아들여야 한다.
사회부조제도는 최소보장의 원칙에 기반하여 적정보장을 원칙으로 하는 사회보장에 대립된다
사회부조제도의 급여의 수준은 일상생활을 유지함에 있어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최저수준으로 한정된다. 급여의 수준이 설정 가능한 다양한 수준 중에서 최소치로 제한되는 것이다. 앞서 제시했듯이 1인 성인 독신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생계급여는 527,158원으로 프랑스의 활동연대소득(RSA)는 565.34유로(한화 768,880원)이라는 최소치가 설정되었다.
그렇다면 왜 사회부조제도는 최소치만을 보장하려는 것일까? 그것은 자구의 원칙과 보충성의 원칙 때문이다. 필요의 충족은 먼저 자신의 소득과 재산 그리고 노동력을 통해 충족시키려는 노력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만약 원조의 크기가 커지면 이러한 자구 노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원조의 크기는 최소치여야 한다. 그리고 사회부조제도는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의 위계를 정하고 그러한 위계적 구별을 외부적으로 드러나게 만듦으로써 사회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발명된 것이다. 만약 원조의 크기가 적정치가 된다면 이러한 드러나는 구별은 없어지게 된다. ‘받는 자’가 ‘주는 자’와 거의 유사한 수준으로 삶의 질을 누린다면 현실에서는 구별이 나타나지 않으며 나타나더라도 구별의 정도가 심하지 않아 현실적인 효과가 없게 된다.
반면, 사회보장은 일상생활을 유지함에 있어서의 적정수준을 보장하고자 한다. 보장의 수준은 다양하지만 최소치, 평균치, 적정치, 최고치 등으로 논리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적정수준은 평균치를 넘어서지만 최고치에는 못 미치는 수준으로 여겨진다. 사회보장의 대표적인 제도인 실업보험의 경우 대부분은 실직 전 임금의 70-90%를 실업급여로 제공한다. 이는 사회부조제도가 보여주는 최소치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수준이다. 공적연금의 경우에도 대부분 실직 전에 받던 임금의 평균치 대비 40-60%를 연금급여로 제공한다. 사회보장의 대표적 제도인 사회서비스의 경우에는 보장의 수준이 더 높다. 공적 의료보험의 경우에는 보건의료서비스 비용 중 70-80%를 보장해준다. 대부분의 복지선진국에서는 비용이 많이 드는 중증질환의 경우에는 거의 100%에 가까운 보장이 이뤄지고 있다. 보육서비스의 경우에도 서비스 이용자가 개별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별도의 비용은 거의 없다.
사회보장의 보장수준이 높은 이유는 제도가 지향하는 목표가 필요의 충족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의 필요를 제대로 충족시킴으로써 문제를 해소하고자 한다. 보장수준이 낮으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사회보장은 ‘주는 자’가 ‘받는 자’에게 원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구성원이 참여하여 함께 필요의 충족을 이루는 것이며, 각각의 구성원이 모두 수혜자가 된다. 각자가 수혜자이기 때문에 보장의 수준이 낮아지면 제도의 실질적 효과가 낮아지고, 제도에 대한 지지를 확보할 수가 없게 된다.
사회보장체계를 다시금 정초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회부조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회부조의 원칙들과 사회보장의 일반적인 원칙들 사이에는 매우 큰 간극이 있으며 서로 대립적이기까지 하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논의들은 사회보장체계는 보다 넓을 것으로 사회부조제도들을 하나의 구성요소로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해 있다.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이렇게 규정된 사회보장체계는 내적 모순에 쌓이게 되고 체계성과 일관성을 상실하게 된다.
이로 인해 오늘날 사회보장체계의 한계들이 발생한다. 사회보장의 일반적인 원칙들로만 기존의 사회보장체계가 구축되었다면, 사회구성원들 중에 근원적 필요가 충족되지 않아서 고통을 받는 경우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의 많은 부분들은 재원 부족을 빌미로 사회부조제도들을 사회보장체계에 끼워 넣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사회부조 급여를 받지 못하는 빈곤한 사회구성원이 대거 발생했다. 사회부조 수급자들도 주어진 혜택의 우산이 치워질까 두려워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피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사회부조제도의 존재 자체가 위정자들에게 문제를 회피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했다. 사회부조제도들은 복지국가의 완성을 이념적으로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돌파구 역할을 했으며, 기본소득과 같은 혁신적 아이디어에 대한 방어막으로도 오용되었다.
사실 사회보장이나 복지국가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사회보장의 일반적인 원칙들이 기존에 뿌리내렸던 사회부조의 원칙들을 대체하는 과정이었다. 사회부조제도들은 이미 19세기에 매우 강력한 비판을 받았고, 사회보험, 사회수당, 그리고 사회서비스제도들로 대체되기 시작해 1950-70년대의 황금기에는 거의 사라졌었다. 하지만 사회부조(공공부조)제도들은 1980년대 이후에 다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실업이 증가하고 빈곤한 국민의 규모가 증대되면서 잊혀졌던 사회부조제도가 최소소득보장(minima sociaux)제도의 형태로 귀환하였고, 여기저기서 현실적 대안으로 추진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필자는 복지국가의 이러한 적응은 적절하지 않았으며, 복지국가의 완성에 대한 커다란 장애물을 구축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따라서 복지국가의 재구성이 필요한 지금, 사회부조제도를 폐지하고 사회보장제도의 온전한 구축을 위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 . 보건복지부, 「2020년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현황」, 2022.
[2] . Socialstyrelsen, Riksnormen för ekonomiskt bistånd 2006-2022, 2021.
[3] . 이권능, “스웨덴의 소득보장제도”, in 신필균 외, 복지국가의 이해: 스웨덴모델 다시보기, 서울특별시, 2021, 83-84쪽.
[4] . Cour des comptes, 「Le revenu de solidarité active」, Rapport public thématique 『Evaluation de politique publique』, 2022, p. 31.
정책연구소 이음 선임연구위원. 파리제1대학과 그로노블정치대학에서 수학 후 밑으로부터의 복지국가운동 전개 중. 소득보장, 건강, 노후 등의 영역에서 근원적 욕구의 사회화, 정책의 정치화, 정치의 정책화 등을 연구.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관점에서 복지국가의 재설계를 탐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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