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아기가 되는 일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닌 이상, 사랑하면 사랑받고 싶다. 사랑에 대한 갈망은 갓난 아기 때의 기억을 호출한다. 가장 연약하고 불안했던 시절을 상기한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생명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처지. 포유류 새끼로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모체로부터 분리되어 세상으로 발사된 후 겪어야 했던 곤경. 하나가 둘이 되어 느끼는 외로움. 그때 모부의 사랑과 돌봄은 크나큰 안정을 준다. 누구나 가끔은 아기로 돌아가고 싶다. 나의 치부를 드러낸 채 남에게 안기고 싶다. 사랑은 나의 부끄러움을 유보하고 부드러움을 노출한다. 연인이란 서로를 아기처럼 대하는 관계다. 그래서 팝송은 대부분 베이비 타령이다. 저스틴 비버의 말처럼 “가슴이 무너져도, 계속 부를 수밖에 없다. 베이비, 베이비, 베이비 오. 베이비, 베이비, 베이비, 노.”
누군가의 베이비로 거듭나는 길은 험난하다. 첫 만남부터 애기처럼 굴면 상대가 부담스러워 한다. 젠더 문제도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인 남성은 애기보다는 가장, 즉 어른의 역할을 요구받는다. 연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애기처럼 행동하면 남자답지 못하다는 평가를 당한다. 반대로 성인 여성이 그러면 호평이 따른다. 애교란 ‘말이나 행동을 상냥하고 사분사분하게 하여 귀엽고 사랑스러운 상태. 주로 여자의 언행에 대해 이르는 말’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나는 남자다움을 거스를 수밖에 없다. 권위적이고 딱딱한 허울을 벗고 조신해져야 한다. ‘너는 나의 베이비’라고 부르기 전에 나 또한 베이비임을 긍정한다. 부드러움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지지의 첫 인상은 딴딴했다. 나는 사진으로 그를 접했다. 2020년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였다. 세종문화예술회관 앞 계단에서 웃통을 벗은 채 왼손에 연막탄을 높이 들고 서있었다. 초콜릿이 수반하는 소들의 강제 임신과 모성 착취를 비판하는 시위였다. 가슴에는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소고기 만큼이나 소젖의 비윤리성을 강조하는 비거니즘의 핵심 메시지를 체현했다. 나는 그의 카리스마에 놀랐다. 특히 표정에서 나오는 단호함이 뇌리에 박혔다. 경찰은 여성 시위자의 상체 노출을 막기 위해 에워쌌다. ‘탈조선’적 장면이었다.
8개월 뒤, 지지의 실물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무서웠다. 사이보그 같았다.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가끔씩 웃었지만, 그것마저도 철저히 계산된 것처럼 보였다. 비건 페미니스트 운동가를 만나러 가면서 애교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지의 외모는 금속성에 가까웠다. 잡지 화보 촬영을 마치고 온 직후라서 유난히 그래보였을 수도 있다. 헤어, 메이크업, 패션 모두 반짝 빛났다. 사진에서는 딴딴하다고 느꼈던 이목구비가 실제로는 딱딱해보였다.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았다. 나는 몸을 사렸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말을 뱉지는 않을까. 눈치를 봤다. 가부장적이지 않게 보이려고 애썼다. 지지는 나를 경계하는 것 같았다. 비건 운동을 하는 예술가라는 공통 분모 외에는 서로 아는 것이 없었다. 나 역시 지지를 경계했다. 어디까지 솔직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 만난 날, 우리는 새벽 여섯시까지 이야기하다 잠들었다. 대화는 사람의 얼굴에 담긴 얼을 밖으로 꺼낸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영혼을 보여준다. 지지의 얼은 딱딱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유연했다. 나의 마음과 잘 어울렸다. 이후 한 달 간, 우리는 매일 만났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동거를 시작했다. 한 지붕 아래 있으니, 숨을 곳이 없었다.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부분도 노출됐다. 그전까지 만났던 지지는 집밖의 지지였다. 스위치가 켜진 상태였다. 오프 상태의 지지, 집안의 지지는 달랐다. 때로는 우울하고, 강박적이었다. 무엇보다 불안한 존재였다. 침대 속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갑자기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모습이 창피하다며 자책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안아주는 것뿐이었다. 나아질 거라 믿고, 나아질 거라 말했다. 미안해, 용서해 줘, 고마워, 사랑해를 되새겼다. 지지는 그렇게 나의 베이비가 되었다.
동시에 나도 그의 아기로 변모했다. 우선 수염을 밀었다. 지지는 털을 좋아하지 않았다. 코와 턱,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모두 말끔히 정리했다.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수염은 남성성의 증거이며, 코털과 겨털은 특권의 상징이다. 모두 가부장제 사회에서 나를 아가보다 가장에 가깝게 연상시키는 이미지다. 맨들맨들한 몸으로 바뀐 후, 지지는 나를 베이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베입비였다. 그게 더 귀엽다고 했다. 외출했다 돌아올 때면 달가운 목소리로 ‘베입비~’를 외쳤다. ‘베입’이 ‘비’보다 3도 정도 높은 음이었고, ‘비~’가 ‘베입’보다 2배 정도 길었다. ‘비~’는 끝음을 위로 올려서 결국 ‘베’와 같은 피치에 도달했다. 나는 그 소리가 좋았다. 사랑받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아기가 되었기에 나는 치부를 온전히 드러냈다. 정글과도 같은 바깥 세상에서는 차마 못할 언행을 집안에서 일삼았다. 아빠 사진을 보다가 괜히 울음보를 터뜨렸다. 나체로 괴상한 춤을 췄다. 바닥에 엎드려서 안아달라고 졸랐다. 포옹과 입맞춤으로 베입비 인증을 받을수록 나는 철없이 행동했다. 남들이 들으면 어처구니없을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느라 꾹 눌러두었던 나의 참모습을 여과없이 분출했다. 남자다움과 어른스러움을 거둬내니 아기만 남았다. 베입비로서 나는 자유를 만끽했다. 눈치보지 않고 사랑을 갈구했다. 점점 더 갓난 아기에 가까워졌다.
둘의 몸이 하나되는 의식을 반복했다. 말을 섞어서 얼을 잇는 작업도 병행했다. 더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한마음, 한뜻이었다. 언젠가부터 지지는 ‘베입비’ 대신 ‘자기야’를 썼다. 나를 아기라고 부르지 않고 자기라고 불렀다. 상대를 나라고 칭하는 것은 모순이다. 1인칭을 2인칭으로 쓰는 것이다. 오직 너와 내가 하나일 때만 성립한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나는 말 그대로 엄마와 하나였다. 가장 원초적인 사랑의 형태다. 지지가 나를 ‘자기’라고 부를 때, 나는 그와 하나됨을 느낀다. 분리된 두 영혼이 잠시나마 합쳐진다.
집안 살림의 기본은 식구를 모시는 것이다. 나는 지지를 자기라고 부름으로써 내 안에 모신다. 공손히 받들어 섬긴다. 폭력으로 하나되는 것이 식민이라면 사랑으로 하나되는 것이 모심이다. 식구는 같은 밥을 먹는다. 고로 같은 것을 몸 안에 모신다. 서로 모시고 같이 모시는 것이 살림이다. 사랑하는 이를 아기처럼, 자기처럼 대하는 것이다. 탯줄이 잘린 나를 처음 본 임인숙, 전남용의 마음이 어땠을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살림의 근원이자 결과이며 사랑의 원형이라고 확신한다.
세상 모두가 서로를 사랑하며 식구로 모실 때. 주체가 타자를 아기, 자기로 부를 때, 그 모습은 상상만 해도 참 아기자기하다. ‘여러가지가 어울려 아름답고 예쁜 모양’이다. ‘여보(여기 보오)’, ‘당신’과는 다르다. 아기, 자기는 선을 긋지 않는다. 아와 비아의 구분이 없다. 아기자기의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지만, 여러 사람이 어울려 아기, 자기 부르는 것만큼 아름답고 예쁜 모양이 있을까?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아기, 자기 아닌가? 나는 귀엽게 늙고 싶다. 아기자기한 삶을 꿈꾼다.
전범선 / 글 쓰고 노래하는 사람. 1991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밴드 ‘양반들’ 보컬이다.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포르체, 2021)와 '해방촌의 채식주의자'(한겨레출판, 2020)를 썼다. '왜 비건인가?'(피터 싱어 지음, 두루미, 2021), '비건 세상 만들기'(토바이어스 리나르트 지음, 두루미, 2020) 등을 번역했다.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의 자문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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