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맥락적 배경과 언어적 전경
현대 사회 대부분의 문제는 아주 복잡해. 한국의 IMF사태나 미국의 금융위기에서 경험했듯이 하나의 은행이나 국가에서 문제가 생기면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로 이어지지. 그 이유는 세계 경제와 정치, 사회 등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현대에 일어나는 문제들은 해결하기도 어렵지. 간단해 보이는 문제라 할지라도 그 배경에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하나의 문제가 잘못되면 여러 문제가 동시에 잘못될 수도 있거든. 반대로 하나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다른 문제들이 동시에 해결되는 경우도 있지.
네덜란드 디자인 연구자인 키스 도스트(Kees Dorst)는 그의 책 『프레임 혁신(Frame Innovation)』에서 현대 사회에서 생긴 문제는 ‘열리고 연결되고 복합적인’ 상태라고 강조해. 한마디로 ‘난제(hard problem)’, 해결 어려운 문제란 말이지. 디자이너들은 주로 산업분야에서 이런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해 왔어. 도스트는 이런 디자이너들의 노력이 산업에서만이 아니라 정치와 사회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길 바라고 있어.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 인식’이야. 문제가 인식되지 않으면 해결의 노력도 있을 수 없거든.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이 현대 예술과 디자인의 분업도 더욱 복잡해진 문제적 상황 때문이란 생각이야. 복잡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업-전문화가 일어난 것이지. 현대 예술은 문제 인식에, 디자인은 문제 해결에 전문화 되었지.
실제로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스스로 문제를 찾지 않아. 보통은 문제를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디자이너에게 문제를 가져오지. 이건 아주 중요한 포인트야. 디자이너는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지 않았기에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를 인식할 수 있거든. 새로운 관점은 새로운 해결책을 낳기 마련이고.
글랜 파슨스는 디자인은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말했어. 창의적인 해결은 문제를 어떤 관점으로 인식하냐에 달려있어. 디자이너는 문제를 메타적으로 인식한 덕분에 창의적인 접근이 가능해지지. 도스트는 디자이너의 생각 프로세스에서 첫번째 과정을 ‘역설(paradox)’이라고 말해. 문제를 역설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문제 배경에 숨어 있던 다양한 맥락을 찾아 낼 수 있지. 디자이너는 이런 과정을 통해 문제의 복잡성을 인식하게 되지. 디자인 클라이언트는 가장 먼저 문제를 인식한 사람이기에 문제를 좁게 보는 경향이 있어. 디자이너는 문제의 범위를 넓히는 역할을 해. 아무래도 한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댈 때 문제를 바라보는 범위도 커지고 관점도 다양해지니까.
현대 디자이너들은 문제의 복잡성을 부정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수용함으로서 난제를 해결할 단초를 찾아. 그래서 디자이너가 가장 먼저 할 문제 인식은 배경의 맥락(context)를 넓히는 거야. 기존 맥락이 아닌 새로운 맥락에서 해결책을 찾기 위함이지. 디자인의 문제 인식이 배경을 넓히는 것이라면, 문제 해결은 새로운 전경을 찾는 거야. 문제의 배경이 넓어야 문제의 맥락도 다양해지고 새로운 전경을 찾을 가능성도 높아지니까.
배경과 전경은 상호 보완적 관계야. 배경이 있어야 전경이 있을 수 있고, 사람들은 전경을 통해 배경에 관심을 갖게 되거든. 능력과 성격 등 나의 전체 의미가 배경이라면 겉모습은 전경이라고 할 수 있어. 처음 만나는 사람은 나의 배경을 바로 알 수 없겠지. 단지 겉모습만을 통해 나라는 사람이 어떤지 짐작할 거야. 이때 겉모습이 매력 없으면 상대방은 나에 대해 무관심할 거야. 반면 겉모습에서 매력을 느꼈다면 나의 배경에도 호기심이 생기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중요한 자리에 나갈 때 어떤 옷을 입을지 신경 쓰는 이유도 처음부터 나의 배경 전체를 보여줄 수 없으니 일단 전경, 즉 겉모습에 신경을 쓰는 것이지.
전경으로서의 디자인에서 강조했듯 ‘디자인’이란 말의 의미는 언어 만들기(de+sign)야. 사람은 고도로 복잡하고 다양한 ‘언어’를 갖고 있어. 말과 글만이 아니라 손짓, 몸짓, 표정, 그림, 조각, 패션, 제품 등 각종 소리와 이미지, 사물 등이 언어로 활용되지. 때문에 옷을 갖춰 입는 행위도 일종의 언어적 행위야.
보통 사람들은 언어를 통해 질문하고 대답해. 질문은 ‘문제 인식’이고, 대답은 ‘문제 해결’이라는 점에서 언어는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주요한 수단이지. 언어학에서도 언어를 배경과 전경으로 구분해. 언어는 보통 의미와 형태로 구분되는데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 의미는 배경이고 말소리와 글자형태는 전경이 되지.
‘코끼리’라는 말은 의미와 형태를 갖추고 있어. ‘코끼리’는 한국 사람들이 어떤 동물을 경험하고 그 동물의 ‘코가 긴’ 특징을 강조해 ‘코+길이’라고 만든 말이야. 경험을 통해 얻은 수많은 의미 중 가장 특징적인 일부를 강조한 것이지. 사람들은 ‘코끼리’라는 말로서 그 동물의 전체 의미를 상상하지. 이처럼 말은 경험 배경 중 일부를 전경으로 강조해 만들어놓고 전경의 말소리(형태)를 통해 배경이 되는 의미들을 주고 받지.
말소리는 구체적인 대상을 가르킬 때도 있고, 추상적인 의미들을 아우를 때도 있어. 말의 구체성과 추상성은 상대적이야. 가령 ‘코끼리’가 구체적인 대상을 가르키는 말이라면 ‘동물(動物)’은 여러 대상들 중 ‘움직임(動)‘이라는 공통의 특징을 강조한 말이야, ‘아프리카코끼리’는 ‘코끼리’들 중 ‘아프리카’라는 구별된 (지역적)특징을 강조한 말이고. ‘코끼리’이라는 말을 기준으로 ‘동물’은 더 추상적이고 ‘아프리카코끼리’는 더 구체적이지. 형태적으로 볼 때 추상성이 높은 말은 다소 단순해지고, 구체성이 높은 말은 다소 장식적인 느낌이 있어.
디자인에 있어 주어진 문제가 배경이라면 디자인 결과물인 형태는 전경이지. 디자인도 언어처럼 문제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좀 더 추상적이고 단순하게 접근할 것인가, 좀 더 구체적이고 장식적으로 접근할 것인가. 과거 전통 공예 시절의 장인들은 주로 구체적이고 장식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어. 19세기 이후 혁명이 거듭되면서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고 과거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문제는 복잡해졌지. 더 이상 구체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표면’이 구별되는 특징을 찾는 것이라면, ‘근본’은 공통의 특징들을 찾는 과정이야. ‘아프리카코끼리’라는 구체적인 말과 ‘동물’이라는 추상적인 말을 만드는 것처럼. 당연히 예술가와 디자이너도 다소 추상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경향이 생겼지. 특히 산업디자이너들은 공예시대에 흔히 사용되던 구체적인 장식들을 모두 제거하고 단순한 형태로 압축하는 현대적 양식을 만들어냈어. 이를 디자인 역사에서 ‘모더니즘 디자인’이라고 말해.
02) 프레임 혁신
이번엔 전경과 배경을 3차원으로 바꿔 건물에 은유해 보자. 밖에서 건물로 들어가려면 문이나 창문을 통해야 한다는 점에서 건물 전체가 배경이고 문이나 창문은 전경이야. 언어의 의미가 배경이고 형태가 전경이듯이. 마찬가지로 건물에서 문이나 창문처럼 주어진 ‘틀’을 ‘프레임(frame)’이라 말하듯이 언어에서도 다양한 의미나 경험 중 일부를 언어 형태로 만드는 과정을 ‘프레임’이라고 말해.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 1941)는 언어 만들기를 일종의 프레임 과정이라고 주장해. 그의 유명한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마(Don’t Think of an Elephant)』는 정치인들이 언어적 프레임으로 자신들의 이념을 어떻게 담론화하는지 그 원리를 설명하고 있어. 이 책의 핵심은 ‘어떤 프레임으로 소통하냐’이지. 미국의 공화당은 ‘국가=가족’이라는 은유 프레임을 갖고 있었어. 때문에 자신들의 이념을 ‘엄격한 아버지’ 프레임으로 일관되게 소통했지. 자신들의 가치나 이념을 설명할 때도 주로 ‘가족’에서 쓰이는 언어들을 활용했고. 덕분에 아주 친숙한 말들로 국민을 설득했고 오랜 시간 집권할 수도 있었어. 민주당이 공화당을 이기려면 ‘국가=가족’의 담론 프레임부터 바꿔야만 했어. 가령 빌 클린턴의 유명한 말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처럼.
디자인도 언어라는 점에서 좋은 디자인은 대체로 좋은 프레임을 갖추고 있어. 프레임이 모호하면 좋은 디자인이 되기 어렵지. 전경으로서 디자인을 표현할 때 배경이 되는 의미 전체를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해. ‘코끼리’라는 이름처럼 일부만을 강조할 수밖에 없지. 디자인에서 표현은 건물의 문이나 창문과 비슷해. 우리가 건물에 들어갈 때 문을 열고 들어가듯이 사용자도 표현된 디자인을 통해 전체 의미로 들어가게 되지. 때문에 디자이너는 건물의 어디에 어떤 모양과 크기로 문을 만들지 고민해야 해. 즉 다양한 의미배경 중 어떤 언어가 의미 전체를 대변하는 전경 프레임으로서 가장 매력적일지 고민해야 하지.
‘국가=가족’ 사례에서 보았듯 ‘환유(metonymy)’와 ‘은유(metaphor)’는 대표적인 언어 프레임 기법이야. 환유는 서로 연결된 영역에서 일부를 가져와 비유하는 행위이고, 은유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비슷한 개념이나 특징을 가져와 비유하는 행위야. ‘코끼리’처럼 그 동물과 연관된 일부를 가져와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 환유이고, ‘내 마음은 호수’처럼 마음과 다른 영역에 있는 ‘호수’ 개념을 가져와 마음에 빗대는 것을 은유라고 할 수 있지. ‘국가는 가족’도 은유에 해당되고. 보통 ‘국가’나 ‘마음’ 같은 추상적인 말은 소통하기 어려워. 은유 프레임을 통해 ‘가족’이나 ‘호수’ 등 경험적인 말로 빗대주어 소통이 원활해지도록 만들어주지.
디자이너들도 ‘환유’나 ‘은유’ 기법을 많이 활용해. 디자인 형태가 너무 추상적이면 사용자와 소통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거든. 환유는 화장실 앞 ‘픽토그램’처럼 화장실의 다양한 기능 중 구별되는 특정 기능만을 강조할 때, 은유는 ‘레고’처럼 낡은 브랜드 이미지를 세련되게 바꿔줄때 주로 사용하지.
앞서 디자인은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디자인은 사물이나 이미지를 완전히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아니야. 기존에 있던 제품의 기능 중 새로운 부분을 강조해 환유하거나, 다른 영역에서 유사한 개념을 끌어와 은유함으로서 기존의 제품이 새롭게 보여지도록 인식 프레임을 바꿔 줄 뿐이지. 건물로 치면 기존에 출입하던 문을 새로운 문으로 바꿔주는 것이랄까. 때문에 디자인의 문제 해결은 재건축처럼 기존 건물을 완전히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짓기보다는 재생건축처럼 새롭게 보이도록 프레임을 전환해 주는 것에 가까워. 이를 키스 도스트는 ‘프레임 혁신(Frame Innovation)’이라고 말하지.
프레임 혁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를 어떤 맥락(context)에 놓으냐’야. 같은 말이라도 맥락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거든. 한국말에서 ‘배’라는 말은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쓰여. ‘과일’일 수도 있고, ‘운송 수단’일 수도 있고, ‘신체 일부’일 수도 있지. 이렇게 프레임 혁신은 단순히 전경만 바꾸는 것만이 아닐 배경이 되는 맥락 전체를 바꾸는 행위라고 볼 수 있지. 앞서 언급했듯이 새로운 전경을 찾으려면 배경을 확장해야 하니까.
디자인도 제품이나 브랜드의 맥락을 바꾸거나 확장함으로서 혁신적인 제품과 이미지를 만들어내. 애플의 ‘아이폰’이 대표적인 케이스지. 스티브 잡스(Steven Jobs, 1955~2011)는 기존 휴대전화기에 앱(app)이란 새로운 개념을 추가해 휴대전화기의 맥락을 확장시켰어. 덕분에 ‘핸드폰’ 개념이 ‘스마트폰’으로 전환되었지. 맥락의 전환과 확장은 디자이너만이 아니라 사용자에 의해 형성되기도 해. 사용자들이 스마트폰을 호두까기 망치로 쓸 수도 있어. 다수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망치로 사용하면 ‘스마트폰망치’라는 새로운 범주가 추가될 수도 있지. 아마 디자이너는 스마트폰이 망치로 사용되리라곤 예상치 못할거야.
정리하면 디자인에 있어 문제 인식은 디자인을 둘러싼 맥락적 배경을 살피는 거야. 특히 기존 디자인 대상이 쓰였던 기능적 배경과 새로운 디자인이 쓰여질 기능적 배경의 차이를 잘 살펴야해. 그리고 나서 ‘환유’와 ‘은유’ 기법을 통해 기존의 낡은 프레임을 새로운 프레임으로 전환해야지. 이런 기법을 디자인에서 ‘디자인 컨셉(concept) 잡기’라고 말해. 디자인 컨셉이 잡히면 자연스럽게 전경이 되는 기능을 어떻게 표현할지 판단할 수 있게 되지. 즉 언어만들기가 ‘전체 의미에 접근하는 프레임을 잡아주는 것’이듯, 디자인하기는 ‘전체 기능에 접근하는 프레임 바꿔주기’라고 할 수 있지. 이게 바로 디자인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야
03) 다양성과 적절성
“네, 아니오로 대답해주세요” 요즘 TV를 보다 보면 종종 이런식의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있더라고. 한국 사회는 인생의 중요한 길목마다 시험으로 경쟁해서 그런지 모든 일에는 정답이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어. 물론 살다 보면 양쪽 중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양쪽을 타협해야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아. 한쪽을 선택하는 경우는 답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 명확한데, 타협하는 경우는 답이 모호해 좀 답답하지. 하지만 말이 어떤 맥락에 놓이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듯이, 타협도 맥락에 따라 적절함이 달라지지.
적절함을 고상한 한자로 말하면 ‘중용(中庸)’이야. 동양이든 서양이든 오래된 고전들은 모두 ‘중용’을 강조했지. 여기서 중용은 기계적 중간이 아니라 ‘다양한 맥락 속에서의 적절함’을 의미해. 그래서 중용의 적절함은 그때그때 다를 수 있지. 인내가 적절할 수도 있고 때론 분노가 적절할 수도 있으니까. 또 적절함에 대한 인식은 문명과 문화와 따라 다르기도 해.
본래 한자 ‘中’은 중간을 의미하지. 천자문에서 ‘中’을 ‘가운데 中’이라 말하는데, 한국말 ‘가운데’는 중간이 아니라 바깥 테두리에 있는 수많은 ‘가’들의 관계 전체를 의미해. 한국말 언어학자 최봉영의 풀이를 인용하면, 본래 ‘가운데’는 ‘가온데’였어. ‘가’는 바깥과 안쪽의 경계를 말하고 ‘온’은 ‘오다’에 뿌리를 둔 말이야. 마지막 ‘데’는 ‘무엇이 자리한 곳’이고. 그래서 ‘가운데’란 ‘가에서 온 곳’으로 어떤 것을 둘러싸고 있는 이쪽 ‘가’와 저쪽 ‘가’ 사이에 오갈 수 있는 전체라는 의미야. 즉 ‘가운데’는 ‘가 안에 있는 모든 곳’이야.
한국의 민속 씨름은 전형적인 가운데 경기야. 선수들이 가 안에서만 움직여야만 하거든. 가 밖으로 가면 경기를 다시 시작하지. 씨름 경기장은 원으로 되어 있지. 원이 전체 배경이고 중간의 한 점이 전경이라면 원 안에는 다양한 점들이 있지. 이중 주체성을 강조한 서양과 중국의 중용은 대체로 원의 중심점을 의미해. 반면 한국말에서 ‘가운데=중용’은 원의 중심이 아니라 원의 가에 있는 수많은 점들이 함께하고 있는 상태야. 이 수많은 점을 한국말로 ‘쪽’이라고 말해. 그래서 한국 사람들에게 중용은 ‘다양한 쪽들의 함께성’이야. 쉽게 말해 서양과 중국의 중용이 ‘다양한 배경 속 적절한 전경’을 강조하는 반면 한국의 중용은 ‘전경의 적절함을 위한 배경의 다양성’을 강조하지.
많은 디자인책들의 결론은 항상 비슷해. ‘적절하게 디자인해라’. 맞는 말이긴 하지만 때론 틀린 말이기도 해. 오로지 전경만을 강조한 느낌이거든. 언어에서 배경은 다양성이고 전경은 적절성에 해당돼. 때문에 디자인에서도 다양성과 적절성이 모두 중요하지. 실제 디자인을 하다 보면 다양성이 요구되는 경우가 아주 많아. 또 적절한 디자인을 하려면 최대한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이 좋고.
만약 디자인에 양쪽 스팩트럼이 있다면 양극단은 다양성과 적절성이 될거야. 물론 디자이너는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적절한 선택을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는 의미는 아냐. 절대 양자택일의 모순에 빠지면 안되지.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어. 직관적으로 떠오른 적절함보다 항상 ’더 좋은 적절함’을 찾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거듭해야지. 그것이 1mm의 차이일지라도. 때론 지금까지 진행해 온 결과물을 모두 폐기하고 완전히 새롭게 접근할 수도 있고. 그래서 디자이너는 항상 변화할 수 있도록 열린 마음을 갖고 있어야지.
디자인만이 아니라 삶의 각종 영역에서 다양성과 적절성은 반드시 공존해야해.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더’야. 적절성이 요구되는 상황이라면 다양성을 통해 ‘더’ 적절한 방향을 모색해야 하고,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면 ‘더’ 많은 다양성이 함께 공존하기 위한 적절한 규칙이나 제도가 있어야 하지.
정치에서도 다양성과 적절성의 균형이 중요해. 정치에서 다양성과 적절성 중 어느 한쪽이 선택되면 독재나 혼란으로 치닫을 가능성이 높아. 러시아와 싱가포르, 중국과 같은 나라는 한 사람이나 하나의 당이 오랜 시간 집권해왔어. 그럼에도 이들이 국민들에게 인정받는 이유는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서 과거의 적절함에 머물지 않고 더욱 더 적절한 방향을 추구한 덕분이야. 이들은 다른 당과의 연정 혹은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능력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국가와 정당내 다양성을 유지해 왔지. 반면 미국이나 영국, 한국과 같은 나라는 두 개 혹은 여러 개의 정당이 공존하는 다당제 국가야. 이 국가들은 방향성이 다른 거대 양당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국가와 정당의 경쟁력을 키워왔지. 이런 국가는 정당과 권력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제도를 두고 있어. 이 제도들에 기반해 다양성이 보장되지. 상황이 변해 다양성에 위협이 된다 싶으면 국회에서 더 적절한 제도를 만들어 다양성을 유지하도록 만들고.
다양성과 적절성에 있어서는 역사와 과학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예일대 역사학 교수인 존 루이스 개디스(John Lewis Gaddis, 1941)는 『역사의 풍경(The Landscape of History)』에서 과학자들과 역사가들의 연구 방법이 비슷하다고 말해.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해. 다양성과 적절성의 반복이야. 글쓰기로 비유하면 읽다가 생각나면 쓰고, 쓰다가 막히면 다시 읽는 거야. 이때 읽기는 다양성, 쓰기는 적절성에 해당되지. 세계사의 거장이라 불리는 역사학자 윌리엄 맥닐은 역사학자와 과학자들이 함께한 학술대회에서 이렇게 말했어. “저는 한 문제가 궁금해지면 그와 관련된 자료를 읽어나갑니다. 그러면서 문제를 재정의하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문제가 한층 더 새롭게 다가오고, 독서의 방향도 달라집니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이 방법을 반복합니다.”(『역사의 풍경』 81p) 요약하면 ’읽다가 생각나면 정의하고, 정의한 것에 의문이 생기면 다시 읽고‘를 반복한다는 것이지. 이 얘기를 들은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 방법도 다르지 않다며 크게 공감했어.
요즘 읽고 있는 신경과학자 스타니슬라스 드앤(Stanislas dehaene, 1965)의 『글 읽는 뇌(Reading in the Brain)』에는 이런 구절이 나와. “우리의 신경 시스템이 모호성과 직면했을 때의 기본 전략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이다.”(69p) 다양성과 적절성의 타협과 중용은 복잡한 뇌를 가진 인간의 기본 전략이야. 때문에 디자인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역사,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방법이자 연구자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태도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이너 또한 마찬가지야. 디자이너는 “네, 아니요”라는 정답의 선택이 아니라 언제나 ‘더’ 적절한 답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항상 다양성에 대한 열린 태도를 가져야지.
그래픽디자이너이자 디자인 교육자이다. 그린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디자인이 사람과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현재 경향신문과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디자인 공부 공동체인 ‘디학(designerschool.net)’에 참여한다. 쓴 책으로는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X축》(스테파노 반델리, 2012) 《런던에서 온 윌리엄모리스-그는 왜 디자인의 아버지인가》(지콜론북, 2014) 《역사는 디자인된다》(민음사, 2017) 《아빠 디자인이 뭐예요》(이숲, 2020)이 있으며, 공저로 《디자인 확성기》《디자이너의 서체 이야기》(지콜론북)가 있다. 이 외 〈다른 백년〉, 〈디자인 평론〉, 〈경향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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