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에 관한 글을 쓰려는 차에 마침 버섯이 떨어졌다. 버섯은 채식 생활에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요소다. 버섯 농부에게 주문을 넣고 며칠 뒤 양양에서 생표고버섯이 담긴 택배가 도착했다. 기온이 높고 습한 여름철에는 금방 상하기 때문에 얼른 박스를 열어 환기를 시키며 곧바로 손질한다. 한여름에 자연농 재배 버섯이 나오지 않는 이유다.
1킬로의 표고버섯 중 3분의 1은 냉장 보관해 열흘 안에 요리해 먹고, 나머지는 머리와 밑동을 분리해 머리는 썰어서 냉동 보관하며 갖가지 요리에 사용하고, 밑동은 얇게 찢어 버섯 장조림을 만든다. 생표고는 수분이 잘 흡수돼 금방 상하기 쉬운 상태가 되니 요리하기 직전을 제외하고 물에 씻지 않는다. 혹은 웬만하면 씻지 않고 먹는다. 유기농으로 자란 버섯은 웬만하면 흙만 대충 털어먹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버섯을 좋아한 적이 있었던가? 감자탕, 제육볶음, 된장찌개, 반찬 등 기존에 먹던 음식에서 항상 부가적으로 존재하는 재료였다. 그의 존재감은 탕수육 소스에 들어간 당근처럼 미비해 남기기 일쑤였다.
육식을 끊고 식물성 식재료의 세계를 접하며 가장 먼저 매료된 건 버섯이다. 표고버섯, 느타리버섯, 만가닥버섯, 목이버섯, 팽이버섯, 노루궁뎅이버섯, 송이버섯, 새송이버섯, 양송이버섯, 송로버섯, 잣버섯, 깔때기버섯, 방망이버섯, 뽕나무버섯, 우단버섯, 배꼽버섯, 애기버섯, 부채버섯, 긴뿌리버섯, 먹물버섯, 볏집버섯, 풍선끈적버섯, 젖버섯, 꾀꼬리버섯, 나팔버섯, 턱수염버섯, 노랑망태버섯···. 한국에서만 97여 종의 식용 버섯이 자라지만 익숙한 열댓 가지 남짓만 시중에 유통된다. 버섯 우린 채수의 담백한 풍미를 맛보면 멸치나 고기 육수 따위는 그립지 않다. 원초적인 자연의 무궁무진한 맛을 재발견할 때마다 채식하길 잘했다는 깊은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사실 버섯은 식물이 아니다. 다행히 동물도 아니다. 버섯은 균으로 분류된다. 어쨌거나 살아있는 생물인데, 그것도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생존한 생물 중 하나이자 조상이다. 그만큼 생태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생물이 수명을 다하면 균이 사체를 분해해 다른 생명을 낳는 초석인 유기물, 즉 비옥한 토양이 된다. 인류도 6억 5천만 년 전 균류에서 갈라져 탄생한 유기체다. 우리가 음식을 섭취해 에너지를 전달받고 배설하면 거름이 되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자연이라는 거대한 순환 시스템은 모두 유사한 형태를 띤다.
동물을 먹는 행위는 내가 피울 수 없는 생명을 취하고 순환을 막는 어리석은 짓이다. 채소가 풍부하면 고기는 필요 없다. 인류의 진보와 함께 육식을 중지하는 것이 운명이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 고결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가져야 한다. 풍요로운 양분이 축적된 땅에서 자란 식물을 먹는다는 것은, 오랜 시간 지구에 생존하며 저장된 생명의 유전자를 섭취하는 미적, 미각적, 미학적인 의식이다.
구운 새송이버섯 새싹 샐러드
입맛 없고 요리하기 귀찮은 날을 위한 별미. 구운 버섯의 풍미와 싱그러운 새싹 채소가 기운을 북돋는다.
ᄋ 재료 : 새송이버섯, 새싹 채소, 썬드라이 토마토, 소금, 후추, 스테이크 시즈닝, 파슬리, 올리브유, 발사믹 식초, 레몬즙
1. 새송이 버섯을 일정한 두께로 세로로 썰고 한 면에 칼집을 낸다.
2.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중약불에 버섯을 뒤집어가며 노릇해질 때까지 굽는다. 소금, 후추, 스테이크 시즈닝을 한 꼬집씩 뿌려 간을 맞춘다.
3. 접시에 구운 버섯과 새싹을 올린다. 새싹에도 소금, 후추 를 한 꼬집 뿌리고 레몬즙, 올리브유, 발사믹 식초를 두른다.
버섯의 쫄깃하고 부드러운 식감은 ‘고기’에 가장 가까워, 고기가 들어가는 요리엔 버섯을 넣는다. 부패한 미각을 가진 사람이 기억하는 고기 맛은 곧 양념 맛이기에, 부족함은 없고 자연의 충만함만 있다. 유기농으로 키워 갓 딴 표고버섯을 생으로 먹으면 깊게 배인 참나무 향은 고기 따위와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음식’에서 부재하는 ‘고기’를 버섯이 대체한다는 오해는 마시길. 버섯이랑 고기랑 싸우면 버섯이 이긴다. 버섯은 살아있는 열매고 고기는 죽은 사체다. 노루궁뎅이버섯을 튀기면 ‘치킨’ 같은 감칠맛에 깜짝 놀란다. 표고버섯이 있다면 국물 요리는 성공이 보장된다. 생김새처럼 맛과 효능이 다양한 버섯의 마력은 끝이 없다. 채식하기 전엔 잡채에 들어가는 목이버섯 생김새가 징그러워 입에도 대지 않았는데, 탱탱하고 오묘한 식감에 빠져 요즘 가장 즐겨 찾는다.
네이버 음식 백과에서도 ‘채식 식단에 꼭 필요한’ 식재료로 버섯을 소개한다. 건강한 식단의 이상적인 예로 곡류, 콩류, 계절 채소, 계절 과일, 견과류, 해조류를 골고루 섭취하라고 하지만 나는 균류도 포함한다. 버섯의 종류에 따라 맛과 효능이 다르지만, 영양학으로 따지자면 많은 버섯에 포함된 풍부한 식이섬유는 장 운동을 활발하게 해 변비, 설사, 여드름 등 여러 가지 장 질병을 예방한다. 또한 채식으로 섭취하기 어렵다고 알려진 비타민 B, D뿐만 아니라 비타민 C, 다당류, 칼슘 등을 공급한다.
동의보감에서 대표적으로 쓰인, 항균 작용과 면역계를 강화하는 약용 버섯도 있다. 중국에서 운지버섯으로 불리는 구름버섯은 버섯 중 처음으로 항암물질인 폴리사카라이드가 발견됐다. 균류학자 폴 스테이메츠의 어머니인 패트리샤 앤 스테이메츠는 12년 전 84세에 유방암 4기를 판정받았는데, 연세가 많아 방사선 치료나 유방절제가 불가능했다. 그가 찾은 모든 의사는 모두 죽음을 예고했다. 그즈음 배스티어 의대에서 구름버섯에 관해 흥미로운 연구를 했다며 패트리샤가 그걸 복용해보면 어떻겠냐 제안해왔다. 마침 버섯 덕후인 폴은 구름버섯을 판매하는 중이었다. 패트리샤는 약물 치료를 시작하며 아침저녁으로 구름버섯 4캡슐을 복용했다. 그 뒤로 종양이 사라진 채 10년을 더 살았다.
균류 다양성이 곧 생물다양성이다. 나의 부엌 생태계에 버섯이 단단히 자리 잡았다. 냉장고에 버섯이 있어야 마음이 든든하다. 버섯은 손질하기도 쉽고 짧은 시간 안에 완성할 수 있어 요리 초보가 다루기 좋은 재료다. 그는 자연에서 제 역할을 하듯 어느 요리에 들어가도 무난하게 존재감을 뽐낸다. 버섯 무침, 버섯 전골, 버섯 구이, 버섯 파스타, 버섯 볶음밥, 버섯 덮밥, 버섯 수프, 버섯 김밥, 버섯 조림, 버섯전, 버섯 강정, 버섯 비빔밥, 버섯쌈, 버섯찜, 버섯무침, 버섯 피자, 버섯 리소토, 버섯 초밥, 버섯탕···. 균의 사명인 생태 순환을 이루고자 나의 조상 버섯에게 큰절을 올리는 마음으로 버섯을 먹는다.
균류의 포자를 지닌 버섯은 유기물이 있는 어디에서나 자란다. 식물을 키우는 화분에서 종종 버섯이 자라고, 동물의 배설물에서도 자란다. 소를 모시는 힌두교 섬 발리에 살 때 인간 못지않게 소가 많았다. 밤새 비가 오고 다음 날 아침 집 근처 들판에 가면 소의 대변에서 마법의 버섯이라 불리는 실로시빈이 가득 자라있었다. 이 버섯과 관련된 재미난 가설이 있다. 다르마 계통의 종교에서 신성시되는 주문인 ‘옴Om’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 날 소 대변에서 자란 환각 버섯을 먹고 마법의 세계를 여행하던 수행자가 있었다. 도처에서 ‘음메-’하고 말하는 소의 울음소리를 듣고 진리를 깨우쳤다. 그리고 흡사한 어감의 옴 만트라를 창시했다고 한다.
카메라를 들고 지구를 유랑하는 낭만적 유목민. 네트워크 안팎에서 이미지와 신체로 연결되는 작업하는 사람. 기술을 경유해 생명의 공통 언어를 모색하는 미학적 수행자. 종의 경계가 허물어진 생태적 관계망을 상상하며, 더럽고 아름다운 것들을 채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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