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소개
안녕 여러분. 내 이름은 윤여경이야. 언젠가 한 친구가 내가 모든 것을 디자인과 연결시킨다고 나를 ‘디자인 깔대기’라고 불렀어. 실제로 나는 경향신문에서 정보 그래픽 디자이너로 20년을 일해 왔고 디자인과 관련된 글도 많이 썼어. 겸직으로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대안학교 ‘디학(designerschool.net)’도 운영하고 있어. 최근에는 언어학에 기반한 디자인이론을 만들고 있어. 안타깝게도 디자인 분야에는 대표로 내세울 만한 이론과 교과서가 없거든. 디자인은 이론적 기반이 취약해서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모호해. 디자인을 할 때도 개인의 취향에 좌고우면하는 경우가 많고. 이런 답답한 상황을 겪다 보니 결국 나라도 디자인이론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나는 대학원에선 ‘그린디자인(green design)’을 전공했어. ‘그린디자인’이란 말은 대학원 전공을 개설하기 위해 윤호섭 선생님이 선택한 용어로 ‘환경문제를 디자인 대상으로 여기자’는 취지야. ‘디자인(design)’에 대해선 나중에 말하고 우선 ‘그린(green)’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린’은 1970년대 미국에서 비롯된 상징이야.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진보를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노동’이었지. 1970년대 새롭게 등장한 미국의 젊은 세대들은 노동 중심의 진보 이념에 반발하기 시작했어. 당시 유럽과 미국의 기득권 세대는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폭력적이었거든. ‘혁명’과 ‘문명’이라는 이념으로 자신들이 일으킨 폭력과 전쟁을 포장했고. 기득권의 폭력적 행태에 분노한 젊은 세대들은 비폭력 저항을 시작했어.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전쟁에 반대하는 젊은이들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0)’ ‘마하트마 간디(मोहनदास करमचन्द गांधी, 1869~1948)’ ‘마틴 루터킹(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 등의 비폭력 정신을 모범으로 삼아 크게 저항했지.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 젊은 세대가 주도한 촛불시위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기득권에 저항한 젊은 세대들이 추구했던 새로운 이념은 크게 세 가지야. ‘반전’ ‘여성’ 그리고 ‘생태’. 모두 폭력과 반대되는 가치들이라는 점에서 ‘폭력 vs 비폭력’의 구도였다고 볼 수 있지. 보통 이념은 상징적인 색깔을 가지는데 ‘노동’과 ‘혁명’을 상징하는 색은 ‘붉은색(red)’이였어. 때문에 당시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주로 ‘붉은색’으로 대변되었어. 우리나라에선 이런 사람들은 아직까지 ‘빨갱이’라고 부를 정도니 ‘붉은색’이라는 상징이 세계적으로 얼마나 광범위하게 쓰였는지 짐작할 수 있지. 붉은색에 저항한 젊은 친구들은 ‘녹색’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았어. 녹색 깃발을 올리며 붉은색 깃발에 저항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될거야. 앞서 말했듯 이 녹색에는 전쟁과 여성차별, 환경파괴 등 폭력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담겨있었지. 녹색의 저항으로 적색의 세상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어.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도 더욱 다채로워졌지. 50여년이 지난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적색과 녹색이 마구 뒤엉킨 상황이야.
‘그린’ 나아가 ‘그린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디자이너로서 전문영역이라는 함정에 빠져있던 나 자신을 성찰하게 되었어. 디자인을 둘러싼 세상의 다양한 가치들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디자인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꿈도 꾸게 되었지. 사실 우리 앞에 놓인 세상의 문제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아. 여러 주체들이 아주 복잡하고 복합적으로 얽혀 있거든. 게다가 맥락에 따라 문제의 양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해결하기도 아주 까다로워.
나는 현대 사회가 직면한 문제의 복잡성과 해결의 어려움을 인식하면서 다양한 분야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었어. 다양한 분야를 이해해야만 현대 사회의 문제를 제대로 정의할 수 있고, 해결의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디자인과 예술뿐만이 아니라 철학, 역사, 과학, 정치, 경제, 사회, 언어 등 여러 분야의 책들을 읽고 있어.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존중받았던 경전과 고전들과 21세기 미래를 예측하는 미래학자들의 글도 읽으려고 노력해. 이런 공부가 쌓여가면서 디자이너로서 나의 역할과 책임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고, 디자인교육자로서 디자인이론의 필요성과 디자인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 것 같아. 이렇게 나를 소개하다 보니 ‘디자인 깔대기’란 별명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네.
2. 전경으로서의 디자인 : 언어만들기
내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까. 우리가 눈으로 보는 장면은 전경(foreground)과 배경(background)으로 구분되어 있어. 또렷하게 보이는 전경은 우리가 주목하는 대상으로 흐릿한 배경에서 분리되어 있지. 이런 시지각 현상은 사람의 생각과 언어에도 그대로 적용돼.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글은 또렷하게 보이고 그 주변은 흐릿하게 보이지? 여러분이 이 글을 읽어가듯이 또렷한 전경은 항상 흐릿한 배경의 맥락에서 개념적으로 이해되지.
‘디자인’이란 말에 있어서도 전경과 배경이 있어. 먼저 전경으로서 ‘디자인’에 대해 살펴보자. 디자인의 어원은 크게 두 가지야. 하나는 이탈이아어인 ‘디세뇨(disegno)’이고 다른 하나는 라틴어인 ‘데지그나레(designare)’지. 디세뇨는 ‘머리로 하는 작업’을 의미해. 이탈리아어에서 계획이나 의도, 목적 등을 말할 때 ‘dessein’라고 말했다고 해. 이와 비슷한 말로 데생(dessin)이란 말도 있어. 데생은 ‘손으로 하는 작업’으로 소묘를 생각하면 돼.
유럽은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면 많은 것이 변화했어. 예술에 있어서는 미술 교육과 미술가들의 활동이 상당히 달라졌지. 본래 미술가들은 중세에 형성된 길드를 중심으로 교육과 활동이 이루어졌는데, 르네상스 이후 여러 길드가 해체되면서 미술가들도 길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했어. 당시 이 변화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미술 아카데미 이름이 ‘아카데미아 델 디세뇨(Accademia Del Disegno, 1563)’야. 이 아카데미는 미술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년)가 피렌체 최고 권력자 코시모 1세(Duke Cosimo l de’ Medici)의 후원을 받아 세운 미술전문교육기관이야. 이 학교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새로운 미술교육기관은 ‘머리로 하는 작업’인 디세뇨를 중요시 여겼어.
라틴어 데지그나레는 de와 signare의 합성어야. 영어 접두사 de는 ‘분리/제거하다’의 뜻이고 뒤의 signare은 ‘기호(sign)를 표시한다’는 말이야. 그래서 de+signare는 de+sign으로 ‘기호(sign)를 바꾸거나 새로운 기호를 창조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sign의 라틴어 어원은 ‘시그넘(signum)’으로 표시한다는 뜻이고 그리스어 어원은 ‘세메이온(semeion)’으로 ‘질병의 증상’을 말하는 의학용어였어. 그러니까 그리스 사람들에게 기호(sign)는 안에서 일어난 어떤 속성이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
영어 접두사 de는 그리스어에서 out의 의미였다고 해. 안에 있는 무언가가 겉으로 드러나거나 밖으로 나오는 느낌이지. 가령 decouple과 uncouple은 모두 ‘분리된다’는 뜻인데, uncouple은 열차의 차량 같은 물리적 사물의 분리이고 decouple는 연인이 헤어진다는 뜻으로,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분리된다는 의미지. 그래서 de라는 말에는 ‘저항하다’나 ‘바뀐다’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어. 때문에 de+sign에서 ‘분리된다(de)’는 것은 기호(sign)의 겉만이 아니라 속까지 총체적으로 변화됨을 의미해.
정리하면 전경으로서의 디자인은 ‘기존의 기호를 새로운 기호로 바꿔 표현하는 행위’라고 보면 될 것 같아. 겉모습만이 아니라 속성까지 완전히 바꿔버리려는 태도라고 할까. 언어로 치면 새로운 개념의 말과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이고, 사물로 치면 새로운 기능을 가진 설계도(prototype)를 만드는 행위라고 볼 수 있지. 이런 점에서 어떤 의도와 의미를 가지고 언어와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 디자이너라고 말할 수 있어.
3. 배경으로서의 디자인 ; 문제 해결하기
이번엔 배경으로서 ‘디자인’에 대해 살펴보자. 언어적 의미에서 배경은 ‘맥락’ 혹은 ‘개념’이야. 영어로는 ‘context’ 혹은 ‘concept’이지. 영어에서 접두사 con은 ‘함께 한다(together)’는 의미야. context은 천과 같은 짜임(text)이 함께 하는 것이고, concept은 붙잡아 취한(cept) 것들이 함께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지. 즉 배경인 ‘맥락’과 ‘개념’은 여러 의미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뜻이지. 그리고 각각의 의미들은 모두 전경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어.
배경으로서의 디자인은 앞서 살펴본 전경으로서의 디자인이 어떤 맥락적 의미를 갖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과정이야. 사실 디자인에 있어 배경적 의미는 대부분 비슷해. ‘문제 해결’이라는 공통의 맥락적 목적을 공유하고 있거든. ‘머리로 하는 작업’ 즉 사람이 어떤 의도나 목적을 갖고 계획하는 행위는 대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되지.
디자인 사상가 빅터파파넥(Victor Papanek, 1927~1998)은 『인간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the Real World)』에서 디자이너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소양으로 “문제들을 인식하고, 명확히 하고, 정의하고, 또한 해결해내는 능력”을 강조했어. 또 캐나다의 디자인 철학자 글렌 파슨스(Glenn Parsons)는 『디자인의 철학(The Philosophy of Design)』에서 “디자인은 새로운 유형의 사물을 위한 설계도의 창조를 통한 어떤 문제의 의도적 해결이다.”라고 정의해. 여러 디자인 사상가들이 공통으로 언급하는 키워드는 ‘문제 해결’이야. 다만 글렌 파슨스의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디자인은 주어진 문제를 익숙한 방식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라고 볼 수 있지.
우리가 보통 기억하면 과거의 어떤 것을 떠올리거나 기록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기억은 과거보단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더 많이 기억해. 사실 우리 뇌는 미래의 일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 퇴근하고 저녁엔 무엇을 먹을지, 내일 업무는 무엇인지, 친구와의 약속이 언제인지 등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기억하고 계획하면서 현재를 살아가지. 어쩌면 과거의 기억은 미래의 기억을 좀 더 확신하기 위한 근거 정도로 쓰일지도 몰라. 가령 과거 좋았던 경험을 떠올려 친구와 약속을 잡으니까.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야. 먼저 과거에 어떻게 해결했는지 살펴본 다음 그것을 참고로 좀 더 적절한 해결방안을 찾지. 아마 우리에게 미래기억이 없다면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미리 준비해 놓아야 할지 알 수 없을거야.
디자인은 과거가 아닌 미래 기억이라고 볼 수 있어. 과거 기억에는 어느 정도 답이 있지만 미래 기억은 답이 없지. 그래서 디자인의 문제 해결은 항상 실험적이고 모험적이야. 언제나 독특한 창의력이 요구되지. 어떤 문제를 오로지 과거의 기억에 의지해 해결하려는 태도는 디자인이라 말하기 어려워. 오래전 세상이 느리게 변할 때는 과거의 해결 방식이 통했을지 모르겠지만, 요즘처럼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사회는 과거의 해결 방식으론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그 이유는 문제를 둘러싼 배경의 맥락이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야. 같은 문제도 맥락이 지나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되어 있지. 그래서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려는 태도가 아주 중요해졌지. 이 태도가 바로 디자인이 추구하는 문제 해결 방식이야.
약 200년 전 산업혁명 이후 세상은 엄청나게 빠르게 변해 왔어. 산업화와 자본주의는 상품을 생산하는 방식도 크게 바꾸었지. 과거에는 필요한 물건을 주로 집에서 만들고 주변 사람들과 소통했다면 이젠 공장에서 상품을 대량생산하고 디지털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시대를 살고 있어. 이런 세상은 변화가 빠르고 미래의 불확실성도 아주 높지. 그렇기에 사람들은 과거의 해결책을 답습하기보다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훨씬 나아.
세상의 변화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면서 디자인의 중요성도 점점 더 커지고 있어. 경제 분야만이 아니라 정치와 사회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도 디자인의 문제 해결 방식을 주목하고 있는데, 이를 사람들은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이라고 말하지. 디자인 씽킹은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해결하는 과정이야. 디자인 씽킹을 잘하려면 여러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야만 해. 디자이너는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하고. 그래야 어려운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고 해결할 수 있지.
사람들은 산업 자본주의를 ‘분업화’와 ‘전문화’의 시대라고 말해. 나는 문제를 대하는 인식의 변화가 예술의 분업화를 불러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 세상이 엄청난 속도로 변하면서 문제는 다양해지고 복잡해졌지. 당연히 문제 정의와 해결도 어려워졌고. 이 어려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미술도 두 가지 역할로 분업-전문화된 것이지. 현대미술과 현대디자인으로.
현대미술가들은 암묵적으로 모든 것에 문제를 제기할 자격을 갖고 있어. 그들이 어떤 기이한 행동이나 표현을 해도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지. 심지어 모두가 합의한 규칙을 거스를지라도. 반면 현대디자이너들은 항상 문제를 해결할 준비를 하고 있어. 어떤 문제가 닥쳐도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지. 이런 점에서 전통 미술은 20세기를 지나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현대미술’과 문제를 해결하는 ‘현대디자인’으로 분리되지 않았을까 의심하고 있어. 때문에 디자인의 근본적 배경에 늘 ‘문제 해결’이 깔려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픽디자이너이자 디자인 교육자이다. 그린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디자인이 사람과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현재 경향신문과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디자인 공부 공동체인 ‘디학(designerschool.net)’에 참여한다. 쓴 책으로는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X축》(스테파노 반델리, 2012) 《런던에서 온 윌리엄모리스-그는 왜 디자인의 아버지인가》(지콜론북, 2014) 《역사는 디자인된다》(민음사, 2017) 《아빠 디자인이 뭐예요》(이숲, 2020)이 있으며, 공저로 《디자인 확성기》《디자이너의 서체 이야기》(지콜론북)가 있다. 이 외 〈다른 백년〉, 〈디자인 평론〉, 〈경향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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