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적 지식경제의 프로그램을 공식화하는 데 유용한 경제 분석과 논증의 관행은 전(前)한계주의 경제이론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으면서 한계주의가 전개한 경제학의 결함에서 벗어난 관행이다. 이러한 목표의 달성을 위한 통찰과 방법의 유일하고 가장 위대한 원천은 기성 경제학 그 자체다. 그러나 기성 경제학의 보호 아래서 수행된 작업은 내가 토론했던 방식으로 제약되어 있다. 그러나 기성 경제학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제학은 경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일군의 관념들로 남아 있다. 그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서 우리는 경제학의 도움을 통해 경제학의 결함들을 교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러한 작업을 여러 방법으로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작업을 포괄적인 이론으로도 할 수 있고 단편적인 이론으로도 수행할 수 있다. 나아가 우리는 기성 경제학과 그 담론의 공동체 안팎으로도 작업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지적 선택지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결합할 수 있다.
지적 대안은 포괄적인 이론적 기획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 그러한 기획의 가장 야심찬 형태는 강제의 중요성에 대한 과대평가 없이 또한 경제생활에서 상상력의 역할에 대한 과소평가 없이, 체제들, 구조적 불연속들, 구조적 대안들에 대한 필연주의적인 환상들 없이 고전경제학의 관심사들을 탈환하면서 스미스와 마르크스가 중단한 곳에서 계속할 수도 있다. 그러한 기획은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경제학의 옛 위상(생산과 교환의 현상에 적용되는 사회이론)을 찾고자 열망할 수도 있다. 종합적인 이론으로 전개된 이러한 지적 대안이 19세기 말 한계주의를 낳은 운동이나 20세기 중반 케인스의 제한된 이단처럼 경제학의 내부 운동에서도 귀결될 수 있다.
기성 경제학을 출발점으로 삼든 그렇지 않든 종합적인 이론은 항상 예외적일 것이다. 경제학 내부나 외부로부터 경제이론의 진로를 바꾸는 정상적인 방법은 포괄적이기보다는 단편적이다. 그 방법은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을 고립적인 전위들과 기술적 및 기업적 엘리트들에게 국한
시키는 것과 같은 특정한 문제를 탐구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방법을 발전시킨다.
그러한 방법은 현재의 시장안배를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안배들의 제도적 배경(경제 체제)과 생산 및 교환 현상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범위 안에서 단편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심오함을 달성할 수 있다. 급진개혁의 상상력(기성 구조의 점진적이지만 잠재적으로 누적적인 변화)은 급진개혁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 실천적 관심사이다. 급진개혁의 지적 희망과 실천적인 정치적 희망은 단편적인 이론과 급진개혁의 결합에 있다.
이 책은 단편적인 이론의 한 사례이다. 이 책은 하나의 사고방식을 탐구하고 범례화한다. 그러한 사고방식에 근거하여 이 책은 경제조직에서 점진적으로 성취되어야 할 급진개혁을 제안한다. 이 책은 단편적 이론과 급진적 개혁의 결합을 기대한다. 이 책은 경제와 그 변화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지식집약적인 생산의 성격과 대안적 미래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우리의 경제관념에서 대안적 방향의 일부 요소들을 제시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긴다.
이론화 작업이 포괄적이든 단편적이든 간에 우리는 경제학의 전문적인 담론과 전문적인 세계 안으로부터 혹은 경제학 바깥으로부터, 즉 내부에서 외부로 또는 외부에서 내부로 과업의 수행에 착수할 수 있다.
경제학 내부로부터 과제를 수행하는 것은 현재 지배적인 관념들과 방법들에 대한 투항을 의미하지 않는다. 경제학 내부로부터 과제를 수행하는 것은 지배적인 관념과 방법을 사용하고 이에 저항하고 동시에 이를 수정하는 것을 의미해야 한다. 경제학에서 그러한 제한적인 참여관행이 가능하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한계주의자들이 모든 시대를 위해 경제학의 방향을 정해버렸다고 상정하는 것일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한계주의자들처럼 지적 반란과 방향전환을 반복할 수 없다고 우려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한 그것은 한계주의 프로그램에 대한 19세기 후반의 경쟁이론들, 즉 벤담의 전통에서 경제학을 심리과학으로 다룬 에지워스의 방식이나
자연사와 조수나 기후과학에 유비하는 방식으로 느슨하게 연결되고 맥락에 구속된 인과적 연쇄들의 과학으로서 경제학을 발전시키자던 마셜의 제안이 보여준 경제학사의 다양성을 경시하는 것이다.
경제학 내부로부터의 이와 같은 단편적 이론 관행 아래서 사상가는 수학의 기준과 모형구축의 기준들을 포함하여 (사상가 자신의 분과로 부상하는 것을 전문적인 분과가 거부할 것이기 때문에) 분과 나름의 조건과 기준에 따라 전문적인 분과에 참여해야만 하지만, 다른 조건과 더 높은 기준을 고수해야만 한다. 사상가는 기성 경제학이 그 비전을 확대하고 그 도구를 확장하며 아울러 어떤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항상 그것이 무엇으로 변할 것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라는 전제에서 현실적인 것에 대한 통찰과 인접한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을 연결시킬 수 있는 조치들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사상가는 자신의 의도가 혁명적이라고 하더라도 실제로 관념의 영
역에서 급진개혁을 실천하고 연후에 이러한 관념을 실천의 영역에서 급진개혁의 지침으로 삼아야만 한다. 사상가는 심지어 자신의 아이디어를 두 가지 형태로(기성 분야에서 수용 가능한 형태로, 기성 분야의 제약들에서 더 자유로운 형태로) 제시하는 것이 유용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기준은 어려움과 고난, 희생이 있어야만 겨우 충족될 수 있다. 그러한 기준은 만족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골칫거리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력이 즉각적인 성공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후대의 여론에서 성공한다면 그 효과는 지속되고 더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 까다로운 분과, 그 관행과 방법과의 교전에 대한 보상은 철학자들의 사변에 대한 의탁이라기보다는 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사유방식의 발전이다.
안에서 바깥으로 그 너머로 이어지는 방법은 결코 지식경제의 본질과 대안적 미래와 같은 경제학의 주요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경제학은 한계주의자들이 개척한 방법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경제에 대한 연구이어야 한다. 전문적 실행자들이 경제학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들이 이왕 참여한 경우에는 경제학보다는 철학이나 사회이론으로 기술하기 좋아하는 방식으로 경제학을 수행하는 것은 항상 가능할 것이다.
이와 같은 외부로부터의 작업이 갖는 이점은 이러한 작업이 기성 경제학의 담론에서 할 수 있는 것만 말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경제학 외부로부터의 작업이 그 자체의 엄격한 기준을 만들어내지도 못하고 참여 조건으로서 천재성을 요구하지 않지만 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지적 관행 속에 표현되지도 못한다면 이러한 작업의 이점은 실제로 부질없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야망, 허영심, 무지가 이러한 매력을 기성 경제학의 성취와 외부로부터 기성 경제학에 반항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성 경제학의 통찰과 방법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도록 오도한다면, 이러한 작업의 이점은 가치 있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예컨대 경제이론에서 수학의 역할에 대한 성가신 질문을 고려해보자. 한계주의자들이 시작한 분석적 관행에서 수학은 중심적 기능을 획득했다. 수학은 인과과학보다 논리학에 더 가까운 경제학의 관행에서 바람직한 도구였다. 포스트-한계주의 경제학이 의탁하는 모형구축에서 수학은 근본적인 도구로 남았으며, 사실의 약정들과 인과적 이론에 기초하여 나아가 경제적 분석장치 외부에서 제공되는 규범적 공약들의 관점에서 경제활동의 부분에 대한 각 모형의 함축을 드러내었다.
이 책과 앞의 경제학 토론과 그 역사가 지목하는 경제학에서 수학의 지위는 확정적이지 않다. 수학의 사용은 인과적 견해들을 소급적으로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수학이 기초물리학의 역사에서 하는 것처럼 인과적 견해들을 기대하고 자극함으로써 기성 경제학에서 하는 것보다 인과적 탐구와 훨씬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수학은 때로는 유용하고 때로는 유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유용성의 한계는 아마 양적이기보다는 (성장의 수요측면과 공급측면의 통제들에 대한 돌파구의 상이한 수준들 간의 불연속성들에서처럼) 질적인 것에, 초시간적인 경제적 진실보다는 역사적 경로의존성을 따르는 것에, 그리고 주어진 제도적 틀을 통한 자원의 할당과 재할당보다는 제도적 구조와 제도적 변화에 관련된 것에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경제학은 기존의 경제분석 방식보다 더 선택적으로 수학을 사용할 수 있다. 수학을 숭상하는 현대경제학이 선호하는 비교적 원시적인 수학(수학의 거의 모든 것은 19세기 중반 이전에 발전하였다)은 이러한 경제학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경제학은 경제활동의 수학적 표상을 질적인 것, 구조적인 것, 그리고 역사적인 것의 전선에 더 가깝게 접근시킬 수 있는 고등수학을 요구할 수 있다.
이 책은 포괄적인 이론보다는 단편적인 이론의 사례이며 또한 기성 경제학의 내부로부터의 경로가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경로의 사례이다. 이러한 방법들 중 어느 하나를 우선시하는 것은 예컨대, 단편적인 것보다 포괄적인 것, 내부적인 길보다 외부적인 길을 우선시하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것을 우선시하는 것은 순전한 독단주의일 수 있다. 이 접근법들은 각각 장단점을 갖고 있다. 우리는 각각의 접근법들이 그 이론가들과 실무자들에게 의존하기 원한다. 그러면 우리는 접근법이 가능하게 하는 통찰들을 기준으로 각각의 접근법을 판단할 수 있다. 우리는 경제연구를 우리 각자가 가장 잘 하는 것을 이해하는 수준에 이를 정도로 구체화하는 점수표를 기준으로 경제학을 변화시키는 이와 같은 방식들을 서열화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 역자 : 이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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