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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주의자들이 창조한 경제학의 한계점을 다루는 노력에서 또 다른 영감의 원천은 때로는 고전경제학으로 불리는 한계주의 이전의 경제학이다. 주제 범위와 야망의 범위에서 차이가 나는 두 가지 유형의 고전경제학, 즉 세니어, 리카도, 맬서스, 세 같은 경제학자들이 수행한 전문적인 과학으로서 정치경제학과 애덤 스미스와 카를 마르크스가 대표하였던 생산과 교환의 현상에 응용한 종합적인 사회이론으로서의 정치경제학이 존재한다. 한계주의 이전의 경제학의 유용성과 한계점에 대한 나의 논평은 두 번째 더욱 야심적인 형태의 고전경제학에 초점을 맞춘다.

스미스와 마르크스는 그 의도, 방법, 관념에서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주의자들이 창조한 경제학과 다르다는 점에서 그 둘은 서로 닮았다. 우리는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사례를 모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모방할 이유가 없다. 고전경제학은 그 결함으로 인해 한계주의 전향에서 유래한 경제학에 대한 대안적 재고로서 쓸모가 없다. 그럼에도 고전경제학에 대한 비판은 우리에게 결여되어 있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경제학으로 가는 길을 제시하는 데에 일조한다.

고전경제학은 한계주의자들에 의해 시작된 경제학의 네 가지 결점 중 적어도 세 가지 결점에서 자유로왔다. 고전경제학은 인과적 이론과 설명을 제안했다. 고전경제학은 인과적 논쟁에 대하여 면책을 추구하고 자신의 권위를 논리적 명확성과 엄격성에 의존시키는 유사논리적인 탐구가 아니었다. 고전경제학은 다른 학문에서 인과적 관념들을 도입하거나 즉석에서 그러한 관념들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만족해하지 않았다. 고전경제학은 경제의 인과적 작동뿐만 아니라 경제생활의 장기적인 진화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였다. 그 핵심 관심사는 제도적 체제와 생산방식의 관계였다. 고전경제학은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연구에서 경제생활의 가장 심층적이고 일반적인 특징을 이해하는 관문을 발견하였다. 고전경제학은 경제사를 제도적 체제의 역사로 보았다. 제도적 체제들은 각기 인간 권능의 발전에 특징적인 제약을 가했고 또한 특징적인 일련의 경제적 규칙성들을 동반하였다.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역사는 또한 제도적 체계들의 역사였다.

스미스와 마르크스가 실천한 경제학은 제도적인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다. (경제체제와 그 형성에 대한) 구조적 접근방식은 유럽 사회이론의 중요 전통을 특징지었던 필연주의적 환상들(대안적 체제들의 간단한 목록, 각 체제의 불가분성 및 예정된 계기 등에 대한 믿음)로 인해 손상되었다. 그들에게 경제학은 그 가정, 규칙성, 결과를 가진 경제생활의 특징적인 체제의 이해와 하나의 체제에서 다른 체제로 이어지는 거대한 요인들(역사적 변화의 법칙들)의 명세표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그들의 경제학은 구조적 불연속성과 진보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경제학은 실현되지 않은 인간의 기회에 대한 엄청난 비전을 제공했다. 경제학의 충동은 설명적이면서도 예언적이었다.

스미스와 마르크스에게 경제학은 적어도 교환이론이었던 만큼 생산이론이었다. 그들은 경제를 거대한 공장으로 보지도 않았고 은행처럼 취급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생산활동이 시장에서 공급과 수요의 작동으로 환원하기 불가능하고 우리가 협력하는 방법과 우리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동원하고 변화시키는 방법 간의 관계에 연관된 일련의 문제들을 경제학에 제기한다고 보았다.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경제학은 내가 서술한 포스트-한계주의 사유의 세 가지 결점, 즉 형식적인 분석과 인과적 탐구의 분리, 제도적 상상력의 빈곤, 교환연구를 위한 생산연구의 방기 등에서 (약간의 대가를 치렀지만)자유로웠다. 그러나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경제학도 한계주의자들이 창조한 경제학의 네 번째 결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것은 경쟁적 시장에 기반한 선택메커니즘이 선택하는 다양한 재료의 창출에 관한 설명을 갖고 있지 않았다.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손으로 빚어진 대단한 형태로서 고전경제학은 (다각화의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는 점 이외에도) 오늘날 포스트-한계주의 사유에 대한 대안으로서 그 유용성을 제약하는 세 가지 결함을 추가적으로 안고 있었다. 나는 그 결함을 중요도의 역순으로 제시하겠다. 세 번째 결함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세 번째 결함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경제이론과는 매우 다른 경제학이 필요하다.

전(前)한계주의 경제학의 첫 번째 결함은 경제 분석에서 사라진 대의(가치론의 정식화)에 대한 헌신이었다. 가치론은 두 가지 목적, 상대가격을 설명하는 목적과 경제생활에서 가치총계의 궁극적 원천을 알아내는 목적에 봉사하였다. 가치론은 경제생활의 표층(상대가격의 체계)과 심층(부의 창출의 원천)을 가교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한 다리를 결코 건설할 수 없었다.

가치실체에 대한 유사-형이상학적 개념은 결코 정확하고 양화가능한 의미를 갖지 못했다. 한계주의자들은 수요공급의 수학적 표현이 근본적인 가치를 언급하지 않고서도 원칙적으로 상대가격을 해명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상대가치와 가치총계를 동일한 기초에서 설명하려는 시도에 의해 유발된 혼동은 가치론 자체 안에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는 두 가지 상상적 실체들의 관계에 대한 학구적인 논쟁에서 재현되었다. 비록 가격과 가치에 대한 모호성이 고전경제학의 결점들 중 중요도가 가장 덜할지라도 이러한 모호성의 결함에 대한 해결은 한계주의 전향의 즉각적인 자극제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노력에서 한계주의자들은 분명하게 성공적이었다.

고전경제학의 두 번째 결함은 두 거장의 손에서 경제에서 강제(coercion)의 역할에 대한 과대평가와 짝하여 상상력의 위상에 대한 과소평가이다. 기능주의적 설명(시스템의 결과는 고전경제학의 존재이유이다)과 유럽의 고전사회이론에서 전형적인 구조 및 구조변화에 대한 견해를 결합시키는 것은 이러한 과장을 자극하였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사회의 계급적 성격과 나아가 인류진화의 특정한 단계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은 현재의 소비를 초과하는 잉여의 강제추출[착취]을 보장할 필요성이었다. 스미스에게 있어서 기술적 노동분업에서 인간의 비인간화는 생산성에서 약진의 불가피한 대가였다.

스미스와 마르크스는 오류를 범했다. 18세기 후반 영국과 이어서 미국과 서유럽이 산업혁명의 터전이 되었던 것은 높은 총저축률 때문이 아니었다. 역사적 연구는 이러한 경제들에서의 총저축이 그러한 진전을 겪지 못했던 나라들보다 더 높지 않고 더 낮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서양의 장점은 특정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출구들을 배경으로 일련의 기술적, 조직적, 제도적, 개념적 혁신에 있었는데, 그러한 배경들이 혁신의 공간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장점은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수행하는 군대의 모습에도 있었다.

기계적인 제조업 기술은 노동자가 끊임없이 똑같은 특정한 동작을 반복하면서 마치 기계인 것처럼 행동하도록 작업을 조직할 수 있게 한다. 노동을 이렇게 기계와 같은 활동으로 위축시키는 것은 노동의 교육적 요구사항을 최소화함으로써 이러한 생산모형의 확산을 촉진하는 장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복잡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규칙화하는 방법을 터득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수행하기 위해 기계가 투입될 수 있고, 기계는 다른 활동을 위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스미스가 핀공장에서 언급한 비인간화는 기술, 인적 자원, 재산권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경영권에 의존하는 이러한 생산방식의 제도적 법적 체제의 공진화(共進化)를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스미스와 마르크스가 자신들이 연구한 경제에서 강제의 필요성을 과장하였듯이, 그들은 혁신의 역할과 상상력을 과소평가했다. 지식경제가 보급되고 심화됨에 따라 지식경제는 상상력을 경제생활의 중심에 둔다. 지식경제는 나의 논의가 탐구한 모든 방식으로 상상력의 모형에 입각하여 협력을 최상으로 쇄신하는 관행을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으로 여기는 경제이론을 요구한다. 그러나 혁신과 상상력은 가장 원시적인 축적조건을 제외하고는 강제적인 잉여추출이나 독재적인 노동통제보다 경제에는 항상 더 중요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경제학은 혁신과 상상력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경제학일 수밖에 없다.

고전경제학의 세 번째 가장 중요한 결함은 고전경제학의 가장 야심찬 형태도 경제체제들에 대한 그릇된 이해로 오염되어 있다는 점이다. 스미스에게는 “상업 사회”와 그 전의 사회에 대한 이해가 문제되고, 마르크스에게는 “자본주의”와 여타 생산양식들에 대한 이해가 문제된다. 그 이해들은 19세기와 20세기 초에 다수의 유럽 고전사회이론이 포옹했던 것과 똑같이 구조를 체계로 보는 관점이었다. 이러한 사회이론 전통의 초기 역사에서 글을 쓴 스미스는 이러한 관념을 느슨하게 제시하였다. 이러한 관념을 가장 강력하게 표현한 마르크스는 구조에 가장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형태를 부여하였다. 두 사상가는 모두 그 체제(그 작동방식, 성격, 결과)를 자신들의 경제이론의 주요 주제로 삼았다.

그들은 상업사회나 자본주의를 경제조직의 회귀적 유형이자 역사의 확립된 단계로 표상하였다. 이러한 유형이나 단계는 스미스보다는 마르크스에게 더 강력하게 본질적인 제도적 법적 내용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이러한 유형을 불가분적 체계라고 묘사했다. 우리는 이러한 체계를 관리하거나 역사의 제약과 규칙성이 허락한다면 다른 체계로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체계를 점진적으로 부분적으로 새로이 상상하고 쇄신할 수 없다. 이들에게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역사에서 경제체제들의 계기(繼起)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 과제는 또한 그들이 직접적으로 다루었던 상업적 사회나 자본주의와 같은 체제의 법칙적 작동방식과 이러한 체제가 떠받치는 기계화된 제조업과 같은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을 해명하는 것이었다.

스미스와 마르크스는 자신들이 다룬 경제체제들의 기본적 성격을 이런 식으로 오해했다. 경제의 제도적, 이념적 구조틀은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한 구조틀은 교환과 생산의 일상적 규칙들을 형성한다. 그러나 구조틀은 자연의 한 조각의 원자구조와 같은 하나의 자연현상이 아니다. 심지어 구조틀이 존재한다는 인식조차도 가변적이다. 구조 틀의 힘은 체제의 제도적 안배들과 담론적 관행들이 수정에 저항하도록 조직되어 있는지 혹은 수정을 촉진하도록 조직되어 있는지에 달려 있다.

어떠한 체제도 불가분적 체계가 아니고 전부 수용하거나 아니면 전부거부해야 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제도적 이념적 질서들은 허약한 구성물이다. 즉 이러한 질서는 이익들 간의 갈등과 관념들 간의 갈등을 느슨하게 연결한 다수의 시퀀스들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질서들은 변하고 우리는 그 질서들을 단계별로 조금씩 변화시킨다. 부분적이고 점진적이고 불연속적인 변화는 그러한 구조들의 변혁과 양립할 수 있으며, 나아가 그러한 변화방식이 구조들이 변화하는 유일한 방식에 가깝다.

구조들은 제약 아래서 변하지만 역사법칙에 의해 통제받는 대본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상이한 체제들은 마르크스가 말한바 생산력의 발전을 위한 가능한 구조들로서 서로 경쟁한다. 그러나 경제력과 군사력의 동일한 기능적 장점은 항상 대안적인 제도적 토대들을 가질 수 있다. 실제적 보수를 위해 수용된 제도적 혁신은 지배적인 이익과 우세한 선입견을 최소한으로 동요시키는 형태(우리가 최소저항의 경로로 부르는바)로만 구현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지식경제의 현재 형태인 고립적 전위주의(경제의 모든 분야에서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배타적인 프린지로 한정된 상태)는 우리 시대에 최소 저항의 경로를 대표한다.

최소저항의 경로의 적들은 사상과 민주주의다. 그것은 유럽의 고전사회이론이 제시한 사회생활의 만들어지고 상상적인 성격에 대한 통찰을 훼손하였던 [필연주의적] 환상들에서 해방된 구조 및 그 변혁에 관한 사상을 말하고, 변화의 조건으로 복무할 위기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기성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쇄신된 민주주의를 말한다.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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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경제의 도래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 역자 : 이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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