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커지는 ‘탈 육식‘ 흐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다큐멘터리 영화 <게임 체인저스>는 엄청난 근육과 힘을 보여주는 비건 운동선수들을 다룬 영화로서 “힘과 근육을 기르기 위해서는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단박에 깨트린다. 윔블던 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한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 노박 조코비치를 비롯한 수많은 운동선수들이 식물기반 식단(plant-based diet)으로 놀라운 성적을 거두고 있다.
2019년 1월. 5년 만에 새로 발표된 캐나다 국민 권장 식단은 변화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야채와 과일, 통곡류와 콩류, 견과류 등이 식단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고 육류는 전에 비해 극히 소량으로 줄어들었으며 수십 년간 권장 식단에 포함됐던 우유가 제외되었다.
네덜란드는 2018년부터 교육부 행사에서 채식이 기본식단이며, 고기나 생선은 요청할 때만 제공한다. 네덜란드 ‘국립 공중보건 및 환경 연구소’는 국민건강 증진과 환경부담 감축을 위해 육류섭취를 줄일 것을 반복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뉴질랜드 정부 역시 국민건강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식물식을 권고하고 있다.
선진도시의 학교들도 바뀌고 있다. 런던의 골드스미스 대학은 캠퍼스에서 소고기를 퇴출시켰다. 미국 캘리포니아 의회는 학교 급식에서 육류를 줄이고 식물기반 식사를 늘이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기후위기에 맞서고 학생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서이다. 뉴욕시의 ‘지속 가능한 식생활 정책’은 공립학교들이 존스 홉킨스 공중보건대학원에서 장려하는 채식위주의 급식을 제공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 정책에 따라 볼티모어에서는 200개의 학교에서 건강과 환경에 도움이 되는 식품 선택에 대해 배우며, 축산업이 기후변화와 물, 그리고 생물종다양성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배운다. 학교는 단순히 붉은 육류 줄이기를 넘어서 신선한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더욱 늘리도록 학생들에게 그 중요성을 가르친다.
독일 발도로프 학교에서는 채식이 기본이다. 주 5일 급식 중 3일은 비건, 나머지 2일도 육류를 원하는 경우 미리 신청을 해야 제공한다. 베를린의 일반 식당에서는 비건 메뉴를 몇 가지씩 제공하고 메뉴판에도 표기가 되어 있어 채식을 실천하기가 매우 쉽다.
2015년 제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개막식 파티는 육류와 유제품을 전혀 내놓지 않았다. 모든 메뉴가 비건이었다. (필자가 참여했던 65회 영화제 이전과 이후에도 비건식을 제공했을 수 있는데 미처 확인하지 못했기에 65회만 언급한다.) 2020년 올해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 골든 글로브 시상식, 미국배우조합 시상식은 모두 비건으로 파티를 열었다. 포르투갈은 공공급식에서 채식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법을 2017년 제정했다. 공립학교, 병원, 장기요양원, 교도소 등에서 채식을 원하는 사람을 위해 비건 메뉴가 제공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공립학교에서도 비건 음식이 제공된다.
왜 세계는 육식에서 벗어나 채식으로 전환하고 있을까?
축산업의 긴, 너무나 긴 그림자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논픽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장식 축산은 근본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 지구는 개가 벼룩을 털어내듯 공장식 축산을 털어낼 것이다. 유일한 문제는 우리도 함께 털려 나가게 될 것인가이다.”
현재 인류가 처한 생태위기의 원인으로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축산업은 대단히 광범위하고도 치명적인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 2006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간한 <축산업의 긴 그림자>라는 보고서는 축산업이 생물다양성파괴, 지구온난화, 대기오염, 토지황폐화, 산림파괴, 물 부족, 수질오염의 주범임을 밝히고 있다.
축산업은 전 세계 농업용지의 83%를 차지하고 있다. 소고기 1인분을 만들기 위해 곡물 22인분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20억 사람들이 기아, 영양부족으로 굶주리고 있다.
전 세계 15억 사람들이 물 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는데 육류 생산에 엄청난 물이 사용된다. 소고기 1kg 생산에 1만 5400 리터의 물이 소모된다. 측정 방식에 따라, 소고기 1kg에 10만 리터의 물이 소모된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축산의 암모니아는 악취, 토양 산성화, 물 오염의 원인일 뿐 아니라 미세먼지의 원인이기도 하다. 암모니아가 미세먼지의 전구체 역할을 하기 때문으로 연구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2019년 여름. 지구상 생물 종의 3분의 1 이상이 살고 있는 생명의 보고 아마존이 잿더미가 되어가는 광경을 세계는 참담한 심정으로 목도했다. 고기 때문이다. 소 방목과 사료용 작물 재배를 위한 벌목과 인위적 산불이 대형 화재로 이어진 것이다. 호주 산불은 건조하고 무더운 날씨로 장장 5개월간 꺼지지 않았는데, 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기후변화와 이상기온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세계야생기금(WWF)이 선정한 825곳의 주요 생태지역 가운데 306곳, 국제보존협회가 지정한 세계 생물다양성 주요지역 35곳 가운데 23곳이 가축사육으로 파괴되었다.
위에 나열한 이슈들은 축산업이 일으키는 수많은 문제들 중 일부일 뿐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가디언 지에 “공장식 축산은 역사상 최악의 범죄 중 하나” 라고 썼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축산업을 지목하여 “긴급한 시정을 요함”이라고 했다. 이 정도로 축산업이 유발하는 생명 파괴와 사회 부정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막대한데 그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문제는 분뇨로 인한 오염과 기후변화이다.
똥과의 전쟁
미국을 비롯한 부유한 나라의 축산을 이주 노동자들이 떠받치고 있는 것처럼, 한국의 축산 역시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굴러가고 있다. 2017년, 네팔에서 온 청년 2명이 양돈장 정화조에 들어가 돼지 분뇨를 밖으로 빼내는 작업을 하던 중 질식했다. 며칠 뒤, 다른 농장에서 돼지 분뇨를 청소하러 들어갔던 또 다른 이주 노동자 2명이 목숨을 잃었다. 다음해, 똑같은 사고가 또 일어나 한국인 노동자가 질식사했다. 정화조에 고인 돼지 똥이 부패하면서 황화수소가 발생하는데, 고농도의 황화수소에 노출될 경우 순간적으로 1~2회의 호흡만으로도 의식을 잃고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이 같은 사고가 아니어도, 분뇨 가스가 가득한 공장식 축산 현장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건강을 잃는다.
노동자뿐 아니라 인근 주민들도 악취와 오염으로 고통 받는다. 전국 각지 농촌마을 주민들이 축산 악취로 인한 고통을 호소한다. 남한 최북단이자 멸종위기 1급 두루미 월동지인 철원 평야에도 최근 축사가 난립하고 있고, 악취와 오염 때문에 주민들이 ‘축사 피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아이오와 주립대학이 2002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공장식 농장 인근의 주민들이 두통, 호흡기 질환, 천식, 무기력함, 설사, 안구 질환을 더 자주 겪고 심각한 수준의 긴장, 우울증, 분노를 겪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농장동물이 쏟아내는 배설물은 미국에서만 초당 40톤. 이는 도시 하수보다 160배 더 환경을 오염시키고 시민 건강을 위협한다. 미국공중보건협회는 2003년에 연방, 주 지방 정부와 보건당국에 더 이상의 공장식 농장 건설을 허가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을 정도다.
땅, 강, 바다도 축산 분뇨로 죽어간다. 미시시피주, 플로리다주와 맞닿아 있는 미국 남부의 멕시코만 해안은 산호초를 비롯해 수많은 해양 생명의 보고였다. 하지만 무려 9,000평방 마일에 이르는 바다가 ‘죽음의 구역(dead zone)’으로 변했다.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은 바다가 된 것이다. 국제환경단체 마이티 어스(Mighty Earth)의 조사에 따르면, 가장 큰 오염원은 세계 최대의 육류 기업인 타이슨 푸드인 것으로 밝혀졌다. 2위는 역시 세계 최대의 육류 기업 중 하나인 스미스필드, 3위는 유전자조작으로 악명 높은 세계 최대의 곡물 기업 카길. 곡물 재배의 주목적이 축산 사료를 위한 것임을 고려하면, 지구상 가장 아름다운 해안을 죽음의 바다로 만든 세 개의 범죄 집단 모두 축산 관련 기업인 것이다.
제주에서만 하루 2,800톤이 넘는 돼지 똥이 쏟아져 나온다. 2017년, 전국의 1,000만 돼지가 쏟아낸 분뇨는 무려 4,846만 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축 사육 밀도가 가장 높은 편에 속하고 이 작은 나라가 감당하기에는 절대적으로 많은 축산 분뇨가 매일 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염병과 기후위기에서 살아남는 법, ‘자연 식물식’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인류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 이런 치명적인 전염병은 더욱 더 창궐할 수 있다. 2009년 세계를 삽시간에 휩쓸었던 신종플루의 원래 명칭은 ‘돼지독감(swine flu)’였다. 멕시코에 위치한 대규모 양돈 농장에서 돼지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이된 것으로 전염병 전문가들은 추정했다. 좁고 인공적인 공간에 수천, 수만 마리의 가축을 밀집사육하는 공장식축산은 바이러스와 전염성 질병의 온상이며, 만약 닭 또는 오리의 바이러스가 돼지를 거쳐 사람에게 전이될 경우엔 더욱 치명적인 팬데믹이 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공장식 축산이 인류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다각도에서 일어난다. 인수공통 전염병 바이러스, 분뇨로 인한 대기와 물의 오염, 그로 인한 지역 주민들의 신체적·정신적 피해, 살처분으로 인한 지하수와 땅의 오염… 이와 동시에 공장식 축산의 육류는 햄거버병(병원성 대장균이 묻은 육류 섭취로 신장의 기능이 급성으로 훼손되는 ‘용혈성 요독증후군’)을 비롯한 식중독, 살충제 계란, 광우병, 항생제 내성균 등의 치명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밖에도 육식은 암, 당뇨병, 심근경색, 뇌출혈, 면역계 질환, 성조숙증, 비만 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5년 “붉은 고기는 제초제 글리포세이트와 같은 2군 발암물질에 속하고 소시지, 햄, 베이컨 등 가공육은 석면과 같은 1군 발암물질에 속한다”고 발표했다.
<차이나 스터디(China Study)>는 세계적인 영양학자 콜린 캠벨 교수가 음식과 건강의 역학관계를 주제로 수십 년에 걸쳐 코넬대와 옥스퍼드대의 수많은 연구진들과 함께 진행한 연구로서, 단백질과 암에 관한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연구로 인정받고 있다. 이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책 『무엇을 먹을 것인가(The China Study)』에서 콜린 캠벨 박사는 고기와 유제품이 암세포 증식을 촉진한다는 연구결과를 밝히며 “동물성 단백질은 암의 스위치”라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 축산업은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로 기후위기의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되면 2050년 문명은 파국에 이르고 인류는 멸종위기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위급한 상황에서, 전 세계 700억 마리의 가축을 사육하고 그들을 먹일 사료 작물을 재배하고 육류를 냉동하고 장거리 운송하기 위해 막대한 메탄가스,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2006년 UN은 전 세계 교통수단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다 합친 것(전체 배출량의 약 14%)보다 더 많은 양의 온실가스(18%)가 축산업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세계은행에서 수석 자문위원으로 근무한 환경과학자 로버트 굿랜드 박사는 UN의 분석을 좀 더 정밀하게 연구한 결과, “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총량의 무려 51%를 차지한다”는 놀라운 결과를 2009년 11월 월드워치연구소 매거진에 발표한 바 있다.
2019년 8월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총회에서, 전 세계 과학자 107인이 내놓은 <기후변화와 토지에 대한 특별보고서>가 채택됐다. 보고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해 기후변화를 저지하려면 붉은 고기 섭취를 줄이고 통곡물, 채소, 과일 위주의 식물성 식단으로 먹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BBC는 “고기와 유제품 위주의 서구식 음식섭취가 지구 온난화에 기름을 붓고 있다”는 문장을 이번 IPCC 특별보고서의 핵심으로 골라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육식이 기후위기에 미치는 영향, 거꾸로 말하면 채식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100g의 단백질 생산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양을 비교하면 소고기는 105㎏ 이상인 반면, 두부는 3.5㎏ 이하이다. UN 기후변화보고서는 “국가들은 땅을 회복시키는 형태의 농업으로 신속히 전환하고 육식을 극적으로 줄여서 재앙적인 기후 위기로부터 지구를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 인구가 비건이 되면 매년 80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다. 이것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2%에 가까운 양이다.
2016년 덴마크 정부 산하의 ‘덴마크윤리위원회’는 육류세 제안서를 정부에 제출하면서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소수의 ‘윤리적 소비자’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다”며 “덴마크인들은 식습관을 바꿔야 할 윤리적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육류세의 또 하나의 목표는 국민 건강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마르코 스프링만 박사 연구팀은 소고기에 40%, 유제품에 20%, 치킨에 8.5% 세금이 부과된다면 (그럼으로써 육류 소비가 줄어들면) 연간 50만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육류세는 덴마크, 독일, 스웨덴 등 각국 의회에서 논의 중이며, 뉴질랜드에서는 이미 가축사육에 ‘트림세(burp tax)’를 물리고 있다.
한편, 질병을 치유, 예방하는 최고의 식단으로 ‘식물기반 자연식(Whole Food Plant-based Diet)’ 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정제하지 않은 쌀(현미) 등 통곡류, 야채, 과일, 씨앗, 견과류 등을 먹는 식단이다. 책임있는 의사협회 (PCRM, Physicians Committee for Responsible Medicine) 의사들도 통곡물, 야채, 과일, 콩류, 견과류 등의 식물기반 자연식을 권하고 있으며 미국 정부를 상대로 국민 권장 식단에서 유제품을 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미국영양협회는 “적합하게 잘 짜인 채식 식단(완전 채식 또는 채식)은 건강식이고 영양식이며 특정 질병들의 예방과 치료에 이롭다. 잘 짜인 채식 식단은 임신기, 수유기, 유아기, 유년기, 청소년기, 성인기 등 인생의 모든 시기에 적절하다. 운동선수에게도 적절하다”라고 밝혔다.
육식 사회였던 유럽, 북미에서 비건 문화, 육식을 줄이기 위한 제도가 크게 확대되는 것에 비해 한국, 중국, 인도 등은 전통적으로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해 왔으나 지난 20-30년 간 육류 소비가 크게 늘어났다. 공장식 축산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 동물성 단백질과 유제품 섭취를 강조하는 그릇된 영양 정보, 그것을 토대로 구축된 공공 급식, 광고와 ‘먹방’까지 가세하여 한국은 빠르게 육식 사회가 되었다. 급식은 육류 중심이고 비육식(채식)을 선택할 권리는 전혀 주어지지 않고 있다. 만일 남자 어린이가 채식인일 경우 어린이집부터 대학, 군대까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급식에서 ‘밥 먹을 권리’라는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이 부당한 제도를 바로잡고자, 입대를 앞둔 한 비건 청년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낼 예정이다. 녹색당은 채식선택권을 위한 헌법소원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에서도 채식, 비건(vegan) 인구가 점점 늘고 있다. 과거에 채식을 하던 사람들은 주로 개인의 건강을 위해, 또는 종교나 영성 수련을 위해 채식을 했지만, 최근에는 동물권, 인권, 그리고 환경과 기후를 위해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육식의 종말』 그 후 28년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은 현대 문명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인간의 식생활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여러 분야에 걸쳐 심각한 문제들이 파생됐다고 지적한다. 리프킨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12억 8천 마리의 소들이 전 세계 토지의 24%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곡물의 70%를 가축이 먹어치운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육식으로 인해 인류는 자신의 유일한 서식지인 이 행성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스스로 온갖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1992년에 출간된 이 책은, 21세기에는 인류가 육식 문화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끝을 맺는다. 파괴된 생태계를 회복시키고 나날이 증가하는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으려면, 지구상에서 축산업을 해체시키고 인류의 음식에서 육류를 제외하는 것이야말로 향후 수십 년 동안 인류가 이루어야 할 중요한 과업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 책이 나온 지 28년이 지났다. 리프킨의 조언과 반대로, 축산업은 여전히 건재하며 오히려 확대되었다. 인류에게 희망이 있을까?
생태계 파괴, 오염, 동물 학대, 노동인권 문제, 지역사회 파탄, 기아를 유발하고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축산업이 현재와 같은 규모로 존재하는 한 (심지어 확대되는 한), 생태계와 인류는 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점차 확대되면서, 지구 곳곳의 많은 사람들이 육식을 줄이거나 중단하고 있다. 점점 커져가는 비건 제품에 대한 인기와 시대적 요구를 받아들여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식물성 대체육류 개발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고, 버거킹, 맥도날드 등 육류업체들이 앞 다투어 식물성 대체육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우유를 대체하는 아몬드, 귀리 음료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거니즘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비건 페스티발, 채식 박람회, 채식 영화제 등이 열리고, 식당과 쇼핑몰이 늘어나고, 고등학교와 대학 등에서 채식 동아리가 늘고 있다. 해외에서 식물성 대체육류 산업과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국내에서도 육류를 대신하는 식물성 대체육류, 비건 제품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출시되고 있다. 시민들의 인식과 태도의 변화가 새로운 문화와 산업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생태와 평화와 정의와 진보와 인권을 이야기하는 진영에서도 여전히 육식을 개인의 취향과 사적인 영역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부차적 문제로 다루거나 동물권 운동만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도 크다.
육식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축산의 진실을 알지 못하도록 오랜 세월 철저히 은폐해 왔고, 고기가 되기 전의 생명들을 인간사회로부터 철저히 단절시켜 왔으며, 그 단절로 인해 육식을 불편함 없이 즐길 수 있도록 조장해 왔다. 또한 동물성 단백질 신화를 만들어 소비자가 육식을 당연하고 꼭 필요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해왔다. 이 공고한 육식주의 매트릭스를 알아채는 것은 쉽지 않고, 거기서 빠져 나오기란 더욱 쉽지 않다. 그러나 육식 이데올로기를 사회심리학 차원에서 분석한 멜라니 조이의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역사적 측면에서 동물억압과 인간약자에 대한 억압의 상호 연관성을 파헤친 『동물 홀로코스트』와 같은 책들, 그리고 많은 다큐멘터리 영화와 영상들, SNS와 유튜브와 네티즌의 힘으로 육식주의 매트릭스는 점점 약해지고 있으며 이제는 클릭 몇 번으로 진실을 알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전염병과 기후위기로 이번 세기 안에 인류가 멸종할 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기후위기에, 우리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과 마을이 전환해야 하고, 시민이 전환해야 한다. 사회 전체, 의식주 전체에 걸친 이 대전환에서 모든 것의 변화가 요구되는데 오직 식생활만이 예외로 남을 수는 없다. 더구나 축산업은 온실가스의 핵심 발생원이다.
‘무엇을 먹는가’의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취향이 아니며 가장 정치적이며 사회적이며 지구적인 이슈가 되었다. ‘탈 육식’은 이제 ‘탈 화석연료’, ‘탈핵’ 만큼이나 절실한 현안이 되었다. 모두가 지금 당장 비건이 되기는 어렵더라도, 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비건을 실천하고 가능한 채식위주의 식생활을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 전체가 육식중독에서 벗어나도록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 견고하게만 보였던 육식주의의 벽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바위에 균열을 내기까지가 어렵지, 한번 균열이 일어나면 갈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인류가 처한 객관적 위기상황은 그 균열을 더 빨리 내도록 요구하고 있다.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한 전환, 평화롭고 정의로운 생태문명을 위한 위대한 전환은 바로 오늘, 나와 우리의 식탁에서부터 시작된다.
황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감독. 책 <사랑할까, 먹을까> 작가. 동물원, 로드킬, 공장식 축산 등 인간과 비인간동물의 관계를 탐구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왔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 상영, 수상했고, 영화, 글, 퍼포먼스, 대중강연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생태문명 프로젝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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