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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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카 커뮤니티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팜에서 지에고와 당근을 다듬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번 지에고가 말한 편안한 상태에 대해 관심이 생겨 내 안의 긴장감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했더니 무엇에 대한 긴장감이냐 묻는다. 구체적으로 생각나는게 없다 하니 정훈은 아침에 일어나서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하다 팜에 9시까지 올 수 있냐고 했다. 듣고 먼저 일어나는 반응은 ‘그건 무리다’이다. 7시까지 출근하라는 직장을 느긋하게 놀다가 9시까지 온다니. 생각만해도 일순 마음에 긴장감이 돈다.

무리라고 답하니 지에고가 웃으며 ‘어째서 7시까지 출근하는 게 9시까지 오는 것보다 더 무리인거지?’ 하고 되묻는다. 생각해보니 것도 그렇다. 아침마다 늦잠 잘까봐 꽤 긴장하면서 자고 있기도 한데.. 그러네.. 나는 뭐가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나는 팜 사람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나.

 

실례

사카이상과 미팅을 했다. 한 달에 한 번 아카데미생으로 개인면담을 하는 자리다. 자신을 살펴보고 꺼내놓는 자리들이 꽤나 촘촘하게 짜여 있다. 얼마 전, 사카이상이 애즈원 커뮤니티를 설명하는 스즈카 투어에 참여하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투어가 있는 날이 여민이 생일이기도 하고 일본어가 아직 부족해 설명을 다 알아듣지 못하니 다른 날에 하면 좋겠다고 했다. 의견을 나누며 반나절만 참여하기로 하고, 또 진짱이 통역을 해주기로 하여 꽤 절충안을 찾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야기하는 동안 왠지 무거운 마음이 있었더랬다.

오늘 미팅 자리에서 사카이상이 그 이야기를 꺼냈다. 제안을 했을 때 어땠는지, 뭔가 떠오르는 게 있는지. 잘 마무리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무거웠던 그 마음이 여전히 남아 그 정체가 궁금해진다.

실은 투어에 별로 가고 싶지 않았구나.

그런데 그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안가도 될만한 여러 이유를 생각하고 있었구나.

가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왜 꺼내지 못했을까.

배려해서 준비해준 진짱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면 실례라고 생각했구나. 그래서 상대가 납득할만한 이유를 생각해내어 상대의 배려를 거절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구나.

사카이상이 웃으며 다시 질문한다.

그런데 상대가 정훈을 생각해 준비한 마음도 있을텐데 그 마음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게 실례이지 않을까.

앗, 그러네요. 그러고보니 진짱은 내가 코스를 들어가기 전에 투어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관심조차 안가졌네요. 가기 싫은 내 마음도 솔직히 꺼내놓고, 이번에 투어를 했으면 좋겠다는 진짱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면 훨씬 가벼웠을 듯 싶네요. 돌아보니.

이야기를 하고 보니 늘 이런 패턴으로 살고 있구나 싶다. 상대가 기분 나빠할 거 같으면 이야기를 하기보단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내 안에서 정리해 혼자 움직여왔다. 그러면서 상대의 기분을 배려하는거라고 착각하고 있었구나. 예의를 지킨다고 생각하면서 실은 나를 지키느라 사람들에게 관심이 안갔구나. 예의를 지킨 게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에게 크게 실례하면서 살고 있었구나.

고구마 줄기를 뽑듯 여러가지 것들이 연관되어 떠오른다. 예의를 지켜야 관계가 나빠지지 않는다는 내 안의 기준에 맞추느라 꽤 애쓰면서 살고 있구나. 그래서 사람들과 단절된 듯한 느낌이 들었던걸까. 실은 단절하고 싶어 그런 것이 아니라 연결하는 법을 모르고 있었구나. 마음과 마음이 닿지 않으니 다음장이 펼쳐지지 않았던거구나.

한시간의 미팅 시간이 금새 지나갔다. 거의 내 이야기만 일방으로 쏟아내고 왔다. 그런데도 충분히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 사람들의 듣는 힘은 굉장하다.

스즈카에 온지 어느덧 2주가 지났다. 적응하고 나니 시간이 점점 빠르게 흘러간다. 여기 분위기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한국에서는 일을 도모하고 궁리하는 쪽으로 움직였다면 여기서는 생각을 만들어내기보다 나를 관찰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눈뜬 장님

이어진 목요공부 모임에서 ‘인사를 했는데 무시당했던’ 사례를 꺼냈더니 사토상이 ‘무시 당했다’는 표현에서 ‘~당했다’에 대해 살펴보자 한다. 팜에서 아침에 코조상에게 인사를 했더니 두 번이나 쌩했던 기억이 있다. ‘무시 당했던’ 장면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그때 코조상은 어땠나. 내 인사를 들었는지랑 별개로 그저 자기 갈 길을 가고, 할일을 하고 있었네. 나는 그때 어땠나. 무엇을 보고 ‘무시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사토상은 세 살난 딸인 여민이한테 인사해서 대답이 없으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지 않지 않냐며 여민과 코조상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묻는다. 살펴보니 ‘어른이라면 상대가 인사했을 때 당연히 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래서인지 대답을 못들으면 ‘무시했다’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그런데 살펴보면 볼수록 그 순간 코조상을 본 것이 아니라 그런 내 생각을 보고 있었다는 게 드러난다.

아, 또 실례를 했구나.

두 눈 멀쩡히 뜨고 있되 내 머리속 관념들을 보느라 상대가 보이지 않는 상태가 꽤 엄중하구나. 눈뜬 장님이 따로 없구나. 내 경계심의 정체가 조금씩 보여지고 있다. 무엇을 지키고 싶나. 착각을 걷어내면 좀 더 분명히 드러날테다. 매일매일 청소중이다. 나를 좀 더 집중해서 살펴보고자 일주일간 코스에 다녀오기로 했다.

조정훈

20대는 돈벌 궁리로 바빴다. 직장생활하며 주식으로 일확천금을 꿈꾸었으나 실패했다. 대신 돈벌고 싶은 욕구의 바닥에는 불안감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30대는 친구들과 우동사라는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10년 동안 커뮤니티를 주제로 다양한 실험을 하였다. 주변 사람들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다. 40대에 들어서 다음 10년을 그리고 있다. 볼음도라는 섬을 오가며 농사짓고, 새로운 관계망 실험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환경으로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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