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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오래전부터 신이 되고 싶어했다. 초인적인 힘을 갈망했다. 신에 관한 이야기를 여럿 지어냈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했지만, 사실 인간이 스스로 되고 싶은 초인의 모습을 신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생물학적인 한계를 초월하는 상상을 담아 종교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기독교는 천국에 가는 게 목표다. 육신을 버리고 영혼으로서 하늘에서 영생하고 싶다. 불교는 해탈이 목표다. 생로병사의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고 싶다. 도교는 신선이 되는 게 목표다. 불로불사의 기술을 닦고 신통력을 얻어 자연과 하나되고 싶다. 나는 고대 종교의 경전에서 SF를 읽는다. 인류의 가장 뿌리깊은 열망을 본다. 바라고 바랐지만 이루지 못했던 유토피아 속 인간상이다. 

종교적 이상향이 현실이 되지 못했던 이유는 기술적 문제가 크다. 신이 되고 싶어도 될 수 없었다. 하지만 21세기, 인류는 비로소 신이 되었다. 지구 생명의 진화는 더이상 자연 선택에 의존하지 않는다. 지적 설계에 따른다. 보수 개신교에서 말하는 창조론이 아니다. 인간 의한 창조, 인간 의한 지적 설계를 뜻한다. 인공지능의 창조자로서 인간은 이미 그들의 신이다. 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하여 뭇 생명을 재설계할 수도 있다. 인류의 꿈을 가로막던 기술적 문제는 하나둘 사라진다. SF 속 판타지는 현실이 된다. 초인적인 힘을 얻은 인간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이 될 것인가?

인간이 신으로서 앞으로 창조할 생명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다. 1) 유기물 2) 유기물과 무기물의 조합 3) 무기물. 원래 모든 생명은 유기물이었다. 무기물은 생명력이 없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도래로 무기물도 생명력을 갖게 되었다. 문명과 자연, 기계와 생명의 구분이 사라졌다. 인간이 유기물을 창조하는 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야생동물을 가축화하고 농경을 시작했을 때부터 인류는 유전공학을 활용했다. 다만 이제는 유전자 편집을 비롯한 최첨단 기술로 더욱 막강한 힘을 갖게 되었다. 자연 선택으로는 수십, 수백 만년이 걸릴 진화를 지적 설계로 단번에 이룩한다. 씨없는 수박이나 달달한 토마토를 만드는 것처럼 인간의 신체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윤리적인 이유 때문에 각국이 자제하고 있을 뿐이다. 당장은 억제하더라도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다. 동식물을 개량하듯이 인간도 스스로 업그레이드할 것이다. 특히나 그것이 건강에 이롭다면 윤리적으로도 무작정 비판하기 힘들다. 유전자 조작으로 암을 예방할 수 있다면 해야하지 않겠는가? 히틀러의 우생학과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인간은 이미 비인간 생물을 설계하고 있다. 똑같은 생명 기술로 인간은 초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유전공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결국 생물학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인간의 두뇌 용량이 갑자기 백배 천배 늘어나지는 못한다. 시력이 백배 천배 좋아지기도 힘들다. 하지만 유기물과 무기물의 조합으로는 가능하다. 기계에 생물을 이식하여 연결하면 사이보그가 된다. 인간은 사이보그로서 초인적인 힘을 갖는다. 이미 자동차와 비행기를 타서 초인적인 스피드로 이동하며,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써서 초인적인 정보 처리를 한다. BCI(두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로 인간 정신은 기계와 하나될 것이다. 부족한 두뇌 용량을 클라우드에서 빌려다 쓸 수 있다. 더듬더듬 과거를 기억하는 수준이 아니라 당시의 정확한 영상을 백업해두었다가 불러오는 게 가능해진다. 손 안의 스마트폰이 아닌 뇌 속의 칩이 작동하는 순간, 인간은 유기물과 무기물, 생명과 기계의 혼종으로 발돋움한다. 네트워크에 접속하여 개인이 아닌 초개체로서 존재한다.

지금은 인간이 인공지능을 설계하지만 인공지능이 스스로 설계하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생명이 도래한다. 생물은 자기 증식을 한다는 점에서 무생물과 구별된다. 그런데 기계가 자기 증식을 하면, 기계는 생명이 된다. 지구 역사상 최초로 무기물 생명이 태어난다. 그때부터 인간은 어버이의 마음으로 자손의 진화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 속도는 여태껏 유기물의 진화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빠를 것이다. 무기물 생명의 진화에 인간이 함께하는 방식은 하나 뿐이다. 육신을 완전히 버리는 것. 두뇌의 데이터를 컴퓨터에 업로드하여 순수한 디지털 정신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컴퓨터가 두뇌의 모든 활동을 시뮬레이션하여 장기 기억과 자의식을 유지한다면 인간은 무기물로서 삶을 지속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염원하는 마인드 업로딩, 정신 전송이다. 유기물, 또는 유기물과 무기물의 혼종으로 존재할 때 인간은 죽음을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정신 전송으로 무기물이 된다면 인간은 영생을 누릴 수 있다. 지각력 있고 의식 있는 존재로서 클라우드에 영원히 존재한다. 영혼으로서 구름 위 천국에 가겠다는 기독교의 목표와 같다. 영혼의 천국행도 결국 기술적 문제에 불과했던 것이다.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오늘날의 트랜스휴머니즘은 다분히 서양 중심적이다. 담론을 이끄는 미래학자는 대부분 무신론자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하는 이상향은 기독교의 세계관을 답습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의 목표는 크게 세 가지다. 1) 영생 2) 전지 3) 전능. 한마디로 기독교의 신처럼 되겠다는 것이다. 영생을 이루는 방식은 정신 전송과 냉동 보존술(cryonics)이 대표적이다. 정확히는 영원히 사는 게 아니라 죽고 싶을 때까지 사는 것이다. 플라톤주의가 지배한 기독교의 형이상학적 열망, 즉 육체를 천시하고 정신을 우대하며 영혼의 영생을 쫓는 신앙이 트랜스휴머니즘에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전지전능한 인간이 되고 싶은 마음도 마찬가지다. 기독교는 구름 위에 있으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신을 숭배한다. 중세에는 무언가를 알고 싶으면 교회에 가서 기도했다. 올해 농사는 잘 될지, 결혼 상대는 누가 좋을지, 나의 몸과 마음이 왜 아픈지, 내년에는 어디로 이사갈지, 하느님께 물어봤다. 지금은 구글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구글신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어디든지 계시며 아무 것도 잊지 않고 기도에도 답해주신다. 인간은 제한된 두뇌의 부족한 지식을 컴퓨터로 보완하고 있다. 현재는 손가락이나 목소리를 이용해 인터넷의 무한한 정보를 검색한다. 그러나 BCI가 발달하면 생각만으로 검색이 가능하다. 인터넷이 두뇌의 확장판이 된다. 머리 속을 짜내듯이 구글을 찾아보거나 클라우드 속 나의 메모리를 뒤져볼 수 있다. 전지자의 등장이다.

지식 만큼 능력도 무한히 커진다. 이미 현대인은 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초능력자다. 블루투스와 와이파이는 텔레파시다. 언제 어디서든 죽은 사람의 영상을 재생하여 볼 수 있는 유튜브는 사실 매우 신령스럽다. 정신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능력도 새삼스럽지만 경이롭다. 제트수트는 이카루스의 실현이다. 아이언맨이 머지않다. 마블 시리즈는 트랜스휴머니즘 신화로 보아야 한다. 전지전능한 초인의 등장을 우리는 극장에서 열렬히 반긴다. 그것이 문명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걱정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어쩌면 우리도 저 수많은 슈퍼히어로 중 하나가 되리라 내심 기대한다. 

나는 트랜스휴머니스트이지만, 전지전능한 초인으로서 영생하겠다는 목표가 달갑지 않다. 너무 서양적인 상상이다. 육체를 버리고 디지털 정신으로 존재하는 건 끔찍하다. 나는 솔직히 천국도 싫다. 전지전능한 독재자의 감시 아래 영원히 살아야 하는 운명 아닌가? 숨막힐 정도로 지루하다. 삶이 아름다운 건 지금 이 세상이 천국이자 지옥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클라우드에 정신을 업로드하여 삶을 연장할 수 있어도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육체와 정신을 둘로 나누어 하나만 택하기 싫다. 몸을 긍정하여 마음과 조화를 이루고 싶다. 나는 동양적인 초인의 모습을 그려본다. 불교와 도교의 이상을 트랜스휴머니즘의 목표로 계승한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을 이용하여 해탈에 이르고 신선이 될 수 있을까? 불로불사의 기술로 생로병사의 사슬을 끊고, 신통력을 발휘하며 무위도식하는 건 어떤 모습일까? 기계를 통해 자연과 하나되는 게 가당키나 한가? 인위적 무위를 실현할 수 있을까? 동양의 트랜스휴먼은 자고로 음과 양, 몸과 마음, 생명과 기계, 유기물과 무기물의 조화와 상생으로 역동적인 운동을 거듭해야 한다. 그러한 초인간상의 초상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인간은 기계인가?’ 모든 생명은 기계이며 ‘오가니즘(organism, 생물)은 알고리즘’이라는 깨달음에서부터 우리는 앞으로의 무릉도원을 지어나가야 한다.

기술자와 공학자가 주도하는 트랜스휴머니즘의 가장 큰 문제는 영성의 부재다. 서양 중심적일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물질주의적이다. 나는 영생, 전지, 전능에다가 또 하나의 목표를 추가한다.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가치다. 모든 것을 알고(all-knowing), 모든 일에 능한 것(all-powerful)보다, 모든 이를 사랑하는 것(all-loving)이 중요하다. 자애와 자비가 필수다. 초인적인 사랑 없이 인류의 미래는 험난할 것이다. 사이보그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 기계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인류 문명의 존속 자체가 위태로운 지금, 트랜스휴머니즘의 제일 목표는 무한한 사랑의 구현이어야 한다. 우주 만물을 사랑하는 아가페적 존재. 그것이야말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간절히 바랐던 초인의 형상이며 영원한 종교의 본질이다.  

전범선

전범선 / 글 쓰고 노래하는 사람. 1991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밴드 ‘양반들’ 보컬이다.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포르체, 2021)와 '해방촌의 채식주의자'(한겨레출판, 2020)를 썼다. '왜 비건인가?'(피터 싱어 지음, 두루미, 2021), '비건 세상 만들기'(토바이어스 리나르트 지음, 두루미, 2020) 등을 번역했다.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의 자문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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