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짝꿍과 지인들과 함께 숲속에서 깊은 명상을 했다. 지인은 짝꿍의 동료이자, 부부이자 모부이고, 슬하에 만 4세 아이가 있다. 이름은 DK 베이비. 어린아이, 그것도 가까운 사람의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건 처음이었다. 내 또래 인간들은 아이는커녕 결혼도 안 했을 뿐더러 비혼주의와 비출산주의를 지향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어린아이를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거나 상상하기도 어렵다. (물론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양육할 수 있지만, 한국은 동반자법이 없는 까닭에 결혼하지 않으면 양육자와 아이의 관계에 대해 법적으로 보호받기 어렵다). DK는 내게 유니콘 같은 존재랄까.
나는 기존 사회 관습에 저항하며, 삶을 주체적으로 지휘하는 여성이자 인간이고 싶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비혼/비출산주의자라고 말하게 되었지만, 젊은 생명체 없이 나이 먹는 상상을 하면 꽤 지루할 거 같다. 하지만 출산의 고통이 두렵기도 하고, 한 생명의 평생을 보살필 만한 책임감이 없기도 하다. 나 스스로를 다스리기도 힘든데, 나 같은 애가 하나 더 있다? 생각만 해도 징그럽다.
그런데 처음으로 아이가 귀엽게 느껴진다. 명상의 힘일까, DK의 창조자들이 좋은 사람이어서 그런 걸까. 베이비가 귀엽게 생기기도 했다(중요하다). 장난감을 쪼물거리는 자그마한 손, 찐빵처럼 부풀어 있는 볼, 도화지처럼 순수한 영혼, 세상 만물에 호기심을 가지고 반짝거리는 눈빛. 자신이 가진 지식을 열심히 설명하고 돕고 싶어 하는 맑은 마음. 너무 사랑스러워서 계속 쳐다보게 된다. 바라만 봐도 좋다. 세상에 찌든 어른들 사이에 아이가 있으니 분위기가 달라진다. 웃음이 그칠 새가 없다. 작은 생명체가 끌고 다니는 에너지가 대단하다.
눈 깜빡할 새에 저 작은 손과 발이 훌쩍 커버리겠지. 2030년에는 11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다니고, 2040년이면 21살이 되어 대학에서 공부를 하거나 세상을 탐험하고, 2050년이면 31살 어른이 되어 있겠지. 미래를 상상하며 베이비의 모습이 함께 그려진다. 그리고 막연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베이비가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책임감. 어른이 된다는 건, 다음 세대를 책임지는 것이라는 말이 확연히 느껴진다.
베이비의 존재가 경이로운 만큼이나 창조자가 우러러보인다. 세상에 없던 존재를 본인의 의지로 창조해내어, 정성과 헌신으로 돌보는 위대한 어머니. 눈앞에 보이는 숲의 풍경이 곧 창조자이며, 창조자가 곧 자연이다. 생명을 낳고 순환시키는 재생산과 돌봄의 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여성적 가치 아닐까.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로서의 입장을 고수하던 내가, 출산과 재생산을 재고하게 된다. 나의 페미니즘이 이성에서 영성으로 나아간다.
작년까지만 해도 ‘Mother Earth’를 번역한 ‘어머니 대지’ 혹은 ‘대지의 어머니’처럼, 여성을 신성화하고 연약한 존재로 상정해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치부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이는 서양에서 수입된 페미니즘에 깔린 개념이다. 특히나 발리에 살 때, 서양에서 온 자칭 히피들이 모이는 행사만 봐도 클리셰가 가득하다. 여성 모임은 노래하고,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도는 우먼 서클, 남성 모임은 야생성을 끌어올리는 애니멀 플로우 따위가 많다. 오리엔탈리즘에 취한 신식민주의자들이 판치는 광경이 한심해 보였다. 하지만 어쩌면, 나의 편견이야말로 납작한 사고에 그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리엔탈리즘의 핵심은 서양이 동양을 여성화하는 것이다. 서양은 동양을 정복할 대상으로 간주했다. 관통하고(penetrate), 개입하고, 교화하고, 맨스플레인할 대상으로 여겼다. 오늘날 서구 근대문명의 대안이 서양에서 나올 수도 있겠지만, 동양의 여성적 가치를 새롭게 상상해야 할 때다. 서구가 감성적이고 비이성적으로 여겼던 것들은 영성적 가치가 흘러넘친다. 신문명의 가치는 여성적인 것, 동양적인 것이다.
하루에 해와 달이 공존하듯이, 우리 모두에게 음(陰)과 양(陽)의 에너지가 존재한다. 역경, 도덕경, 바가바드기타 등 동양의 위대한 경전은 모두 Yin과 Yang의 조화를 이야기 한다. 둘의 조화를 맞추는 일이 존재하는 자의 숙명이다. 먹는 음식도, 하는 생각과 행동도 마찬가지다. 균형을 잃으면 아프거나 무너지기 십상이다.
그토록 염원하지만 명료한 해답을 얻지 못했던 숙제를 푼 기분이다. 아이의 존재를 통해 생명의 기원, 베풀고(giving), 사랑하고(loving), 나누는(sharing) 여성적 힘을 감각했다. 작고 순수한 영혼은 우리 어른의 거울이다. 우리가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대로 흡수하고 뱉어내게 된다. 나의 재생산 능력을 사용할 계획은 없지만, 나에게 그러한 힘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대견하다.
카메라를 들고 지구를 유랑하는 낭만적 유목민. 네트워크 안팎에서 이미지와 신체로 연결되는 작업하는 사람. 기술을 경유해 생명의 공통 언어를 모색하는 미학적 수행자. 종의 경계가 허물어진 생태적 관계망을 상상하며, 더럽고 아름다운 것들을 채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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