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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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남해 바다로 떠나는 길. 우리 집 곡성을 지나 하동 악양의 섬진강 물은 유난히 맑고 투명했다. 백로들도 하루종일 맑은 물을 내려보며 사냥의 기회를 노린다. 가마우지도 까만 제 몸을 차가운 물에 흠뻑 적셔 고기를 찾는다. 풍경에 감탄하던 내게 선물처럼 또 하나 놀라운 존재가 다가온다. 팔뚝보다 더 굵고 튼실한 연어 한마리가 배를 스쳐지나가는 것이다. 섬진강 어류생태관에서 크게 내세운 현수막에는 ‘북태평양 어미연어 회귀량 조사’라고 써있다.

연어의 그 작은 몸에는 어떤 힘이 솟을까. 어떻게 그 넓은 바다를 헤엄치고, 어떻게 다시 이 강물로 돌아왔을까. 노를 젓는 내 몸에도 알 수 없는 힘이 솟는다. 이 길은 미지의 곳으로 정처없이 떠나는 방랑길이 아니다. 집으로 가는 올레길의 풍경처럼, 고향의 풍경이 나를 반기는 것이다. 연어가 내게 속삭이는 것 같다. 남해안 바다를 지나면 내가 살던 제주가 있고, 일본이 있고, 대만, 중국이 있다. 마치 연어의 회향처럼 물의 길은 내 집으로 가는 길이다.

선물 이론가 루이스 하이드는 무엇보다 ‘순환’을 강조한다. 선물은 맺고 끊는 로고스적 힘이 아닌 품고 넓히는 에로스적 힘이 담겼다. 그래서 대가 없이 주고 받을 수록, 오히려 활기는 커지고 넓어진다 말한다. 남태평양의 바다 공동체가 조개 껍데기 선물을 주고 받은 것도 순환으로 생명의 힘이 커진 것이다. 그들은 선물로 얽힌 유대감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바다만큼 넓혔다. 자신의 뿌리는 내가 나고 자란 섬 한 곳이 아니었다. 선물을 주고 받으며 넓어진 태평양이 자신의 커다란 뿌리가 되었다.

내겐 마쯔리(祭り)의 추억이 있다. 마치 고향가는 연어들이 한데 모여 춤추는 환희의 장이다. 한국어로는 잔치, 중국어로는 市集, 영어로는 Gathering으로 불리는 개념이다. 이 축제의 장소에서는 이웃이 보내준 식재료, 재능을 기부하는 수많은 스탭, 1년간 결실을 준비해온 음악, 시, 춤의 예술이 다양한 형태로 어우러진다.

교토 쿠쯔키 지역의 YAMAUTO山水人 마쯔리가 나의 시작점이다. 삼나무 숲 속 빈터에서 텐트를 폈다. 친구들은 자연스레 순환을 만드는 노하우를 전수해줬다. 직접 자른 대나무로 스테이지를 만든다. 빈집을 해체한 목재로 다시 가건물을 쌓아올린다. 마을에서 팔지 못하는 B급 식재료를 얻어온다. 직접 써온 노래와 시를 나눈다 등등. 모든 과정에는 좀 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순환이 있었다. 한 번 강렬한 경험이 생긴 후로는 점점 더 다양한 장소에서 더 쉽게 같은 에너지를 만날 수 있었다. 감각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순환을 통해 나의 뿌리가 깊어지고 넓어지는 공동체의 감각이다.

한자문명권의 고전 ‘주역’에도 순환의 이야기가 있다. ‘태兌’라는 이야기는 두 개의 호수가 상징이다. 한쪽의 호수 물이 부족할 때 이웃의 물에 흘러가고, 서로를 받아들이고 채우는 교류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麗澤,兌,君子以朋友講習·

이어진 연못처럼, 우린 서로 배우고 가르친다.

(이어진 연못에 물이 들어오면 두 연못이 평평해지듯이, 새로운 것을 배우면 서로 가르쳐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누린다.)

– 김재형, 시로읽는 주역

 

물 위에서 노를 저으면 파동이 온 몸으로 스며든다. 한 번 노를 첨벙 담글 때마다 물결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간다. 한 번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밀려오는 파도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실은 내 몸이 파동 그 자체가 된다. 얇은 배의 몸통을 매질 삼아 흔들리는 파동이 꼬리뼈를 타고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그 공명처럼 나는 뿌리가 다시 넓고 깊게 확장되는 것을 느낀다. 내 집은 어디인가. 질문을 던졌던 레게 뮤지션 밥 말리는 아버지가 영국인이었고 어머니는 흑인이었다.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넘어 온지는 수 백년이었다. 그럼에도 Roots Now!라고 노래 불렀다. 내 부모님은 군산에서 자랐고, 나는 안양에서 태어났고, 이후 수도권을 떠돌다 세계를 떠돌았다. 항상 고향이 없는 도시의 방랑자로 나를 정의했다. 그러나 이제는 무엇을 떠나거나 찾지 않고, 내가 산 모든 곳이 내 뿌리임을 느낀다.

뿌리를 좀 더 단단하게 넓히자. 섬진강의 달뿌리 풀처럼 마디마다 새로운 뿌리가 달리고 달려 물의 길이 크고 넓어진다. 2023년에는 배타고 섬진강, 배타고 남해안, 배타고 대마도까지 감각을 확장할 생각이다.

마음은 우주까지 확장되고 넓어진다. 그러나 몸은 여기 지금 이만큼 존재한다. 그 몸을 배에 실어 드넓은 바다를 건너는 것은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다음 글은 몸을 감각하는 방법론을 다루고 싶다.

고석수

대만, 일본, 중국, 제주 강정 등, 동아시아의 섬에서 다양한 형태로 살아왔다. 동아시아 친구들과 함께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모시는사람들)을 출판했다. 전남 곡성에 산다. 몸, 마음, 지구를 아우르는 항해학교를 만들고 있다. 물의 길을 다시 꿈꾸는 프로젝트이다. 배를 타고 섬들을 잇는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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