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세와 생명평화
이제 슬슬 연재를 마무리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서양의 인류세 담론을 소개하고 분석하는 작업에 치중했는데, 오늘만큼은 한국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그래야 <k-사상사>라는 주최측의 기획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류세’ 개념이 제창되었던 2000년에 한국에서는 ‘생명평화’라는 말이 탄생하였다. 그래서 나이로 따지면 생명평화와 인류세는 동갑인 셈이다. 생명평화 개념이 탄생한 해가 인류세 개념이 주창된 해와 일치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마치 인류세 시대의 윤리를 제안하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생명평화에서 ‘생명’은 인간만의 생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생명을 아우른다. 그래서 생명평화는 ‘모든 생명들의 평화’라는 뜻이다. 종래에는 인간에게만 적용되었던 평화 개념을 인간 이외의 존재에까지 확장시킨 것이다. 마치 김대중이 1994년에 민주주의의 대상을 인간 이외의 존재에까지 확장시켜 ‘지구민주주의’를 주창한 것과 유사하다(「6. 기후변화 시대 정치의 확장」). 그렇다면 ‘생명평화’라는 생각은 어떤 사상사적 풍토에서 나오게 된 것일까?
생명평화 운동의 기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과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을 역임한 정성헌은 ‘생명평화운동의 흐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80년대의 운동 중에서) 또 하나는 그렇게 많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민족문제, 민주주의 문제를 제대로 하자는 것은 다 동의하는데, 좀 더 근본적으로 보아야 되겠다는 입장입니다. 현재의 구조악은 단순히 신군부와 미국의 비호 아래 벌어지는 반민족, 반민주적인 행태 이런 것만이 아니고, 근본적으로 현대 과학기술문명의 폭력성, 이런 것이 국가주의와 독점자본과 합쳐져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잘못된 근대과학기술문명을 극복하지 않는 한 희망이 있겠느냐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 근본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대략 공동체적인 삶이니 생명운동이니 하는 그런 주장으로 80년대 초중반부터 논의되었습니다. 그게 한 20년 후에 생명평화운동으로 개화가 된 것으로 봐야 합니다.
– 정성헌,『현장에서: 평화・생명・통일이야기』, 리북, 2013, 202~204쪽.
여기에서 “80년대 초중반의 논의”를 대표하는 그룹은 한살림운동의 창립 멤버들이다. 이들은 ‘근본적인 것’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하여, 근대 문명의 폭력성 자체를 문제시 하였고, 그것이 20년 뒤에 생명평화운동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국귀농운동본부 본부장을 역임한 이병철은 한살림운동의 창시자인 무위당 장일순을 논하면서 “무위당 생명평화운동의 구현”이라고 표현하였다(『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 2014, 58~64쪽). 장일순은 비록 ‘생명평화’라는 말은 쓰지 않았지만, 그가 전개한 운동은 생명평화운동이었다는 것이다. 장일순이 생명사상가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그의 평화사상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장일순의 생명평화사상
장일순의 평화사상은 삼일운동에 대한 그의 언급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삼일운동을 한국의 대표적인 평화운동의 사례라고 생각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것을 동학농민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3・1만세에 민족의 자주와 거룩한 민족의 존재를 천명하는 속에서도 비협력과 비폭력이라고 하는 정신이 깃들어 있었어요. 그것이 바로 동학의 정신이에요.
– 김익록 엮음,『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2012, 113쪽.
여기에서 장일순은 삼일만세운동의 정신을 비폭력과 비협력으로 규정하고, 이것은 동학 정신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삼일만세운동을 기획한 것이 천도교의 리더였던 손병희였고, 손병희는 동학농민혁명 당시의 리더였던 최시형의 제자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론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학교 다닐 때 “삼일운동과 동학운동의 뿌리가 같다”고 배운 적은 없다. 양자는 독립된 별개의 사건으로 이해되고 설명되었기 때문이다.
장일순과 같은 역사인식은 최근에야 대두되었다. 가령 『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의 저자인 역사학자 박용규는 2021년에 선도문화연구원의 주최로 열린 《제102주년 3・1절 기념 국민행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3.1운동의 뿌리는 3.1운동이 일어나기 25년 전, 우리나라가 모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가 되기를 염원하며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2차 동학농민혁명군은 동학농민혁명 이후에도 의병투쟁에 참여하였고, 이후 목숨 걸고 삼일혁명의 지도부에 들어가 독립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 김경아,〈동학농민혁명이 3.1운동으로 이어지다〉,《K 스피릿》, 2021.03.15.
여기에서 박용규는 “3・1운동의 뿌리는 동학농민혁명”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 근거는 동학농민군이 이후에 삼일혁명의 지도부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삼일정신을 동학정신의 연장선상에서 본 장일순의 역사관과 상통한다. 다만 장일순은 동학운동과 삼일운동에서 비폭력 평화사상을 보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것도 이미 30년 전에 말이다. 장일순은 위의 문장에 이어서 종교의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모든 종교가 이제는 자기 스스로 가지고 있던 아집의 담을 내리고 서로 만나면서
이 지구에 한 삶터, 한 가족, 한 몸, 한 생명
이것을 어떻게 풀어갈 것이냐 하는 것을 서로 얘기해야 돼요.
– 김익록 엮음,『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2012, 113쪽.
삼일운동과 동학운동에서는 평화를 강조했다면 여기에서는 생명을 말하고 있다. 즉 생명은 하나이고, 모든 종교는 교단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한살림’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생명평화사상가’로서의 장일순을 발견하게 된다. 즉 모든 생명은 하나이고, 따라서 생명을 인위적으로 나누는 폭력은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에 의하면, 2000년대의 생명평화사상은 1980년대부터 대두된 장일순과 같은 생명사상가에서 이미 단초가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장일순은 자신의 사상의 뿌리를 언제나 동학에서 찾았다. 그렇다면 동학이야말로 21세기 생명평화사상의 뿌리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동학의 생명평화사상
동학연구자 박맹수는 2017년에 「전봉준의 평화사상」이라는 논문을 썼다(이후, 서보혁 외, 『한국인의 평화사상』에 수록). 전봉준은 우리에게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혁명가’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에게 평화사상이 있었다는 주장은 의외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박맹수는 어떤 근거로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었을까?
동도대장(東道大將)이 각 부대장에게 명령을 내려 약속했다.
매번 적을 상대할 때는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고의 공으로 여긴다. 부득이하게 싸울 때에는 절대로 인명을 해치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이미지 출처: 박맹수, 「동학농민혁명과 동아시아 평화」,『나주동학농민혁명의 세계사적 의의와 시민사회로의 확산』, 2021년 11월 11일 학술대회 자료집, 25쪽.
이 문장은 일본 외무성 산하 외교사료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국 동학당 동정에 관한 제국공사관 보고 일건(朝鮮国東学党動静ニ関シ帝国公使館報告一件)』에 나오는 것으로, 박맹수가 일본에 직접 가서 발굴한 사료이다. 이 문헌은 1894년 3월 25일을 전후해서 동학농민군이 전북 부안의 백산에 결집했을 때 동학농민군의 약속과 규율을 적은 것이다. 이 때 대장은 전봉준이었고, 총관령은 손화중과 김개남이었다. 따라서 위의 문헌에서 ‘동도대장(東道大將)’은 전봉준을 가리킨다.
위의 〈약속〉에서 “부득이하게 싸운다”는 표현으로부터 동학농민군이 가능한 한 싸움을 피하려는 평화사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인명을 해치지 않는다”는 말로부터 이들에게 생명을 존중하는 사상이 있었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약속〉은 ‘전봉준의 생명평화사상’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고(박맹수·조성환, 「전봉준의 동학사상」, 『한국종교』 53, 2022), 동학농민군은 지금으로 말하면 ‘생명평화결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보국안민결사’이기도 하지만)
생명평화와 활인도덕
동학농민군이 생명평화사상을 실천했다는 정황은 당시의 외부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것도 동학농민군을 ‘도적’이라고 불렀던 지식인들의 기록에서이다. 가령 개화파 김윤식의 일기 『속음청사(續陰晴史)』에서는 “비도(匪徒=동학농민군)가 지나가는 곳에서는 오히려 추호도 백성을 범하지 않았고 주민들은 음식을 즐겁게 제공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유학자 매천 황현(1856~1910)도 『오하기문』에서 당시의 동학농민군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1894년 3월 3일] (도적들은) 수령을 사로잡더라도 바로 죽이지 않고 항쇄족쇄를 씌운 다음 심한 치욕을 안겼다. 또한 아전의 경우에도 죽이지는 않되 곤장을 때리고, 주리를 틀고, 발에 차꼬를 채우는 형벌로 고통을 주었다. 일반 백성에게는 먹을 것이나 짚신 같은 것을 달라고 했을 뿐 부녀자를 겁탈하거나 재물을 약탈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을 추종하는 자들이 날로 늘어났고, 도적의 기세는 갈수록 거세졌다.
– 김종익 옮김,『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 역사비평사, 129쪽.
이러한 소식은 신문이나 인편 등을 통해 동시대의 일본에도 전해졌을 것이다. 당시 일본의 환경운동가 다나카 쇼조가 “동학당은 문명적이다. 12개조 덕의(德義)를 지키는 것이 엄격하다.”(「조선잡기」, 1896)라고 평가할 수 있었던 이유도 저런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리라. 여기서 다나카 쇼조가 말하는 ‘문명적’은 이 글에서 말하는 ‘생명평화적’으로 바꿀 수 있다. 동학농민군은 동학의 생명사상에 기반한 평화세계를 실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생명평화는 당시에 동학을 이끌었던 해월 최시형의 개념으로 바꾸면 ‘도덕문명’에 해당한다(『해월신사법설』「성인지덕화」). 최시형은 서양의 무기와 동학의 도덕을 대비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기는 사람을 죽이는 도구이고, 도덕은 사람을 살리는 기틀이다.
(武器謂之殺人器, 道德謂之活人機. 『해월신사법설』「오도지운(五道之運)」)
즉 무기는 살인(殺人)을 하는데 도덕은 활인(活人)을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도덕은 루쉰(鲁迅)이 『광인일기』(1918)에서 비난한 ‘식인도덕(食人道德)’이 아니다. 즉 꼰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평화’의 다른 말이다. 전봉준의 동학농민군은, 비록 군인을 자처했음에도 불구하고, ‘활인도덕’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박맹수가 동학농민군을 ‘살림의 군대’라고 표현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김지하의 생명님학
전봉준은 체포된 뒤에 받았던 심문에서 동학을 좋아하게 된 이유로 ‘수심경천(守心敬天)’을 들었다. ‘수심(守心)’은 최제우가 『동경대전』에서 말한 수심정기(守心正氣)에 나오는 말로, ‘마음을 지킨다’는 뜻이다. ‘경천(敬天)’은 최시형의 삼경(三敬) 사상에 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전봉준은 생명평화사상가였다. 그렇다면 “하늘을 공경한다”는 것은 생명평화의 이념을 존중한다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그 가치를 잊지 않고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가치를 인격화시켜서 최제우는 〈ᄒᆞᄂᆞᆯ님〉(『용담유사』)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그냥 〈님〉이라고 하지 않고 〈ᄒᆞᄂᆞᆯ님〉이라고 한 것은 그것이 ‘가장 큰’ 가치라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러한 해석의 단초를 우리는 김지하의 〈님론〉에서 찾을 수 있다(이하의 내용은 조성환, 「만해 한용운의 님의 형이상학」, 백영서 외 『개벽의 사상사』, 2022 참조).
수운 선생은 이 主를 ‘稱其尊(칭기존)’, 즉 ‘님’이라 불렀습니다. [‘天’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해 놓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자유를, 공을, 허를, 무를, 또 무도, 공도, 허도 아닌 뭐라고 말하기 힘든 것을 ‘님’이라 부릅니다. 님 그리고 님이라는 호칭, 이것은 앞으로 새로운 한국철학이 나오게 되면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 님이란 무엇일까요? 한용운의 시에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모두 ‘님’”이라고 나오죠. 이 기룸이라는 말이 묘합니다. 기리다, 그립다, 기른다, 내 마음 암에서 자꾸 생성시킨다, 크게 한다, 기억한다, 이것이 전부 기룸입니다. 그러니 이 물건도 님이 될 수 있습니다. (…) 저는 이것이 만해의 세계고 해월의 세계라고 봅니다. 바로 그 호칭과 ‘님’은 무한한 생명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 김지하, 「모심과 살림의 미학」, 장일순 외, 『모심侍』, 모심과살림연구소, 2005(초판은 2002), 40-42쪽.
여기에서 김지하는 몇 가지 중요한 지적을 하고 있다. 하나는 최제우가 말하는 侍天主(시천주)에서 ‘主㈜’는 ‘님’이라는 해석이다. 즉 God의 번역어로서의 신(神)이 아니라 『용담유사』에 나오는 〈ᄒᆞᄂᆞᆯ님〉으로서의 님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그것이 1920년대의 만해 한용운에 이르면 『님의 침묵』으로 이어진다는 견해이다. 즉 동학의 〈ᄒᆞᄂᆞᆯ님〉과 만해의 〈님〉을 연속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동학과 만해의 님은 모두 ‘생명’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생명의 님’이라는 것이다. 이상의 해석은 종래에 동학의 〈ᄒᆞᄂᆞᆯ님〉을 서구적인 신관의 틀에서 해석하거나(가령 범재신론이니 유일신론이니 등등), 만해의 『님의 침묵』을 문학이라는 틀에서 이해했던 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접근이다. 김지하의 님론은 기본적으로 한국학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김지하의 님론은 이미 1995년에 다음과 같이 보이고 있다.
님의 속뜻은 기룸에 있고, 기루는 마음이 바로 님이다. (…) 제 자신이 무엇이며 누구인지 잊어버린 지는 이미 오래다. (…) 제 자식이 신령한 생명을 모신 거룩한 존재임을 잊은 지는 아주 옛날이다. 제 좋을 대로 이리저리 빚을 수 있는 흙덩어리쯤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흙마저도 생명과 마음이 있는 법. 생명, 이것이 나의 님이요. 마음, 이것이 생명의 님이다. 님을 잊었으니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다.
– 김지하, 「님」, 김지하, 『님』, 솔, 1995, 60-61쪽.
1990년대는 김지하가 본격적으로 생명 담론을 발신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님>에도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김지하에게 있어 생명학과 님학은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될 수 없었다. 합쳐서 말하면 <생명님학>인 셈이다.
생명들의 평안
비록 김지하는 <님>에서 ‘생명’의 측면을 강조하였지만 거기에는 평화의 가치도 빼놓을 수 없다. 동학 당시에는 ‘평화’라는 현대적 개념보다는 ‘안(安)’이라는 전통적 개념을 사용하였다. 최제우의 『동경대전』과 전봉준의 「무장포고문」에 나오는 보국안민(輔國安民)의 安(안)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안(安)은 지금으로 말하면 ‘평안’에 가깝다. “평안하신지요?”라고 할 때의 평안이다. 평화가 전쟁이 없는 상태라면, 평안은 편안한 상태를 말한다(물론 오늘날 평화학에서 말하는 평화 개념에는 편안도 포함되겠지만). 그래서 동학의 문맥에서 말하면 생명평화는 ‘생명평안’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가령 최시형은 당시의 불안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이 세상의 운수는 개벽의 운수이다. 천지도 불안하고 산천초목도 불안하고 강물의 물고기도 불안하고 날짐승과 들짐승도 불안하다. 그런데 어찌 사람만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고 편하게 도룰 추구하겠는가!
-『해월신사법설』「개벽운수」
여기에서 최시형은 당시의 혼란한 시대 상황에서 천지만물도 불안에 떨고 있다고 걱정하면서, 인간의 편안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평안의 영역을 인간을 넘어서 비인간 존재에까지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말하는 ‘생명평화사상’과 상통한다.
이렇게 보면, 생명평화사상은 이미 100여 년 전의 동학사상가 최시형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가치는 동학의 〈ᄒᆞᄂᆞᆯ님〉 개념으로 표현되었고, 전봉준을 동학에 끌리게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한용운에 의해 〈님의 문학〉으로 구현되었고, 20세기 후반에는 장일순과 김지하 등의 한살림운동으로 계승되었다.
정성헌의 평화생명공경 사상
마지막으로 다시 정성헌으로 돌아오면, 흥미롭게도 그는 ‘생명평화’ 개념이 나오기 전에 ‘평화생명’이라는 말을 썼다. 1998년에 구상한 ‘DMZ 평화생명동산’의 구상이 그것이다(정성헌, 『현장에서, 평화·생명·통일이갸기』, 304쪽). 그런 의미에서 그 또한 생명평화 개념의 선구자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성헌은 평화생명 또는 생명평화에 ‘공경’을 추가하고 있다. 그리고 <생명·평화·공경>을 <근면·자조·협동>을 대체하는 새로운 새마을운동의 슬로건으로 삼았다.
새마을운동에 참여하는 이들 대부분이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언어화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취임 후 생명과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자 이에 적극 동의하는 이들이 많았다.
미래세대를 위해,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새마을운동이 나서 대전환을 이뤄보려 한다. 환경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실천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방법들을 연구해 나갈 계획이다.
– 전현진, 〈‘근면·자조·협동’ 따랐던 그들, 이젠 ‘생명·평화·공경’을 모토로〉, 《경향신문》, 2020.07.04.
여기서 ‘공경’이라는 가치는,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최시형의 삼경(三敬) 사상에 이르게 된다. 결국 정성헌은 동학이 추구했던 생명과 평화 그리고 공경의 가치를 새로운 새마을운동의 슬로건으로 삼은 셈이다. 새마을운동중앙회에 대해서 “보수에서 진보로 단체의 정치색이 바뀌었다는 평가가 이어졌”던(위의 기사)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주목할만한 점은 정성헌이 생명평화공경을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새마을운동의 가치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생명과 평화 그리고 공경은 한국철학에서 발신하는 <인류세 시대의 윤리>라고 할 수 있다. 생명평화 개념이 인류세와 동갑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교수. '다시개벽' 편집인. 지구지역학 연구자. 서강대와 와세다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였고,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 '한국 근대의 탄생'과 '개벽파선언'(이병한과 공저),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을 저술하였다. 20∼30대에는 노장사상에 끌려 중국철학을 공부하였고, 40대부터는 한국학에 눈을 떠 동학과 개벽사상을 연구하였다. 최근에는 1990년대부터 서양에서 대두되기 시작한 ‘지구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일관된 문제의식은 ‘근대성’이다. 그것도 서구적 근대성이 아닌 비서구적 근대성이다. 동학과 개벽은 한국적 근대성에 대한 관심의 일환이고, 지구인문학은 ‘근대성에서 지구성으로’의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 양자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지구지역학’을 사용하고 있다. 동학이라는 한국학은 좁게는 지역학, 넓게는 지구학이라는 두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심을 바탕으로 장차 개화학과 개벽학이 어우러진 한국 근대사상사를 재구성하고, 토착적 근대와 지구인문학을 주제로 하는 총서를 기획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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