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봄이 왔다. 다시 배를 타고 강을 내려간다. 아름답고 혹은 슬프다. 땅으로 가까이 갈수록, 물로 가까이 갈수록 자세히 보인다. 사라지는 것들이 많다. 남은 것들은 소중하다. 이 곳은 국가 습지 보호 지역이다. 섬진강 곡성 구간에 커다란 관광지를 짓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수변 공원이 생기면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야생의 공간은 사라질 것이다. 내 탓이 아닌데, 내 탓 같다.
우리의 삶이 지구처럼 넓어졌다. 그리고 산불, 홍수, 전염병 같은 재해재난이 내 탓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인류세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인간이 미친 지질학적 영향력이 지구를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우리의 작은 일상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가졌다. 윤리적 소비라는 말이 익숙해졌다. 우리는 양배추를 먹으면서 이 땅과 관계를 상상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우리의 작은 행동에는 질문이 뒤따른다. 지구냐 나냐? 지구를 위해서 좀 불편해야 되지 않겠어?
유기농, 자연농 등의 개념을 접하면서 나는 매 끼니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문명 속에서 지구를 파괴하느니, 땅 위에서 지구를 살리는 삶을 택하겠어. 라는 커다란 치기가 스무살 시절의 나에게 있었다. 대만 난좡으로 날아가 친구들과 농사를 지었다. 나는 땅과 깊게 연결됨을 느꼈다. 매일 아침 해가 뜰 무렵 밭에서 씨앗을 뿌리고, 해가 질 무렵 작물을 거두어갔다. 그러나 나는 분투하는 느낌이었다. 농사를 배워가며 나는 내 선택이 땅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력을 느꼈다. 커다란 땅을 살린다는 것은, 내 작은 몸에 더 큰 작업량을 요구했다. 덥고, 힘들고, 우울할 때가 많았다.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편하고 쉽고 빠르고 심지어 가격도 싼 ‘합리적 선택’이 우리에게 놓여있다. 나는 그놈의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항상 나를 버렸다. 지구냐 나냐는 질문을 던지며 나를 몰아세웠다. 몸이 망가지기 시작할 때 즈음에는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죄책감으로 산다는 것은 마음도 몸도 괴로운 일이었다. 나는 질문을 바꾸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좋고 지구에게도 좋은 길은 무엇일까? 그리고 관념이 아니라 감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땅과 물을 보며 기쁜 마음이 든다. 좀 더 걷고 몸을 움직이니 몸도 기쁘다. 반드시 관행농의 식품을 먹어서 안되는 것이 아니다. 기왕이면 맛있고 신선한 것들을 먹는 것이다.
실은 우리가 시각을 바꿀 때, 그것은 커다란 지구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문제가 된다. 지구냐 나냐 질문을 던지고 택하는 것들은 대개는 내게 더 큰 기쁨을 주는 것들이다. 더 신선하고 더 생생한 선택들이 다가온다. 야생에서 만나는 것들은 좀 더 몸을 쓰는 기쁨을 주고 마음의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편안함을 준다. (물론 익숙한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훈련이 필요하다.)
내게 배타기는 하나의 실험 공간이다. 이전의 내가 땅에서 실험을 했듯이, 이번에는 물에서 실험을 한다. 땅을 갈며 지구를 느끼듯이 물살을 가르며 지구를 느낀다. 그리고 이번에는 좀 더 내게 기쁨을 주는 감각들에 집중하는 것이다. 씨앗을 뿌리던 감동처럼 봄을 맞아 물 위에 피어나는 생명들이 내게 큰 감동을 준다. 이 감동을 더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커다란 관광지가 필요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물론 또 다시 커다란 질문은 우리를 압도할 수 있다. 커다란 시멘트 공사판 앞에서 작은 조각배를 띄우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질문하게 된다. 드넓은 옥수수밭에 뿌려지는 드론의 농약들을 생각하면 내가 먹는 작은 양배추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위축된다. 그러나 작은 선택들은 분명히 쌓이고 있다. 기쁨의 감각은 너무나도 크고 확실하다. 이 감각이 쌓여서 나의 하루 하루를 바꾸었듯이,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졌듯이, 그렇게 여러 사람의 삶이 바뀐다면 우리는 좀 더 지구와 연결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균형을 잡는 것이다. 즐거운 삶과 건강한 지구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여러 선택의 순간들이 우리를 유혹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다. 감각에 집중하고 나와 지구를 살리는 선택을 해본다. 나도 지구니깐 행복하고 건강하다.
대만, 일본, 중국, 제주 강정 등, 동아시아의 섬에서 다양한 형태로 살아왔다. 동아시아 친구들과 함께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모시는사람들)을 출판했다. 전남 곡성에 산다. 몸, 마음, 지구를 아우르는 항해학교를 만들고 있다. 물의 길을 다시 꿈꾸는 프로젝트이다. 배를 타고 섬들을 잇는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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