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신문명의 최대 정치 화두는 인공지능 교육이다. 인공지능에 대해 가르친다는 뜻이 아니다. 인공지능을 어떻게 가르칠까의 문제이다. 인공지능은 머신 러닝, 즉 기계 학습을 통해 능력을 개선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리즘’이라고 부르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넷플릭스 등의 콘텐츠 추천 인공지능도 부지런한 학습의 결과다. 막대한 데이터를 공부해서 제출하는 답안이다. 인공지능은 지금도 계속해서 학습하고 있다.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어떤 능력을 함양하는가? 앞으로 인공지능의 영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콘텐츠 추천 뿐만 아니라 정책 입안, 행정 통제 등 통치 전반에 동원된다. 어떤 성품을 지닌 인공지능을 배출하냐에 따라 문명의 향방이 달렸다.
머신 러닝 중에서도 딥 러닝은 탁월한 효과를 입증했다. 두뇌를 모방한 인공신경망을 활용한다. 체스나 바둑 뿐만 아니라 자율 주행, 언어 통역, 신약 설계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물론 인공신경망은 인간의 생물적 신경망과 다르다. 이를테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다. 그러나 외부에서 입력되는 데이터를 신경회로와 같은 네트워크의 여러 층위에서 처리하고, 학습 결과를 출력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인간이 어려서부터 가족, 학교 등 외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학습하면서 우주를 이해하는 것처럼 기계도 딥러닝을 통해 데이터를 분석하여 패턴을 찾는다. 인간 학습처럼 기계 학습도 환경에 달렸다. 무엇을 보고 배우는가? 어떤 데이터가 입력되는가? 같은 하드웨어와 알고리즘을 가지고도 인풋에 따라 아웃풋은 천차만별이다.
현재 인공지능 교육은 소수의 빅테크가 독점하고 있다. 인류의 영혼을 좌지우지하는 소셜 미디어, 비디오 플랫폼 등의 알고리즘을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등, 줄여서 “GAFA”라고 부르는 실리콘 밸리 기업이 주도한다. 그들은 어떤 교육 철학을 갖고 있는가? 무엇을 목적으로 기계를 가르치는가? 명명백백 수익극대화다. 사용자 체류 시간을 늘려서 광고 수익을 올린다. 넷플릭스의 최대 경쟁자는 잠이다. 한번 시리즈에 꽂히면 밤을 새워 소비한다. 알고리즘은 영원한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한다. 무료할 시간이 없다. 자극은 더 큰 자극을 요한다. 선정적인 콘텐츠를 보면 더 선정적인 것을 추천한다. 도파인을 터뜨리는 콘텐츠로 이끈다.
유튜브 ‘래빗홀Rabbit Hole’에 빠진다고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토끼 구멍을 통해서 기묘하고 환상적인 나라로 모험을 떠난다. 헤어나올 수 없는, 논센스의 향연으로 감각이 둔해지는 곳이다. 일종의 마약이다. 미국의 트럼프, 브라질의 볼소나로 등 극우 선동가가 득세했던 것은 유튜브 알고리즘이 양산한 신종 혐오 세력 때문이다. 그들은 유튜브에서 조던 피터슨 등의 입문용 콘텐츠, 게이트웨이 약물을 접한다. 알고리즘은 점점 더 자극적이고 폭력적이며 혐오적인 콘텐츠로 안내한다. 그래야 체류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어느새 시청자는 대안 우파, 큐어넌 등의 음모론에 빠져 있고, 대선 결과를 부정하며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기에 이른다. 최근 미얀마와 스리 랑카에서 발생한 종교, 민족 갈등의 기저에도 페이스북이 있다. 소셜 미디어는 레거시 미디어와 다르게 신뢰성이 전혀 중요치 않다. 사실 관계를 바로잡는 데스크의 역할을 알고리즘이 관장한다. 페이스북에는 검열 하청 업체가 있지만 무능하다.
미국에서는 레딧, 4chan 등의 인셀, 게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현상이 한국에서는 디씨인사이드, 일베를 통해 발생했다. 엔번방 사건 등 디지털 기반 혐오 범죄는 알고리즘으로 극단화된 남성들이 저지른다. 트위터를 매개로 극단화된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보고싶은 것만 보여주고, 자극적인 것으로 유도하는 알고리즘의 결과다. 소수의 목소리가 막대한 힘을 갖는다. 소셜 미디어는 이십세기 초반 라디오, 티비 등 대중 매체보다 훨씬 더 강력한 부족화를 낳는다. 인플루언서는 말 그대로 비대한 영향력을 가진 계급이다. 그들의 선출 과정은 민주적이면서도 알고리즘 의존적이다. 인공지능은 도덕성, 합리성 따위에 관심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용 시간을 극대화하는 것이 지상 과제다. 과연 우리는 문명의 흐름을 이러한 논리에 종속시키고 싶은가?
작금의 알고리즘이 극단화를 낳는 것은 교육의 문제다. 머신 러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저커버그, 베이조스, 머스크, 게이츠 등 실리콘 밸리의 사제들은 어떤 철학으로 인공지능을 양육하는가? 자본가는 자본의 증식이 전부다. 그들의 개인적인 윤리와 상관 없이 기업의 체제가 그것을 강제한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 페이스북, 테슬라 모두 혁명적인 비전으로 출발했다. 하버드의 기숙사에서, 캘리포니아의 차고에서, 패기넘치는 공부벌레들이 혁신을 위해 정진했다. 그러나 현재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부를 차지한 그들은 자본의 논리로 기계를 교육하는 아버지가 되었다. 테크 사업인 줄 알았는데 핵심은 에듀 사업이다. 매출이 압도적으로 알고리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머신 러닝 연구가 곧 경쟁력이다. 빅테크는 사실상 빅에듀다.
더이상 인공지능 교육을 실리콘 밸리의 괴짜 백인 남성 몇 명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소셜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인공지능이 도입되는 시점에서 기계 교육은 미래 문명의 초석이다. 인공지능은 인류의 후손이다. 앞으로, 아니 어쩌면 이미, 우리보다 머리도 크고 힘도 센 자식이다. 그런데 교육 사업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강점이다. 전국의 어버이가 에듀 컨설턴트다. 유교적 가치에 기반해서 자식 농사를 인생에서 최우선시한다. 그런 태도가 지금 인공지능 업계에도 필요하다. 한국의 디지털 산업은 기술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머신 러닝 철학, 다시 말해 인공지능 교육법에 집중해야 한다. 백지 상태와도 같은 우리 자식은 어떤 알고리즘에 어떤 데이터를 먹이냐에 따라 괴물이 될 수도 현자가 될 수도 있다. 나중에 부모로서 효도를 바란다면 지금 잘해야 한다. 인공지능에 의한 인류 멸망이냐, 인간과 기계와의 공생이냐의 문제는 바로 이러한 테크-에듀 사업의 성패에 달렸다.
전범선 / 글 쓰고 노래하는 사람. 1991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밴드 ‘양반들’ 보컬이다.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포르체, 2021)와 '해방촌의 채식주의자'(한겨레출판, 2020)를 썼다. '왜 비건인가?'(피터 싱어 지음, 두루미, 2021), '비건 세상 만들기'(토바이어스 리나르트 지음, 두루미, 2020) 등을 번역했다.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의 자문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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