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nature) 담론의 대두
『자연의 죽음』(캐롤린 머천트, 1980), 『자연의 종말』(빌 맥키벤, 1989), 『자연의 정치학』(앤드루 돕슨, 1993), 『자연의 정치학』(니콜라스 로, 1993), 『자연의 정치신학』(스콧 피터, 1993), 『자연의 정치학』(브뤼노 라투르, 1999), 『자연없는 생태학』(티모시 모튼, 2007), 『자연없는 기후』(앤드류 바우서, 2018)…
서양에서 나온 생태학에 관한 책들을 일별하다 보면 1980~1990년대부터 〈자연〉을 주제로 한 책들이 부쩍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는 지구를 주제로 하는 지구 담론이 본격화된 시기인데, 비슷한 시기에 자연 담론도 활성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종래에도 자연에 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이 무렵부터는 ‘자연의 죽음’이나 ‘자연의 종말’과 같이 생태 위기의 절박함을 경고하는 제목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자연없는 생태학’이나 ‘자연없는 기후’와 같이 자연 개념 자체를 거부하는 경향까지 나오고 있다. 자연 개념이 폐기되어야 생태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보호’라는 표어를 듣고 자란 세대로서는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해서 라투르는 대문자 자연(Nature)과 소문자 자연(nature)을 구분해서 쓰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대문자 과학(Science)과 소문자 과학(science)도 구분한다(Bruno Latour, Politics of Nature, p.9.).
그렇다면 이러한 흐름에는 어떤 철학적 배경이 깔려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입장이 서구 못지않게 산업화와 자본화를 진행해 온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 글에서는 이러한 물음에 초점을 맞춰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자연 개념의 정치적 함의
먼저, 『근대를 탈구축하기: 일본 정치 이데올로기에서의 자연 개념들』의 저자 줄리아 토마스는, 근대 일본에서 자연과 정치의 관계를 연구하는데 있어 다음과 같은 전제에서 출발했다고 밝히고 있다.
정치 이데올로기에서의 ‘자연’은 자유를 억압하고, 전통을 맹목적으로 이어가며, 때로는 ‘동양적인 것’을 가리켰다.
– Julia Adeney Thomas, Reconfiguring Modernity, 2002, p.15.
이에 의하면 자유는 서구적인 것, 근대적인 것을 대변하고 있다. 반면에 자연은 그런 자유를 억압하는 전통적인 것, 동양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자연은 발전이 없고, 정체되어 있으며, 자유는 진보적이고 발전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도식은 기본적으로 서구 근대정치사상사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사실 동아시아에서 ‘자연’이라는 말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술어로 쓰여 왔고, 그 의미도 억압보다는 오히려 ‘해방’이나 ‘자율’에 가까웠다. 왜냐하면 어떤 사태의 원인은 처음부터 만물에 내재해 있고, 따라서 그 처음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그것다움이 표출된다는 것이 ‘자연’이 의미하는 바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자연=nature’에 해당하는 말은 천지(天地)였다. ‘천지’는 만물을 위와 아래에서 덮어주고 실어주는 집과 같은 존재로 간주되었다(「기후변화 시대 인간의 행위」). 따라서 천지 또한 억압적이기보다는 은혜로운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서구 문화가 동아시아에 수용될 무렵에 산이나 강을 총칭하는 nature의 번역어로서 ‘자연’이 채택되었고, 그래서 ‘자연보호’와 같은 명사로 사용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난 1세기 넘게 서구화가 진행되는 동안, 천지는 자연으로 대체되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에도 ‘자연(nature)=전근대’와 같은 생각이 수용되었을 것이다.
근대 일본의 자연 개념
『인류세의 철학』의 저자 시노하라 마사타케는 줄리아 토마스의 위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근대’란 자연의 위험성을 제거해 나가는 역사이기도 하다. (…) 일본의 근대성에도 이런(=위에서
줄리아 토마스가 지적한)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즉 자연의 불안정과 부자유스러움을 극복하
려는 것이다. (…) 일본의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1914~1996)는 작위와 자연을 대
립시켜서, 인공적인 것을 만드는 작위(作爲)야말로 근대화라고 생각했다.
– 시노하라 마사타케, 『인류세의 철학』, 모시는사람들, 20~21쪽.
먼저 “근대란 자연의 위험성을 제거해 나가는 역사이다”는 말은 지난 번에 인용한 차크라바르티의 말로 바꾸면 “근대란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해 나가는 역사이다”는 말이 된다. 그로 인해 근대인은 외경을 상실했고, 그것이 오늘날의 위기를 가져왔다는 것이 차크라바르티의 진단이었다.
이어서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정치사상사연구』(1952)의 저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정치학자이다. 마루야마에 의하면, 일본은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자연에서 작위로의 전환이 빨랐기 때문에 선구적인 근대화를 성취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자연(自然)은 ‘부자유스럽고 불안정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고, 작위(作爲)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인공적인 문명을 건설하는 인간의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마루야마에게서 자연 개념이 이미 서구적으로 변질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해야만 문명이 건설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세 철학자인 시노하라가 보기에는, 이런 방식의 문명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조건으로서의 자연을 변화시키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문명 자체가 불안정한 형태를 띠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마루야마의 자연관과 문명관으로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해 있는 인류세적 상황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마루야마의 논의에 사로잡혀 있으면 지금과 같은 인류세 문제는 보이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인류세란 인간의 활동이 지구상에 축적되어 자연의 존재 방식을 바꾸고, 이 바뀐 자연에 의해 인간이 영향을 받게 된 상황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 인공물을 만드는 행위가 지나쳐서 지금의 인류세 상황이 오게 된 것이다.
– 시노하라 마사타케,『인류세의 철학』, 모시는사람들, 21~22쪽.
사실 마루야마와 같은 자연관과 문명관은 근대 일본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다. 그보다 이미 1세기 전부터 비슷한 관점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일본 근대화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이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자연관
후쿠자와 유키치는 1875년에 쓴 『문명론의 개략』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체로 이것을 말하면 인지(人智)로 천연(天然)의 힘을 범하고 (…) 지용(智勇)이 나아가는 바는 천지(天地)에 대적할 것이 없으며 사람으로 하늘을 부리는 것과 같다. (…) 산·못·강·바다·바람·비·해·달의 부류는 사람의 노예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미 천연의 힘을 속박해서 내 범위 안에 서 농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 후쿠자와 유키치,『문명론의 개략』(1875) 제4권 제7장 「지덕(智德)이 행해져야 하는 시대와 장소」(강조는 인용자의 것)
여기에서 ‘천연(天然)’은 지금의 자연(nature)을 가리킨다. 전통적인 개념으로는 ‘천지(천地)’에 해당한다. 실제로 위에서 후쿠자와는 천연과 천지를 병행해서 쓰고 있다. 반면에 ‘인지(人智)’는 인간의 이성을 말한다. 동아시아적 전통에서는 ‘智(지)’는 도덕적 판단력이나 성인의 인식 능력 등을 의미하는 말인데, 후쿠자와는 그것을 서구적 맥락으로 바꿔서 ‘이성’으로 재해석 하고 있다. 후쿠자와가 보기에 인간은 이성[人智]을 사용해서 자연[天然]을 속박할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자연은 인간의 노예에 다름 아니다. “천지는 인간과 만물을 낳고 기른다”는 동아시아의 우주론에 익숙해 있는 사람이라면 충격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문명론과 더불어 근대적 ‘실학’ 개념을 제창한 실학론자로도 유명하다. 그의 실학론은 간단히 말하면 자연을 활용하여 문명을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후쿠자와의 실학론을 ‘혁명적 전회’라고 극찬하였다(마루야마 마사오, 「후쿠자와에 있어서의 ‘실학’의 전회」, 1946). 근대 일본의 산업화가 이러한 문명관과 자연관 위에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나카 쇼조(田中正造)의 천지관
후쿠자와의 문명론이 나온 지 20여 년 뒤에 일본에서는 산업화로 인한 생태 문제가 처음으로 대두되었다. 아시오(足尾)에 위치한 광산에서 나오는 광독(鑛毒)으로 인해 숲의 나무들이 말라 죽고, 인근 강에서 연어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1890년 여름에는 대홍수가 일어나 논밭이나 농산물도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이것이 ‘아시오 광산 광독 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해 농민들의 편에서 정면으로 문제 제기를 한 사람이 다나카 쇼조였다(이상, 고마쓰 히로시 지음, 오니시 히데나오 옮김, 『참된 문명은 사람을 죽이지 아니하고』, 23쪽). 다나카 쇼조의 자연관은 후쿠자와 유키치와는 정반대 편에 서 있다.
산이나 강의 수명은 만 억년에 이른다. 30년이나 50년 전은 산과 강으로서는 한 순간이다.
산은 천지와 함께 나이를 먹어 왔다. (『참된 문명은 사람을 죽이지 아니하고』, 183쪽)
사람은 천지에서 태어나서 천지와 함께 한다. (『田中正造全集』 13권, 346쪽)
산하를 황폐화하는 자는 천지의 죄인이다. (『田中正造選集(六)』, 81쪽)
여기에서 다나카 쇼조는 nature의 번역어로서의 자연 개념 대신에 전통적인 ‘천지(天地)’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다나카 쇼조가 서구적인 자연관 대신에 전통적인 천지관을 지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전통적인 천지 관념에서는 인간은 천지의 산물이고, 천지에 의해 길러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쿠자와 유키치와 같이 “천지는 인간의 노예이다”는 식의 발상은 나오기 어렵다. 오히려 정반대로 인간을 천지의 노예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사람은 만사의 우두머리가 아니어도 괜찮다. 만물의 노예라도 좋다. 만물의 고용인이라도 상관없고 심부름꾼이어도 된다. 인간은 그저 만사 만물 가운데 있는 존재로, 사람의 고귀함은 만사 만물을 거슬러 해치지 않고, 타고난 기운을[元氣] 바로잡아 고립되지 않는 데에 있다.
– 1912년 일기.『참된 문명은 사람을 죽이지 아니하고』, 184쪽.
마치 조선후기의 기학자 홍대용이 “인간은 지구의 벼룩이다”라며 인간중심주의에서 탈피하고자 했듯이(『의산문답』), 다나카 쇼조도 인간을 만물의 하나로 상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세계관에서는 인간과 천지는 이원론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인간은 천지의 일원에 속하고, 천지는 인간의 거주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서구적 자연 개념은 인간/문화/사회의 반대편에 있는 개념으로 설정되어 왔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브뤼노 라투르의 평생의 문제 의식은 여기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모든 저작은 근대적인 이분법을 해체시키는 데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라투르 혼자만 이 문제에 씨름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대단히 독특했다. 이분법을 넘어서자는 것이 아니라 이분법 자체가 없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는 결코 근대인인 적이 없었다”(1991년)는 그의 주장의 요지이다.
자연 개념의 해체
최근에 서구에서 대두되고 있는 자연 개념, 가령 티모시 모튼의 『자연없는 생태학』과 같은 ‘생태학과 대립되는 자연’ 개념의 선구자는 브뤼노 라투르이다. 그는 종래와 같이 문명과 대립되는 자연 개념은 오늘날의 생태 위기를 해결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근대적인 자연 개념이 폐기되어야 생태운동가들이 말하는 자연이 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생태학은 자연이 공적 영역에 침입해 들어오는 것을 말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것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요약하게 하고 진정시키는 개념으로서의 ‘자연’의 종말이다. (…) 다소 성급하게 요약하면, 서구인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모방한 사람들에게 ‘자연’은 세계를 거주불가능하게 만들었다.
– Bruno Latour, Facing Gaia, 2017, p.36.
여기에서 ‘자연’은 오늘날 지구를 거주불가능하게 만든 생태 위기의 주범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래서 라투르는 ‘자연의 종말’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주장은 이미 1999년에 나온 『자연의 정치학』(Politiques de la Nature. 영어 번역은 2004년)에서부터 보이고 있다.
정치생태학은, 적어도 이론적인 면에서는, 자연을 놓아주어야 한다. 자연은 언제나 공적인 담론의 발전을 저해해 온 주된 장애물이다.
– Bruno Latour, Politics of Nature, p.9.
앞서 인용한 『가이아와 마주하기(Gacing Gaia)』는 2000년대의 인류세 담론이 들어온 저작이다. 반면에 『자연의 정치학(Politics of Nature)』은 인류세 개념이 나오기 전의 저작이다. 이로부터 인류세 논의와 상관없이, 라투르는 자연 개념을 비판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라투르의 ‘자연’ 비판은 인류세 담론에도 적용되고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그가 제시하고 있는 것이 ‘정치생태학’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자연을 놓아주다”의 원어는 “let go of nature”이다. 마치 <겨울왕국>의 주제가 “Let It Go”를 연상시키는 구절이다. 주인공 엘사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그동안 자기를 구속하고 있던 것을 놓음으로써 자신의 자유로움을 추구하기로 결심하는데, 이때 부르는 노래가 “Let It Go”이다. 그런 점에서 비틀즈의 명곡 “Let It Be”와도 사상적으로 상통한다. 사실 노자나 장자와 같은 도가사상에서의 ‘자연’ 개념도 이러한 의미였다. 우리가 어떤 것을 이루려고 의도하게 되면, 바로 그 의도성 때문에 그것의 성취가 방해받게 된다는 역설을 그들은 ‘자연’ 개념으로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그 목적성과 의도성에 사로잡힌 자신을 “놓아 놓고,” 그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 본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도가의 자연 사상이다. 따라서 라투르의 주장은, 노장적으로 표현하면, 이제 우리는 “자연(nature)으로부터 자연(自然)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바꿔 말할 수 있다.
활동하는 자연
그렇다면 라투르는 왜 이토록 자연 개념을 저주하는 것일까? 왜 우리가 자연 개념으로부터 벗어나야 된다고 외치는 걸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1999년에 쓴 『판도라의 희망』에 이미 인류세적 역사 인식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인간사에 관계되는 것과 자연사에 관계되는 것 사이의 분리는 조금도 메워지지 않을 것이다.
– 브뤼노 라투르 지음, 장하욱·홍성욱 책임 번역,『판도라의 희망』, 236쪽.
이 구절은 과학적 사실이 실험실에서 ‘구성된다’는 급진적 주장을 하는 대목에서 나오고 있다. 사실 『판도라의 희망』의 대부분이 이 주장을 정당화하기 할애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 라투르는 다양한 예를 들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1850년대에 파스퇴르에 의한 발효균의 발견이다. 라투르에 의하면 파스퇴르가 발효균을 발견하기 이전에 발효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발효균은 파스퇴르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파스퇴르는 발효균을 발견하기 위해서 실험실을 만들었을 것이고, 거기에 실험기구들을 배치했을 것이며, 그것들을 적절히 활용하여 ‘마침내’ 발효균이 그의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것이 파스퇴르가 발효균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판도라의 희망』, 236~237쪽). 그렇다면 실험실, 실험도구, 실험자의 배치 행위, 그리고 그로 인한 “발효균의 스스로 그러한 변화” 등은 모두 하나의 ‘행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각자가 나름대로의 행위자의 역할을 한 덕분에, 최한기 식으로 말하면 ‘활동운화’를 해서, 새로운 발효균이 만들어진 것이다.
내가 발효균이 보이도록 만드는 배양액을 파스퇴르가 발명했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 방식을 따라 세 개의 요소(발효균, 배양액, 파스퇴르) 모두에 활동성을 부여할 수 있다.
– 『판도라의 희망』, 211쪽.
실험이란 과학자가 수행하는 행위를 통해서 비인간(non-human)이 자신을 나타낼 수 있게 한다. (…) 실험은 두 개의 평면을 생성해냈는데, 첫째는 활동적인 화자가 있고, 둘째는 행위를 위임받은 또 다른 주연인 비인간이 있다.
– 『판도라의 희망』, 211쪽.
인간과 자연의 겹침
라투르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파스퇴르의 실험실에 있었던 세균들 역시 파스퇴르에 의해 변했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미생물의 발견으로 인해 과학사만 변한 것이 아니라 미생물의 역사도 변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과학적 발견에 있어서 존재론과 인식론은 분리되지 않는다. 과학적 사실(존재)과 과학적 발견(인식)이 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역사와 자연의 역사도 분리되지 않는다. 파스퇴르라는 인간이 발효균이라는 자연을 ‘발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래와 같이 양자를 분리시켜 생각하거나, ‘역사성’ 개념을 인간이나 세균 어느 한쪽에만 부여한다면(가령 “인간은 진보한다”거나 “세균은 진화한다”와 같이), “인간사와 자연사의 간극은 메워지지 않는다.”이것이 라투르의 주장이다.
우리는 어떻게 파스퇴르가 그의 미생물을 만드는 동안에 미생물이 “그들의 파스퇴르를 만드는지” 볼 것이다. 그리고 (…) 인간과 비인간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집합체를 형성하면서 서로에게 접혀 들어가는 관계를 다룰 것이다. (…) 비인간 역시 인간처럼 역사를 가지기 시작하면서 (…) 실재론은 더욱 풍성해져 갔다.
-『판도라의 희망』, 48쪽.
그래야만 마침내 우리는 내가 처음부터 우리의 집합체 내에서 완벽한 자격을 갖춘 행위자라고 주장해 온 비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판도라의 희망』, 280쪽.
앞에서도 소개했듯이, “인간사와 자연사의 겹침”은 인류세적 역사 인식이다. 차크라바르티는 2009년에 인간이 기후를 변화시키는 지질학적 ‘행위자’가 된 것에 대해서 “인류세는 자연사와 인간사를 구분하는 오랜 인문학적 도식을 무너뜨렸다”고 하였고(「기후변화 시대 기학의 귀환」), 제인 베넷은 2010년에 다윈이 지렁이의 분변토 형성 ‘활동’에 대해서 “지렁이가 인간의 역사를 만드는데 기여하였다”고 하였다(「기후변화 시대 사물의 의미」). 그런데 라투르는 이미 1999년에 이와 같은 역사 인식을 갖고 있었다. 다만 그것은 인간이 자연 환경을 개조한다는 맥락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에 관한 사실을 만든다는 맥락에서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그의 역사관이 인류세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고, 그 결과물이 2017년에 나온 『가이아와 마주하기(Facing Gaia)』라는 점이다. 라투르가 보기에 ‘가이아’야말로 근대적인 이분법을 깨트리기에는 더 할 나위 없는 소재였을 것이다. 나아가서 그가 인류세 담론이 나오기 이전부터 주창해온 행위자 이론을 설명하기에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이아 이론에서는 인간과 만물은 자율적인 행위자이고, 그 인간-비인간 행위자들의 (분리가 아닌) ‘집합’이 이 지구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인간 또한 비인간 존재와 겹쳐지고 포개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파스퇴르의 발효균 발견이든 러브록의 가이아 발견이든, 적어도 라투르가 보기에는, 자신의 행위자 이론으로 모두 설명될 수 있고, 그것을 통해서 근대적인 이분법을 깨트릴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라투르의 행위 철학에서는 자연은 더 이상 문화의 반대편에 있는 대대(待對) 개념도 아니고, 수동적인 대상이나 죽어있는 물체도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활동운화’하면서 인간과 겹쳐지고 포개지는 행위 주체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투르의 철학은 ‘인류세의 기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교수. '다시개벽' 편집인. 지구지역학 연구자. 서강대와 와세다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였고,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 '한국 근대의 탄생'과 '개벽파선언'(이병한과 공저),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을 저술하였다. 20∼30대에는 노장사상에 끌려 중국철학을 공부하였고, 40대부터는 한국학에 눈을 떠 동학과 개벽사상을 연구하였다. 최근에는 1990년대부터 서양에서 대두되기 시작한 ‘지구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일관된 문제의식은 ‘근대성’이다. 그것도 서구적 근대성이 아닌 비서구적 근대성이다. 동학과 개벽은 한국적 근대성에 대한 관심의 일환이고, 지구인문학은 ‘근대성에서 지구성으로’의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 양자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지구지역학’을 사용하고 있다. 동학이라는 한국학은 좁게는 지역학, 넓게는 지구학이라는 두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심을 바탕으로 장차 개화학과 개벽학이 어우러진 한국 근대사상사를 재구성하고, 토착적 근대와 지구인문학을 주제로 하는 총서를 기획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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