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데이터 센터에 불이 났다. 그랬더니 나라가 멈췄다. 센터, 중심이 하나 뿐이면 위험하다. 권력이 편중되어 있다는 뜻이다. 안보에 치명적이다. 센터가 여러 개라도 문제다. 중심과 변방이 나눠져 있는 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모든 것이 서울 중심이다. 부산이 있다고 해도 별 차이 없다. 강원과 호남, 제주 같은 변방은 중앙 권력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중앙화, 중심화, 집중화라는 뜻의 “centralisation”은 프랑스 혁명 이후 처음 생긴 말이다. 앙시앵 레짐의 절대 권력을 분산하려고 했던 혁명이 나폴레옹을 만나 더욱 막강한 중앙 권력을 낳았다. 이후 근대 국가는 프랑스처럼 수도 중심의 행정 체계를 건설했다. 근대화란 곧 중앙 집권화를 뜻했다. 대한민국은 특히 소용돌이처럼 모든 것을 서울로 빨아들였다. 탈중앙화란 이러한 근대적 프로젝트를 허무는 작업이다. 아나키즘의 오랜 슬로건이기도 하다. 요즘은 웹 3.0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쓰인다.
블록체인 기술은 데이터 센터를 불필요하게 만든다. 거대 자본이 제공하는 클라우드 서비스 대신 수많은 컴퓨터에 데이터를 분산해서 저장한다. 웹 3.0 시대에는 한 건물의 화재가 나라 전체를 마비시키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크립토 운동의 지도자들은 블록체인이 데이터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탈중앙화시킬 거라 믿는다. 데이터가 곧 자본인 디지털 문명에서는 데이터의 분산이 곧 자본의 분배다. 과연 블록체인은 아나키즘의 꽃인가? 근대 문명의 중앙 집권 체제를 종식하고 권력의 평등한 재분배를 이룰 것인가?
탈중앙화의 참뜻을 알려면 중앙화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중심을 참 좋아한다. 정확히는 중심이 되기를 바란다.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긴다. 근대 이전까지는 소수의 귀족이나 누렸던 사치다. 인권을 보장한 이후 인류는 에고가 비대해졌다. 자기중심주의는 현대인의 기본이다. 인간중심주의는 현대 문명의 기본이다. 그런데 애초에 인간이 중심을 이렇게 좋아하는 것은 동물이기 때문이다. 몸 한가운데(中) 심장(心)이 있다. 팔다리는 잘려도 살지만 심장은 없으면 죽는다. 심장이야말로 모든 중심주의의 근원이다.
식물은 중심이 없다. 나무는 뿌리가 생명이다. 균도 중심이 없다. 균사체는 완전히 탈중앙화된 구조다. 데이터 ‘트리’와 ‘네트워크’를 통해 인류는 새로운 자기 조직 방식을 꾀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물류망은 인간의 몸을 닮았다. 서울이 심장이다. 도로가 혈관이다. 모든 피는 심장을 통하듯이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한다. 북한의 위협처럼 서울이 불바다가 되면 대한민국도 끝이다. 근대화가 중앙화였던 것은 근대 국가가 인간의 몸을 본따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우두머리와 수족이 있고, 중심과 변방이 있다. 머리와 심장에 생기가 집중된다. 한마디로 중앙화는 인간화다. 인본주의, 휴머니즘에 기반한 근대 문명은 중앙 집권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탈중앙화는 탈인간화다. 나아가 탈동물화다. 영장류의 신체를 초월하여 새로운 세계 질서를 상상한다. 심장이 없는 신체 구조를 본따 사회 구조를 디자인한다. 포스트휴먼 문명은 모든 중심주의를 경계한다. 동물의 왕국이 아닌 숲 속에서 지혜를 얻는다. 나무의 뿌리와 균사체의 얽히고설킨 네트워크, 균근망이 모델이다. 지구에서 가장 회복력있고 공생적인 관계다. 자기중심주의는커녕 어떠한 중심주의도 찾아볼 수 없다. 우주의 중심이고 싶어하는 인류의 유아적인 본능을 극복한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닐 뿐만 아니라 우리 은하계와 태양계의 중심도 아니다. 인간은 지구에서도 중심이 아니다. 지구의 중심에는 핵이 있다. 온도가 섭씨 6천도에 달한다. 그곳이 바로 지옥이다. 인류는 뭇 생명과 마찬가지로 지구의 가장자리에 산다. 중앙화와 중심주의는 진화의 우연이며 과정이다.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에서 인간은 에고를 붙잡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자기를 중심에 두고 세상을 본다. 이백만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류는 우주에서 자기의 위치를 몰랐다. 막연히 가운데 있겠거니 생각했다. 하늘과 땅 가운데, 우리가 사는 이곳이 바로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다. 너무나도 영장류적인 오류다.
코페르니쿠스 이후 우리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오백년 밖에 안 됐다. 다윈 이후 우리는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백오십년 밖에 안 됐다. 너무 오랫동안 신봉했던 믿음이 거짓임을 인정하는 것은 힘들다. 새로운 진실에 따라 세상을 달리 보고 사회를 재설계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어른이 되는 일이다. 아, 세상이 나를 위해 돌아가지 않는구나. 엄마, 아빠가 베풀어주셨던 돌봄이 당연하지 않구나. 인류는 땅님과 하늘님의 보살핌으로 여태껏 생존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영원불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계속해서 자기중심적으로 굴면 지구님의 성품도 바뀐다. 인내력의 한계를 테스트하고 있다. 성숙한 업데이트가 시급하다.
탈중앙화란 단순히 컴퓨터 코드를 어떻게 짜냐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의 마음을 새롭게 코딩하는 일이다. 아무리 웹 3.0이 도래해도 자기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를 버리지 못하면 탈중앙화는 없다. 최근 테라, 루나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권도형 대표는 탈중앙화를 외치며 ‘지구’와 ‘달’이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암호 화폐를 발행했다. 그러나 그의 언행은 누구보다도 자기중심적이었다. “가난한 사람과는 토론 안한다”는 트윗은 탈중앙화의 안티테제다. 그는 여전히 세상의 중심에 살고 있다. 블록체인은 분명 중앙 집권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혁명적 기술이다. 하지만 기술의 가치는 여전히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 암호화폐는 아직까지 부의 재분배보다는 신흥 부자계급의 탄생을 촉진하고 있고, NFT는 예술가의 권리 증진보다는 셀럽들의 재력 과시에 도움이 된다. 데이터의 탈중앙화를 위한 코드를 쓰기 전에 코드를 쓰는 인간의 마음을 탈중앙화하자. 그렇지 않으면 크립토 혁명도 프랑스 혁명과 같이 한층 강력한 중앙화를 낳을지 모른다.
전범선 / 글 쓰고 노래하는 사람. 1991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밴드 ‘양반들’ 보컬이다.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포르체, 2021)와 '해방촌의 채식주의자'(한겨레출판, 2020)를 썼다. '왜 비건인가?'(피터 싱어 지음, 두루미, 2021), '비건 세상 만들기'(토바이어스 리나르트 지음, 두루미, 2020) 등을 번역했다.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의 자문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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