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내 안에 있어
행복도 검사를 99점 맞았다 그것도 군대에서. 연출된 ‘웃음 벨’을 눌린 듯 내 안의 만족도를 짜내서 보고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전 서평에서 유전자를 검사했던 경험을 언급했듯이, 나는 원래부터 내 건강을 살뜰하게 챙기는 편이었다. 내 애인이 귀엽게 부르는 이런 나의 ‘건강 염려증’은 군인의 일상 속에서 더욱 커졌다. 군복무를 했던 소대 생활관에는 벽걸이 티비와 냉장고가 있었다. 둘 중에서 내 삶의 질이 더 이상 하락하지 않는 데 긴요했던 가전도구는 냉장고였다. 다같이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다같이 하하하 웃을 때는, 여기가 시간을 아무렇게나 흘려보내는 군대라는 것이 실감 나서 싫었다.
냉장고는 ‘내가 그래도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음’을 보장하는 일종의 금고였다. 윗칸 냉동고에는 동료들의 흘러넘치는 개별포장 닭가슴살 사이로 블루베리 봉지를 밀어넣었다. 냉장고에는 요거트를 떨어지지 않게 비축했고 아래의 야채 칸에는 사과를 쟁여두었다. 전환복무로 경찰서 안에서 생활하면서, 식품을 배달 받을 수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밀폐된 환경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한강이 벚꽃이 달려도 단풍이 들어도 나는 건물 안에 있었다. 그때의 억척스러운 건강 챙김은 신분이 자유롭지 못하니 몸이라도 건강하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했던 몸부림이었던 것 같다.
한번은 경찰서 앞으로 검사 키트를 배달 받았다. ‘장 내 미생물’을 진단할 수 있는 개인용 검사 도구였다. 미생물이 내가 먹은 음식물을 소화한 결과물, ‘대사 산물’의 샘플을 모아서 연구소로 보냈다. 그러자 몇 가지 흥미로운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 하나는 ‘행복도 99점’이라는 수치였다. 행복을 느끼는 과정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은 그것의 95%가 장 안에서 생성된다고 한다. 그리고 내 장은 행복 호르몬이 멈추지 않고 생산되는 공장이라는 이야기였다. 행복은 먼 곳이 아닌 우리 가까이에 있다지만, 내 배 안에 둥지를 틀고 착실하게 알을 낳고 있는지는 몰랐다.
뇌 속 난쟁이의 외출
인간을 신체와 정신이 분리된 존재로 바라본 데카르트의 견해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건재하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것이 그릇된 심-신 이론에 기초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주인공인 꼬마 ‘라일리’의 내면에는 다섯 가지 의인화된 감정 캐릭터가 살고 있다. ‘기쁨’이는 기뻐하고 ‘버럭’이는 화를 잘 낸다. 그들은 뇌의 중앙부인 ‘컨트롤 타워’에 상주하며 라일리가 감각한 정보들을 전해 받고 반응을 전송한다. 마음의 일부가 ‘인물’로 실체화된 그들은 ‘머리 꼭대기에서’ 온몸을 통제한다. 그들은 막대한 권력을 채 ‘인성’의 핵심을 차지하는 ‘뇌 안의 난쟁이’인 것이다.
‘뇌 안의 난쟁이’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 세계에서 환상 속의 난쟁이는 특권적으로 누려온 지위를 내려놓고 자신을 둘러싼 세 가지 모순을 해소해야 한다. 먼저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뇌세포들의 연합에 내주어야 한다. 마음은 뇌가 외부환경에 대한 정보를 입력 받아 재현하는 것이라는 가정은 그것을 도맡아 처리하는 (라일리의 감정들처럼) 상위적 존재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러한 존재는 신체와 정신을 매개한다는 데카르트의 ‘송과선’ 개념과 마찬가지로 물리적으로 검증될 수 없다. 또한 난쟁이의 내면에는 또 다른 난쟁이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적 문제를 맞닥뜨리게 된다.
다음으로는 어디인지 알려지지 않은 ‘컨트롤 타워’에서 나와야 한다. 위 영화에서 ‘감정’들이 그러하듯 생각하고 계획하며 서로 소통하는 등의 고등한 정신 활동은 뇌의 한 곳에서 독점적으로 처리되지 않는다. 심지어 느끼고 깨닫는 ‘의식’의 경우에도 그것의 발생은 인간의 ‘대뇌피질’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진화의 후반부에 형성된 더 복잡한 부분인 것은 맞지만, 최근의 생물학 연구는 새와 일부 어류에게서도 의식의 여부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단계부터 난쟁이는 더 큰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 두뇌라는 중추신경계를 벗어나 머리 아래로 이어진 미주신경계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그곳에는 ‘제 2의 뇌’라 불리는 장이 기다리고 있다.
마음의 3요소: 뇌, 장, 균
이번 서평이 다루는 책 『더 커넥션』은, 인간의 본질적인 ‘내면’을 생물학적으로 탐구한다. 단, 지금까지 고루하게 주목받은 목 위가 아니라 아래 부분을 다룬다. 뇌는 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협업한다. 뇌가 중추에 있는 사무직 기관이라면, 장은 말단에서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미주신경계를 통해 오가는 정보의 90%를 차지하는 양을) 공급하는 현장직 장기이다. 장은 음식물을 파악하기 위해 맛과 냄새를 감지하는 수용체를 따로 갖추고 있는데, 이에 더해 자신의 상태를 파악한 ‘장 신경계(ENS)’는 (연동 혹은 위장관 복합) 운동을 자율적으로 조절한다.
위의 내용이 ‘뇌-장 축’을 소개한 것이라면, 독자들은 또 하나의 세계를 소화할 준비를 해야 한다. 저자 에머런 메이어는 미생물, 특히 인간의 장에 거주하는 미생물을 본문에 끌어들이면서 그들을 우리의 세 번째 차원으로 지정한다. 인간의 마음은 최소한 ‘뇌-장-장내 미생물군 축’(brain-gut-microbiome axis)에서 그려져야 한하는 것이다. 장은 몸 전체에서 가장 많은 면역세포와 내분비세포를 갖고 있다. 또한 미생물의 세포 수는 인간 종의 것보다 열 배가 더 많다. 그들은 신체 모든 곳에 독특한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지만, 장 안에 사는 미생물군은 특히 도드라진다. 그들은 음식물을 분해하여 숙주의 소화를 돕는 ‘공생 세균’의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장내 미생물군은 인간의 신경 과정에도 참여한다. 위에서 언급된 ‘뇌 속 난쟁이’ 5인방 중 ‘까칠’이는 이 사실이 매우 언짢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미생물과 숙주가 생물계의 신호물질로 벌이는 화려하고 효과적인 협력이다. 예컨대 태아는 출산 과정에서 산모의 (임신 시기에 맞추어 정렬된) 질 속 미생물군을 ‘초기 시동팩’(starter pack)으로 부여 받는다. 이때 태아가 먹는 모유 속 올리고당(HMOs)는 비피두스균 중에서도 특정한 한 균에게 최적화된 영양을 제공하고, 그 균(‘B. 인판티스’)은 그 대가로 장을 관리하는 데 쓰이는 ‘접착성 단백질’과 ‘항염 분자’ 그리고 뇌성장에 필요한 ‘시알 산’과 감정 체계를 안정시키는 ‘GABA’를 생성한다.
나보다 더 나다운
사실 미생물은 장 밖에서도 이 세계의 진정한 주인공이다. 그들은 45억년 지구의 역사에서 절반 이상의 시간을 독점적으로 활동했으며 지금까지도 ‘미생물세’를 이끄는 주역들이다. 그들 중 ‘해양 광합성 세균’은 지금까지도 인간이 호흡하는 산소량의 절반을 방출하고 그만큼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미생물은 동물의 체내로 우연히 들어와 잠시 머물다가 사라지는 먼지 같은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동물의 일부를 구성할 뿐 아니라, 동물이 신체를 형성하고 성체로 변태하며 다른 개체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조연으로 활약한다. 예를 들면 발광세균으로 오징어의 몸에 ‘보관’되거나, 관벌레가 변태하는 지점이 되거나, 하이에나가 취선에서 뿜어대는 신호로 쓰인다.
숙주 생물과 미생물이 공생하기 위해 서로 ‘공진화’한 역사는 인간에게도 되풀이된다. 고세균이 세균 속으로 들어가 ‘미토콘드리아’로 합체한 대사건 이후, 미생물의 관점에서 인간은 그들과 더 고도로 협력하기 위해 진화한 존재다. 예를 들어 인간의 면역계는 외부 균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협력이 가능한 미생물을 선별하고, 그들을 적절한 수위로 관리하기 위한 체계인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은 야생에 존재하는 200여 종 중에서 4종류에 해당하는 미생물 군집만을 보유하게 되었다. 다른 한편 장내 미생물군은 그들 간의 균형을 유지하며 인간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기회 감염균’이 득세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러나 공생은 결국 일시적으로 형성된 안정 상태일 뿐이다. 미생물은 박멸할 대상이 아니지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등장한 존재도 아니다. 우리의 장 안에서 펼쳐지는 생태계는, 수많은 생명들의 관계망이고 관계는 상황에 따라 언제나 변화할 수 있다. 책에서는 숙주인 우리가 정원사의 일을 할 것을 요구한다. 씨앗이 자라서 열매를 거두는 일은 하늘이 하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은 물을 주고 비료를 주면서 인간의 일을 할 수 있다. 식사도 마찬가지다. ‘나’ 한 몸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들’ 미생물에 의해 ‘외부’에서 들어온 음식물이 소화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우리 모두가 건강하게 살면서 행복할 수 있도록 내가 먹는 식단을 선택할 수 있다.
책읽기를 좋아해서 대학교에 진학한 신분. 전공책보다 소설과 미래학 책으로 다른 세상으로 떠나기를 즐겨하던 학생. 올해 졸업을 앞뒀지만 ‘좋아하는 철학자’는 없고 대학원은 안 갈 예정. 부모님의 주52시간 근무는 그저 존경스러울 뿐, 트렌드에 따라서 프리랜서로 생활하고 싶은 바람. 다행히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일감은 하나 둘 늘어나는 나날. 선한 영향력, 세상으로 뿜어대는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지만 SNS는 하지 않는 모순. 일상 속에서 심신을 가다듬고 내 일을 사랑하면, 큰 꿈은 없지만 지구살림에 보탬이 될까 싶어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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