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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nature

 

우리의 유형들

지난 몇 년간 ‘MBTI(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는 효과적인 대화 주제였다. ‘MBTI 검사 해보셨냐’는 질문은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왔고, 상대의 대답을 듣고 나의 것을 전하는 과정은 가상의 명함을 주고받는 듯 대화를 진작시켰다. 내 생각에 이 성격유형 지표는 우리에게 대체로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다. 인터넷에서 즉석으로 수행한 신뢰도 떨어지는 테스트의 경우라도 그렇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한국의 인구 수를 약 5천만명으로 잡고 이들을 5천만개의 각기 고유한 인격으로 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분류하고 유형화 하고자 하는 욕구를 어떻게든 실현해야 한다면, 4가지 혈액형보다는 16가지의 경우가 훨씬 섬세하고 낫지 않은가.

‘16’은 두 손으로 셀 수 있는 숫자를 넘어선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유튜브의 한 코미디언은 유형 별 캐릭터를 영상으로 제작해서 업로드했다. 댓글창에는 ‘뉴미디어 문화인류학자’라는 칭찬이 쇄도했다. 그 중에는 내가 아직 살면서 만나보지 못한 유형도 있었고 기이하고 특이한 인물도 있었다. 그걸 보고 나는 한 친구를 떠올리고 미안해졌다. 그는 원래부터 독특한 캐릭터이긴 했으나 졸업 이후에는 그런 면이 톡 쏠 정도로 심해졌다. 모욕감을 느낄 정도였다. 어떤 일로 내 기분이 나빠지자 그는 그 이유를 진지하게 물으면서 논쟁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엄연한 인구 집단의 일부였던 것. 그를 이상하다고 단정 짓고 거리를 둔 것은 오히려 나의 편협함이자 몰이해였던 것이다.

 

뇌 안의 네 인격

이 글에서 다루는 이번 책은 『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이다. 그렇다고 뇌과학 서적에서 예상되는 전문적인 내용이 나오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뇌에 대해 알고 있는 배경지식은 몇 개의 키워드로 추려지는데 그것들은 여기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간의 뇌는 진화하는 과정에서 아래쪽에 있는 뇌간에서 출발하여 변연계와 대뇌피질을 수직적으로 ‘쌓아왔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영장류의 뇌’ 그리고 ‘인간의 뇌’ 부분은 생존과 안전, 감정적인 흥분을 담당하는 오래 된 부분들에 의해 회로가 차단되어 압도당하기 쉽다. 이 같은 내용들은 ‘뉴로엑시스’(신경축)이라는 용어에 함축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을 때는 그런 배경지식은 몰라도 된다. 굳이 요구되지 않고 해설되지도 않는다. 이에 대해 저자 질 볼트 테일러의 약력을 의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인디애나 의과대학에서 신경해부학을 전공했고 하버드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얕음은 책의 중대한 단점이기보다는 이 책이 취하는 방향성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본문은 전반부에서 우리 뇌가 모듈(기능적 하부 단위)로서 작동하고 이것이 네 개의 영역으로 분할되어 파악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3부부터는 그렇게 언급된 4개의 모듈 영역이 캐릭터로 등장하여 일종의 상황극을 펼친다. 흡사 ‘캐릭터 쇼’를 보는 것 같은 인상이다.

캐릭터에 집중한 스토리텔링을 채택한 것은 심리학의 실용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여겨진다. 뇌과학이 우리의 ‘인생’에 대해 알려준 가장 시사적인 발견은 ‘신경 가소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뇌는 인간이 성체가 된 이래 ‘완성’되어 그저 노화되며 쇠퇴하는 것이 아니다. 배우고 경험하며 내면적으로 벌어지는 모든 활동에 따라 매순간 변한다는 것이 ‘가소성’의 뜻이다. 두뇌가 네 가지 모듈로 작동하며 네 가지 성격을 발현한다는 이론은 1960~1970년대 ‘뇌 분리 실험’으로 유행한 좌-우뇌 성격 이론을 발전시킨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우리의 성격들을 스스로 파악하고, 조화시켜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활용’인 것이다.

 

신경 가소성에서 인생 가소성으로

결국 저자는 ‘신경 가소성’이라는 명제를 통해 ‘인생 가소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그의 인생이 바로 그것을 보여주는 드라마틱한 사례이기도 하다. 그는 하버드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집에서 출근하던 때에  뇌졸증을 겪는다. 의식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그는 뇌과학자로서 자신의 뇌에 벌어지는 사건을 관찰하는 직업정신(?)을 발휘하며 마음의 일부가 ‘부분적으로’ 비활성화되는 것을 경험한다. 그 당시의 상황을 실감나게 전달하는 ‘테드(TED)’ 강연에서 그는 실제 인간의 두뇌 표본을 들고 관객들에게 강조한다. 좌상측 뇌로만 열심히 살아온 자신은 그 경험을 통해 우뇌를 골고루 사용하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왼쪽 상단 부위의 ‘시스템1’에서 오른쪽 상단의 ‘시스템4’로 건너가는 것. 그것이 저자가 피를 흘리며 경험했던 상태이며, 우리에게도 의도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로 여겨진다. 개체성을 사수하는 ‘시스템 1’은 ‘자기 자신’을 주변으로부터 분리하는 원자적이고 개인주의적 마음이다. 반면 ‘시스템 4’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자아를 구분 짓지 않고 우주적 에너지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마음이다. 『Buddah’s Brain(붓다의 뇌)』도 비슷한 맥락에서 명상을 통한 ‘인생 가소성’을 설파하는 책이다. 붓다의 가르침을 뇌과학으로 재해석하면서, 인간을 고통의 굴레에 빠트리는 생물학적 조건이 바로 자아의식이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열반에 이르는 길은 바로 ‘시스템 4’를 깨우고 활성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 부분을 문제로 규정하고 제거하는 것은 저자의 의도가 아니다. 테일러의 견해가 신선한 지점은 한 시스템에서 다른 것으로의 전환이 아니라 네 가지 시스템의 조화를 주문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전뇌(whole brain)’적 실천을 ‘BRAIN’ 지침으로 제시한다. ‘호흡(Breath)’으로 안정적인 신경적 기반을 만들고, 현재 캐릭터들의 ‘상황’(Recognize)을 인지한 뒤, 각각의 존재와 역할을 ‘감사’(Appreciate)히 수용하며, 다방면으로 균형 있게 ‘문답’(Inquire)하여 결정한 뒤, 상황을 ‘통과’(Navigate)하라는 것. 영화 <루시>에서 상상된, 뇌를 100퍼센트 사용한다는 설정은 현실에서는 초능력 없이도 누구나 가능한 것이다.

 

뇌과학이 쏘아올린 작은 영

우리에게 건너갈 곳이 있다면 그곳은 우주다. ‘시스템 4’는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그것은 더 넓고 광활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인간 내면의 우주선이자 징검다리다. ‘나’는 애당초 세계와 하나로 이어진 존재라는 것, 실은 존재들을 서로 구분 짓는 ‘존재론적 활동’ 자체가 마음의 일부분에 의한 것이었음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다시 세계와 합일될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은 뇌 안에 갖추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이론적 뒷받침이 매우 약하기 때문에 그것의 과학적 원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추신경계에 ‘영성’의 존재가 물리적으로 내장되었음을 가리키는 가설만으로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신경 가소성에서 인생 가소성으로, 인생 가소성에서 우주적 영성으로 이야기는 확장된다. 신경세포의 유연한 자기조직법이 다면적이면서도 역동적인 마음을 구성한다. 그 마음은 스스로를 인식하고(‘시스템 1’의 자아의식) 재인식하며(‘시스템 4’가 주도할 것으로 여겨지는 메타인지) 외부 상황에 맞추어 최적의 상태를 조성할 수 있다. 그러한 마음들이 모여 사회가 이뤄질 때 그 세상은 더 살만하고 생동감 넘치는 세상이 될 수 있다. 우주역사에서 왜 에너지는 원자가 되었고 에너지장과 분자는 동시에 존재하는가? 그것은 우주가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우주는 왜 생명으로부터 개별적 마음을 만들었을까? 그것 또한 우주가 필요로 하였기 때문이다. .

개별성과 전체성의 조합, 그것은 우주의 궁극적인 자기조직의 원리이다. 그 원리는 인류에게까지 흘러들어왔고 한 사람 안에서도 다양한 성격으로 펼쳐졌다. 우리가 이 연재를 통해 ‘깊은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개별적인 자아는 안고 가야할 것이다. 개체는 전체와 구분되었지만 자신이 전체의 일부임을 인지하고 전체와 어울려 하나 될 수 있다. 그렇게 자아는 깊어지는 것이다.

마카야(배선우)

책읽기를 좋아해서 대학교에 진학한 신분. 전공책보다 소설과 미래학 책으로 다른 세상으로 떠나기를 즐겨하던 학생. 올해 졸업을 앞뒀지만 ‘좋아하는 철학자’는 없고 대학원은 안 갈 예정. 부모님의 주52시간 근무는 그저 존경스러울 뿐, 트렌드에 따라서 프리랜서로 생활하고 싶은 바람. 다행히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일감은 하나 둘 늘어나는 나날. 선한 영향력, 세상으로 뿜어대는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지만 SNS는 하지 않는 모순. 일상 속에서 심신을 가다듬고 내 일을 사랑하면, 큰 꿈은 없지만 지구살림에 보탬이 될까 싶어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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