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포스트(Paul Poast), 시카고대학의 정치학 부교수이자 국제문제위원회의 객원연구원이다
출처 : 포린-어페어즈, 2022년 6월 15일자
우크라이나 전쟁의 부수적 피해자 중에는 현실주의(Realism)라는 학파가 있습니다. 이 학파의 지적 전통은 국가이익의 추구가 무역개방, 국제법의 신성함, 민주주의의 미덕과 같은 높은 이상보다 우선한다고 주장합니다. 현실주의자들은 국가, 특히 강대국이 어떻게 세계정치에서 살아남고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하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따라서 현실주의는 러시아 침공 배후의 권력과 이해 관계를 설명하는데 적합해 보입니다. 대신에, 현재 당장은 비난의 십자포화에 갇힌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현실주의적 주장이 크렘린의 행동을 옹호하는 것처럼 간주되면서, 유럽과 북미의 비평가들은 현실주의와 관련된 저명한 인물들을 호출하여 다양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치학자 John Mearsheimer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기원에 대한 자신의 주장에 대해 많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현실주의를 선두에서 옹호해온 Mearsheimer는 미국과 동맹국들이 NATO와 EU가 러시아를 위협하여 크렘린궁이 영향력의 영역을 확장하도록 우크라 침략을 도발하게 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Mearsheimer에 대한 비판은 우크라 침략 이후 러시아 외무부가 그의 아이디어를 홍보한 이후에 고조되었습니다. 또 다른 현실주의자인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도 우크라 상황에 대하여 푸틴을 달래기 위해 영토를 포기할 것을 촉구하면서 그의 현실주의 신조에 대한 공격이 빗발치듯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현실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목욕물과 함께 아기를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됩니다. 현실주의를 비판하는 독설은 중요한 내용의 구분을 놓치고 있습니다. 현실주의는 분석적 사고학파이자 정책적 입장입니다. 후자의 오류(정책적 입장)를 비판하면서 전자의 유용성(분석적 판단)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우크라 전쟁을 설명하는 분석의 방법으로 리얼리즘을 모든 이론적 틀과 마찬가지로 좋고 나쁨으로 나누는 것은 잘못입니다. 처방전이 불건전해 보일지라도 분석가들은 필연적으로 복잡한 세계에서 국가들의 동기와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수단으로 현실주의가 지니는 프리즘적 판단 가치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론으로서의 현실주의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국제관계학 분야는 이른바 패러다임 논쟁으로 들끓었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국제정치에 대해 생각하고 연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론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였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미묘한 차이가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국제정치에 대한 현실주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충돌로 요약되었습니다.
현실주의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납니다. 일부 현실주의적 접근법은 1) 개별 지도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다른 접근법은 2) 국내정치 제도의 역할을 강조하며, 제3의 접근법은 3) 국가 간 권력분배에 정면으로 초점을 맞춥니다. 다시 말하자면, 고전적 현실주의(인간의 본성은 투쟁을 추구함), 구조적 현실주의(세계정부가 없으면 개별국가는 안보를 추구해야 함), 신고전주의적 현실주의(내부 및 외부 요인의 조합으로 국가는 안보를 추구해야 함)가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들에는 고유한 하위 변형들이 뒤따라 옵니다. 예를 들어, 구조적 현실주의자는 방어진영(국가는 상대국가의 패권을 방어하고자 안보를 추구함)과 공격진영(국가는 안보를 달성하기 위해 패권을 추구해야 함)으로 나뉩니다. 일부 학자들은 현실주의가 영국 역사가가 만든 작픔이라는 것을 부인할 것입니다(EH Carr는 분명히 현실주의자이지만, 자기자신을 그렇게 밝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리얼리즘은 엄격하고 일관된 이론의 체계로 정의되기 보다는 ‘현실세계는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규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현실주의는 인류의 희망이 없는 학교, 국제관계사상의 함정이라고 표현됩니다. 현대 현실주의 사상의 첫 번째 인물이자 Mearsheimer의 작업에 선행한 저작은 1916년 영국 정치학자 G. Lowes Dickinson이 쓴 짧은 책인 ‘European Anarchy’ 였습니다. 그는 ‘한 국가가 두려움 때문에 다른 국가들을 지배하려고 할 것이며, 그런 연장에서 다른 국가들보다 우월하고자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현실주의자들은(실제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군비통제와 군축조약의 무의미함을 지적했습니다. 1942년에 미국 학자 Merze Tate는 The Disarmament Illusion을 출판했는데, 이 책은 모든 국가들이 필연적으로 무력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이런 아이디어는 후기 현실주의자들인 Hans Morgenthau 와 Kenneth Waltz의 주장과 입장을 같이 합니다.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에 Kissinger와 Morgenthau는 ‘단일세계정부 또는 국가간의 평화로운 공존을 희망하는 것’이 비현실적임을 지적했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현실주의자들은 유엔 같은 국제기구가 지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비웃는 사람들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 또는 스스로) 평가되었습니다.
1990년대까지 현실주의자들은 ‘불량국가들에 의해 어쩌다 어려움을 겪지만 국제기구와 민주주의의 확산이 세계평화와 번영의 황금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기대를 비판해 왔습니다. 현실주의는 현재 다시 유명해졌으며 정치학계에서 계속 주목을 받고 있는 대안이론, 즉 지정학으로서 미국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에 의해 발전된 “문명의 충돌” 개념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Mearsheimer의 핵심 현실주의 저작들과 마찬가지로 Huntington의 논문은 냉전 이후에 작성되었으며, 분석가와 학자들은 초강대국 간의 종말이 세계에 어떤 의미를 가질지 예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Mearsheimer가 강대국 정치의 귀환에 초점을 맞추는 동안 Huntington은 미래의 갈등을 주도할 문화적, 주로 종교적 차이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헌팅턴은 사실상 Mearsheimer의 작업을 반박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실주의를 강조하는 국가주의와는 대조적으로, Huntington의 문화기반 이론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를 예측했습니다. 결국 그의 예측이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는 데는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궁극적으로 리얼리즘의 갈래를 하나의 이론으로 묶는 것은 무기를 든 국가들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국제 협력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무익하다는 관점입니다. 본질적으로 국가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에 따라 갈등과 경쟁의 다루기 힘든 현실에 대하여 상호적 협력이 지속적인 해결책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은 Mearsheimer의 작업을 포함하여 현실주의 사상을 특징짓는 틀입니다. 현실주의는 국제정치를 전쟁이 만연하지는 않더라도, 자국의 체제가 지속되려면 해당 정부가 자유와 번영을 희생하면서라도 국가안보를 보장하는 데 집중해야 함을 의미하는 비극적인 주제입니다. Tate는 ‘Disarmament Illusion’ 라는 저술에서 이러한 주제를 제대로 파악했습니다 – “불만족스런 패권국가들은 실제의 전쟁을 원하지는 않더라도 전쟁의 가능성으로 위협을 가할 수 있을 것이며, 자신에게 순응하는 상대국가들을 무력으로 위협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보다 더욱 만족스러운 상태를 얻을 수 있는 모든 위협의 가능성을 자발적으로 차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책으로서의 현실주의
이론으로서의 리얼리즘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투쟁추구, Morgenthau가 강조한 바와 같이)이든 전지구적 권력의 분배(Waltz의 관점)이든, 국간 간의 행위를 제약하는 메커니즘을 강조함으로써 이론적 힘을 얻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리얼리즘의 역할은 날고자 하는 인간의 시도를 약화시키는 현실의 중력을 지속적으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현실주의는 특정 국가의 외교정책 선택이나 전쟁과 같은 사건이 발생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론으로서 현실주의는 국가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매우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론의 영역에서 처방(정책)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뭔가 달라집니다. 현실주의가 정책에 도입되면 현실정치가 되는 것입니다. 이론으로서의 현실주의와 정책으로서의 현실정치의 구분은 핵확산에 대한 역사 논쟁에서 잘 나타납니다. 1980년대 초 왈츠Waltz는 핵무기의 확산이 평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핵무기의 확산을 제한하는 것만이 안전한 세상을 보장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기존의 통념(1970년 핵확산 금지조약 체결의 논리)에 반대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의 입장은 핵무기의 확산이 세계를 위험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에 의해 이후에 논쟁이 되었습니다. Waltz는 기술적이며 이론에 입각한 사전 관찰(억지력과 방어력이 증가함에 따라 전쟁가능성이 감소함)에서 핵무기를 보유한 이후의 상황(핵무기가 국가의 억제력 및 방어력을 극적으로 향상시킴)으로 입장을 이동하면서 다음과 같은 권장사항을 추론했습니다 – “핵무기가 더 많은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환영해야 합니다”. 국제정치를 묘사하는 단계(개별국가들이 핵무력을 추구하려는 이유)에서 국제정치를 규정하는 단계(개별국가들이 핵무력을 추구해야만 하는 이유)로 전화하는 것이 Waltz의 결론입니다. 전자는 이론적 설명이고 후자는 현실의 정당화입니다. 양자 모두 유효한 학문적 업적이지만 이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의 사건들에 대한 특별한 지적인 이해가 필연적으로 특정한 하나의 정책대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Waltz로 하여금 핵무기의 확산을 정당화하도록 이끈 동일한 논리로, 이번에는 핵무기없이 국가의 안보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반대의 처방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현실주의 이론은 세계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그러한 처방은 개별국가의 해석을 반영합니다. 정책으로서의 현실주의는 또한 미국 외교의 억지정책에 대한 논쟁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미국의 억지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에 저항하는 국가들을 응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즉, 미국은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증진하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군사적으로 외국 무대에 참여해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대조적으로, 반대파는 미국이 글로벌 발자국을 줄이고 미국의 국익에 주요하지 않은 문제에 연루되는 일을 피할 것을 요구합니다. 핵확산에 대한 논쟁과 마찬가지로, 국제 문제에서 미국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에서 현실주의의 역할은 미국의 외교정책을 설명하기 위해 현실주의를 분석의 틀로 사용하는 것과 혼동되어서는 안 됩니다. 현실주의는 미국이 왜 현재와 같은 특정한 지정학적 상황에 처해 있는지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체계입니다.
현실주의와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에 관한 논쟁은 오랫동안 현실주의 입장의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1993년 Mearsheimer는 포린-어페어스( Foreign Affairs )에서 모스크바가 언젠가는 우크라이나를 재정복하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소련붕괴 이후 물려받은 핵무기를 키예프가 유지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약 20년 후, Mearsheimer는 NATO 확대와 우크라이나를 동맹에 가입시키겠다는 약속이 어떻게 러시아의 침략을 촉발했는지, 즉 2014년 크림반도의 점령에 대해 썼습니다. 두 기사 모두 정책의 처방에 중점을 두었으며, 러시아 우크라 미국 유럽연합 나토 각자가 하고 있는 일을 집중 분석하였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론으로서 현실주의가 아니라 정책으로서 현실주의를 반영한다는 점을 지적할 가치가 있습니다. 이론으로서의 리얼리즘은 위기가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제한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강대국이 자신의 영역을 지배하려는 열망이 어떻게 러시아가 결국 이웃국가를 군사적으로 강압(또는 침략)하려는 의미에 초점을 맞추거나, 또는 과거의 제국을 재건하거나 또는 자국의 안보를 추구하면서 이웃국가에 대한 공격을 도츨하는 상황의 분석에 집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 중 어느 것도 현실주의나 어느 한 이론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모든 설명을 제공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민족주의의 힘, 정권 유형의 차이, 특정 지도자의 특성(특이점이라고도 할 수 있음)을 비롯한 대안적인 설명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주의는 전쟁의 시작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합니다. 사실, 현실주의의 지속적인 역할은 세상이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 찬 세상이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있는 배경을 파악하기 위한 명확한 판단 기준을 제공하는 데 있습니다.

다른백년 명예 이사장, 국민주권연구원 상임이사. 철든 이후 시대와 사건 속에서 정신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으며, ‘너와 내가 우주이고 역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서로 만나야 연대가 있고, 진보의 방향으로 다른백년이 시작된다는 믿음으로 활동 중이다. [제3섹타 경제론], [격동세계] 등의 기고를 통하여 인간의 자유와 해방의 논리를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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