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백년의 ‘생명을 생각하는 생활을 생산합니다’ 라는 모토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 행성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생각하는 생활’, 그 중요성과 필요성을 어떻게 잘 전달하고 행동으로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또 어떻게 그 생활을 생산하여 돈이 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 나아가서 그 돈은 어떻게 쓰여야 목적에 부합하게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을까?
모든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자칫하면 매우 고리타분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고, 특정 유난한 사람들의 문화 정도로 치부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생명살림에 대한 필요와 신념이 온전히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지길 기다리기에는, 지구가 너무 빠르게 뜨거워지고 있다. 기다리기엔 시간이 촉박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생명을 생각하는 생활’을 보다 매력적으로 풀어내어 많은 이들이 따라하고 싶게 만드는 편이 더 빠른 지름길일거라고. 한 사람의 완벽한 실천보다 많은 이들의 잦은 지향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일로 ‘생태 감수성을 살리는 매력적인 일’ 을 만드는 것이 나의 큰 관심사이다. 다른 생명과 연결되는 경험이 자연스레 나를 치유하고 세상을 치유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7월 초, 태국의 한 이색 숙소의 이미지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흥미로워 정보를 찾다보니 그동안 내가 꿈꾸던 일에 대한 힌트를 그 곳에서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결국 7월 말, 나는 그곳에 찾아갈 수 밖에 없었다. 경험하지 않고 나눌 수 없으니까.
그 곳은 1976년에 시작된 정글 속 수상가옥 리조트 ‘정글래프트’ (이하 정글래프트) 였다. 위치는 태국의 중부, 미얀마와 인접한 깐짜나부리(Kanchanaburi)라는 지역에 있었으며, 국내에선 정보를 찾아보기가 어려워 실제로 접근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가겠노라 마음 먹으니 어떻게든 가게 되었다. 가는 길은 매우 고됐다. 방콕에서 에어컨이 없는 3등석 열차를 타고 200km 가량 이동, 그 후 로컬 픽업 트럭을 타고 부두까지 10km 이동하고 또다시 꼬리배를 타고 20분을 들어가야 했다.
기차에 에어컨은 고사하고 그나마 있는 선풍기도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무척 더웠지만, 창 밖으로 불어오는 바람 덕에 괜찮았다. 스콜이 쏟아진 후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이 이토록 달콤할 줄이야. 그동안 에어컨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살아왔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정글래프트’ 에는 전기도 인터넷도 없다. 그리고 이 수상가옥을 구성하는 모든 재료들은 무해한 자연 그 자체였다. 집을 이루는 모든 재료가 나무였는데, 놀랍게도 모두 재활용된 나무였다. 이 가옥을 만드는데 나무를 베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해먹은 수초로 만들어졌고, 화분은 나무와 코코넛 등을 이용했다. 또 수상가옥은 사방으로 문이 나있어 생각보다 시원했고 벌레가 없었다. 그들은 이 수상가옥이 집 아래로 물이 흘러 집 안의 온도를 낮추고 물을 언제든 공급받을 수 있으며, 육지 동물의 위협을 줄일 수 있는, 그들만의 지혜로운 방식으로 설계되었다고 설명했다. 아름다운 풍경은 덤. 실제로 생각보다 시원했고 걱정했던 해충이나 동물도 만나지 못했다.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음으로 인해 수많은 정보와 복잡한 이해관계에서 오는 피로도가 훅 낮아졌다. 덕분에 자연 속에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경험을 했다. 낮에는 해먹에 누워서 주변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를 흥미롭게 듣다가 낮잠을 잤다. 재밌는 광경 중 하나는 남녀노소 모두가 주황색 구명조끼를 입고 계속해서 강의 상류로 달려가는 장면이었다. 그 표정이 아이 어른 할 것없이 너무나 해맑고 순수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졌다. 그들은 리버점프를 위해 해질녘까지 끊임없이 강의 상류로 달려가기를 반복했다. (강에서 점프를 해서 물살에 따라 수영을 하며 내려오는 행위를 이 곳에서는 ‘리버점프’ 라고 불렀다.)
나는 탁한 강물과 부유물들을 보며 리버점프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근데 그들의 그 행복해죽겠다는 표정이 호기심이 불러 일으켰고, 결국 호기심은 그 의심과 불신을 이겨버렸다. 셀 수 없이 강물에 뛰어들었다. 아마 강물을 따라 내려오며 바라보는 정글의 풍경은 내가 죽는 날까지 인생에서 만난 가장 아름다운 순간 BEST 5에 손꼽히는 순간이리라 자부한다. 그만큼 아름다웠다. 럭셔리한 루프탑 수영장도, 발광하는 오색찬란 씨티뷰도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누릴 수 있는 것,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간 누려왔던 것에서 벗어나는 약간의 용기정도.
밤이 되자 정글 래프트에 작은 불빛이 하나씩 들어왔다. 전기가 없는 관계로 등유램프를 하나씩 나눠주었는데, 칠흑같은 밤이되자 그마저도 과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결국 나는 램프를 끄고, 일찍 잠에 들었다. 도심 속에서 빛공해로 고통 받는 생명들을 떠올렸다. 이곳에선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문을 닫으면 더워져서 이 곳이 안전하리라 믿으며, 사문을 열고 강바람을 느끼며 깊은 잠에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조금 걸어나오니 코끼리가 근처에 와있었다. 아침 7시 30분이면, 밥을 먹으러 나온단다. ‘코끼리 먹이주기’를 신청한 사람들은 우리가 어제 먹고 남은 파인애플과 사과 바나나 껍질 등을 코끼리에게 주며, 코끼리의 코를 쓰다듬었다. 인간의 음식물 쓰레기가 코끼리에겐 귀한 식사가 되고, 사람들은 코끼리라는 생명과 연결되는 경험을 산다.
‘정글래프트’ 는 단순히 숙박업이 아니었다. 경험하고 목격하고 즐기고 회복하기 위한 곳이었다. 그들은 이 사업을 통해 자연 환경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의 웰빙과 문화를 보존하는 ‘지속가능한 일’ 들을 펼치고 있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 마을에는 미얀마의 소수민족인 몬(Mon)족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은 이 사업을 통해 먼저 그들의 생활 수준을 개선하기 위한 시설 (학교, 사원, 폐기물 처리, 식수 위생 등)을 마련하고, 교육과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 이 리조트에 근무하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몬족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집 수리, 말라리아 근절과 같은 보건사업, 또 몬족의 고유문화를 지키기 위한 행사들 또한 지속해왔다.
아침에 만난 코끼리 말고도 도살장에서 버팔로와 소들을 구출해서 그들의 자연환경 안에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도록 최상의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물론 상생하기 위해서 동물들에 일정 훈련은 하지만 학대는 일절 없이 다른 방식으로 훈련하고 있음을 그들은 수차례 강조했다.
나는 정글래프트에서 그간 내가 누려온 편리함이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 것인지 생각했다. 그로 인해 다른 생명들에 미칠 영향을 가만히 세어보았다. 이 곳에서의 경험이 몇가지는 흔쾌히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언가는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3등석 기차에도 있던 선풍기조차 없어 가만히 있으면 문득 불어오는 강바람에 감사했고, 조명이 없어 잘 볼수 없는 대신, 청각과 촉각 등 다른 감각들을 곤두 세우며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매 순간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오히려 전기와 인터넷과 같은 문명 사회의 꽃과 같은 존재들을 포기하니 진정 쉼다운 쉼을 할 수 있었다. 그저 존재함으로 충분한 곳이었다. 무엇보다 나의 생활이 누군가를 해치지 않는다는 그 안도감이 참 편안했다.
다시 일과 돈 얘기로 돌아가자면, 이 곳의 숙박비는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어지간한 방콕 시내의 4-5성급 호텔과 맞먹는 가격이었다. (내국인들에게는 3분의 1가격으로 제공되었다.) 왜 사람들은 접근성도 떨어지고, 불편함을 잔뜩 감수해야 하는 이 곳을 찾아왔을까? 나처럼 자연과의 연결을 기대하는 이도 있겠지만, 단순히 물위에 떠있는 숙소에서 묵는 이색 경험을 하고 싶어서, 아이에게 코끼리를 가까이서 보게 해주고 싶어서 등등 갖가지 다른 기준으로 이 곳을 선택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어떠한 의도로 이곳에 찾았든 모든 숙박객들은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여행을 했고, 무해한 방법으로 자연과 동화되는 행복한 여행을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지역 사회와 주민들이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무엇보다 이 정글 래프트가 처음 시작된 1976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방식으로 지속되어오고 있다는 점이 참 흥미롭다. 어떠한 유행도 필요 없는 것, 가장 그 곳답고 그들다운 것이 결국 그들의 돈벌이가 되었다는 점 말이다.
이 곳에 다녀오며 이러한 구조의 사업을 만들어야 겠다는 결심이 확고해진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우리나라,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안에서도 분명히 지역성과 자연 환경을 기반하는 좋은 사업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해함’을 넘어 ‘건강함’ 그 결과 ‘사회적 기여’ 세 가지를 충족할 수 있는 일을 만드는 것. 모든 일의 방향이 이 쪽으로 움직여야 하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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