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국가보안법의 위협속에 역사속으로 사라진 홍콩의 시티즌(眾)뉴스는 지난해 말 <이민분위기속의 홍콩정체성>이라는 토론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홍콩에 26년간 거주한 중문(中文)대학교 인류학과 교수인 미국인 인류학자 고든 매튜가 사회를 보는 가운데 각기 다른 배경의 중년 홍콩시민들이 홍콩의 정체성에 대해서 차담을 나누는 자리였다. 1841년 영국에 할양된 홍콩은 원주민인 소수의 농민과 어민을 제외하고, 중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다음 장소로 나가기 전 난민 혹은 망명객으로 머무르는 곳이었다. 서구를 비롯한 해외에서 중국으로 접속하는 게이트웨이 역할도 겸했다.
1970년대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고, 1980~90년대 새롭게 발견된 브루스리와 함께 왕가위의 홍콩영화, 장국영 등의 칸토팝으로 상징되는 홍콩 대중문화가 절정기를 맞으면서 식민지 주민이라는 열등감은 “아시아의 4마리 작은용” 홍콩인의 자부심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문화대혁명으로 대륙이 완전히 문을 걸어 잠근 탓에 “반문명적이고 낙후한 농촌“ 중국대륙에 대해 느끼는 공포감이 상대적으로 이를 더욱 강화시켰다. 70년대 후반 홍콩에서 출생한 이주 2, 3세 홍콩인들은 처음으로 지역과 문화에 대한 애착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전환시킨 세대이다. 70년대말 히트한 “사자산 아래(獅子山下)”라는 드라마의 주제곡은 홍콩서민들의 정서와 자부심을 잘 표현해서 지금도 사랑받는 노래이다.
물론 근면함을 통한 경제적 부의 성취 이면에는 Utilitarian Familism으로 표현되는 경제적 안전과 혈연에 대한 집착이 있다. 이는 영국식민정부가 1960년대 홍콩폭동 이후, 좌파사상의 만연과 중국 공산당에 대한 동조 정서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또한 문화대혁명과 마오이즘의 영향을 받고 있다) 탈정치화를 부추긴 결과이기도 한다. 2019년 사자산 정상에서 함께 등을 밝힌 플래쉬몹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시위주제가 “영광이 다시 오길 (願榮光歸香港)”과 함께 이 곡이 사용됐고, 2022년 봄 오미크론 확진자의 폭증으로 위기상황을 맞은 홍콩시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류덕화를 포함한 홍콩의 셀럽들이 이 노래를 개사한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1984년 중국으로 반환이 결정된 뒤, 서서히 사라질 것으로 예상됐던 홍콩인들의 정체성은 지난 20년간 오히려 강화됐다. 하지만 홍콩시민이라는 지역 아이덴티티와 중국국민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착종하는 가운데 그것이 무엇인지 잘라 말하기 힘들다. 홍콩반환 전의 식민지 교육은 중국역사도 영국역사도 제대로 가르친 적이 없고, 공중질서 준수를 강조하는 반쪽짜리 시민의 덕성만을 강조했다. 그래서 청년세대는 홍콩의 가치로,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내세우지만 애초에 그런 것은 존재한 적이 없다는 중국 정부의 설명도 완전히 틀린 지적은 아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을 지켜 보며, 스스로를 중국인으로 자각하기 시작했던 홍콩인들중 절반 가량은 2014년 우산혁명과 2019년 반송중시위를 거치며 경험한 정부의 폭압속에 이제는 중국인으로 불리기를 거부한다.
이 매체의 또다른 보도에 따르면 2019년 여름부터 2년간 무려 2만여명의 홍콩시민이 타이완으로 이주했고, 4,000명이 영주권을 획득했다. 타이완에 거주하는 홍콩출신의 젊은 소설가 박쿠이(필명)가 1월에 발표한 단편소설집 <연기속의 거리>는 최루탄연기속의 뜨거웠던 2019년 홍콩민주화시위와 담배연기속의 차가운 타이완 후일담이 함께하는 작품이다.
박쿠이는 후기에서 자신의 소설을 들뢰즈-가타리가 카프카의 소설을 평하면서 만들어낸 개념인 “소수적인 문학”으로 설명하는데, 입말인 광둥어와 문어가 분리돼 있는 홍콩문학의 특성에 다시 타이완의 국어(國語)를 기준으로 글을 써야 하는 그의 작품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다. 단순히 소수어족 작가라는 생래적 특성 때문만이 아니라 “탈주와 도망”이 작품의 가장 큰 주제인 탓도 있다. 원래 모두가 잠재적 과객(過客)이었던 홍콩에서 압도적인 폭력과 자유를 향한 혼란스런 갈망이 충돌하는 가운데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고 다친 후 홍콩청년들은 그곳을 떠나 다시 완전한 이방인이 됐다. 탈영토화한 모든 개인의 문제는 이제 정치적이 된다.
인용되는 모든 담론은 난해한 서구의 문화이론들인데, 작중에서 의원이 됐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되는 학자도 출마의 변으로 “들뤼즈-가타리의 썰을 푼다”는 표현속에, 현실과 유리된 학술이론의 무력감에 대한 냉소도 깃들어 있다. 작가가 인용하는 유일한 중국 고전은 맹자의 “어진자가 군주의 자리에 있으면서 어찌 인민을 해하오리까?(焉有仁人在位 罔民而)”라는 말이다. 중국역사를 배운 중고등학생들이 더 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설명과 함께 등장한다. 알리바이 (서구 자유주의의 나쁜 영향으로 시위에 가담했다는 중국 정부의 비판에 대한)가 되기는 힘든 수준이다. 이 문장의 앞부분은 그 유명한 “유항산유항심(有行產有行心)”이다. 어찌됐든 중국 정부가 홍콩에 부를 제공한 것은 맞는 말이다. 제대로 트리클다운되지 않는 문제가 있지만. 홍콩의 계급구조와 빈부격차는 어쨌든 식민역사와 더 깊은 연관이 있다. 중국정부가 여전히 식민지시절 엘리트들과 협력한 것은 사회적 모순 해결에 대한 의지의 부족으로 볼 수 밖에 없긴 하지만, 근본 원인 제공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작가가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반복해서 표현하는 홍콩인의 정체성도 매우 시니컬하다. “돈이 생기면 집을 사고, 차를 사고,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어 다시 더 많은 집을 사고, 그러다가 타이완 사람들의 원한을 사겠지…… 욕먹기는 싫어하지만 남은 누구든지 흉보고, 깔보고, 불평하는 사람들.” “단결해서, 혁명을 쟁취하자고 외치지만, 1분 내외의 틱톡 영상으로 표현되는 ‘오르가즘’의 순간이 지나가면 대책이 없는 사람들.” “항상 바깥 세상으로 여행을 하고 싶어하고, 바깥에 나가서야 자기가 홍콩사람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는 사람들.”
홍콩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이고 주관적인 평”들은 실제로 썩 좋지는 않다. 한마디로 ‘mean’혹은 ‘凶’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은데, 실은 장기간의 식민지 경험과 금융상업도시를 만든 수퍼자본주의의 영향때문이다. 영어와 광둥어가 뒤섞인 언어 사용, 효율과 속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풍조가, 거칠고 예의없다는 인상을 만들어낸다. 원래 지리적으로 홍콩이 속한 광둥지역 문화를 대표하는 광저우 사람들의 상대적으로 느긋한 심성과 비교해보면 이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소설속에 그려지는 홍콩과 타이완 청년들의 삶은 이미 자본의 압력속에 충분히 소진되어 술, 담배, 섹스라는 기호품으로만 보상받고 관계는 SNS속에 함몰돼 있다. 여기 더해진 일본여행은 홍콩인들의 정체성중 하나인 “스트레스성 여행중독”의 가장 보편적인 증상인데, 팬데믹이 이들에게 가져다준 각성 하나는 “일년 넘게 일본에 가지 않아도 금단현상으로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작가는 자조한다. 한국 청년들의 모습과도 놀랍게 닮아 있는데, 모두가 중앙으로의 신분상승만을 염원하는 유교문화권이 낳은 최악의 경쟁사회라는 것 외에도 홍콩, 타이완, 한국은 끊임없이 대륙으로부터 (개인들이 경제적, 심리적) 압력을 받는 동시에, 어쩌면 그로부터 단절된 ‘섬’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준유교문화권으로 엘리트를 제외한 일반인들은 세속화된 불교나 애니미즘에 가까운 신도(神道)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일본인들은 자기 생활권인 지역에서의 일상과 장인정신으로 대표되는 자신의 업에 대한 관심이 더 많다. 작가는 중국인 소설가 비페이위(畢飛宇)의 표현을 빌어 “일본은 국가나 민족이 아니라 형이상학”이라고 말할 정도로 작중 인물 중 대부분이 일본을 단기적 이상향이나 탈출구로 꿈꾼다. 하지만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작가는 이런 표층적인 이미지의 대부분이 “일본의 AV비디오나 거대한 가슴을 가진 그라비아 모델”같은 환타지일 뿐이라는 사실도 잊지 않는다.
타이완으로 이주한 홍콩인들은 언어와 문화적 차이로 적지 않은 어려움도 겪는다. 푸퉁화가 능숙한 이들은 대개 대륙과 관계가 좋은 경우이니 홍콩을 떠날 이유가 없고, 영어가 능통한 엘리트들은 영미권으로 이주한다. 역설적으로 가장 “로컬한 홍콩청년”들이 타이완을 선택한다. 일자리와 부동산 문제나 대륙과의 연계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이들이 타이완에서 그린카드를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하기준인 600만 NTD를 들고 (원화 2억5천만원 정도에 해당한다) 투자이민 온 홍콩인 가족이 가장이 대륙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주 일년후 영주권 심사에서 탈락한 경우도 있다.
소설의 표지를 그린 홍콩출신 만화가 류광청(劉廣成)도 타이완으로 이주하여 <사라진 홍콩被消失的香港>을 출간했는데 이 작품은 2021년 타이완 문화부 청소년추천 도서로 선정됐다. 자유가 사라진 암울한 홍콩의 미래를 타이완에 투사시켜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의도 때문이다. 이 작품에 묘사된 홍콩과 대륙은 “역사의 스냅숏”으로는 의미가 있지만 사실 탈역사적이다. 어린 시절 일본에서 자란 작가는 부모가 일자리를 잃은 후, 대륙의 산둥성으로 돌아오는데, 중국어를 못한 탓에, 당시 반일분위기가 고조돼 있던 중국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 다시 온 가족이 홍콩으로 이주한 후 그는 이곳을 천당이라고 표현한다. “일본어 구사 능력과 일본문화의 아비투스”가 동경의 대상이 되는 ‘선진국’ 홍콩, 타이완, 일본과 대륙에 대한 이분법적 시각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남은 것이다. 그 후 홍콩에서 벌어진 일들은 당연히 이런 편견을 강화할 수 밖에 없지만, 지금은 중국 대도시의 힙스터들이 홍콩이나 타이완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일본문화와 영미문화에 가장 열광한다는 사실은 이들의 현실인식에 대한 지독한 역설이다.
이들의 작품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은 대륙사람들이다. 심지어 주인공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그의 성적판타지의 대상이면서도, 주인공이 열등감과 윤리의식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국인 백인 여성이 나오는 것과도 대조적이다. 마지막 소설에서 끊임없는 노트의 기록을 통해 스스로 치유받는 주인공이 타이완 출신 부인과 함께 태평양을 바라보는 동쪽의 바닷가에 집을 짓는 결말도 상징적이다. 과연 대륙과의 화해없는 홍콩과 타이완의 평화로운 해피엔딩이 가능한 것일까?
나는 최근에 접한 타이완 유학생권익쟁취동아리(境外生權益小組 Taiwan International Student Movement)의 활동을 접하고 약간의 희망을 가져볼 수 있었다. 타이완에 유학온 학생들중 상당수는 말레이지아 출신 화교, 홍콩과 마카우, 그리고 루셩(陸生)이라 불리는 대륙출신 유학생이다. 이들은 비공민(非公民) 신분으로 현지의 타이완 학생들에 비해 차별적 대우를 받을 수 밖에 없는데, 이중 루셩은 가장 비싼 학비를 내야 하지만 정식 유학비자대신, 임시거류증(停留證)이라는 간이 신분증을 부여 받는다. 특히 팬데믹 기간중에 방학이 끝나고도 타이완으로 돌아올 수 없다거나, 출신지에 따라서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상황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나 다른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통해서, 출신지에 상관없이 유대감을 쌓게 된다. 한편으로 중국 대륙으로 유학간 타이완 학생들과도 교류를 하면서, 환경의 차이가 가져온 사고방식의 차이를 상호 비교해 볼 기회를 갖는다.
특히, TISM이 2018년 금마장 영화 다큐멘터리 작품상을 수상한 “타이완에서의 나의 청춘(我們的青春,在台灣)”이라는 영화를 함께 보고 리뷰한 내용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https://matters.news/@tismovement/123296-%E6%9C%AA%E7%AB%9F%E7%9A%84%E5%85%A9%E5%B2%B8%E4%B8%89%E5%9C%B0%E5%85%AC%E6%B0%91%E7%A4%BE%E6%9C%83-%E5%BE%9E-%E6%88%91%E5%80%91%E7%9A%84%E9%9D%92%E6%98%A5-%E5%9C%A8%E5%8F%B0%E7%81%A3-%E8%AA%AA%E8%B5%B7-bafyreidftu3e43qe7kp7fuzkkb67myphu7ejajqk4f2erm2g3s5slodvqy )이 영화는 2011년~2017년 사이에 벌어진 태양화(太陽花)운동을 비롯한 타이완의 가장 의미심장한 시민/학생운동을 상세하게 밀착 기록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작품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남녀청년 주인공은 태양화운동과 입법원 점거사태의 중심인물중 하나였던 타이완독립주의자 천웨이팅(陳為廷)과 대륙출신의 첫 유학생 차이보우이(蔡博藝)이다. 차이보우이는 신입생 시절부터 타이완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다가 2학년부터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그들은 입법원 점거(3.18사건)가 끝나고 운동의 지속성을 위한 전환을 모색하는데, 천웨이팅은 전업정치가가 되기 위해 고향의 지역의회 의원으로 출마하고, 차이보우이는 재학중인 단장(淡江)대학의 학생자치회 회장으로 출마한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천웨이팅은 어린시절부터 습관이었던 “장난기 어린” 성추행 경력이 폭로돼 사과와 함께 후보를 사퇴하고, 차이보우이는 중국국적자라는 이유 때문에, 논란에 휩싸였다가, 결국 투표에서 완패하게 된다. 영화의 결말은 미국유학을 준비하는 천웨이팅과 활동가로 글을 쓰는 차이보우이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들의 실패를 회고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감독인 푸위(傅楡)는 자신이 2010년에 출간된 타이완 연구자 우지에민(吳介民)의 저작 “제3의 중국상상(第三種中國想像)”(중국을 경제적 기회로 활용하는 첫번째 상상, 그리고 중국에 대한 무조건적 혐오감과 공포를 품는 두번째 상상)의 영향으로 타이완, 홍콩, 중국대륙을 일컫는 양안삼지(兩岸三地)를 엮는 공민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고백한다. 이들이 시민사회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것은 중국 공산당과, 타이완의 국민당 그리고 중국-타이완의 정경엘리트 연합대자본세력이다. 실제로 천웨이팅과 푸위가 상하이, 베이징과 홍콩을 방문해서 지역의 청년운동세력들과 교류를 하는 모습이 영화에 담겨 있다.
TISM활동가는 이런 구상 자체가 지나치게 이상적일 뿐만 아니라, 타이완을 화인(華人)세계의 가장 수준높은 문화구현자로서 (민주, 인권, 문명, 로컬다원성 등의 보편가치실현 측면에서 수월성을 갖는다.) 설정함으로써 이들 지역의 지도세력이자 자유민주이념의 전파자로 보는 계급성을 비판한다. 구체적으로 차이보우이가 학생운동의 열성참여자로 머물 때까지는 찬탄의 대상이 됐지만 막상 운동의 지도자가 되려고 나섰을 때, 타이완 사람들은 그를 중국 정부의 통일전선전략에 호응하는 간첩이 아니냐고 의심한다. (놀랍게도 실제로 대륙의 미디어가 그의 출마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심지어 감독도 그를 신뢰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이런 문화적 위계는 차이보우이와 같은 특수한 경우뿐 아니라, 일반적인 중국 학생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거리를 둘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화적 한계를 무시하고, 섣불리 그들을 계몽하려 하거나 중국 공산당정부와 한패라고 묶는 선입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타이완의 독립을 주장하는 타이완민족주의와 대일통을 주장하는 중국대륙의 중화민족주의가 대립함으로써, 양안관계와 관련이 있는 사안 (3.18은 마잉지우가 이끄는 국민당 정권하의 타이완-대륙의 서비스산업 개방협약에 대한 반대시위에서 촉발됐다. 그외에 대륙자본의 타이완미디어인수합병시도도 항의의 대상이 됐다)이든, 그렇지 않든(차이보우이의 학생자치회장 출마), 어느 순간 양안 학생들의 정치적 입장이 엇갈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런 대립구조는 주디스 버틀러의 ‘전쟁의 프레임 (frames of war)’에 잘 설명이 돼있는데 전쟁의 역사를 통해 이미 ‘국민의 프레임’이 구성된 상태에서 “애도해야할 대상(grievable)”에 대한 상호적 동의와 공감을 얻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의 사회운동가들이 중국시민이나 활동가들과의 연대를 모색하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의 경험을 회고하면서 깨달았다. 또, 지금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내 중국유학생과 한국학생간의 갈등의 원인중에는 유사한 편견이나 민족주의 의식간의 대립이 있다. 이런 관념은 한국의 개혁 혹은 진보 세력이 중국학생과 시민들을 부정적이고 편견에 찬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강한 동기를 제공한다. 또, 꼭 한중간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한국의 민주화 지지세력이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전세계의 권위주의 국가 시민들에 대한 우월적 시선을 유지함으로써, 이들 국가 시민들과의 연대속에서 갈등이 생겨날 소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이 “연대의 불가능성”에 대해 좌절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양안삼지공민사회건설”같은 대서사에 집중하기 보다, 일상생활속의 유대감 형성과 같은 소서사에 주력할 것을 권유한다. 각자가 스스로의 관점을 서서히 변화시켜 갈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학생들간의 평범한 교류기회를 계속 만드는 것도 충분히 중요한 일이다.
서두의 차담으로 돌아와 출연자들은 홍콩의 정체성에 대해서 정치적 가치보다는 생활속의 효율성과 근면함, 음식과 같은 문화적 특질을 내세운다. 이런 요소들에 배어있는 개방성과 동서양 문화의 혼종성이 홍콩의 생활문화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매력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사회자 고든은 홍콩의 가장 어려운 시기가 지금이 아니라 2차대전중 일본침략 당시였음을 상기하게 하면서, 미래에도 홍콩의 ‘탈정치화된’ 긍정적인(?) 정체성이 살아 남을 가능성을 논한다. 이를테면 중국인이면서 동시에 상하이인의 정체성 같은 것이다.
이들이 묘사하는 홍콩의 정체성에 대해서 내가 발견한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지역에 대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 국가와 민족에 대해서는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후자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이 더 강했다. 원래 민족 혹은 국족(國族)에 대한 상상은 근대의 국민국가를 만들기 위한 필요악같은 것들이다. 모두의 합의하에 군대에 지원하고 국가에 세금을 납부해야만 “제도화된 폭력”인 국가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개인적인 신념 때문에 국가나 민족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극단적인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이와 같은 제도에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필요없을 수도 있는 변경지역과 그 주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고든은 UBC가 2022년 3월에 준비한 홍콩정체성에 대한 웨비나에서 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이를 설명한다.
“홍콩청년들은 홍콩의회 점거를 포함해서 초기에 왜 이렇게 격렬하고 폭력적인 시위를 벌였을까요?”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가장 근본적인 두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거부감입니다. 제가 아주 오랫동안 망명객과 함께 하는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10년전쯤 입니다. 백인 이주민이 홍콩시민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홍콩시민이 될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우리는 당신을 환영합니다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2년전 아프리카에서 온 이주민이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역시 따뜻한 환영과 격려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홍콩시민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유일한 집단이 있습니다. 바로 대륙에서 온 중국인들입니다. 홍콩사람들의 대륙인에 대한 편견은 거의 인종주의에 가깝습니다. 아주 오랜 기간동안 형성된 끈적한 감정입니다. (나는 이 정서가 한국인이 중국인에게 가진 우월감과 열등감의 조합, ‘르상티망 플러스’와 유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 칼럼에 올라온 “혐중감정의 기원” 참조)
둘째, 홍콩인들은 국민국가에 대한 소속감 자체에 대해 거부감과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가르치는 미국인과 일본인 학생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은 자기 나라를 사랑하나요? 모두 긍정했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이를 들은 홍콩 학생이 눈쌀을 찌푸리며 말하더군요. 당신들은 중국인들과 다를 바 없는 애국주의자들이군요. 저는 애국심 따위엔 관심 없어요. 우리 홍콩인들이 신뢰하는 건 홍콩경제뿐입니다. “
중국 정부는 이런 변경지역의 존재와 그 주민들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바깥 세계와 연결된 대문의 한쪽 편을 닫아버렸다. 내부와 외부세력의 갈등과 대립이 초래하는 압력을 완충하고 상호이해를 위한 소통을 촉진할 수 있는 회색지대를 없애버린 셈이다.
그런데,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비교적 단일한 정체성을 가진 국민국가에도 이런 변경지역을 상상해 볼 수 있을까? 만일 제주도나 오키나와같은 지역의 거의 완전한 자치를 인정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국의 경우 그 지역 주민들이 중앙정부에 대한 세금과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되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 정부가 매년 강정해군기지의 사용료를 제주도에 지불하고 50년마다 사용계약을 연장하기 위해 제주도 정부와 협상을 벌여야 한다면 어떨까? 오키나와 정부가 미군기지의 존속 여부에 대해서 스스로 결정권을 갖고 미군이나 일본 정부와 협상을 벌일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냉혹한 국제사회의 현실과 지정학적 이유를 들어 나의 이런 질문을 어리석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 질문의 초점은 이런 시나리오의 실현가능성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 근대국가 대한민국 국민 정체성을 가진 당신은 과연 당신이 “우리의 일부”라고 믿는 어떤 그룹의 사람들이 지역의 정체성을 인정하되, 국민으로서의 소속감을 거부하다면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나아가 그들이 아예 새로운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고 국가로서의 독립을 주장한다면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나는 제주도를 타이완에 그리고 홍콩을 부산으로 비유하고, 만일 이들 지역에 대해 일본의 식민 종주국 지위나 그 영향력이 100년 넘게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대체역사소설을 한번 상상해보라고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져 본 적이 있다.
반대로 대체역사 시나리오 속에서 이 지역의 주민들에게 물어 볼 수도 있다.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국민국가 대한민국이 당신에게 국가 정체성을 강요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실은 이런 시나리오가 완전한 백일몽은 아닐 수도 있다. 만일, 지역의 평화와 상호신뢰에 기반한 개방적인 미래를 위해, 이 지역의 모든 국가들이 자신의 영토 일부에서 이런 변강 혹은 회색지대를 설정하는데 동의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국은 그래야만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중국인들은 공산당에게 세뇌당한 어리석은 애국주의자들이고 우리는 여전히 ‘자유민주주의 선진국가’의 시민들인가? 심지어 비무장 영세중립국으로서의 한국을 상상하는 이들조차 있는데, 이 정도도 생각해 볼만한 여지가 없을까?
*사족 : “우리들의 청춘, 타이완”의 금마장상 수상식 장면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청년들의 민주화 운동이 성공적인 결말로 끝나지 않았음에 대해 그 과정과 꿈을 중시해달라던 감독이 갑자기 타이완의 주권국가인정을 호소하며 울먹인다. 내게는 완곡한 “타이완 독립만세”로 들린다. 이 영화의 정조와 주제가 단순히 중화권의 시민사회 완성과 경제정의나 민주주의의 쟁취와 모색이 아닌, ‘타이완 민족주의’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타이완 청년들의 민주주의국가 건설이 민족주의와 결합되는 서사는 국가소속감을 거부하는 홍콩의 사례보다는 사실 한국 민주당 지지자들의 반일정서나 최근에 불거진 반중정서와 더 가깝다.
https://www.youtube.com/watch?v=Fjw1iBCxVPg
*사족 2 : 광둥어를 공부하는데 사용하는 ABC Cantonese dictionary가 있다. 이 사전의 편집자는 미국인 Robert Bauer인데, 그는 홍콩에 수십년간 거주했으며 광둥어 음성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광둥어 전문가이다. 그의 사전에는 홍콩의 우산혁명 등 민주화 운동과 관계된 다양한 신조어 표현들이 담겨 있어서, 일종의 정치적 의도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충격적인 것은 몇몇 예문들이었다. 모두 편집자가 엄선한 것일 터인데, 걔중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외설적인 표현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표현들은 한국이라면 Sexual harassment의 범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들이어서 의아했다. 이 사전의 해당 스크린샷을 업로드하는 과정에서 페이스북 AI도 해당 광둥어 문장을 해독하고, 경고를 남겼다. 그렇다면 홍콩의 시민들은 성인물이나 음란물로 분류되지 않는 출판물, 특히나 사전과 같이 미성년자를 포함한 일반독자에게 허용된 참고서에 들어있는 과도한 외설적 표현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일까? 사실 외설적 표현보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여성독자들이 이 문장들을 성적폭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최근에 민주당 최강욱 의원이 온라인 회의에서 사용했다는 “딸딸이/짤짤이” 표현보다도 몇배 수위가 높기 때문이다. 두명의 홍콩지인들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리버럴 성향의 남성과 비교적 급진좌파에 해당하는 여성 모두, 그다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홍콩사람들은 일반적으로 sexuality에 긍정적이고, 식민지 경험때문에 현실에 대한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감수성이 발달해서, 정치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조차도 표현이 brutally 무례하며 직접적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서 PC(Political Correctness)에도 부정적이거나 무감각하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옐로우페이퍼에 가깝던 apple daily(蘋果日報)가 중국대륙과 홍콩정부를 비판하다가 폐간된 사실의 맥락이 조금 더 이해가 가기도 한다. 폭주열차처럼 제한을 받지 않는 거친 표현들이 담긴 홍콩 미디어의 출간물이나 방송이 광둥지역에서 다양한 채널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소비되고 있는데, 보수적인 중국 정부가 이런 노골적인 표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나아가서 광둥성의 보통 대륙주민들에게 이런 매체가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을 가능성도 생각하게 한다. 식민문화의 부정적 문화유산이 일국양제의 운용과 안정적 전환을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이다.
사진 출처 : https://hongkongfp.com/
和&同 青春草堂대표. 부지런히 쏘다니며 주로 다른 언어, 문화,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을 짝지어주는 중매쟁이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 아저씨. 중국 광저우의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오래된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함께 공부, 노동, 놀이를 통해서 어울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한다. 여생의 모토는 “시시한일을 즐겁게 오래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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