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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pinterest(FABRIZIO)

사이키델릭이라는 말은 1956년 영국인 정신과 의사 험프리 오스몬드가 만들었다. 그는 메스칼린과 LSD를 이용해 정신 분열증과 알코올 중독 등을 치료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메스칼린은 아메리카 지역의 선인장에서 추출하는 물질이며 원주민의 종교 의식에서 오랫 동안 쓰여왔다. LSD는 1938년 스위스의 화학자 알버트 호프만이 맥각균을 연구하다가 합성한 물질이다. 메스칼린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오스몬드는 이 두 가지 약물을 환각제(hallucinogen)로 부르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봤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것은 맞다. 그러나 헛것이 보이는 건 아니다. 의식을 확장한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올더스 헉슬리는 오스몬드에게 편지를 썼다. 메스칼린을 체험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1932)>로 이미 유명 작가의 반열에 들었다. 트랜스휴머니즘이라는 말을 만든 쥴리언 헉슬리의 친동생이었다. 쥴리언이 이과라면 올더스는 문과였다. 진화 생물학자인 형이 과학에 기반한 새로운 휴머니즘 종교를 설파하는 동안 동생은 고대 동양의 경전을 탐닉하며 <영원의 철학(1945)>을 썼다. 동서고금을 꿰뚫는 영적인 진실을 쫓았다. 헐리우드에서 대본 작가로 활동하던 헉슬리는 1953년 오스몬드를 만나 첫 메스칼린 경험을 갖는다. <인식의 문(1954)>이 그 후기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천국과 지옥의 결혼>을 인용했다. “인식의 문이 깨끗이 열리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보일 것이다. 무궁무진하게.” 헉슬리는 메스칼린이 인식의 문을 연다고 묘사했다. 평소 인간은 외부 세계의 모든 데이터를 입력받지 않는다. 생물마다 외부의 자극을 감각하는 방식과 정도가 다른 법이다. 강아지가 인식하는 세상과 내가 인식하는 세상은 분명 다르다. 내가 정상이고 강아지가 환각을 하는 게 아니다. 각자의 인풋 필터가 다를 뿐이다. 진화의 결과로 인간은 특정 양의 정보만 흡수하도록 프로그래밍되었다. 메스칼린은 그 필터를 일시 해제한다. 인식의 문을 활짝 열어버린다. 그러면 바깥 세계의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진다. 과부하가 걸리면 빛이나 소리가 증폭되거나 굴절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식의 문을 열면 무의식이 나온다. 인식이란 감각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프트웨어가 심상을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뇌가 받아들인 자극을 무의식적으로 추론하여 착시가 발생하기도 한다. 오리-토끼 착시, 얼굴-꽃병 착시 등이 대표적이다. 같은 그림을 어떻게 보냐에 따라 오리 같기도 토끼 같기도 하며, 얼굴 같기도 꽃병 같기도 하다. 인식은 자극과 무의식의 상호 작용이다. 착시와 환각은 한 끗 차이다. 인풋 프로세싱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 또는 편차다. 메스칼린은 인식의 문과 함께 무의식의 문도 열었다. 영혼에 내재된 온갖 심상이 콸콸 넘쳐 흘렀다. 헉슬리는 메스칼린의 종교적 의미를 단번에 알아챘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왜 페요테 선인장을 신성시하는지 깨달았다. 초월적인 상태를 유도하여 마음을 정화하고 공동체를 다지기 위해서였다. 자아를 넘어서 경계를 허물고 전체와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헉슬리는 불교의 ‘진여(眞如)’ 개념을 떠올렸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우주 만유의 본체인 평등하고 차별 없는 절대 진리를 보여주었다. 필터 없이 마주한 세상은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다웠다. 반짝반짝 빛나며 기하학적인 패턴으로 무한히 퍼져나갔다. 이것이야말로 부처가 말한 우주 만물의 참모습이었다. 허상도 환각도 아니었다. 헉슬리는 오스몬드에게 새로운 단어를 제안했다. 그리스어로 ‘드러내다’인 ‘파네인’과 영혼인 ‘타이모스’를 합친 ‘파네로타임(phanerothyme)’이다. 오스몬드는 비슷한 뜻이지만 어감이 더 좋은 ‘사이키델릭’을 역제안했다. 널리 쓰인 것은 후자였다.

1957년, 미국의 균류 생물학자 고든 왓슨은 멕시코에 가서 ‘마법의 버섯’을 체험했다. <라이프> 지에 후기를 대대적으로 기고했다. 알버트 호프만은 버섯에서 실로시빈 성분을 밝혀냈다. 선인장의 메스칼린과 비슷한 사이키델릭 물질이었다. 왓슨은 인도의 베다 경전에 등장하는 신성한 음식 ‘소마’가 사실 버섯이라고 주장했다. 호프만과 공저한 <엘레우시스의 신비 의식(1978)>에서는 고대 그리스에서 해마다 거행된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의 제사가 맥각균의 알칼로이드를 마시는 의식이었다고 추측했다. 왓슨과 호프만은 사이키델릭을 엔테오젠(entheogen), 즉 신령이 깃들게 만드는 물질이라고 불렀다. 심리학적인 도구가 영적인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50년대 말에서 60년대까지만 해도 사이키델릭 연구가 활발했다. 영혼을 들여다보는 현미경으로 활용했다. BBC 방송은 메스칼린 체험을 중계하기도 했다. 1960년에는 하버드 대학에 사이키델릭 연구팀이 생겼다. 심리학과의 티모시 리어리와 리차드 알퍼트(람 다스)가 주도했고 올더스 헉슬리가 자문했다. 종교학과 학생들과 함께 LSD와 실로시빈이 일으키는 신비로운 체험을 분석했다. 그러나 논쟁이 일자 하버드는 리어리와 알퍼트를 해고했다. 둘은 학교 밖으로 나가 히피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LSD는 60년대 후반의 반전 운동과 결합하여 사랑과 평화의 약물로 퍼졌다. 비틀즈는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라는 노래를 만들었고, 대중은 그 약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눈치챘다. <인식의 문>에서 이름을 딴 밴드, ‘더 도어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지미 헨드릭스는 “당신은 경험해보았는가?” 물으며 퍼즈 기타를 연주했다. 리차드 닉슨 대통령은 티모시 리어리를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꼽고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흑인과 히피를 반체제 세력으로 묶어 그들을 잡아들일 목적으로 대마와 LSD 등을 불법화했다. 70년대부터 사이키델릭 연구는 전면 중지되었다. 히피들의 환락 파티용 마약으로 낙인 찍혀버렸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더이상 LSD나 실로시빈 연구비를 지원받지 못했다. 그렇게 30년 넘게 상아탑에서 인식의 문은 굳게 닫혀 버렸다.

1972년, 18살의 스티브 잡스는 처음으로 LSD를 접했다. 2년 뒤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인도를 다녀왔다. 선불교에 심취했고, 채식을 실천했다. 가끔은 과일만 먹기도 했다. ‘애플’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도 그래서다. 잡스는 “LSD를 복용한 것이야말로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두 세 가지 일 중 하나다”라고 회고했다. 경쟁자인 빌 게이츠는 상상력이 부족하다며 “LSD를 안 해봐서 그렇다고” 조롱했다. 게이츠는 인터뷰에서 자신도 젊었을 때 안 해본 건 아니라고 소심하게 답했다. 실리콘 밸리의 역사는 사이키델릭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인터넷과 월드 와이드 웹의 탄생은 인간 의식의 확장을 위한 도전이었다. 오늘날도 샌프란시스코의 테크 업계에서는 LSD를 미량으로 투약하는 것이 유행이다. 잡스의 전설도 한몫 한다. 뉴욕의 월가는 코카인으로 돌아간다면 실리콘 밸리는 사이키델릭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카인과 사이키델릭의 차이는 비유하자면 프로이트와 융의 차이다. 프로이트는 코카인을 기적의 약이라고 믿었다. 본인이 애용했을 뿐만 아니라 환자에게도 자주 처방했다. 이상하리 만큼 성욕에 집착한 그의 이론은 코카인의 영향이 컸다. 영혼의 주인이란 에고가 아닌 무의식이며, 무의식은 어릴 적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성적 억압이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의 심리학은 뉴턴의 물리학처럼 현상을 작용 반작용으로 분석한다. 당구공이 서로 부딪히는 것처럼 인간의 정신도 독립된 개개인의 상호 작용으로 결정된다. 따라서 심리 치료를 위해서도 환자 개인을 분석하여 원인을 찾아낸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영혼이란 개별적인 것이다.

칼 융은 그보다 깊숙이 들어갔다. 스승인 프로이트와 갈라진 후, 1913년부터 1916년까지 융은 미국에서 스스로 실험을 한다. 원주민의 페요테 사용을 관찰하는 한편, 자신의 무의식에서 쏟아져 나오는 심상을 꾸준히 기록하고 분석했다. 융은 사이키델릭의 도움 없이도 무의식을 유영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메스칼린과 LSD가 무의식의 문을 연다는 사실에는 동의했지만, 숙련된 안내자 없이 그러한 효과를 얻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융은 명상을 하듯이 의식을 딘련하여 무의식과 건강히 통합시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헉슬리가 사이키델릭을 장려하는 것은 마치 괴테가 말한 ‘마법사의 제자’처럼, 신령을 소환하는 법은 알지만 없애지는 못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히피들의 무분별한 남용이 사이키델릭 연구를 한 세대 넘게 가로막은 것을 보면 그의 걱정이 틀리지 않았다. 

융의 신비 체험은 15년의 저술을 거쳐 1930년 완성되었다. 그러나 사후 48년 뒤인 2009년에야 <레드 북>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었다. 융은 이 책에 담긴 경험이 “표면적인 관찰자에게는 정신 이상으로 보일 것”이라고 예언했다. 사이키델릭 여정이 일반인에게는 환각처럼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융의 평생 업적은 <레드 북>을 저술하던 시절 경험한 무의식의 홍수를 차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것에 불과하다. 그는 프로이트가 탐구한 개인적 무의식의 영역에서 한층 더 들어갔다. 개인을 초월하는 집단적 무의식을 탐험했다. 동물적 본능과 문화적 원형에서 드러나는, 인류 공통의 무의식을 밝히려고 애썼다. 만다라 문양, 위대한 어머니, 생명의 나무 등 정신 내부에 있는 조상이 경험한 것의 흔적을 추적했다. 프로이트와 달리 융은 영혼을 네트워크로 보았다. 모두가 연결된 존재였다. 당구공 모델을 그물망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사이키델릭 연구가 부활하고 있다. 식약처가 실로시빈과 MDMA(엑스터시)의 의학적 연구를 허용했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롤랜드 그리피스 박사는 대규모 실로시빈 실험을 주도하고 있다.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입증했으며, 참여자의 대다수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 중 하나라고 보고했다. 죽음을 앞둔 이가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가장 일반적인 반응은 자신의 존재가 더 큰 무언가의 일부라고 느끼는 것이다. 에고가 완전히 분해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체험은 네 시간 정도로 끝나지만, 그 영향은 장기적으로 남는다는 사실이다. 계속해서 복용해야 하는 프로작 같은 우울증 치료제와 달리 한 번만 먹어도 효과를 볼 수 있다. 현재는 정신병 치료에 집중되지만 사이키델릭은 점점 인간 의식 전반에 관한 연구에 이용될 것이다. 칼 융이 본인에게 스스로 했던 실험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대량 집행할 수 있다. 60년대의 실패를 교훈 삼아 치밀하고 안전히 설계 중이다. 집단적 무의식의 실체를 파헤치면, 인간 뿐만 아니라 뭇 생명의 영혼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조금씩 알아낼 것이다. 공통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 유전자 깊숙한 곳에 내재된 자취를 감지할 것이다. 영혼의 네트워크를 파악하는 것은 지금 여느 때보다 중요하다. 인류가 점점 초개체처럼 사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해 인류의 정신은 하나로 연결된다. 촘촘한 그물망을 이룬다. 개인의 의식은 전체 데이터 트리의 각 노드로서 기능한다. 집단 지성이란 집단 의식이다. 그렇다면 인터넷 시대, 인류의 집단적 무의식은 어떻게 변모하는가? 빅 데이터로 유추하는 트렌드가 곧 집단적 무의식의 흐름인가? 그렇다면 앞으로는 명상과 수행을 통해 영혼을 들여다 보는 대신 구글 트렌드를 분석해야 하는 것인가? 21세기의 칼 융은 빅 데이터 애널리스트일 수밖에 없는가? 검색어 자동 완성 만큼 인간의 무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있던가? 사물인터넷(IoT)은 필연적으로 영혼인터넷을 낳는다. 80억 인류의 두뇌가 BCI를 통해 클라우드와 연결되면 비로소 완성된다. 그때도 우리 각자의 정신이 안녕하려면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 인간 영혼의 심연을 들여다 보고 오류 및 오작동의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 사이키델릭 연구가 그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전범선

전범선 / 글 쓰고 노래하는 사람. 1991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밴드 ‘양반들’ 보컬이다.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포르체, 2021)와 '해방촌의 채식주의자'(한겨레출판, 2020)를 썼다. '왜 비건인가?'(피터 싱어 지음, 두루미, 2021), '비건 세상 만들기'(토바이어스 리나르트 지음, 두루미, 2020) 등을 번역했다.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의 자문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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